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과도기가 찾아오는 일은 좀처럼 없을지 모르나, 일단 찾아오기만 하면 지구를 뒤바꿔놓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말벌이 1억 년도전에 분업의 요령을 개발해냈을 때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당시 말벌들은 여왕벌 (알은 모두 이 여왕벌이 낳는다)과 여러 종류의 일벌들을 구분해 일벌들에게는 벌집을 유지 관리하고 먹이를 구해다 나눠 먹도록 하는 일을 맡겼다. 이러한 요령을 발견해낸 것은 초창기의 막시류 곤충들 (말벌, 벌, 개미 등)이었으며, 그 외에도 (흰개미와 벌거숭이 두더지쥐의 조상을 비롯해, 새우·진딧물 · 딱정벌레·거미의 일부 종) 수십 차례에 걸쳐 별개로 그 요령을 발견해냈다. "그럴 때마다 이들이 안고 있던 무임승차자 문제는 극복되었고, 이기적인 유전자는 상대적으로 이타적인 집단 성원들을 만들어내어 이들이 한데 뭉쳐 지극히 이기적인 집단을 구성하도록 했다.
이 집단들은 새로운 차원의 탈것인 셈이었다. 벌집, 즉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족이 모여 사는 군체가 생겨난 것인데, 이들은 하나의단위처럼 기능했을 뿐 아니라 (예를 들면, 먹이를 구하거나 누구와 싸움을 벌일 때) 하나의 단위처럼 번식했다. 앞서 든 예로 치면 모터보트를 탄 자매들이 이에 해당하니, 이전까지는 한 번도 찾아볼 수 없던 혁신적인 첨단 기술과 기계공학을 십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 한 번의 중대 과도기였다. 이로써 또 다른 종류의 집단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인 듯이 기능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이러한 군체에 올라탄 유전자들은 그렇지 못한 유전자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함께하는 일"에 발맞추지 못하고 더 이기적이며 혼자 생활하기 좋아하는 곤충에 올라탄 유전자들을 짓밟은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곤충 중에 이 군체 곤충들은 단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등장과 함께 섭식 및 번식에 제일 좋은 땅을 차지하고 경쟁자들은 변방으로 밀어내 버렸다. 더불어 이들은 지구의 육상생태계도 대거 뒤바꿔놓았다(예를 들면, 꽃식물의 경우 이 곤충들이 꽃가루 매개자 역할을 해주면서 진화가 가능했다). 오늘날 군체 곤충은 무게로 따지면 전체 곤충의 태반을 넘는다. - P343

이 세상에 사회성을 보이는 동물은 많다. 자기들끼리 이러저러하게 떼를 지어 함께 살아가는 동물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특정 수준의 사회성 문턱을 넘어 초사회성(ultrasociality) 단계까지 진입하는동물은 몇 되지 않는다. 초사회성이란 무척 커다란 규모로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그 안에 어느 정도 내부 구조를 갖추어 노동 분업의 이득을 얻을 줄 아는 것을 말한다. 병정 · 정찰병 · 유모의 계급이 다 따로 나눠져 있는 벌집이나 개미집의 경우가 초사회성 동물의 실례로거론되며, 인간 사회 역시 그렇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이 초사회성으로 진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특성 중 하나는 공동의 보금자리를 지켜내야 할 필요인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자 베르트 횔도블러 (Bert Hölldobler)와 에드워드 O. 윌슨이 최근의 연구 결과를 요약한 바에 따르면,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고도 불리는 초사회성은 말벌 · 벌 · 개미 · 흰개미에게서만이 아니라, 새우·진딧물 · 총채벌레 · 딱정벌레의 몇몇 종에게서도 발견된다.

진사회성의 가장 초기 특성이 나타난다고 알려진 이 모든 종에서는, 지속적 공급과 방어가 가능한 자원을 포식자 · 기생충 · 경쟁자로부터 지켜내는 행동이 나타난다. 이런 자원에는 항상 보금자리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이가 포함되며, 먹이는 보금자리의 서식 개체가 찾아 먹을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 P365

횔도블러와 윌슨은 초사회성으로의 진입을 설명하는 근거로 두가지 요인을 더 든다. 하나는 더 길어진 양육 기간 동안 새끼를 먹여 살려야 할 필요성이고(어미가 새끼를 돌보는 데 형제자매와 수컷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종족이 이 점에서 한결 유리하다). 나머지 하나는 집단 사이의 갈등이다. 이 세 요인이 다 같이 작용한 결과, 지구에 맨 처음 나타난 초창기 말벌들은 (나무 안에 파인 구멍 같은) 천연의 요새와도 같은보금자리에 다 같이 진을 친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말벌의 세계에서는 보금자리가 될 최적의 입지는 늘 협동성이 제일 뛰어난 집단의 차지였고, 이들은 스스로 더 뛰어난 생산성과 방비를 갖추기 위해 점점 더 정교하게 방법을 가다듬어나갔다. 오늘날 우리가 꿀벌이라고 알고 있는 개체도 알고 보면 이 말벌의 자손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꿀벌이 만든 벌집을 "요새 안에 지은 공장"이라는말로 표현해왔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벌과 마찬가지로우리 조상들 역시 (1) 텃세가 있는 생물체라 (동굴과 같이) 방어가 용이한 보금자리를 선호하며. (2) 그 새끼는 무력하여 엄청나게 공을들여 돌보아주어야만 하며, 그러면서 동시에 (3) 그들이 속한 집단은 주변 집단에서 가해오는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식으로 수십만 년의 시간이 흐르며 자리 잡은 모든 조건은 초사회성을 진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 인간은 영장류 중 유일하게 초사회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애초 인간의 혈통을 지녔던 이들은 행동이 흡사 침팬지와 같았을지 모르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걸음을 옮겨 그곳을 빠져나오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이미 벌과 비슷한 모습을 조금쯤은 가진 상태였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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