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어느 한 환자를 놓고 보면 SARS-2가 SARS-1보다 덜 치명적이라는 말이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SARS-2가 SARS-1보다 전체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구 1000명의 집단이 있다고 하자. 어떤 병원체에 그중 20명이 감염되어 심하게 앓다가 2명이 사망했다. 그러면 CFR이 10%가 된다. 역시 인구 1000명인 집단이 또하나 있다고 하자. 이 집단은 또 다른 병원체에 역시 20명이 감염되어 심하게 앓다가 2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감염된 사람이 그 외에도180명이 더 있는데 다행히 병세가 가볍거나 심각하지 않아서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 집단은 200명 중 2명이 사망했으니 CFR이1.0%가 된다. CFR로 보면 두 번째 병이 첫 번째 병보다 훨씬 온건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두 번째 병이 더 나쁘다는 건 두말할나위 없다. 둘 중 한 집단에 들어가라면 두 번째 집단에 들어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 P85
SARS-1이 SARS-2보다 통제하기 쉬웠던 이유로는 SARS-1의 중요한 특징 또 한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환자가 증상을 보이기 전까지는 대체로 전파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SARS-1 감염자의 상당 비율이 의료 종사자였던 것도 그래서다. 의료 종사자는 중증의 환자들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사망 직전의 환자를 비롯해 중증의 환자가 병원에 입원할 때는 전염성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다. 반면, SARS-2는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전파될 수 있다. - P86
무증상 전파는 공중보건 관리에 큰 애로가 될 수 있다. 감염자가감염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병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파가 대부분 증상 발현 전에 이루어진다면(HIV의 경우처럼), 환자가 발견된 후에 접촉자 추적과 격리를 수행하는 대응 위주의 방역조치는 효과가 없다. 반대로 무증상 전파가 적다면, 유증상자를 일찍 가려내고 격리하기는 비교적 쉬우므로 방역에 유리하다. 다시 말해. 설령 SARS-2 유증상자를 모두 격리한다고 해도 감시망을 빠져나간 무증상자가 병을 전파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무증상 전파가 존재한다고 해서 유증상자를 가려내 자가격리시키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감염자나 환자의 격리는 필수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유행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증상자 또는 미미한 증상자의 검사가 매우 중요한 이유이자, 미국에서 코로나19의 광범위한 검사 도입이 (예컨대 한국 같은 나라보다) 늦어진 점이참으로 안타까운 이유다. 검사를 통해 무증상자라 할지라도 감염 사실을 알리고 자가격리를 권고 또는 강제할 수 있다. - P89
CFR과 잠복기, 잠재기 이외에 SARS-2의 또 한 가지 주요 지표도 2020년 초에 조사가 이루어졌다. 감염자 1명이 평균적으로몇 명을 감염시키느냐 하는 것으로, 이를 실제감염재생산수 effectivereproduction number라 하고 Re로 나타낸다(실제감염재생산율 effective reproductive rate 이라고도 한다). Re보다 더 기초적인 지표가 기초감염재생산수 basic reproduction number Ro다. 전염병 유행을 다룬 영화 <컨테이젼>(2011)에서 케이트윈즐릿이 연기한 인물이 회의 중 화이트보드에 휘갈겨 썼던 것이 Ro다. Ro는 감염 이력이 없고 면역이 없어서 감염이 가능한 사람으로만 구성된 인구집단에서 첫 감염자가 평균적으로 감염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2차 감염자의 수를 가리킨다. Ro는 어떤 병원체의 최초 확산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병원체가 얼마나 쉽게전염되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Re는 유행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인구집단에 일부 면역이 생겼을 때 유행이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즉, Re는 방역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값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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