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그 책들을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만 했다.
두려움이나 숭배를 마음속에서 배제해야만 했던 것이다. 버크는 영국왕정을 옹호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가 폭군의 하수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의 책을 집에 들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 쓰인 말들을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읽는 것은전율이 흐를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그와 동일한 전율을 매디슨, 해밀턴, 제이의 글을 읽을 때도 느꼈다. 특히 그들의 결론보다 버크의 결론에 나 스스로 동조하게 될 때, 혹은 그들의 생각이 내용 면에서는 그리다르지 않고 단지 형식적으로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더욱 컸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 것에는 대단한 가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책들은 사람을 속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가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 P375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의 내부에있어요. 그가 말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이 상황을 <피그말리온>에 비유하더군요. 타라,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케리 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날카로운 눈과 꿰뚫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인공은 좋은 옷을 입은 하층 노동자였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생기기 전까지는 일단 그 믿음이 생긴 후에는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됐지요.」 - P381

<너는 내 딸인데, 내가 너를 보호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읽는 순간 나는 한평생을 다시 살았다. 그것은 실제 내가 살아 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나는 다른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다른 사람이 됐다. 나는 마술 같은 그 말의 힘을 그때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엄마가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내게 되어 주지 못했다는 말을 한 순간, 엄마는 처음으로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엄마가 되었다.
- P423

 그제야 수치심의 뿌리가 어디였는지 깨달았다. 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콘세르바토리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외교관이 아니어서 수치스러운 것이아니었다. 아버지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고, 엄마가 그런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선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 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 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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