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초기 단계가 마무리되자 체계적인 절차를 밟아 갔다. "세 단계로 나누었지요. 처음에는 잊는 법을 가르쳤어요. 우리는 날마다 잊는 연습을 했어요. 완전히 잊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조금씩 잊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 기간 동안 나는 음악, 수예, 뜨개질, 음악회 가끔은 텔레비전 보기 등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 하고 싶다는 일들을 하게 합니다. 한 꺼풀만 벗기면 우울증이 있지만, 온몸의 살갗 바로 아래에 우울증이 숨 쉬고 있지만, 그것을 없앨 수는 없더라도 잊으려는 노력은 할 수 있죠. ••••• 그들이 있는 법을 잘 배워서 마음을 비우면 다음에는 일을 가르칩니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을 가르치지요. 집 청소나 아이들 돌보는 훈련만 받는 이들도 있고, 고아들을 돌보는 기술을 익히는 사람들도 있고, 진짜 직업 훈련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요.그들은 일을 배우고 자신에 대한 긍지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다 배우면 그다음에 사랑을 가르칩니다. 나는 우리 집 옆에 간이 한증탕을 하나 지었어요. 여기 프놈펜에는 그때보다 좀 낫게 지어서 쓰고 있고요. 그들을 그곳에 데려가서 목욕도 하고 서로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도 발라 주게 하고 손톱 손질법도 가르치는거예요. 그렇게 하면 자신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게 되니까요. 그들은 그런 느낌을 간절히 원하죠. 다른 사람과 육체적인 접촉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그러면 그들을 육체적 고립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고 결국 감정적인 고립도 해소되니까요. 함께 몸을 씻고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서로 얘기도 나누고, 조금씩 서로를 믿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친구를사귀게 되고 더 이상 혼자 외롭게 살 필요가 없게 되지요. 그리고 나한테밖에는 털어놓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하게 됩니다." - P53

우리에게는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기본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나는 우울증이 그 스펙트럼 안에, 슬픔뿐 아니라 사랑과도 가까이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실 나는 모든강력한 감정들은 함께 있으며 그것들 각각은 흔히 우리가 반대의것이라 여기는 감정에 의존한다고 믿는다. 나는 우울증 삽화를 세차례나 겪었고 현재 우울증으로 인한 무능력 상태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우울증 자체는 내 두뇌의 암호 속에 영원히 살고 있다. 그것은나의 일부다. 우울증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곧 자신과 싸우는 것이며 싸움에 앞서 그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우울증을 제거하려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정서적 메커니즘들을 손상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과학이든 철학이든 미봉책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이 고통에 이른 것을 환영하노라. 그대는 이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리니." 일찍이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로 유명한 로마 시인]가 한 말이다. 미래에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우리 인간은 화학적 조작을 통해 두뇌의 고통의 회로를 찾아내 그것을 통제하고 제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영원히 그렇게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경험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복잡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것의 일부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것보다 심각한 문제다.) 나는 세상을 구차원으로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커다란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다. 나는 고통받는 능력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평생 막연한 슬픔 속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고통과심한 우울증은 다르다. 사람은 격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근절하고자 하는 것은 우울증으로 인해 살아 있는 시체처럼 살아가는 것이며, 이 책도 그런목적을 위해 쓰인 것이다. - P56

우울증은 환자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고 동요시킬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후자의 경우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 우울증으로 인한 붕괴는 광기에 이르는 건널목이다. 물리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감춰진 변수들에 의해 결정되는 "물질의 비특징적 행위(uncharacteristic behavior of matter)다. 또 그것은 누적 효과다. 스스로 알든 모르든, 우울증의 요인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대개는 평생 동안 누적된 것들이다. 이 세상에 절망할 일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 이들은 벼랑 끝까지가고 어떤 이들은 벼랑 끝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 머물러 이따금 슬픔을 느낄 뿐이다. 일단 선을 넘으면 모든 규칙이 바뀐다. 영어로 쓰여 있던 것들이 중국어로 쓰여 있고, 빨랐던 것들이느려지고, 꿈속 세상은 명료한데 현실 세계는 단속적인 무의미한이미지들로 이어진다. 우울증 상태에서는 서서히 감각들을 잃게 된다. 우울증 환자인 마크 바이스라는 친구가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했다. "갑자기 화학작용이 느껴지는 때가 있지. 호흡이 변하고 내 숨결에서 악취가 나. 오줌 냄새에 구역질도 나고. 거울 속 얼굴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럴 때면 알 수 있어."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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