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커다란 자루에 넣었는데, 차마 쓰레기와 함께 버릴수는 없었어. 언젠가 차를 막 출발시키려는 케퍼스를 보고그 자루를 상점 같은 데 갖다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 자선 가게 같은 게 있다는 걸 찾아 봐서 알고 있었거든. 케퍼스는 자루의 물건들을 뒤적여 보더니 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어. 그가 어떻게 알겠어? 그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자기가 아는 가게에서는 그런 물건들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더군. 난, 그래도 정말 좋은 물건들이라고 했지. 그러자 그는 내가 좀 감상적이 되었다는 걸 눈치채고는 어조를바꾸더군. 그러고는 ‘좋아, 아가씨, 이걸 옥스팜에 가져다주지.‘ 하고 말했어. 그런 다음 아주 힘들여서 이렇게 덧붙였어. ‘이제 자세히 보니 아가씨 말이 맞군. 꽤 좋은 물건들인걸!‘ 하지만 그 말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어. 그는 그 자루를 어딘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을 거야. 그렇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그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던 거지." 루스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말했다. "넌 달랐어. 지금도 기억나. 넌 수집품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도 당혹스러워한적 없이 줄곧 간직하고 있었지. 나도 그랬으면 좋았을걸." - P230

근원자 이론의 이면에 있는 기본 개념은 단순한 것으로별다른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 각자가 일반인에게서 복제된 개체인 만큼 바깥세상에는 우리의 근원자가 살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의 근원자를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밖, 즉 시내나 쇼핑센터, 휴게소 같은 곳에 나가면 줄곧 신경을 곤두세워 자기나 친구들의 근원임직한 사람들, 곧 ‘근원자‘를 찾아보곤 했다. - P243

그다음, 어째서 우리가 자신의 근원자를 찾아내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자신의 근원자를 찾아내고싶은 마음 이면에는, 실제로 그 사람을 찾아내면 그를 통해앞으로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예를 들어 누군가의 근원자가 현재 철도국에서 일한다고 해서 그 역시 나중에 철도국 직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정도는 다르지만 자기가 복제되어 나온근원자를 보게 되면 진짜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앞으로의 삶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근원자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우리의 근원자는 우리를 이 세상에나오게 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필요한 존재였을 뿐,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루스는 언제나 이런 생각을 가진 편이었고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누구의 근원자든 간에 근원자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그것에 무심할 수는 없었다. - P244

그리고 우리가 은밀히 시선을 던져 가며 그들의 대화를 듣는 가운데 뭔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는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일어나고있음이 분명했다. 만약 우리가 사무실 유리창 너머에 있던그 여자를 보고 돌아섰다면, 그 여자를 따라 시내를 가로지른 다음 그만 놓치고 말았다면, 줄곧 홍분과 의기양양한 기분에 잠긴 채 코티지로 돌아갈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제그 화랑 안에서의 대면은 우리의 바람에 비해 지나치게 가까웠다.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여자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녀는 점점 더 루스와 달라 보였다. 그런 느낌은 우리 사이에 점점 더 강해져 갔고, 화랑 저편에서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는 루스 역시 그 사실을 극명하게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화랑에 머물렀는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그 느낌을 말로 인정해야 할 순간을 늦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 여자가 갑자기 화랑을 나갔다. 우리는 서로 시선을 피하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 중 누구도 그 여자를 따라갈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똑딱똑딱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보고있는지에 대해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듯했다. - P284

 "두 분이 처음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즉각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요. 하지만 봐요.
결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절대로, 결단코 그 여자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근원자가 될 리가 없어요. 생각해 봐요. 그여자가 도대체 왜 그런 걸 하려 들겠어요? 우리 모두 사실을 알고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사실을 회피하고 있는거예요. 우린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복제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복제된 것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루스." 내가 엄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루스, 그만해."
하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우리는 부랑자나 인간쓰레기, 창녀, 알코올 중독자, 매춘부, 정신병자나 죄수들로부터 복제된 거예요. 그게 우리 근원이에요. 우리 모두 그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말로인정하려 들지 않는 거죠? 아까 본 그런 여자요? 이런, 그래맞아, 토미. 그저 재미 삼아 해본 것뿐이야. 소일 삼아 해 본거라고. 거기에 있던 또 다른 여자, 그 여자의 친구인 화랑의 노부인은 우리가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부인이 우리 정체를 알았다면 그런 얘기를 들려주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그 부인에게 ‘실례합니다. 혹시 당신 친구분이 클론의 근원자일 가능성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부인은 우리를 쫓아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누구든 자신의 근원자를 찾고 싶다면, 진짜 그 일을 해내고 싶다면 빈민가로, 쓰레기장으로, 화장실로 가야 한다고 말이에요. 그런 곳들이우리가 시작된 곳이니까요." - P290

그러다가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줄지어 놓인 카세트테이프 케이스를 훑어보는데 손가락 아래에서 갑자기 오래전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것이 모습을 나타냈다. 주디, 그녀의 담배, 웨이터를 향해 애교부리는 듯한 눈길, 그리고 배경의 흐릿한 종려나무에 이르기까지 내가 잃어버린 것과 같은 테이프였다.
그 순간 나는 조금쯤 흥분되는 다른 물건을 발견했을 때처럼 감탄사를 내지르지 않았다. 나는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서 그 플라스틱 케이스를 바라보았다. 한순간 그것은 실수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 모든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완벽한 구실이 되어 준 테이프가 나타났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 일을 중단해야 할 터였다. 내가 놀랍게도 즉각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같은 이유에서 나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척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그 테이프에는 유년기의 뭔가를 어른이 되고 난 후 대할 때 느껴지는 막연한 당혹감 같은 것이 있었다. 실제로 나는 그 테이프 위에 옆의 테이프를 포개 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케이스의 등이 줄곧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결국 토미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 P300

토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예를 들어 어떤 게 있다는거지? 마담은 우리를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어. 그녀는 우리를 개인적으로 알고 싶어 하지 않았어. 게다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마담 혼자만이 아닐 거야. 더 높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헤일셤에는 발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사람들 말이야.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 캐시.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맞아떨어져. 바로 그런 이유에서 화랑이 그토록 중요했던 거야. 그런 이유에서 선생님들은 우리가 미술이나 시를 열심히 공부하기를 원했던 거지. 캐시, 지금무슨 생각하니?"
사실 나는 약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조금 전에 발견한 문제의 테이프를 어느 날 오후 공동침실에서 혼자 들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가슴에 베개를 끌어안고 몸을 흔들고 있었고, 마담은 두 눈에 눈물이찬 채 문간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았던가. 나로서는지금까지 설득력 있는 설명을 찾지 못한 이 일화 역시 토미의 추론을 적용하면 설명이 되는 듯했다. 머릿속에서 나는 베개가 아니라 아이를 안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었지만 마담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토미의 추론이 맞는다면, 나중에 우리가 사랑에 빠져 기증 집행 유예를 요청할 때그것을 제대로 판단하려는 유일한 목적에서 마담이 우리와 연결된 거라면 그렇다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런 장면을 우연히 발견하고 정말이지 감동했을 터였다. 대개는 우리를 냉랭하게 대했지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이모든 생각을 나는 토미에게 이야기할 참이었다. 하지만 나자신을 억제했다. 우선은 그의 추론을 틀린 것으로 몰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 P309

나중에 나는 이 순간에 대해 거듭 생각해 보았다. 그때나는 뭔가 할 말을 찾아냈어야 했다. 그렇다 해도 토미는 내말을 믿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나는 루스의 말을 부정할 수있었다. 사태를 사실 그대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겠지만 그래도 나는 뭔가를 했어야 했다. 루스의 말에 동의할 수없다고 밝히고, 그녀가 사태를 꼬아서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내가 그 동물을 두고 웃음을 터뜨리긴 했지만 조금전 그녀가 말한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나아가 토미에게 다가가 루스 앞에서 그를 안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떠오른 것은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서였다. 나라는 인간의 성정과 우리 셋의 관계로 미루어 볼 때, 실제로 그것은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반응이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했다면 우리의 말다툼은 더욱격해지기만 했으리라.
나는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루스가 그렇게 교묘하게 우리의 내밀한 이야기를 발설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당황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얽히고설킨 혼란 가운데 커다란 피로감, 일종의 무력감 같은 것이 엄습했던 것이 기억난다. 마치 머리에서 기운이 완전히 빠져버린 순간에 풀어야 할 수학 문제가 주어진 것 같았다. 어디엔가 먼 곳에 답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힘을 내 그리로 걸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안에서 뭔가가 나를 포기시켰다. 어떤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좋아, 그가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게 내버려 두자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하자고. 그렇게 해 버려. 체념한 나는 ‘그래 그 말이 맞아. 그 외에 어떤 걸 기대했던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토미를 바라본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토미의 그때 표정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순간그의 얼굴에서는 분노가 빠져나가고 경악에 가까운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내가 담장 기둥에 앉은 희귀한 나비라도 되는 것처럼. - P339

로저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후 몇 달에 걸쳐 나는 그 문제를, 헤일셤 폐교와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자 시간이 충분히 있다고 여겨지던 것들에 대해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겁에질렸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헤일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바뀌는 것 같았다. 그날 루스의 간병사가 되는 것이 어떠냐는 로라의 말이 내게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당시 내가루스에 대해 여전히 넘을 수 없는 장벽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마치 나의 일부가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있었고, 로라의 말이 단지 그 위에 덮여 있던 베일을 벗겨낸 것 같았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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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과도기가 찾아오는 일은 좀처럼 없을지 모르나, 일단 찾아오기만 하면 지구를 뒤바꿔놓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말벌이 1억 년도전에 분업의 요령을 개발해냈을 때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당시 말벌들은 여왕벌 (알은 모두 이 여왕벌이 낳는다)과 여러 종류의 일벌들을 구분해 일벌들에게는 벌집을 유지 관리하고 먹이를 구해다 나눠 먹도록 하는 일을 맡겼다. 이러한 요령을 발견해낸 것은 초창기의 막시류 곤충들 (말벌, 벌, 개미 등)이었으며, 그 외에도 (흰개미와 벌거숭이 두더지쥐의 조상을 비롯해, 새우·진딧물 · 딱정벌레·거미의 일부 종) 수십 차례에 걸쳐 별개로 그 요령을 발견해냈다. "그럴 때마다 이들이 안고 있던 무임승차자 문제는 극복되었고, 이기적인 유전자는 상대적으로 이타적인 집단 성원들을 만들어내어 이들이 한데 뭉쳐 지극히 이기적인 집단을 구성하도록 했다.
이 집단들은 새로운 차원의 탈것인 셈이었다. 벌집, 즉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족이 모여 사는 군체가 생겨난 것인데, 이들은 하나의단위처럼 기능했을 뿐 아니라 (예를 들면, 먹이를 구하거나 누구와 싸움을 벌일 때) 하나의 단위처럼 번식했다. 앞서 든 예로 치면 모터보트를 탄 자매들이 이에 해당하니, 이전까지는 한 번도 찾아볼 수 없던 혁신적인 첨단 기술과 기계공학을 십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 한 번의 중대 과도기였다. 이로써 또 다른 종류의 집단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인 듯이 기능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이러한 군체에 올라탄 유전자들은 그렇지 못한 유전자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함께하는 일"에 발맞추지 못하고 더 이기적이며 혼자 생활하기 좋아하는 곤충에 올라탄 유전자들을 짓밟은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곤충 중에 이 군체 곤충들은 단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등장과 함께 섭식 및 번식에 제일 좋은 땅을 차지하고 경쟁자들은 변방으로 밀어내 버렸다. 더불어 이들은 지구의 육상생태계도 대거 뒤바꿔놓았다(예를 들면, 꽃식물의 경우 이 곤충들이 꽃가루 매개자 역할을 해주면서 진화가 가능했다). 오늘날 군체 곤충은 무게로 따지면 전체 곤충의 태반을 넘는다. - P343

이 세상에 사회성을 보이는 동물은 많다. 자기들끼리 이러저러하게 떼를 지어 함께 살아가는 동물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특정 수준의 사회성 문턱을 넘어 초사회성(ultrasociality) 단계까지 진입하는동물은 몇 되지 않는다. 초사회성이란 무척 커다란 규모로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그 안에 어느 정도 내부 구조를 갖추어 노동 분업의 이득을 얻을 줄 아는 것을 말한다. 병정 · 정찰병 · 유모의 계급이 다 따로 나눠져 있는 벌집이나 개미집의 경우가 초사회성 동물의 실례로거론되며, 인간 사회 역시 그렇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이 초사회성으로 진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특성 중 하나는 공동의 보금자리를 지켜내야 할 필요인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자 베르트 횔도블러 (Bert Hölldobler)와 에드워드 O. 윌슨이 최근의 연구 결과를 요약한 바에 따르면,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고도 불리는 초사회성은 말벌 · 벌 · 개미 · 흰개미에게서만이 아니라, 새우·진딧물 · 총채벌레 · 딱정벌레의 몇몇 종에게서도 발견된다.

진사회성의 가장 초기 특성이 나타난다고 알려진 이 모든 종에서는, 지속적 공급과 방어가 가능한 자원을 포식자 · 기생충 · 경쟁자로부터 지켜내는 행동이 나타난다. 이런 자원에는 항상 보금자리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이가 포함되며, 먹이는 보금자리의 서식 개체가 찾아 먹을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 P365

횔도블러와 윌슨은 초사회성으로의 진입을 설명하는 근거로 두가지 요인을 더 든다. 하나는 더 길어진 양육 기간 동안 새끼를 먹여 살려야 할 필요성이고(어미가 새끼를 돌보는 데 형제자매와 수컷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종족이 이 점에서 한결 유리하다). 나머지 하나는 집단 사이의 갈등이다. 이 세 요인이 다 같이 작용한 결과, 지구에 맨 처음 나타난 초창기 말벌들은 (나무 안에 파인 구멍 같은) 천연의 요새와도 같은보금자리에 다 같이 진을 친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말벌의 세계에서는 보금자리가 될 최적의 입지는 늘 협동성이 제일 뛰어난 집단의 차지였고, 이들은 스스로 더 뛰어난 생산성과 방비를 갖추기 위해 점점 더 정교하게 방법을 가다듬어나갔다. 오늘날 우리가 꿀벌이라고 알고 있는 개체도 알고 보면 이 말벌의 자손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꿀벌이 만든 벌집을 "요새 안에 지은 공장"이라는말로 표현해왔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벌과 마찬가지로우리 조상들 역시 (1) 텃세가 있는 생물체라 (동굴과 같이) 방어가 용이한 보금자리를 선호하며. (2) 그 새끼는 무력하여 엄청나게 공을들여 돌보아주어야만 하며, 그러면서 동시에 (3) 그들이 속한 집단은 주변 집단에서 가해오는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식으로 수십만 년의 시간이 흐르며 자리 잡은 모든 조건은 초사회성을 진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 인간은 영장류 중 유일하게 초사회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애초 인간의 혈통을 지녔던 이들은 행동이 흡사 침팬지와 같았을지 모르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걸음을 옮겨 그곳을 빠져나오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이미 벌과 비슷한 모습을 조금쯤은 가진 상태였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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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이곳은 동쪽, 곧 바다 쪽에 이 산맥이 솟아 있기 때문에 이곳을 통해서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사람들은북쪽이나 남쪽으로(이 대목에서 선생님은 지휘봉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움직일 뿐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우회해 지나가 버린다. 이런 이유에서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평화로운,
그런대로 아름다운 구석인 셈이다. 동시에 ‘분실물 보관소같은 곳인 셈이지."
••••••
내 말이 얼토당토않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시기의 우리에게 헤일셤 너머의 장소는 어디가 되었든 간에 환상 속의 세계와 흡사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외부 세상에 대해, 그곳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해 당시 우리는 극히 막연한 개념만을 갖고 있었을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퍽에 대한 개념을 꼼꼼히 점검해볼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도버 회복 센터의 타일 벽으로 된 병실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루스가 말한 것처럼 당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혹시 귀중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해도, 애써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해도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할 수 있게 되면 노퍽에 가서 그것을찾을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는 사실"
이었다. - P121

어쨌든 이런 이유에서 나는 그 테이프에 대해 몹시 은밀한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어야만 담배 피우는 주디의 사진이 보이게 커버를 안쪽으로 돌려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게 그 테이프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은 담배 때문도, 주디 브리지워터가(그 무렵에유행한 칵테일 바 스타일의 가수로 헤일셤에서 인기 있는 부류는 아니었다.) 노래를 잘 불러서도 아니었다. 내가 그 테이프를 그렇게 특별하게 여긴 것은 거기에 수록된 노래 때문이었다. 셋째 트랙에 담긴 그 노래의 제목은 「네버 렛 미 고」였다. - P127

 어쨌든 나는 가슴에 아기를 안고 있다고 상상하며 그 노래에 맞추어 천천히몸을 흔들고 있었다. 실제로 상황이 더욱 곤혹스러웠던 것은 당시에 내가 아기 대신 베개를 끌어안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느릿하게 춤을 추면서 그 구절이 나올 때마다 나직하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 미 고••••••."
노래가 거의 끝날 즈음 나는 무엇 때문인지 방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퍼뜩 눈을 떴다. ‘마담‘이 문간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충격으로 몸이 얼어붙었다. 다음 순간 새로운 종류의 경계심이 나를 엄습했다. 그 상황에는 뭔가 기묘한 점이있었기 때문이다.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지만(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 문을 완전히 닫지 않는다는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마담은 바로 문턱에 서 있지 않았다. 그녀는 복도에 조용히 서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방 안에서 내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녀가 울고 있다는것이었다. 어쩌면 음악을 뚫고 들려온 그 흐느낌 소리에 내가 몽상에서 깨어난 것인지도 몰랐다. - P130

"다른 누군가가 너희한테 얘기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말해 주마. 전에 말한 것처럼 문제는 너희가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는 거야. 너희는 사태가 어떻게 될 건지 듣긴 했지만, 아무도 진짜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감히 말하건대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데 무척 만족하는 이들도 있지.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해.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얼마안 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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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은 놀고 있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우리보다 훨씬 키가 컸지만, 루스는 나보다 줄곧 한두걸음 앞서서 그들을 헤치고 목적한 곳을 향해 걸었다. 뜰과 경계를 이루는 철망 가까이에 이르자 그 애는 몸을 돌리고는 말했다.
"됐어. 여기서 타자. 넌 ‘들장미‘를 타."
나는 그 애가 건네주는 보이지 않는 고삐를 받아 쥐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때로는 보통 속도로 때로는 전속력으로담장을 넘어 달리기 시작했다. 말이 없다고 대답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내가 ‘들장미‘와 한동안 달리고 나자 루스가,
각각의 말이 지닌 결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온갖 조언과 함께 자기 말들을 차례로 타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까 말했잖아! ‘수선화‘를 탈 때는 몸을 완전히 뒤로 젖혀야 한다고! 훨씬 더 많이 말이야! 위에 탄 사람이 몸을 뒤로 젖히지 않으면 싫어하거든!"
내가 그런대로 잘 해낸 모양이었다. 루스가 나에게 자기가 가장 아끼는 ‘번개‘를 타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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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기꾼. 게으름뱅이 무임승차자에게서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려는 강력한 소망을 가진바, 이를 더 유심히 살펴 공평성 기반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사기꾼·게으름뱅이 · 무임승차자 들이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계속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까지 협동을 멈추고, 그러면 사회구조 자체가 흐트러지고 만다. 공평성 기반은 우리가 누구에게서 직접 사기를 당했을 때 의분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해둔다.
••••••
 그러나 공평성 기반은 이보다 더 넓은 차원의 관심사에도 적용된다. 즉, 공평성 기반이 있기에 우리는 사기꾼이나 파렴치한 등 집단을 위해 물을 모아두기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물을 ‘마셔버린‘ 사람은 누구든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공평성 기반을 자극하는 통용적 동인은 집단의 크기와 숱한 역사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안전망을 갖춘 대규모 산업사회의 경우에는, 생존에 필요한 응급처치 이상으로 이 안전망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통용적 동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안전망의 남용 여부를 사람들은 중요하게여긴다. 이 사실을 알면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사회 기금을 챙기는 미혼모 같은 사람들 말이오. 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민주당원이 되지"라고 말한 남성처럼, 왜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이 화가 나서 내게 이메일을 보냈는지 설명된다. 한 보수주의자가 사람들이 민주당에 표를 던지는 이유를 "게으르기" 때문이라거나,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사람,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정부의 도움에 기대지 않는 사람들이 싫어서"라고 꼽은 이유도 이해할 수 있고 말이다.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허위로 서류를 꾸며 대규모 대출을 받아 주택을 산 이들을 왜 국민들이긴급 구제해주어야 하느냐고 산텔리가 분통을 터뜨린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 P330

 즉, 진보주의자들은 세 가지 기반의 도덕성을 가진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여섯 가지 기반 모두를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진보의 도덕 매트릭스는 배려/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 기반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단 진보주의자들은 공평성 (비례의 원칙)이 동정심이나 압제에 대한 저항과 상충할 때에는 공평성은 버리고 그 대신 이 둘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보수주의자의 도덕성은 여섯 가지 기반 모두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에 비해서 배려기반을 희생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다른 도덕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그 과정에서 해를 입는 사람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 P335

• 도덕성 기반에 우리는 자유/압제 기반을 추가했다. 이 기반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배의 표시가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그것을알아차리고 의분을 느낀다. 불한당과 독재자에게 저항하거나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 같이 뭉쳐야 한다는 욕구도 여기에서부터 생겨난다. 이 기반을 잘 알면 자유주의자와 일부 보수주의자가 왜 "나를 짓밟지 마라" 식의 반정부 감정을 가지는지는 물론,
좌파의 평등주의와 반권위주의도 이해할 수 있다.
• 우리는 공평성 기반에 수정을 가해 그것이 비례의 원칙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했다. 공평성 기반이 호혜적 이타주의 심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맞지만, 인간이 험담과 징계가 가능한 도덕공동체를 만들어내고부터는 공평성 기반이 짊어진 의무가 훨씬 많아졌다. 사람들 대부분은 심층적인 직관 차원에서 인과법칙을 중시한다. 사기꾼은 벌을 받고 착하게 살아가는 시민은 응분의 보상을 받기를 사람들은 대체로 기대한다. - P337

이렇게 수정을 가하자 근래 들어 민주당이 골몰해온 커다란 수수께끼 하나를 이 ‘도덕성 기반 이론‘을 통해 해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문제란 바로 왜 미국의 시골 주민과 노동 계층은 일반적으로 공화당에 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재분배를 통해 국민들에게 좀 더 공평하게 돈을 나누어주고자 하는 쪽은 오히려 민주당인데도 말이다.
민주당에서는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경제적 이해에 반하는 식으로 투표하는 것은 공화당의 농락에 넘어간 때문이라고 곧잘 이야기한다(2004년의 인기작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What‘s theMatter with Kansas?))의 주된 논지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도덕성 기반이론‘에서 보면, 시골 지역과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은 사실 자신들의 도덕적 이해에 따라 투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입맛은 ‘더 트루 테이스트‘ 식당에는 맞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자신의 나라가 피해자들을 돌보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시키는 데만 매달리는 것도 원치 않는다. 뒤르켐의 사회관을 비롯해서 여섯 가지 기반의 도덕성과 세 가지 기반의 도덕성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민주당은 사람들이 공화당에 투표하는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책 1부에서 나는 도덕심리학의 첫 번째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다"라는 것이다. 2부에서는그러한 직관들 하나하나를 세세히 설명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도덕심리학의 두 번째 원칙을 제시했다.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 다양한 도덕성 때문에 좋은 사람들 사이에 너무도 쉽게 편이 갈리는 모습을 살펴볼 차례이다. 이렇게 편이 갈라지면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는않고 적대적으로 싸우기만 한다. 이제 우리는 도덕심리학의 세 번째원칙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준비가 되었다. 바로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라는 것이다. - P337

이 이야기를 좀 더 정확하게 정리해보자. 내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또래와의 경쟁에서 자신의 이익을 능숙하게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갖가지 정신 기제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 본성이 이집단적이기도 하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타 집단과의 경쟁에서 우리 집단의 이익을 능숙하게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갖가지 정신 기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성인(聖人)은 못 되어도 더러 훌륭한 팀플레이어가 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면, 이집단성의 기제는 과연 어디서 생기는가가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오늘날 우리가 집단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까닭은, 먼 옛날 집단적인 개인들이 한 집단 내의 그렇지 못한 개인들을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면 이는 표준적이고기본적인 자연선택이 그저 개인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에 지나지않는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람들의 집단성은 글라우콘이 말한 식일 것이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실제로 집단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위의 가정이 아니라고 하면, 국기 주위에 몰리기 현상(rally-round-the-flag)에서 보이듯이, 우리가 집단성 기제를 가진 것은 함께 뭉쳐 협동한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을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고 하면, 나는 이른바 ‘집단선택‘의 개념을들먹이는 것이 되는데, 이 집단선택의 개념은 1970년대에 학계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추방된 바 있다. - P344

다윈은 이때 이미 오늘날 다차원 선택(multi-level selection)이라고 알려진 개념의 기본 논리를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큰 인형을 열면그 안에 작은 인형들이 연달아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처럼, 생명은여러 차원이 위계 서열에 따라 겹겹이 포개진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유전자는 염색체 속에 들어 있고, 염색체는 세포 속에 들어 있으며, 세포는 개별 유기체 안에 들어 있고, 개별 유기체는 벌집이나 인간사회 등 각종 집단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경쟁은 이러한 위계 서열의 어느 차원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된 목적을 생각하면(도덕성 연구), 여기에서 중요한 차원은 딱 두 가지, 개별 유기체와 집단뿐이다. 집단 간 경쟁이 벌어질 때에는 보통 단결력과 협동심이 좋은 집단이 이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각 집단에는 저마다 이기적인 개인들(무임승차자)이 있어 결국에는 이들이 이득을 챙겨가지 않는가. 제일 용맹스러운 부대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맞지만, 제일 용맹스러운 부대 안에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따로 있다. 즉, 몇몇겁쟁이가 전장에서 몸을 사리고 살아남아,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식을 낳고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다차원 선택은 결국, 각 차원에서 선택 압력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느냐, 즉 삶의 경쟁이 특정 특성들에 대해 어떤 유전자를 더 선호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 P348

 하지만 초창기 인간들이 애초 그런 집단 형성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였을까? 이에 대해 다윈은 인간이 팀플레이어들로 구성된 집단을 출현시키기까지 거쳤을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가능성 높은단계‘를 제시한다.
첫 단계는 ‘사회적 본능‘이었다. 아득히 먼 옛날에는 혼자 있기 좋아하면 포식자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았다. 집단 가까이에 머무는 충동이 강해 남들과 잘 무리를 짓는 사람들은 잘 살아남고 말이다. 두번째 단계는 호혜성이었다. 사람들은 전에 남을 도운 적이 있어야 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그것을 얻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다양한 사회성 덕목을 발전시키는 데에 무엇보다 중요했던 자극제‘는 따로 있으니, 바로 사람들은 ‘동료들의 칭찬과 책망‘에촉각을 곤두세운다는 사실이다." 다윈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에 살며 글을 썼지만 아테네의 귀족 출신이었던 글라우콘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신의 평판에 강박적일 정도의 관심을 갖는다고 여겼다. 그가 보기에 이런 강박증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자연선택이개인적 차원에서 작동하며 생기는 것이었다. 즉, 나쁜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거나 영예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주변 친구들이나 배우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다윈은 한 가지 단계를 추가한다. 즉, 사람들에게는의무나 원칙을 신성시하는 능력이 있으며, 이것이 우리 인간의 종교적 본성 일부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이이 단계들을 하나로 합쳐놓고 보면 초창기 유인원이 어떤 길을 거쳐 인류로 진화했는지 그 모습이 그려지는데, 인류로 다 진화한 시점에서는 인간에게 무임승차는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군대에서도 명예· 충성심 · 조국이 그 무엇보다 신성시되는 만큼, 사실 겁쟁이들이 고향에 돌아가 자식을 낳고 아버지가 될 확률은 그다지높지 않다. 이런 이들은 군대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구타를 당하거나 낙오하거나 아니면 부대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동료 병사들의 총탄에 목숨을 잃을 확률이 가장 높다. 설령 전장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의 평판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여자들은 물론 장차 고용주가 될 사람까지도 그를 멀리할 것이다. - P349

 윌리엄스가 주목했던 사실은 특정 차원에서 적응이 일어날 때는 항상 그 차원에서 선택 (설계) 과정이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떤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가 저차원(이를테면 개체)의선택 효과로 충분히 설명된다면 굳이 고차원(이를테면 집단)까지 눈을돌릴 필요가 없다고 그는 독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논의 전개를 위해 윌리엄스는 사슴의 뜀박질 속도를 사례로 든다. 사슴들이 무리 지어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면, 속도가 빠른 무리가 마치 한 단위처럼 움직이며 이따금 경로까지 다 같이 바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리의 그런 행동을 보고 우리는 보통 집단선택에기대어 그것을 설명하곤 한다. 속도가 느린 무리보다 속도가 빠른 무리가 포식자를 피해 잘 달아난 세월이 벌써 수백만 년에 이를 것이고, 그러다 보니 속도가 느린 무리는 점차 사라지고 그 대신 속도가빠른 무리가 살아남았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윌리엄스는 지적하길, 사슴의 경우 포식자를 피해 달아나는 능력은 개체 차원에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즉, 선택 과정은 개체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 속도가 느린 사슴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힌 반면, 같은 무리에 있더라도 속도가 빠른 녀석들은 포식자를 피해 달아날 수 있었다. 이렇게 설명이 되는 만큼 굳이 선택에 무리 차원을 끌어들일 필요는 전혀 없다. 사슴 무리가 빠른 것은 다름 아니라 빠른 사슴들이모여 있기 때문이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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