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적 가치관과 불평등을 비난하면서 권력을 잡았던 마르크스와 레닌의 후계자, 즉 중화 인민 공화국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신흥 부자 계급을 노골적으로 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상적인 지배 이념을 고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바야흐로 자기 창조의 시대였고 그것은 중국 공산당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임무는 국가주석이자 총서기인 장쩌민에게 넘어갔다. 2002년 당의 가장 중요한 전당 대회에서 그는 심각한 수사학적 왜곡을 보여주었다. 차마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부터 <중간소득 계층의 성공을 위해 당이 헌신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중간 소득 계층은 어디에서나 당 기관원의 환영을 받았고 새로운 슬로건마다 그들이 언급됐다. 중국 경찰학교에 근무하는 한 저술가는 중간 소득 계층을 <문명화된 방식의 이면에 존재하는 도덕적인 집단이다. 특권을 없애고 빈곤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세력이다. 사실상 전부라고 할 수 있다>라고 묘사했다.
동일한 전당대회에서 공산당은 또한 중국 헌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들은 스스로를 <혁명당>이라고 지칭하는 대신 <집권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즉 중국 지도자들이 그들의 존재 이유를 바꾼 것이다. 그렇게 지난 수십년 동안 <반혁명주의자들>이라며 정적을 거세게 비난했던 이전의 반란자들은 집권당임을 자처하면서 이제는 되레 혁명이라는 단어를 문제 삼을 정도로 현상태의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다. 그 결과 톈안먼 광장 옆 혁명사 박물관은 원래의 이름을 잃고 중국 국립박물관에 흡수되었다. 2004년에 국무원 총리 원자바오는 <실제로 통일성과 안정성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