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철이 아야세 역을 벗어났을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반쯤 얼어붙은 빗줄기였다. 어쩐지 아침부터 무릎이 욱신거린다 싶었다.
혼마 슌스케는 맨 앞 차량의 가운데 출입문 옆에서 오른손으로는 손잡이를 붙잡고, 왼손으로는 긴 우산을 짚고 서 있었다. 뾰족한 우산 끝을 바닥에 디디고 지팡이 삼아 서 있는 셈이다. 그런 자세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평일 오후 세시, 조반 선 전철 안은 한가했다. 마음만 있다면 앉을 자리도 많다. 교복 차림의 여고생 두 명과 큼지막한 핸드백을 끌어안고조는 중년 여자, 앞쪽 운전석 근처 문가에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몸을 흔드는 젊은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세세한 표정까지 보일 정도로 승객은 몇 되지 않았다.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서있을 필요는 없었다. - P7

그러나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마음에 걸린 이상 확인해두는 게 좋다.
그런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본능처럼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혼마는 어젯밤 가즈야가 쇼코의 사진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을 두고 어수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마이 사무기기에서 그녀의 이력서를 복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이, 그녀의 얼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혼마는 쇼코의 이력서를 꺼내 변호사에게 내밀었다.
"이 사진 속 사람이 세키네 쇼코 씨 맞죠?"
미조구치 변호사가 이력서를 내려다보았다. 혼마가 열까지 헤아릴동안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 시간의 길이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맞았음을 실감했다.
설마.
단기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아닙니다."
변호사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고, 그것이 순식간에 더러운 것으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력서를 혼마 쪽으로 밀쳐내며 말했다.
"이 여자는 내가 아는 세키네 쇼코 씨가 아닙니다. 만난 적도 없어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세키네 쇼코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 얘기를 했어요." - P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오는 국민학교 시절에 할머니 신금이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그랬다 치고, 왜 우리 식구들은 힘센 쪽에 붙지못하고 맨날 지는 쪽에만 편들었어요?"
"왜, 약한 쪽 편드는 게 싫으냐?"
"물론이지요. 너무 손해잖아요?"
그러면 할머니는 감실감실 주름살 잡힌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리고 신금이는 덧붙였다.
"오래 살다보면 알 수 있단다.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 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 - P564

이진오는 한달쯤 지나서 우여곡절 끝에 석방되었다. 이제 합의에 따라 해고자 가운데 끝까지 버틴 열한 사람이 복직을 할 차례였다. 그들은 서울에서 모여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에 있다는 공장으로 찾아갔다. 공장에는 녹슨 기계 몇대가 남아 있었고 다른 노동자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숙소라고 찾아간 곳은 오랫동안 버려두었던 연립주택이었는데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 피어나 있었고 비닐장판이 젖혀진 방바닥은 군데군데 꺼진 곳도 있었다. 화가 치민 그들이 본사에 전화했지만 직급이 높은 자와는 통화할 수가 없었다. 일반 직원은 곧 신입 직원을 모집하여 내려보낼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보라고 같은 소리를 몇번이나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들은 허탈하게 웃기도 하고 서로 싸움질도 했다. 더러는 떠나고 몇 사람은 남았다. 폐허를 떠나 고속버스 정류장 앞에서 각자 헤어지기 전에 그들은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마지막 남은 세 사람은 서로의 눈길을 피하며 소주잔만 들여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형이 진오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다시 올라가자. 이번엔 내가 올라가겠어."
막내 차군도 말했다.
"저두요 김선배, 저두 올라가겠어요."
거기서 대화가 끊기고 더이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 P6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 빈곤층이 겪는 정신적인 외상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궁핍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미국의 빈곤층 가운데 굶주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며 빈곤층 가운데 다수가 안고 있는 문제는 우울증의 전조라 할 수 있는 학습된 무력감이다. 동물 세계에서 흔히 볼수 있는 학습된 무력감은 맞서 싸울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고통스러운 자극을 가할 때 일어난다. 이런 처지에 놓인 동물은 인간의 우울증과 흡사한 유순한 상태가 된다. 의지가 약한 사람들에게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데 미국 빈민층의 가장 곤란한 문제는 이러한 수동성이다. 조지타운 대학병원에서 재원 환자의 관리를 맡고 있는 조이스 청은 미랜더와 긴밀한 협조 관계에 있다. "보통 우리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적어도 진료 약속은 지킬 수 있죠. 그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연구대상 환자들은 스스로 찾아오는 법이 없어요."  - P570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을 논하는 데 있어서 정치는 과학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가 우울증을 연구하고 우울증과 관련하여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고, 누가 치료를 받고 누가 치료를 받지못하고, 누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누가 보살핌을 받고, 무엇이 보상의 대상이 되고 무엇이 무시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권력이다. 정치는 치료 방식도 결정한다. 환자들을 시설에 수용할 것인지아니면 지역사회 내에서 치료할 것인지, 치료를 의사들의 손에 계속 맡겨야 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복지사들에게 넘겨야 할 것인지,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개입의 대상이 되려면 어떤 종류의 진단이필요한지 등이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자신의 우울증 체험을 설명하거나 이해할 방법이 없는 하류층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 줄 수 있는우울증의 표현 형식 또한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 그리고 보다 혜택받는 계층 역시 국회와 미국의학협회와 제약업계에서 만들어 낸그 표현 형식을 통해 우울증이라는 병을 체험한다. - P593

다음의 네 가지 주요 요인들이 우울증에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정부 차원의 정책 시행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우울증을 의학적인 질환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인이자초했거나 성격상의 나약함으로 인해 생긴 병은 치료해 줄 필요가 없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다. 음주로 인한 간경화나 흡연으로 인한 폐암은 보험 혜택을 주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것을 암 전문의를 찾아가는 것보다는 미용사를 찾아가는 것에 더 가까운 방종으로 여긴다. 기분장애를 의학적인 질환으로 취급하면 이런 그릇된 인식을 종식시키고 병의 책임을 환자에게 돌리지 않게 되며 치료를 ‘정당화‘하기가 쉬워진다. 우울증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 요인은 지나친 단순화다. (이는 2500년 동안 우울중의 분명한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점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 당뇨병이 저혈당의 결과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은 세로토닌의 수치가 낮은 결과라는 일반적인 믿음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제약업계와 FDA가 그런 믿음을 강화하고 있다. 세 번째 요인은 영상화다. 대사율을 색깔로 나타낸 우울증환자의 뇌 영상과 정상인의 뇌 영상을 나란히 놓고 보면 우울증 환자의 뇌는 회색이고 행복한 사람들의 뇌는 총천연색이다. 두 영상의 차이는 비통하면서도 과학적인 인상을 주며, 그 색깔들은 진짜가 아니라 영상 기술에 의한 인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만 마디 말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 그것을 보면 즉각적인 치료의 필요성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네 번째 요인은 정신보건 관련 분야의 로비 부족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성가시게 졸라 대는 면이 부족하지요." 린 리버스 하원의원(민주당, 미시간)의 말이다. 특정 질병들이관심을 끌게 되는 것은 대개 그 질병들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는 로비 단체들의 일치된 노력의 결과다. 에이즈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도 그 병을 앓고 있거나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극적인 전략 덕분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울증 환자들은 일상생활조차 감당하기 힘겨워하므로 유능한 로비스트가 될 수 없다. 더욱이 우울증 환자들 가운데 다수가 상태가 나아져도 자신이 겪은 우울증에 대해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울증은 수치스러운 비밀인데, 로비활동을 하려면 그 수치스러운 비밀을 드러내게 되고 만다. - P5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라가 농성하던 거대한 철탑이 태양 빛에 달구어져 누나의 가냘픈 살을 태울 듯 뜨거웠던 계절에 그녀는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렇게 썼다. 아직도 덜 식어 후텁지근한 열기가 남은 크레인 운전실의 쇳덩이 방에서 누나는 꿈을 꾸었다. 철탑의 아래에서 스멀스멀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육중한 사각의 크레인 쇠기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은 뿌리로 변하여 구불거리고 꿈틀대며 땅속을 파고들어갔다. 대지에 뿌리를 박고 뻗어나가자마자 아래에서부터 나뭇잎이 돋아나고 갈색 페인트 색은 싱싱한 녹색으로 되살아났다. 쇠가 살아 있는 나무로 변하면서 나뭇잎은 무성하게 자라나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위로 위로 올라왔다. 드디어 크레인 철탑은 자취를 감추고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 이진오는 영숙이 누나의 꿈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글을 어떤 책에서도 읽은 적이 없었다.  - P406

대공분실을 거쳐 나온 이들은 고문의 무서움보다 더한 모멸감과 수치심 때문에 진저리를 쳤다. 무릎 꿇고 울부짖고 빌면서 네네, 무엇이든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다.
그들의 실직 굶주림 가난 야근 피로 질병 따위의 자세한 고통들은간단하게 개인 사정으로 지워져버렸고 혁명 투쟁 평양 김일성 간첩 같은 엉뚱한 단어들로 조서가 채워졌다. 수사관들도 그들의 파업이나 쟁의 목표가 좀더 나은 임금과 노동환경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대공 문제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오랜 수사기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부가 설립한 부서의 이름도 대공분실이었다. - P411

"가시기 전에 서방님에게 알려드릴 일이 있어요."
신금이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그는 마루 끝에 앉았다.
"모르셨지요? 지난 석달 열흘 동안 어머님이 늘 머리맡을 지키고 계셨다구요."
이철은 이전처럼 웃거나 농지거리를 하지 않고 다소곳하게 앉아서 형수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어떤 날은 장산이를 데려오기도 했지요."
그 말에 이철이 울컥하더니 고개를 떨구었고 굵은 눈물이 마루에 뚝뚝 떨어졌다. 신금이도 드디어 참지 못하고 울먹이면서 말했다.
"죽고 사는 일이 그렇게 별다를 것이 없지요. 그러니 하고픈 일을 하세요" - P448

어느날 깊은 밤에 신금이는 저절로 담이 깼다. 누군가가 그녀의 가슴을 흔들어 깨웠던 것이다. 어둠 속에 주안댁이 앉아 있었다.
"왜 또 오셨어요?"
그랬더니 주안댁이 두 다리를 퍼지르고 앉아서 키득키득 울음을터뜨렸다.
"애고 뭐시냐, 내 새끼 두쇠가 죽어버렸구나!"
"예에? 어, 언제요?"
"방금......"
신금이는 이부자리를 걷으며 상반신을 일으켜 앉았고 주안댁은 방문께로 물러나서 서 있었다. 어느결에 나타났는지 주안댁 옆에 수인복을 입은 이이철이 서 있었다. 그들이 문을 열고 방을 나가려할 때에 신금이는 두 손을 저으며 외쳤다.
"잠깐요, 어디루 가세요?"
곁에서 자고 있던 남편 일철이 깨어 일어나 아내의 옷자락을 잡았다.
"뭐야, 무슨 일이오?"
그들은 사라졌다. 신금이는 어리둥절한 일철에게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두쇠 서방님이......"
"응, 그애가 어쨌다구?"
신금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평소 아내의 버릇을 아는지라 일철은 그녀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서방님이 옥사했어요."
"누가 그래•••••• 어머니가 오셨나?"
신금이는 더이상 할 말을 잊고 고개만 끄덕였다. - P501

일왕 히로히토의 공개방송 내용에는 침략에 대한 반성이며 패전에 대한 항복의 의미는 한 글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영국 등으로부터 동아시아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불가피한 일이었으며 주권 배격과 침략이 그의 뜻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 내용은 연합군 수뇌의 포츠담선언을 수락한다는 내용으로얼버무려져 있었다. 해방된 조선의 식자층과 당시의 어느 논객은뒤에 이렇게 회고했다.
"조선에서 해방은 1945년 8월 16일 하루뿐이었다."
히로히토가 8월 15일 정오에 라디오를 통해 ‘대동아전쟁종결조서‘라는 것을 읽어내려간 육성 녹음을 방송했지만, 그것은 명백히 항복 방송이 아니라 종전 방송이었다. 8.15에 일제가 무조건 항복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었다. 일제는 1945년 9월 2일 오전 아홉시 동경만에 정박해 있던 미해군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할 때까지 항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는 어째서 8월 15일에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티다가 9월 2일에 항복하였는가. 그것은 미군이 일본에 상륙하기를 기다렸다가 미국에게 항복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조선반도의 삼십팔도선 분할은 1945년 8월 9일에 대일전쟁을 개시한 소련군이 만주를 거쳐 조선에 진격하자 8월 11일 미국 전략정책단이 소련군의 남진을 저지하려는 긴급대책으로 삼팔선을 그어한반도를 서둘러 분할했다는 것이 공식적 견해였다. 조선반도의 분할은 미국이 즉흥적으로 주도하고 소련이 아무것도 모르고 동의해준 것이라는 견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고,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진 미국의 전략이었다. 미국 측 전략가들은 세개의 주요 항구를 주목했고 이중 두개의 항구인 부산과 인천을 자기들 쪽에 포함시켜야 하며, 서울 바로 북쪽에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팔선을 따라 긋는 것이 가장 좋은 위치라고 판단했다.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은 이미 포츠담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조선반도의 분할을 안건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 P520

건준의 보안대나 학병동맹의 청년들이 서울의 각 경찰서를 점거하면서 일경과 마찰을 빚었다. 과거의 원한으로 조선인 경찰들을살해하거나 폭행한 경우가 수십건 발생했지만 사태는 곧 잦아들었다. 이에 비하면 소련군 점령하의 북한은 일본 경찰과 헌병은 물론검사나 판사의 과거 이력을 조사하고 조선인 피해자들의 증언에따라 재판정에 세워 사법적 처벌을 했다. 따라서 수많은 조선인 출신 경찰과 관리가 이남으로 도망쳐 내려왔다. 예상했던 대로 구월초에는 서울의 경찰서마다 뒤숭숭하던 치안 불안 현상이 사라졌다. 서울 시내를 일본군이 지키기 시작했고 일제 경찰 간부들은 조선인 경찰 간부들에게 직임을 승계해주었다. - P5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이 바로 빅토리아 시대 멜랑콜리의 본질이다. 인류의 역사를보면 신앙이 강한 시기와 약한 시기가 번갈아 나타나기는 하나, 이처럼 신의 존재와 의미 자체에 대해 갖게 된 불신은 전능한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슬픔보다도 훨씬 큰 고통이었다. 자신이 강렬한 증오의 대상이라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거대한 무(無) 속에서 무관심의 대상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앞선 세대들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매슈 아널드는 그 절망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은 우리 앞에 꿈나라처럼 그리도 다채롭고 아름답고 새롭게 펼쳐져 있지만,
사실 기쁨도, 사랑도, 빛도,
확신도, 평화도 주지 못하고
고통을 덜어 주지도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 어스름 속의 벌판에서
격투와 도망의 혼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무지한 군대가 밤새 싸움을 벌인 곳에서.

이것이 바로 현대 우울증이 취하는 형태로, 신을 잃은 위기가신의 저주를 받은 위기보다 훨씬 더 일반적이다. - P527

우울증은 계층을 초월하지만 우울증 치료는 그렇지 못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대부분의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우울증과 가난은 오래 방치될수록 그만큼 더 심각해진다. 가난은 우울증을 악화시키고, 우울증은 장애와 고립으로 가난을 심화시킨다. 가난은 사람을 운명에 수동적이게 만든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극히 무력한 존재로 인식하여 도움을 청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된다. 그들은 가장 인간적인 자질인 자유의지를 상실한다.
중산층에 찾아온 우울증은 상대적으로 발견하기 쉽다.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다 갑자기 저조한 기분에 빠지는 형태를 보이기때문이다. 이들은 이유 없이 일이 싫어지고,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도 잃고, 이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리하여 점점 위축되고 긴장성 분열증 증세를 보이며 주위 사람들의 우려 섞인 관심을 끌게된다. - P550

그러나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에게 찾아온 우울증은 즉시 눈에 띄기가 어렵다. 억압받고 가난한 이들에게 인생은 늘 비참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져본 적도,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뜻을 품어 본 적도, 대단한 자기 통제력 같은 걸 발휘해 본 적도 없다. 이들의 정상적인 상태는 우울증의병적 상태와 상당히 흡사해 어떤 것이 정상적이고 어떤 것이 병적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힘겨운 삶을 사는 것과 기분장애에 시달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며, 우울증이 그런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의견이 아무리 일반적이라 해도 사실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사람을 무능하게 만드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보면 자기 구제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밑바닥에 머물러 살 수밖에 없게 된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들이 야망과 능력과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 P550

우울증을 생활 사건과 분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난한 우울중환자들은 우울증 발병의 몇 가지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이들이 지닌 문제들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부모, 자녀, 남자친구, 여자친구, 남편,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슬픔이나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만족스러운 직업이나 즐거운 여행의 기회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들은 좋은 기분에 대한 근본적인 기대조차 없다. 우리는 우울증을 의학에 소속시키는 데 골몰하여 ‘진짜‘ 우울증은 외부적 요인과 관계없이 일어난다는 입장에 편향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이 밑바닥 인생이라는 비굴한느낌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식욕을 잃고 과도한 공포나 불안감에 시달리고 짜증스럽고 공격적이 되고 자신이나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등의 증세가 있는 임상적인 질환을 갖는다. 사실상 미국의 빈곤층 모두가 자신의 상황을 불만족스럽게 여기며, 설상가상으로 그들 중 다수가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채 살아간다. 이 복지 개혁의 시대에 우리는 빈곤층에 자립을 요구하지만 중증 우울증을 앓는 빈곤층에게 자립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우울증에 걸리면 재교육프로그램도, 시민 계도 활동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통한 정신 치료다.  - P551

성우들이 성신상애에 의한 것이다. 진보적 정치가들은 빈곤층의 불행을 자유방임주의 경제의 불가피한 결과이며 정신보건상의 개입으로 고쳐질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가 하면 우파 정치인들은 그것을게으름의 결과로 여겨 정신보건상의 개입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사실 대다수 빈곤층에게 그것은 고용 기회나 일하려 하는 동기의 부재 때문이라기보다 노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심각한 정신장애 때문이다. - P556

"우울증이라는 말을 듣자 위안이 되더군요. 문제가 있어서 그랬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무슨모임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거기 가서 말은 한마디도 안 하고 내내 울기만 했죠." 롤리의 말이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스스로 도움을 받고자 찾아오는 환자가 아니면 도울 수 없다고들 여기지만 빈곤층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자꾸 전화가 왔어요. 모임에 나오라고요. 귀찮을 정도로 들볶더라고요. 한번은 집에까지 데리러 왔다니까요. 처음에는 그 모임이 싫었어요. 그런데 모임에 온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나와 똑같은 문제들을 갖고 있더군요. 그래서 나도 가슴에만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지요. 치료사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그런 질문들을 했던 거예요. 나는 자신이 변하고 있는 것을, 강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죠. 모두 내 태도가 달라진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 P5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