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무렵에 잘라낸 고래고기가 스테이크로 요리되었다. 스티브는 고래기름으로 등불 두 개를 켜고, 권양기가 식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위에 고래고기 요리를 올려놓고, 그 앞에 떡 버티고 섰다. 그날 밤 고래고기 연회에참석한 사람은 스터브만이 아니었다. 수천 마리의 상어 떼가 죽은 고래 주위에 몰려와 고래의 지방을 마음껏 즐겼다. 그들이 고기를 씹는 소리와 스터브가 고기를 씹는 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아래 선실 침대에서 자고 있던사람들은 자기 심장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상어 떼가 꼬리로 선체를 격렬하게 때리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뱃전 너머로 내려다보면 (아까 소리를 들었듯이) 상어 떼가 음침하고 검은 물속에서 뒹굴다가.
등이 아래쪽으로 가도록 몸을 뒤채어 사람 머리통만큼 큰 고깃덩어리를 거대한 공 모양으로 도려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어의 이 묘기는 거의기적처럼 보인다. 공격할 틈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고래의 밋밋한 표면에서어떻게 그처럼 대칭으로 고기 한 입을 도려낼 수 있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우주적 신비의 일부로 남아 있다. 상어 떼가 고래한테 남긴 흔적은 목수가나사못을 박기 위해 파낸 구멍에 비유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초연이 피어오르는 험악하고 처참한 해전 중에도 상어란 놈들은 그들에게 던져지는 시체를 모조리 한 입에 삼킬 준비를 갖추고, 고기 자르는 도마주변에 몰려든 굶주린 개들처럼 갈망하는 눈으로 배의 갑판을 쳐다본다.
갑판 위에서 용감한 백정들이 황금 자루에 술이 달려 있는 고기칼을 들고식인종처럼 아직 살아 있는 상대의 고기를 자르고 있는 동안 식탁 밑에서는 상어 떼들도 보석을 박은 입으로 죽은 고기를 서로 뜯어먹으려 다툰다.
이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어도 거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당사자들에게는 충분히 소름 끼치고 상어처럼 잔인한 것이다. 상어 떼는 대서양을 건너는 모든 노예선의 변함없는 동행자이기도 하다. 언제나 질서정연하게 배와 나란히 달리면서 무언가를 어딘가로 운반해야 할 경우나 죽은 노예를 바다에 매장할 때 재빨리 도와준다. 그 밖에도 상어 떼가 가장 사교적으로 모여들어 유쾌한 잔치를 즐기는 일정한 기간과 장소와 기회 등에대해서는 한두 가지 비슷한 예를 더 들 수 있겠지만, 밤바다에서 포경선에묶여 있는 죽은 향유고래를 둘러싸고 수많은 상어들이 명랑하고 쾌활한 기분을 드러내는 꼴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그 광경을 본적이 없다면, 악마 숭배의 타당성과 악마를 회유하는 편법에 대해 판단하기를 보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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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해브 선장은 이 고래에 대한 추격을 감독하는 동안에는 평소의 활기를 보여주었지만, 고래가 죽은 지금은 막연한 불만이나 초조감 또는 절망감 같은 것이 그의 마음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고래의 시체를 보자 모비 딕을 아직 죽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새삼 떠오른 것 같았고, 고래 천 마리를 잡아서 끌어 온다 해도 그의 원대하고 편집광적인 목적에는 조금도 가까이 가지 못할 것이다. 잠시 후 ‘피쿼드‘호의 갑판에서 난 소리를 들었다면, 여러분은 모든 선원이 깊은 바다에 닻을 던질 준비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거운 쇠사슬이 갑판 위를 질질 끌려가서 와르르 소리를 내며 현창 밖으로 밀려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요란한 쇠사슬 소리는 배가 아니라 그 거대한 시체를 붙들어 매는 소리였다. 머리는 고물에, 꼬리는 이물에 붙들어 매인 고래는 이제 그 검은 동체를 배에 찰싹 붙인 채누워 있어서, 하늘 높이 솟은 활대나 삭구마저 흐릿해 보이는 어둠 속에서 배와 고래를 보면, 같은 멍에를 쓴 커다란 황소 한 쌍이, 한 마리는 누워 있고 또 한 마리는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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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여라! 바싹 붙여!" 그가 뱃머리 노잡이에게 소리쳤다. 기운이 빠지고있는 고래는 분노도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다가가라! 바싹 붙여라! 보트는 고래 옆에 나란히 섰다. 스티브는 뱃머리에서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 길고 날카로운 창을 고래에게 천천히 박아 넣었다. 그리고 창을 그대로 둔 채조심스럽게 연신 휘저었다. 마치 고래가 삼켰을지도 모르는 금시계를 창출으로 더듬어 찾아서 시계를 망가뜨리지 않고 갈고리에 걸어서 꺼내려고 신중하게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찾고 있는 금시계란 다름 아닌 고래의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목숨이었다. 이제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괴물이 실신상태에서 깨어나 뭐라 말할 수 없는 단말마의 고통을 느낀 듯, 자기가 뿜어낸 피 속에서 무시무시하게 허우적거리며 뒹굴었다. 도저히 헤어날 수없는 물보라, 미친 듯이 들끓는 물거품에 휩싸인 채 마구 몸부림쳤다. 그래서 위험을 느낀 보트는 당장 뒤로 물러섰지만, 그 광란의 어스름 속에서 대낮의 맑은 공기 속으로 나오기 위해 한참 동안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제 고통이 누그러진 고래는 다시 몸을 뒤틀면서 우리 시야로 들어왔다. 고래는 파도가 일렁이듯 좌우로 몸을 흔들고, 경련하듯 분수공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격렬하고 고통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붉은 포도주의 자줏빛 찌꺼기처럼 빨갛게 엉킨 핏덩어리가 깜짝 놀란 공기 속으로 연거푸 솟구쳐 오른 다음 다시 아래로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고래의 몸뚱이를 타고 바다로 흘러내렸다. 고래는 심장이 터진 것이다!
"죽었어요! 스티브" 다구가 말했다.
"그래. 파이프도 둘 다 불이 꺼졌어." 대답하면서 스티브는 자기 입에서 파이프를 떼어 담뱃재를 수면에 털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해치운 거대한 시체를 생각에 잠긴 눈으로 바라보며 잠깐 서 있었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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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폭풍이 오기 전에 그것을 예고하는 깊은 정적이 폭풍 자체보다 더 무섭다고 한다. 이 정적은 사실 폭풍을 싸고 있는 포장지일 뿐이고, 겉으로는 아무런 해도 없어 보이는 라이플 속에 치명적인 화약과 탄알과 폭발력이 들어 있듯이 그 정적 속에는 폭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포경 밧줄이 실제로 풀려 나가기 전, 노잡이들 주위를 조용히 굽이치고 있을 때의 그 우아한 평안, 이것이야말로 이 위험물의 다른 어떤 양상보다도 진정한 공포감을 훨씬 더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이유가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어도 작살이 아니라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포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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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라는 주제 덕분에 정신이 크게 팽창하고 고양되면, 별이 빛나는 하늘에서 거대한 고래 모습을 찾아내고 고래를 뒤쫓는 보트들의 모습도 반드시찾아낼 수 있다. 동방의 민족들이 오랫동안 전쟁에 여념이 없을 때 구름 사이에서 격투를 벌이고 있는 군대를 본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북극해에서 처음 나에게 고래를 알려준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북극을 빙글빙글돌면서 리바이어던을 추적했고, 남극해의 빛나는 하늘 밑에서는 ‘아르고내비스‘호를 타고 ‘물뱀자리‘와 ‘물고기자리‘를 넘어 찬란하게 빛나는 ‘고래자리‘를 쫓아갔다.
군함의 닻을 계류용 밧줄을 매는 기둥으로 삼고 작살 다발을 박차로 삼아 저 고래에 올라타고 가장 높은 하늘로 뛰어 올라가서, 무수한 천막이 늘어선 가상의 하늘이 정말로 내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 진을 치고 있는지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344

그러나 육지 사람들은 대체로 바다의 원주민들에게 지독한 편견과 혐오감을 품어왔고, 우리는 바다가 영원한 미지의 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콜럼버스는 서쪽 바다에 떠 있는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 무수한미지의 세계를 항해했던 것이며, 치명적인 재난 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재난은 먼 옛날부터 바다로 나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차별로 일어났으며, 잠깐만 생각해보아도 젖먹이나 다름없는 인류가 제아무리 자신의 과학과 기술을 자랑하고 장차 그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진보한다 해도, 바다는 최후의 심판일까지 영원히 인간을 모욕하고 살해하며, 인간이 만들 수 있는가장 당당하고 견고한 군함도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느낌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인간은 바다가 처음부터 갖고 있는 그 최대한의 무서움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
기록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배가 뜬 바다는 복수심으로 전 세계를 삼켰지만 한 사람의 과부도 만들지 않았다. 그 바다는 지금도 굽이치고 있다. 그 바다는 지난해에도 많은 배를 삼켜버렸다. 오오.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노아의 홍수는 아직 물러가지 않았다. 아름다운 세계의 3분의 2는 아직도 홍수에 뒤덮여 있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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