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행지를 고르지만 말고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인의 여행 사랑이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텔레비전에는 각종 여행 프로그램이 넘쳐 나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등 각종 SNS에는 수많은 여행 고수가 저마다의 여행을 소개하며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또 서점에서는 수많은 여행 안내서와 자칭 타칭 여행 전문가의 에세이가 다양한 여행을 권유한다. 가히 여행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 P7

이 세상에는 어느 하나 같은 장소가 없다. 모든 장소에는 독특한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곳사람들은 자기 삶의 터전에 고유한 의미와 상징을 아로새기며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여행에 지리학적 안목이 필요한 이유다. 여행지에 대한 앎을 바탕으로 세상과 나의 관계를 알게 되고, 그로부터 나에 대한 성찰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여행자는 여행지와 그곳의 사람들, 즉 여행되는 것들을좋고 나쁘다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여행은 항상 여행자와 여행지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세 가지 구성 요소는 경중을 따질 수 없다. 여행자는 여행되는 것의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함으로써 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다시 세계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역량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책무다.  - P9

 여행은 장소에 대한앎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이루어 가는, 그래서 미래의 나를 가늠해 보고 조형해 나가는 훌륭한 과정이다. 여행을 통해 삶의 경험과 지식은 더욱 풍부해진다. 삶은 여행이고 여행은삶이다. 따라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려면 여행이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지리를 알고 여행을 떠나면 인생이 즐거워진다. - P27

‘장소감sence of place‘은 지리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여행의의미와 방법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장소감은 익숙함의 여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제자리에 있는 in place‘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리를 벗어난out of place‘ 느낌이다.
우리는 제자리에 있을 때 편안함과 안정감을 향유한다. 안식처인 집, 늘 다니는 학교, 일터, 카페 등 낯익은 모든 곳이 마음을편안하게 해준다. 세상의 모든 장소에는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장소는 익숙하고 편안하다. 바로 이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 여행이다. - P29

편안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새롭고도 낯선 장소에 처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사간 새로운 집, 졸업과 퇴사 후 갖게 된 새로운 일터, 새로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 용기 내어 들어간 낯선 장소들 이들은 모두 나의 마음을 불안하고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낯선 것이 주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겨 내는 노력, 낯선것을 낯익은 것으로 만드는 노력은 가치 있는 인생의 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여행이란 바로 이런 새로운 장소감을 느끼는일, 즉 제자리를 벗어나는 경험이다. 그러니까 제자리를 벗어나는 경험을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 의도적으로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 P32

우리의 삶은 늘 움직이면서 이루어진다. 매일 집을 떠나 어디론가 돌아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길게 어딘가를 계속 움직이다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간다. 출퇴근과 등하교의 여정을 생각해 보라. 매일 집을 떠나 비교적 익숙한 곳들을 순회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상대적으로 먼 낮선 곳으로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이동의 끝자락에는 결국 집이있다. 떠남은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제자리에 있기와 제자리 벗어나기는 반복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가 멀고 가까운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늘이동 중에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모든 장소에는 저마다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들도 의식하지 않으면 그 이면을 결코 볼 수 없기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가까이서, 오늘의 일상에서 오감의 안테나를 세워 보자.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길이나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여행은 흔히 생각하듯 그리 대단하지않다. 낯선 것들과 함께 낯익은 것들도 낯설게 바라보며, 그 속에깊이 자리 잡은 의미를 확인하고 끄집어내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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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1912년 평양 근교 지역의 한 기독교 가족에서 태어났다. 당시 모든 한국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족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 벌써 수십 년 동안 일본인들은 식민지사람들에게 강압과 전횡을 휘둘러 왔다. 수십만의 여인들과소녀들이 붙잡혀 가 천황 군대의 위안부가 되었으며 남자들은강제로 징집되어 천황을 위해 싸워야 했다. 또 이 천황은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김일성의 아버지는 평소 조용한 한의사였지만 일본인들의만행에 대해서는 소리 높여 비판했고, 결국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가서 사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1931년 일본군이 만주를 침공하자 그곳도 더 이상 평화로운 장소가 되지 못했다. 이때 아버지는 이미 사망한 뒤였고 어머니가 김일성에게 일본인들을 만주에서,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중국 유격대에 들어가 싸우라고 권했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유격대 내에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의 과단성과 용맹함은 곧 두각을 드러내어, 한 군단 전체의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그를 비롯한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이때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으로, 김일성은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도 출세 가도는 중단되지 않았다. 소련군 대위가 된그는 소련의 깃발 아래서 1945년까지 싸웠다.
결국 전쟁은 끝났고, 일본은 한국에서 물러났다. 김일성은민족적 영웅의 후광을 둘러쓰고 망명에서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국가를 세우는 일이었으며 국민들이 자신을 <위대한 영도자>로 원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두 전승국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각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두 개의 세력권으로 분할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자타 공인의 공산주의자를 한반도 전체의 머리로 삼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망명 중이던 또 다른 한국인을 데려와 반도 남쪽의 국가수반으로 세웠다. 김일성은 북쪽 부분으로만 만족해야 했으나, 그러지를 않았다. 대신 그는한국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놈들도 몰아낸 자신인데, 미국과그 졸개들에 불과한 유엔군을 몰아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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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초기 단계가 마무리되자 체계적인 절차를 밟아 갔다. "세 단계로 나누었지요. 처음에는 잊는 법을 가르쳤어요. 우리는 날마다 잊는 연습을 했어요. 완전히 잊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잊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 기간 동안 나는 음악, 수예, 뜨개질, 음악회 가끔은 텔레비전 보기 등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 하고 싶다는 일들을 하게 합니다. 한 꺼풀만 벗기면 우울증이 있지만, 온몸의 살갗 바로 아래에 우울증이 숨 쉬고 있지만, 그것을 없앨 수는 없더라도 잊으려는 노력은 할 수 있죠. ••••• 그들이 있는 법을 잘 배워서 마음을 비우면 다음에는 일을 가르칩니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을 가르치지요. 집 청소나 아이들 돌보는 훈련만 받는 이들도 있고, 고아들을 돌보는 기술을 익히는 사람들도 있고, 진짜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요.그들은 일을 배우고 자신에 대한 긍지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다 배우면 그다음에 사랑을 가르칩니다. 나는 우리 집 옆에 간이 한증탕을 하나 지었어요. 여기 프놈펜에는 그때보다 좀 낫게 지어서 쓰고 있고요. 그들을 그곳에 데려가서 목욕도 하고 서로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도 발라 주게 하고 손톱 손질법도 가르치는거예요. 그렇게 하면 자신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게 되니까요. 그들은 그런 느낌을 간절히 원하죠. 다른 사람과 육체적인 접촉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그러면 그들을 육체적 고립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고 결국 감정적인 고립도 해소되니까요. 함께 몸을 씻고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서로 얘기도 나누고, 조금씩 서로를 믿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친구를사귀게 되고 더 이상 혼자 외롭게 살 필요가 없게 되지요. 그리고 나한테밖에는 털어놓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하게 됩니다." - P53

우리에게는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기본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나는 우울증이 그 스펙트럼 안에, 슬픔뿐 아니라 사랑과도 가까이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실 나는 모든강력한 감정들은 함께 있으며 그것들 각각은 흔히 우리가 반대의것이라 여기는 감정에 의존한다고 믿는다. 나는 우울증 삽화를 세차례나 겪었고 현재 우울증으로 인한 무능력 상태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우울증 자체는 내 두뇌의 암호 속에 영원히 살고 있다. 그것은나의 일부다. 우울증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곧 자신과 싸우는 것이며 싸움에 앞서 그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우울증을 제거하려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정서적 메커니즘들을 손상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과학이든 철학이든 미봉책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이 고통에 이른 것을 환영하노라. 그대는 이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리니." 일찍이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로 유명한 로마 시인]가 한 말이다. 미래에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우리 인간은 화학적 조작을 통해 두뇌의 고통의 회로를 찾아내 그것을 통제하고 제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영원히 그렇게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경험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복잡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것의 일부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것보다 심각한 문제다.) 나는 세상을 구차원으로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커다란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다. 나는 고통받는 능력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평생 막연한 슬픔 속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고통과심한 우울증은 다르다. 사람은 격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근절하고자 하는 것은 우울증으로 인해 살아 있는 시체처럼 살아가는 것이며, 이 책도 그런목적을 위해 쓰인 것이다. - P56

우울증은 환자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고 동요시킬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후자의 경우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 우울증으로 인한 붕괴는 광기에 이르는 건널목이다. 물리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감춰진 변수들에 의해 결정되는 "물질의 비특징적 행위(uncharacteristic behavior of matter)다. 또 그것은 누적 효과다. 스스로 알든 모르든, 우울증의 요인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대개는 평생 동안 누적된 것들이다. 이 세상에 절망할 일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 이들은 벼랑 끝까지가고 어떤 이들은 벼랑 끝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 머물러 이따금 슬픔을 느낄 뿐이다. 일단 선을 넘으면 모든 규칙이 바뀐다. 영어로 쓰여 있던 것들이 중국어로 쓰여 있고, 빨랐던 것들이느려지고, 꿈속 세상은 명료한데 현실 세계는 단속적인 무의미한이미지들로 이어진다. 우울증 상태에서는 서서히 감각들을 잃게 된다. 우울증 환자인 마크 바이스라는 친구가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했다. "갑자기 화학작용이 느껴지는 때가 있지. 호흡이 변하고 내 숨결에서 악취가 나. 오줌 냄새에 구역질도 나고. 거울 속 얼굴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럴 때면 알 수 있어."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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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는 자신의 대꾸에 대해 베니가 한 대꾸에 내놓을 대꾸가 벌써 준비되어 있는 듯,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알란이 두 형제의 말을 끊으면서 말하기를, 자기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분쟁은 대개 <네가 멍청해! 아냐, 멍청한 건 너야! - 아냐, 멍청한 건 너라고!>라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둘이서 보드카 한병을 함께 비우고 나서 앞일을 생각하는 거란다. 문제는 베니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알란은 물론 그의 몫까지마셔 줄 수 있지만, 이 경우 효력은 장담할 수 없단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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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사들 중 상당수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골괴사 등부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트라우마였다. 심해 잠수를 하는 이들에겐 바다에서 시신을 건져내는 일이 아주 드물지는 않은데, 유독 세월호 참사에서 상흔이 심한 건자발적으로 달려가 목숨을 걸고 작업을 했음에도 그 끝에 남은게 자부심이 아니라 배신감과 수치감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들이 의상자로 인정받았다면,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의로운 행위라고 법적으로 인정해주었다면 그동안의 수치심과모멸감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는 털어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참사 이후 6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김관홍법이 만들어져 민간잠수사들이 최소한의 보상을 받게 되었지만, 세월호피해지원법에서 보상은 그 본질이 ‘손실 보상‘이다. 부상을 당해 앞으로 잠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해줄 뿐, 순수하게 달려간 그 마음에 갖추는 예우나 지원의 성격이 아니다. 의로운 행위에 일그러진 보상이 못내 안타깝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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