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르누아르가 그린 욕구

여자들이 물가에서 어슬렁어슬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더없이 이례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큰 덩치와 관능성과 풍만함과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눈부신 매력을 발산한다. 강기슭을 따라 느긋하게 자리 잡은 채 태양을 향해 팔을 들어올리고, 유연하면서 널찍하고 튼튼한 등 뒤로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흘러내린다. 움직임에 부드러움과 더불어 힘과 육감이 배어있는 걸 보면, 이들은 자신의 중량과 물질적 실체가 주는 감각을 한껏 즐기는 듯하다. - P13

굶기는 비할 데 없이 뒤틀린 방법이긴 했으나 어쨌든 곧 세상에 나가 새로운 권리와 특권을 차지할 준비를 하고 있던, 그러나 아직 자아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겁먹은 젊은 여자의 불안을 처리해주었다. 거대하고 모호하고 압도적인 대상(일이나 사랑) 대신 작고 구체적이며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대상(팝콘 한 알에 초점을 맞추게 한 것이다. 또한 굶기는 새롭게 바뀐 풍경 속 내 위치에 대해 느끼기 시작한 불편함을 처리할 방법도 제공해주었다. 그러니까 내게 굶기는 갈망이라는 더 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흥정이었던 셈이다. 나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큰 존재가 되어도 된다(야심을 가져도 된다. 강력한 힘을 행사해도 된다. 경쟁에서 이겨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지만, 자신을 한 마리 굴뚝새처럼 작고 연약하고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만듦으로써 그 불편함을 상쇄하려 했다. 또한 굶기는 역시 과장된 방식으로, 여성 전반에대한, 특히 여성의 신체에 대한 엄청나게 많은 (그 일부는 내가족에게서 물려받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문화가 뒷받침한) 감정들과 여성의 신체는 선천적으로 어떤 부끄러운 결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순순히 받아들인 결과였다. 물론 굶기는 애초에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품고 있던 동경과 허함과 슬픔 등 온갖 오래된 감정들에도 대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 모든 갈망을 한 장소에 몰아넣고 다이아몬드처럼 응축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은 한편으로는 내가 얼마나 많이 원하는지,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결코 충분히 얻지 못할 것을 얼마나 확신하는지에 대한) 무시무시하고도 막강한 상징이 되었고, 따라서 나의 음식 거부는 내가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인 해결책이 되었다. 난 너무 배가 고파, 이 허기는 결코 충족되지 않을 거야. 어떤 사람이 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이 이러하다면 (당시의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굶기는 합리적인일이 되고 음식 통제는 그 배고픔과 충족될 수 없음의 간극을표현하는 동시에 거부하는 방법이 된다. 당신의 필요들이 당신을 압도하는가? 당신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 필요를 충족해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가? 심지어 자신이 필요로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가? 그렇다면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말라. 표류하고 있는 듯 혼란스러웠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그 시기에 굶기는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두각을 나타내고 통제력을 발휘할 수단을 내가 잘할 수있는 일을 제시해주었다. - P29

내 경우엔 굶기가 음주로 이어졌는데, 그러자 (내가 통제력이 대단히 강하고 꽤 우월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던) 식욕 거부가 점차 더욱 전면적인 자기 존재에 대한 거부로 넘어갔고, 술이 음식을 밀어내고 내가 특별히 선택한 물질의 자리를 차지했다. 다른 여자들이 각자 선택한 물질이 무엇인지는 내 경우처럼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개는 그에 못지않게 강한 악력으로 그들을 움켜쥐고있고 욕구라는 더 폭넓은 주제와도 똑같이 연결되어 있다. 남자들과의 강박적인 관계, 통제되지 않는 쇼핑과 빚, 삶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외모에 대한 집착, 온갖 종류의 ‘이름‘들. 이 모든 것이 허함과 관련되어 있고 내면의 공백을 잘못된 방향에서 메우려는 노력과 관계있으며 모두 똑같은 어두운 감정에서 비롯된다. 많은 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감정은, 갈망은 그 자체로 어쩐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릴 권리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스스로 노력해 얻어내야만 한다는 생각, 욕구를 채우려면 희생을 치러야한다는 생각이다.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많이 원하거나, 너무 섹스나 야망이나 갈망에 치우쳐 행동하면 분명 그 청구서가 날아들고, 거기에는 대개 분노에 찬 자기 비난의 야유가 따라붙는다. 넌 돼지야, 게으름뱅이야, 형편없는 인간이야. 욕망 대 박탈, 탐닉 대 자제, 돌봄 대 자기부정. 이런 것들이 특히 여성의 드라마 무대에 반드시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 P32

욕구appetite라는 단어는 흔히 음식과 관련해 쓰이기는 하나상당히 폭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이렇게정의한다. (1) 자연스러운 욕망, (2) 만족 혹은 충족하고자 하는 선천적이거나 습관적인 욕망 혹은 성향, (3) 욕망의 대상. 나 역시 이처럼 폭넓은 관점을 취하여 우리가 취하는 대상들, 우리가 허하거나 초조하거나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 하는 행위들, 우리에게 가득함과 만족, 완전함의 느낌을 주리라고 상상하는 실체와 행동을 욕구라고 지칭한다. 이런 의미에서 욕구는 꼭 생사가 달린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서 ‘필요‘나 ‘본 - P37

능‘과는 다르다. (음식이나 음료에 대한 충족되지 않은 필요는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초콜릿에 대한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그러지 않을 것이며, 포식 동물 앞에서 도피 본능이 제구실을 하지 않는 것은 목숨을 앗아갈 수 있지만 파괴적인 연애 관계에서 그러지 않는 것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욕구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생존을 위한 필요와 그보다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단어인 욕망 사이 애매한 중간 지대에 자리한다. 욕구는
‘드라이브‘ 기어가 들어간 욕망으로, 일반적인 바람보다는 더활성화되어 있고 목표 지향적이며 늘 종착지를 염두에 두고있다. 욕구는 이제 막 생겨난 어렴풋한 것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무형의 것에 형태를 부여한다. 내면에서 보글보글 피어오른 감정들이 구체적이고 외적인 것에 달라붙어, 손에 잡히지않는 느낌(동경, 갈망, 허함)을 행위와 행동, 물질과 물건으로 바꿔놓는다. 이 음식, 저 구두, 저 연인••• 물론 가장 명백한 욕구는 육체적인 것, 즉 음식과 섹스에 대한 욕구겠지만 나는 물건들에 대한 욕구, 야망, 그리고 (어쩌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 역시 매우 핵심적이며 삶을 정의하는 욕구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은 음식과 섹스와 더불어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고 열망에 불을 붙이고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유도하고 또 자주 결정한다. - P38

솔직히 나는 그 반대가 참이 아닐까 한다. 이 새 천 년의 초입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깔린 가장 주된 욕구는 아마 욕구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그대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 말이다. 많은 여성들이 그 두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이어트와 체중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엄청난 수치에서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균형과 넓은 시야와 우선순위의 문제들을 고민하느라 여자들로 하여금 한밤중에도 잠 못 이루게 하고 여자들의 신경을 갉아대는 감정들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에는 우선 이따금만 지각될지는 몰라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인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욕구를 한껏 충족하는 일이 아니라 욕구를 억누르려 애쓰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많은 이들이 가짜 신들을 숭배하느라고, 다시 말해 결코 만족을 주지 않을 것만 같은 방식으로 만족을 추구하는라고 (5킬로그램을 줄이는 것으로 안 된다면 아마 저 직장이, 저 집이, 혹은 저 연인이 만족을 줄지도 몰라)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명확히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느낌이 또 하나 있는데, 전반적으로 이것이 살아가는 방식 치고는 너무 고통스러운 방식이라는 느낌, 이 방식이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더 불안하게 혹은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고, 어쩐지 기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마치 갈망에 대한, 우리를 먹여주고 채워주고 기쁘게 하는 것들을 원하는 일에 대한 우리의 권리 자체를 어디쯤에선가 도둑맞은것처럼 말이다. - P41

저 옛날의 나에게 ‘좋은 하루‘란 스물네 시간 동안 800칼로리 이하를 먹는 날을 의미했다. 그걸로 끝. 안녕은 그처럼 절대적인 접근 불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되었다. 오늘날 내게 좋은 하루란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집 근처 강에서 노를 저으며 하루를 시작한 날을 의미할 수도 있다. 조정은 나자신이 유능하고 강하며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활동이다. 또는 하루치 일을 견실하게 해낸 날을 의미할 수도 있고, 친구와 웃으며 통화한 날, 좋은 음식으로 식사한 날, 혹은 밤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존재,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와 포옹한 채 시간을 보낸 날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제나에게 좋은 하루란 고립과 완벽주의와 자기 징벌과 관련된 내 최악의 충동들에 성공적으로 저항했음을 의미하고, 그 대신 재미와 생산성과 연결성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찾았음을 의미한다. 좋은 날들로 향하는 내 길을 찾기 위해, 더욱 힘을북돋는 방식으로 안녕을 정의하기 위해 나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자주 고통을 참아가며 르누아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기어갔다. 충족될 자유를 향한 16년간의 느린 걸음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만큼,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고 살아 있음을 마음껏 즐길 만큼 그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 안에 진정한 성배가 한 여자의 갈망의 핵심이 들어 있다. -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어느 한 환자를 놓고 보면 SARS-2가 SARS-1보다 덜 치명적이라는 말이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SARS-2가 SARS-1보다 전체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구 1000명의 집단이 있다고 하자. 어떤 병원체에 그중 20명이 감염되어 심하게 앓다가 2명이 사망했다. 그러면 CFR이 10%가 된다. 역시 인구 1000명인 집단이 또하나 있다고 하자. 이 집단은 또 다른 병원체에 역시 20명이 감염되어 심하게 앓다가 2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감염된 사람이 그 외에도180명이 더 있는데 다행히 병세가 가볍거나 심각하지 않아서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 집단은 200명 중 2명이 사망했으니 CFR이1.0%가 된다. CFR로 보면 두 번째 병이 첫 번째 병보다 훨씬 온건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두 번째 병이 더 나쁘다는 건 두말할나위 없다. 둘 중 한 집단에 들어가라면 두 번째 집단에 들어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 P85

SARS-1이 SARS-2보다 통제하기 쉬웠던 이유로는 SARS-1의 중요한 특징 또 한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환자가 증상을 보이기 전까지는 대체로 전파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SARS-1 감염자의 상당 비율이 의료 종사자였던 것도 그래서다. 의료 종사자는 중증의 환자들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사망 직전의 환자를 비롯해 중증의 환자가 병원에 입원할 때는 전염성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다. 반면, SARS-2는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전파될 수 있다. - P86

무증상 전파는 공중보건 관리에 큰 애로가 될 수 있다. 감염자가감염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병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파가 대부분 증상 발현 전에 이루어진다면(HIV의 경우처럼), 환자가 발견된 후에 접촉자 추적과 격리를 수행하는 대응 위주의 방역조치는 효과가 없다. 반대로 무증상 전파가 적다면, 유증상자를 일찍 가려내고 격리하기는 비교적 쉬우므로 방역에 유리하다. 다시 말해. 설령 SARS-2 유증상자를 모두 격리한다고 해도 감시망을 빠져나간 무증상자가 병을 전파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무증상 전파가 존재한다고 해서 유증상자를 가려내 자가격리시키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감염자나 환자의 격리는 필수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유행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증상자 또는 미미한 증상자의 검사가 매우 중요한 이유이자, 미국에서 코로나19의 광범위한 검사 도입이 (예컨대 한국 같은 나라보다) 늦어진 점이참으로 안타까운 이유다. 검사를 통해 무증상자라 할지라도 감염 사실을 알리고 자가격리를 권고 또는 강제할 수 있다. - P89

CFR과 잠복기, 잠재기 이외에 SARS-2의 또 한 가지 주요 지표도 2020년 초에 조사가 이루어졌다. 감염자 1명이 평균적으로몇 명을 감염시키느냐 하는 것으로, 이를 실제감염재생산수 effectivereproduction number라 하고 Re로 나타낸다(실제감염재생산율 effective reproductive rate 이라고도 한다).
Re보다 더 기초적인 지표가 기초감염재생산수 basic reproduction number Ro다. 전염병 유행을 다룬 영화 <컨테이젼>(2011)에서 케이트윈즐릿이 연기한 인물이 회의 중 화이트보드에 휘갈겨 썼던 것이 Ro다. Ro는 감염 이력이 없고 면역이 없어서 감염이 가능한 사람으로만 구성된 인구집단에서 첫 감염자가 평균적으로 감염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2차 감염자의 수를 가리킨다. Ro는 어떤 병원체의 최초 확산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병원체가 얼마나 쉽게전염되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Re는 유행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인구집단에 일부 면역이 생겼을 때 유행이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즉, Re는 방역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값이다. - P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중에 옥희는 자신이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소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확히 회상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소년의 존재를 몇 날 며칠에 걸쳐서야 비로소 알아챘다. 소년은 나무나 울타리처럼 자신을둘러싼 주변 환경의 자연스러운 일부처럼 보였고, 그래서 그는 소년의 존재를 깨닫기도 전에 이미 그 아이가 있는 풍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소년은 옥희와 비슷한 또래에 작고 깡마른 체격이었다. 피부는 연한 밤색이었는데, 강한 햇볕에 타서인지 아니면 제대로 씻지못해서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옥희의 시선이 마침내 소년에게 정면으로 쏠렸을 때, 소년은 마치 지금껏 ‘옥희가 자신을 바라봐 주기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년이 옥희 쪽으로다가오기 시작하자 동그랗게 꼬리가 말린 황구 한 마리가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제야 옥희는 소년의 외양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년이 입은 옷이 너무 낡고 해지다 못해 다시 실타래로 풀려 나가기 직전 같았다. 어떤 걸인들은 본래 옷감보다 천을 덧대어 기운 부분이 더 많은 누더기 차림으로 다니기도 했지만 소년은 옷이 찢기고 틈새가 벌어진 부분을 아랑곳없이 내버려 둔 상태였고, 그래서 뼛속까지 찌르는 돌풍이 부는 순간 너덜거리는 천 조각이 거세게 펄럭이며 맨살을 그대로 내보였다. 동정심과 역겨움으로뒤섞인 감정이 옥희의 마음에 진한 파장을 남겼다. - P154

정호는 공기처럼 가벼운 비단으로 짜인 이불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무엇인가 그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내가 어른이 되면 이것보다 백배는 더 좋은 걸 너한테 갖다줄 거야." 정호가 말했다. 옥희는 웃으며 물론이라고 답했지만, 정호가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정호가 옥희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건 바로 그런 모습 때문이었는데, 그가 평생 벌 수 있을 만한 것보다 더 값진 것을 주겠다고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 그 당당한 자신감이 옥희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옥희에비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정호는 절대로 비굴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상황을 탓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그릇 같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정호가 가진 지식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의 정신은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흘렀으며 제 스스로 고통을 키워내는 법이 없었다.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든, 옥희는 그가 장독 같은 마음 안에 깊이 묻어둔 것을 꿋꿋이 지켜내리라 확신했다. 씨처럼 떨어져 내린 곳에서 멀리 탈출하기는 힘들 테지만, 갇힌 존재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했다는 그 단순한 이유만으로 정호는 충분히 행복할 거라고. - P162

3월의 첫날 아침, 귓가를 스치는 낯설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에 정호는 잠에서 깨어났다.
정호를 따르는 아이들은 다들 그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정호는 자기 아버지가 평안도에서 호랑이를 잡는 사냥꾼이었다고, 그래서 자신 또한 들짐승들이-그리고 사냥꾼들도- 험한 산야에서 생존하기 위해 갖추게 된 본능적 직감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게 사실인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거리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내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일에 점점 더 익숙해졌다. 가끔은 정말로 공기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경찰이나 더 나이 든 남자아이들 무리, 혹은 어른들로 이루어진 건달 무리 등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이들과 충돌의 순간이 닥치기 직전에 미리 피할 수 있었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런 능력을 통해 그는 자신이 이끄는 집단을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해냈고, 그들에게서 확고부동한 신뢰를 얻었다.
신세 모 - P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여기에 개인적. 집단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역병이 가져오는 도전과 인간의 웅전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좋은 면에서건 나쁜 면에서건 그렇다. 역병은 사회질서를 재편하고, 사람들을 흩뜨리고, 경제를 황폐화하고, 신뢰 대신공포와 의심을 부추기고, 타인을 비방하게 하고, 거짓이 난무하게하고, 비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선의와 협력, 희생과 창의성을 끌어내기도 한다.
예전 역병 때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도시는 극도로 밀집되어 있고, 전자 기술과 현대의학이 발전했으며,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고, 실시간으로 세상 소식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은 병의 확산 추이를 우주에서 (도시 활동의 마비를 관측함으로로써), 지상에서(휴대전화 이용자들의 위치 변화를 감지함으로써), 그리고 분자 수준에서(유전 기술로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분석해 확산 경로를 파악함으로써) 연구할 수 있다.
하지만 SARS-2 바이러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수없는 완벽한 상황이다. 바이러스는 지금 제 세상을 만났다. 진화생물학 용어를 빌리자면 ‘생태적 해방ecological release‘을 맞았다. 이는 어떤 종이 기존에 얽매였던 제약에서 풀려나면서 서식 범위와 개체수가 치솟는 현상을 가리킨다. 전형적인 예가 인간이 새로운 지역에 침입종invasive species을 도입하는 경우다. 호주를 장악한 사탕수수두꺼비, 뉴질랜드를 뒤덮은 쥐(뉴질랜드에서 수백만 년간 살아온 공룡의 후손 투아타라를 1250년 무렵 거의 절멸시켰다), 미국 남동부의 칡 등이 그 예다. 모두 외래종이 갑자기 무주공산을 만나 마음껏 증식한 현상이다. 인간은 SARS-2에 자연적인 면역이 없다. SARS-2는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병원체니까. 그래서 이른바 ‘미개척지 유행병virgin soil epidemic‘이 일어났고,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세상을 휩쓸었다. - P64

공중보건 관점에서 이와 같은 공기 전파는 일반적인 비말 전파복다 훨씬 더 심각하게 여겨진다. 비말 전파는 감염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거나 힘주어 말을 할 때 바이러스를 다량 포함한 비말이 뿜어 나오면서 이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형태다. 비말은 비교적 무거워서 보통 배출자 주변 2m 이내의 땅에 떨어진다. 2020년 범유행기에 2m 이상의 신체적 거리두기 지침이 시행된 것도 그 때문이다(물론 2m가 반드시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반면 공기 전파는 매우 가볍고 미세한 바이러스 입자가 공기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전파되는 형태다. 아모이가든스 확산 사태는 공기 전파에 의한것으로 보이며, 감염원은 다름 아닌 배설물이었다.  - P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그 캘리포니아를 찾기는 어렵거니와, 그중 어디까지가 그저 상상이거나 즉흥적으로 꾸며낸 것이었을까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사람의 기억에서 진짜 기억이 아니라 누구다른 사람의 기억, 가족 네트워크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 부분을 깨닫는 일은 울적하다. 예컨대 내게는 금주법이 새크라멘토 주변의 홈 경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생한 ‘기억‘이 있다. 우리 가족이 알던 홉 경작자의 여동생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밍크코트를 사 가지고왔는데, 도로 갖다주라는 얘기를 듣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코트를 꼭 껴안고 울고 있었다. 나는 금주법이 폐지되고 일 년 후에 태어났지만 그 장면은 실제 내가 나오는 기억보다도 더 현실적‘인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여행길을 기억한다. 뉴욕에서 밤비행기를 혼자 타고 잡지에서 우연히 본 W. S. 머윈의 시를읽고 또 읽었다. 타국에 오래 살았지만 이제 집에 돌아가야한다는 걸 아는 한 남자에 대한 시였다.

•••하지만 꼭
금세라야 한다. 이미 나는 뜨겁게 옹호한다
두둔할 수 없는 우리 흠결들을 확신하면서
기억을 되살려주면 원망한다. 이미 내 마음에서는
우리 언어는 그 어떤 공통어도 약속할 수 없는
풍요로움을 묵직하게 짊어지고 있는데, 산과
드넓은 강들은, 지상 그 어디와도 다르고
- P247

그러면 바로 얼마 전에 새크라멘토에 갔던 기억이 아득해질것이다. 미니트맨, 폴라리스, 타이탄, 탄도 미사일 섬광이 번득인다. 커피 테이블은 온통 항공 일정으로 뒤덮여 있고 최첨단이며 외부 세계와 잘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몇 마일 더 멀리로, 은행에 아직도 ‘앨릭스 브라운네 은행‘ 같은 이름이 붙어 있는 소도시들로 당신을 데리고 갈 수 있다. 하나밖에 없는 호텔 식당에 아직도 팔각형 타일 마루가 깔려 있고 먼지 낀 종려나무 화분과 커다란 실링팬이 있고 모든 가게- 종자 사업, 하베스터식당 분점, 호텔, 백화점과 메인 스트리트까지 이름이 하나같이 도시 건설자의 이름을 딴 소도시로 데려가줄 수 있다.
몇 번의 일요일 전에 나는 그 같은, 아니 그보다 작은 소도시에 있었다. 아니, 호텔도 없고 하베스터 식당 분점도 없고은행도 불타 없어진 강가 마을에 있었다. 친척의 금혼식이었는데 기온이 44도에 달했고 주빈들은 리베카 홀의 글라디올러스를 앞에 두고 등이 똑바른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기서만난 사촌에게 에어로젯 제너럴을 방문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흥미롭지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 캘리포니아일까? 그게 우리 모두 궁금한 바다. - P249

로스앤젤레스에는 절벽이 부스러져 파도에 휩쓸릴 정도로 비가 내렸고 아침에 옷을 차려입을 마음도 나지 않아서 우리는 뜨거운 날씨를 찾아 멕시코 과이마스로 가기로 했다.
청새치를 찾아가지 않았다. 스킨다이빙을 하러 가는 것도아니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거고,
그러려면 드라이브밖에 길이 없었다. 녹음이 우거진 어여쁜 장소들이 빛바래고 어딘가 어려운 장소, 사막을 제외한 그무엇도 상상력을 흔들지 못할 때, 그럴 때 노갤러스를 지나쳐 차를 몬다. 사막은, 세상의 모든 사막은 실제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계곡이다. 사막에서 돌아오면 새로 태어난 알케스티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의 아내로, 남편 대신 죽음을 맞지만 헤라클레스가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싸워 되살려낸다. 옮긴이)가 된 기분이 든다. 15번국도를 타고 노갤러스를 지나면 소노라 사막밖에 아무것도없다. 메스키트와 방울뱀과 동쪽 하늘에 떠 있는 시에라마드레 산맥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간간이 북쪽으로 치달리는 페멕스 트럭과 아주 간혹 페로카릴 델 파시피코의 먼지덮인 풀먼 차량이 지나갈 뿐 인간의 노력일랑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마그달레나는 15번 국도상에 있고 다음에 에르모시요가 나오고, 에르미시는 과이마스에서 불과 85마일(137km) 북부에 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가면 요점을 놓치게 된다. 요점은 열기와 기만적인 시점과 사체의 위압적인 감각에 방향감각을 잃고 쭈그러드는 데 있다. 도로는 은은히 빛난다. 눈은 감기고 싶어한다. - P296

이날 오후 로스앤젤레스의 대기에는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다. 부자연스러운 정적, 어떤 긴장감. 오늘 밤부터 샌타애나(남캘리포니아와 멕시코 북부에 부는 강한 계절풍.- 옮긴이)가 불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바람이 우는 소리를 내며 카혼과 샌고르고니오 고개를 지나쳐 66번 국도를 따라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산야와 신경줄을 바짝바짝 말려 인화점까지 밀어붙인다. 앞으로 며칠 동안 우리는 협곡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밤에는 사이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샌타애나가 불 때가 됐다는 소식은 듣지도 못했고 신문에서 읽은 적도 없지만 나는 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만난 거의 모든 사람이 알았다. 우리는 느낌으로 안다. 아기가 보챈다. 가사도우미가 퉁명스러워진다. 나는 전화 회사와의 잦아들던 말다툼에 새삼 불을 붙였다가 괜히 마음만 상해 전화를 끊고 자리에 누워 공기 속에 감도는 기운에 몸을 맡긴다. 샌타애나와 공존한다는 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인간 행동을 보는 심오하게 기계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처음 로스앤젤레스에 와서 외딴 해변에 살던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나쁜 바람이 불면 인디언들이 바다에 몸을 던진다는 얘기였다.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샌타애나가 부는 시기에 태평양은 불길하게 번들거리고, 밤에는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비명을 지르는 공작들뿐 아니라 파도조차 없는 섬뜩함 때문에 잠을 설친다. 열기는 초자연적이었다. 하늘에는 누런빛이 감돌았다. 가끔 ‘지진 날씨‘라고 불리는 그런 빛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이웃은 며칠 동안 집 밖 출입을하지 않고 밤에 불도 켜지 않았으며, 그이의 남편은 손도끼를 들고 주변을 배회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침입자 소리를 들었다고 했고, 다음 날은 방울뱀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샌타애나에 대해 예전에 쓴 글이 있다. "그런 밤이면 술이 들어가는 파티는 무조건 싸움으로 끝났다. 온순한 아내들은 고기 써는 칼의 날을 만지며 남편의 목덜미를 찬찬히 살폈다. 그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 P300

그러니까 나는 뉴욕에서 희한한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거기서는 실제로 생활을 영위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상상 속에서 나는 언제나 거기 몇 달만 더, 크리스마스부활절까지만, 아니면 5월의 따뜻한 날이 오기 전까지만 머무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남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편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어디든 그네들이 소속된곳으로부터 무한정 연장된 휴가를 떠나온 듯 보였기 때문이다. 미래를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한시적인 망명객들은 뉴올리언스나 멤피스나 리치먼드나, 내 경우에는 캘리포니아로떠나는 비행기 시각을 항상 알고 있었다. 항상 서랍 속에 비행기 일정을 마련해두고 사는 사람은 살짝 다른 달력에 맞춰 생활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는 다른 계절이다. 다른사람들은 거침없이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스토(버몬트 주 북부의 소도시-옮긴이)에 가거나 외국에 가거나 코네티컷의 어머니 댁에 하루 일정으로 다녀온다. 그러나 우리처럼 어딘가 다른 곳에 집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예약했다 취소하고, 1940년 리스본을 떠나는 마지막 비행기편을 기다리듯 악천후에 발이 묶인 비행기를 기다리다 결국은 남겨진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유년기의 오렌지와 기념품과 훈제굴 스터핑을 마련해 서로 꼭 붙어서 머나먼 국가로 파병된 제국의 군인들처럼 함께 지내곤 했다. - P318

 그리고 5월의 어느 날 아침(우리는 1월에 결혼했다) 남편은 내게 전화해 뉴욕에서 한동안 멀리 떠나 있고 싶다고, 6개월 정도 휴가를 내고 우리 같이 어디론가 가자고 말했다.
그이가 내게 그 말을 한 건 3년 전이었는데, 우리는 그후로 로스앤젤레스에 살았다. 우리가 아는 많은 뉴욕 사람들이 이상한 기벽이라고 생각하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대꾸도 적절한 답도 없어서 우리는 그냥 누구나 하는 틀에 박힌 답을 한다. 우리가 지금 뉴욕의생활비를 "감당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고, 우리한테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뭐 그런 얘기를 한다. 사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뉴욕에서는 내가 아주 젊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황금의 리듬이 깨어졌고 이제 나는 젊지 않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뉴욕에 갔을 때는 추운 1월이었고 모두들 아프고 피곤했다. 내가 거기서 알던 사람 여럿이 댈러스로 이사 가거나 알코올 중독 치료를 하러 가거나 뉴햄프셔의 농장을 샀다. 우리는 열흘 머물렀고 오후 비행기를타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다. 그날 밤 공항에서 집으로가는 길에는 태평양 위에 뜬 달이 보였고 사방에서 재스민향기가 풍겨서 우리는 둘 다 뉴욕에 여전히 갖고 있던 아파트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내가 로스앤젤레스를 ‘코스트‘라고 부르던 세월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주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졌다.
-1967- - P3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