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마이크(Mic)>라는 온라인 매체에서 여자 옷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를 의복의 역사적 측면에서 간략하게 다룬 적이 있다. 당시 그기사를 한국의 한 매체가 "주머니‘의 역사와 여성용 옷에 숨어있는 성차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옮겨서 소개했다. 그림데 번역된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주머니가 들어가면 핏(fit)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주머니 없는 옷을 더 선호한다"라는 의견이 눈에 많이 띄었다. 어차피 핸드백을 비롯한 다양한 백을 들고 다니니 굳이 바지 주머니에 힘들게 쑤셔 넣어 불편하게 다닐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자주 듣는 말이다. 사실 남자인 나도 요새는 주머니에 물건을 넣는일이 거의 없다. 동전을 쓰게 되지 않으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그저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 할 때 잠시 폰을 넣어두는 용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이크>의 글은 그렇게 욕을 먹을 글은 아니었다. 그글의 원제는 "이상하고, 간단하지 않은, 그리고 성차별적인 주머니의 역사(The Weird, Complicated, Sexist History of Pockets)"다? "여성용 옷에 숨어 있는 성차별"이라는 한국 기사의 제목은 영문 기사의 제목과 비슷해 보이지만, 원문 기사가 오해를 피하기 위해조심스럽게 "여자 옷은 성차별적 역사를 갖고 있다"는 의미로 뽑은 제목을 "오늘날 여자 옷에 주머니가 없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식으로 옮기는 바람에 독자들이 무리한 주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마이크>의 원문은 꽤 알차다. 지금의 현상만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형태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바지를 입어도 여자 옷에만 주머니가 없거나 ‘무늬만 주머니‘가 있는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여자와 남자의 옷은 적어도 우리가 입는서양식 옷의 경우 전혀 다른 계통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남자와 여자가 모두 바지를 입고 있지만 여자 옷이 주머니를 무시하는 이유는 이렇게 다른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모습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 P94

그렇다면 현재 많은 나라에서 입는 서양화된 의복에서 볼 수있는 ‘바지‘는 언제 왜 등장했을까? 칼슨은 1330년대를 꼽는다. 바로 갑옷(armor)의 등장이다. 갑옷이 전통적인 의복 형태의 쇠자갑(chain mail)에서 판금갑(plate armor)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이를 입어야 하는 기사의 허리둘레, 팔다리의 길이 등을 정확하게 측정할 필요가 생겨났고 이게 ‘재단‘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옷에는 주머니가 붙어 있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 ‘주머니‘가 옷과 분리된 작은 파우치 (pouch)를 의미하는 것처럼 당시 유럽에서 사용되던 ‘포켓(pocket)‘이라는 것도옷의 일부가 아니라 허리띠에 부착하는 형태였다. 이는 남녀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만 남자들은 허리띠에 가깝게 주머니를 차고필요할 경우 짧은 칼을 주머니와 함께 차고 다녔다면 여자들은주머니를 다리 쪽으로 길게 늘어뜨린 형태로 차고 다녔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유럽의 남자들이 트렁크호스(trunk hose), 브리치스(breeches) 같은 본격적인 바지 형태의 옷을 입게 되면서 비로소 주머니가 남자 옷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초기의 바지들은 패션아이템이 되면서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모양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몸에 붙지 않아 여유 공간이 충분했다. 칼슨은 남자들의 바지가 커다란 통 모양이 되니 전통적으로 허리띠에 차던 주머니를 그 위에 얹는 것보다는 그냥 안으로 넣자는 생각을 한 재단사들이 나타났을 것으로 추측한다. 예전처럼 주머니를 바지 안쪽에매달지 않고 아예 꿰매 넣기로 하면서 우리가 아는 ‘바지 주머니‘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게 1550년대에 일어난 일이다. - P96

남자들이 바지와 재킷 곳곳에 주머니를 붙이고 다양한 물건을넣고 다니다가 이를 꺼내어 사용하는 동안 여자들은 중세와 다름없이 천 주머니에 물건을 한꺼번에 넣고 다녔다. 물건을 정리할수 있는 서랍처럼 작동한 남자 옷과 달리 한곳에 물건을 몰아넣으니, 필요한 걸 찾으려면 열심히 뒤져야 했다. 그래서 주머니 안에 물건이 있는데도 찾지 못하는 일이 있었고, 치마 속에 묶은 끈이 풀려 주머니를 분실하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여자들이 중세시대 이후로 발전이 없는 주머니로 고생하는 동안 남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농담과 조롱이 섞인 글을 쓰곤 했다. 그런데 여성이 옷에 주머니를 부착하는 대신 손가방을 드는 쪽으로 발전한의복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비슷한 글은 여전히 나온다. 물론 이런 ‘혼돈‘은 여자들의 타고난 성격, 성향과 무관하게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반면 자라면서 주머니에 온갖 잡동사니를 넣고 다니던 남자아이들을 보는 시선은 달랐다. 남자아이들은 자라서 중요한 일을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허용해야 한다는 너그러운 자세가 어른들에게 있었다. 아이들이 주머니에 사탕, 개구리, 칼 따위를 넣고 다니면 그건 "세상을 탐험하는" "호기심 많은 태도로 여겨졌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유년기에 이를 허용해야만 물건을정리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였다. 남자아이들의 주머니가 이렇게 ‘호기심 많은 탐험가‘를 상징하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옷에 주머니가 붙었어도 완전히 다른 취급을 받았다.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의 네 자매 중 둘째인 조(Jo)는 흔히 여자들이 주머니-1860년대 여성의 옷에 드디어 사용할 수 있는 주머니가 붙었다 에 넣고 다닐 것으로 기대하는 물건들을 거부하며 자기가 쓴 원고 뭉치를 넣고 다녔다. - P106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송한 <평범하지 않은 탐조인>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가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를 찾아가 그곳의 새들을 관찰하는 내용이다.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도 백인의 위협을 받는 흑인 남자가 앨라배마처럼 인종차별의 역사가 길고 지금도 많은 차별이 존재하는 곳에서 망원경을 들고 숲을 돌아다니는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센트럴파크 사건 이후 앨라배마오두본 소사이어티의 초청으로 그곳에 처음 가서 탐조를 했지만,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시리즈를 만들게 되면서 꼭 그곳에 다시 가서 촬영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제작에 동원되는 촬영팀을 끌고그곳에 가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앨라배마주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셀마(Selma, ‘피의 일요일‘로 알려진 흑인들의 투표권 쟁취 행진이 시작된 곳)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셀마의 유명한 에드먼드 피터스(Edmund Pettus) 다리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제 가족은 북부 출신입니다만, 미국의 흑인들은 몇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남부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제 아버지 집안은 앨라배마에서 오셨죠. 그래서 제게는이런 개인사와 탐조 그리고 민권운동의 역사가 함께 만나는 경험이었습니다." - P87

당시 여성 참정권론자들을 보는 보수주의자들의 시각에는 홍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들은 여성 참정권론자들을 타고난 젠더를따르지 않는 사람들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그런 시각을 뒷받침할만한 성소수자를 골라내 공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게일 러플린(Gail Laughlin)이다. 당시 언론은 (레즈비언으로 알려진) 러플린이 여성들이 입던 주머니 없는 드레스를 거부하고 남자 옷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다닌다고 비난하면서 "러플린은 주머니가 없는 옷은 입지 않는다"고 조롱했다. 여자 옷에는 주머니가 없는 게 정상이라는 생각이 이미 확고하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여성이 드레스나 치마가 아닌 옷을 입는 것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저항은 아주 오래 지속되어서 1990년대 중반까지도 미국 의회에서 여성 의원들은 바지를 입을 수 없었다. 세 명의 여성 의원이 이를 거부하면서 바지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의 바지 정장은 두고두고 얘깃거리와 조롱감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남자들의 공격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론은 못생긴 여자들이 하는 주장이라면서 이들이 남자들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는 ‘보기 흉한 버릇‘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페미는못생긴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런 공격이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졌는지 보여준다. - P113

그런 이유로 보먼은 백인이 만들어내고 중국 이민자들이 생존을 위해 사용해온 폰트를 인종주의적인 폰트라고 낙인찍는데 조심스럽다. "타이포그래피를 통한 조롱은 중국인들이 받았던 많은 조롱 중 하나에 불과하다. 기본적인 인권을 얻기 위해 싸우는상황에서 자국 문화의 진정한 표현 같은 건 사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과연 인종주의적인 요소가 들어 있느냐를 판단하고 싶다면 아주 좋은 비유를 제시한다. "타이포그래피란 귀로 들을 수 있는 목소리에 해당하는 시각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가령 액션 영화 예고편에 들어가는 성우의 목소리를 어린이용 만화에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책의 표지에 사용되는 폰트도 그 책의 성격에 따라 분명하게 다르게 선택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타이포그래피는 목소리다. 그런데 외국인이 특정 문화나 인종의 말을 흉내 낸 가짜 목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인종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가령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주인공의 일본인 이웃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자. 이 일본인은 백인 배우가 연기했고 당시 일본인을 상대로 한 인종주의적 조롱이 가득 담겨 있다. 보먼에따르면 완톤 폰트를 보는 미국인의 귀에는 그 장면에 등장한 일본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 P142

뉴욕주 오번시에는 한국전쟁 기념비가 있다. 여기에 새겨진 영문(KOREAN WAR")은 완톤 폰트다. 이런 기념비의 존재는 완톤 폰트가 단순히 중국계에 대한 하나의 조롱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걸 세운 사람들은 희생을 기념하고싶었던 것이지 자기 마을 사람들이 지키려고 싸우다 목숨을 잃은 나라의 문화를 조롱하고 싶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기념비를 디자인한 사람, 승인한 사람, 이를 매일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모두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은 중국 음식점에서 본 글씨가 아시아 문화를 대표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경우는 인종주의적 조롱보다는 무지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차별이 무지에서 비롯되는가? 이런 역사를 꾸준히 발굴하고 대중에게 알려야하는 이유다. - P144

마르티네즈 파티뇨 선수에 비하면 캐스터 세메냐의 경우는 다른 여자 선수들에 비해 호르몬상 분명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평균 여성들에 비해 몇 배나 많은 테스토스테론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운동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를 악용하려는 도핑은 경기조직위원회의 감시 대상이다. 문제는 이 호르몬을 주사하지 않았는데도 몸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2019년에 세메냐는 몸에서 평균 여성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테스토스테론이 나오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수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여성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언뜻 들으면 과학적인 판단인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
똑같은 일이 남성 선수에게 일어나면 어떨까? 테스토스테론이 평균보다 많이 나오는 남성은 남들보다 키가 큰 농구선수처럼그저 ‘신체적 조건이 유리한‘ 선수일 뿐이다. 엘리트 체육의 꽃인 올림픽은 물론이고, 프로 스포츠계는 그렇게 신체적 이점을 타고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서 같은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 그건 부당한 이점이라는 것이 스포츠중재재판소의 주장이다. <프로퍼블리카>의 데이비드 엡스틴 기자는 각종 운동경기 종목에서 기록 경신이 꾸준히 일어나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설명하는 테드(TED) 토크에서 인류의 진화 덕분에 기록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외부 조건의 변화가 기록 경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그중 특히 흥미로운 변화는 사람들이 ‘평균적인 조건의 신체가 모든 운동 종목에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근대 올림픽 초기의 생각을 포기한 것이다. 실제로 경기를 진행해보니 종목별로 유리한 신체가 따로 있었고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신체를 가진 선수를 발굴해서 훈련시킨 것이 기록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가령 20~40세 사이의 미국 남성 중에서 키가 7피트(213센티미터) 이상인 사람들을 모으면 현재 NBA에서 선수로 뛰고 있을 확률이 무려 17퍼센트다. - P158

하지만 이는 사실상 캐스터 세메냐를 두고 정한 기준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세메냐가 바로 거기에 해당하는 중거리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세메냐의 테스토스테론 양으로는 여자 종목에 참여할 수 없다. 세메냐를 겨냥한 결정이 아니냐는 비판에 부담을 느낀 탓인지, 육상연맹은 세메냐가 참여할 수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호르몬제를 복용해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경기 6개월 전부터 낮추면 된다는 것이다. 이 결정이 가진 아이러니는 다른 선수들은 호르몬제를 포함한 약물을 복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는 반면 세메냐와 같은 간성의 선수들은 오히려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인 근거를 이야기할 때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렇게도출된 결론을 보면 결국 세메냐를 비롯한 간성인을 ‘잡아내기‘ 위한 조치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세메냐는 아주 뛰어난 선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는 우사인 볼트 같은 존재는 아니다. 2023년9월 현재 여자 800미터 달리기 세계 기록을 보면 세메냐가 세운기록은 6위에 불과하다. 그는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운 적이 없다.
그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고 해도 그게 압도적인 차이를만들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현재 세계 1위 기록 보유자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야르밀라 크라토츠빌로바는 약물을 복용했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그 기록을 세운 것이 1983년이었고, 당시만 해도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국가 선수들의 약물 복용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아무리 1980년대의 약물검사가 허술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보면 백인 선수는 약물을 복용하고 뛰었다는 의심을 받아도 세계 기록을 인정하고 있는육상연맹이 흑인인 세메냐는 자신이 갖고 태어난 자연의 몸으로뛰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약물을 통해 인위적으로 경기력을 떨어뜨리게 한 것이다. 게다가 선수 자신이 평생 살아온 몸의 호르몬을 강제로 떨어뜨리는 약을 6개월 동안 복용하는 것은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것을 떠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점에서 육상연맹의 결정은 문제가 많다. 그런데 세메냐의 자격을 논하고 약물 복용을 강요하는 과정을 보면 흑인, 그것도 흑인여성의 몸을 보던 유럽인들의 오래된 습관에서 자유롭지 않음을알 수 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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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주 오래된 습관

내 머리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첫 기억 중 하나는 아버지가 방에서 TV를 보고 계신 장면이다. 아마도 권투 중계였던 것 같지만정확하지는 않다. 분명히 기억하는 건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계셨다는 것이다. 1970년대, 아니 1980년대에도 방에 두툼한 유리 재떨이가 있는 집이 흔했고,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걸 내가기억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머니가 그 시절 얘기를 종종 하셨기때문일 것이다. 옛날 기억은 그렇게 이야기 속에 등장하면서 생명이 연장된다. 그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 P8

이는 전기차처럼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제품을 팔아야 하는 기업들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테슬라를비롯한 전기차 업체들은 초기에 구매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위해 전기차가 얼마나 안전한가를 증명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담배 회사의 고객은 이미 습관-정확하게는 니코틴중독이 형성된 사람들이었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행동을 하도록 유도해야 했던 테슬라와 달리 담배 회사들은 흡연자들이 습관을 끊지 않도록 적당히 다독여주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습관(귀가 후 전기차 충전)을 만들어내는 데 들어가는 노력과 기존 습관(스트레스받을 때 흡연)을 이어가도록 돕는 데 들어가는 노력의 차이는 물리학의 관성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담배 회사들이 소음을 일으켜서 의학계의 경고를 묻어버리는작업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버크셔 작전(OperationBerkshire)‘이다. 1977년 대형 담배 회사의 CEO들이 영국 모처에서 비밀 회동을 갖고는 대중이 흡연과 질병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듣지 못하도록 반대되는 연구를 지원해서 ‘논란‘을 만들어내자고 결의한 것이다. 이런 집요한 노력의 결과 흡연자들은 담배의 해악에 대해서는 ‘의학계에서도 완전히 동의하지 않은‘ 문제라고 느끼게 되었고, 그 덕분에 불안을 달래가며 흡연 습관을 이어갈 수 있었다.  - P13

멜라니는 필드스톤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 자신이 가고 싶었던, 그리고 당연히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세상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그리고 부잣집 아이들이 그곳을 거니는 장면을 본 것이다. 그 순간 멜라니는 유니버시티 하이츠 고등학교 아이들은자라서 버거킹과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만들고, 필드스톤 아이들이 자라서 살게 될 고급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주민들이 들어올 때마다 문을 열고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문을 잡고 있을 운명임을 알았다. 이게 ‘자연계의 질서‘이고 엄연한 현실이며자신의 미래임을 깨달은 것이다. 멜라니가 필드스톤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이건 불공평해! 나는 여기 있기 싫어! 집에 갈래!"라고 소리를 지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P42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의문이 떠오를 수 있다. ‘그렇게 역경을 이겨내고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인데 단순한 서류 작성에서 좌절한다고 이를 설명하는 유명한 개념이 바로 ‘결핍의 덫(scarcity trap)‘이다. 사람들은 돈이나 시간 등의 자원이 부족할 경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는 게 결핍의 덫 이론으로서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이 개념을 소개한 기사에는 작은 실수로 어처구니없이 해고당한 여성이 당장 생필품이 부족해지자 신용카드로 물건을 급하게 대량 구입하고는 연체료를 납부하지못하는 사연이 등장했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저지르지 않을 실수였지만 궁핍 상태에 처한 뇌는 그렇게 ‘조금만 더‘ 생각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능의 문제도 게으름의 문제도 아닌 그사람이 처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덫이다. 이 덫에 걸린 사람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해서 현재 상황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 P62

‘결핍의 덫‘을 다룬 기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외로운 사람들도 일종의 궁핍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궁핍은 인간관계의 부족, 즉 친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신이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것. 그렇다 보니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어색해지는데,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즉 대인관계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집착이 친구를 사귀고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것을 막는다. 이는 그 개인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궁핍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그들을 붙잡고 있는 환경이다. - P63

그에 따르면 요즘 의대 진학생들 중에는 좋은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기는 해도 약 20퍼센트 정도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학업을 하면서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고 했다. 물론이들을 위한 장학금은 있지만 기부자들이 ‘이 장학금은 반드시수업료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거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소중한 장학금을 공부가 아닌 곳에 쓰면 안 된다는정당한 조건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생활비는 ‘낭비‘라고 생각해서 지원할 생각이 없다면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은 장학금으로 수업료를 모두 면제받아도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부자들을 만나면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야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라고 설득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게 그 친구의 말이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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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도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구조적 분할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국내‘와 ‘국제‘ 사이의 ‘베스트팔렌적 분할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제국주의적‘ 분할이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더욱 근본적인 분할에 의거한다. 즉 ‘세계체제‘로 조직된 점점 더 지구화하는 자본주의 경제와 영토국가들의 국제 시스템으로 조직된 정치 세계 사이의 분할이다. 제5장에서 현재 이 분할이 변화하고 있음을 살펴보겠지만, 신자유주의는 자본이 역사적으로 의존해온(일국 수준에서든, 지정학적 수준에서든) 이 정치적 역량들을 놓고 제살깎아먹는 짓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 ‘정치적인 것‘은 시스템 위기의 또 다른 주된 무대로 바뀌고 있다. - P49

착취와 수탈 모두 축적에 기여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착취는 자유 계약에 따른 교환으로 위장한채 가치를 자본에 이전시킨다. 즉, 노동자는 노동력 사용 대가로임금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자본은 ‘잉여노동시간‘을 전유하는 한편 ‘필요노동시간‘만큼만 급여를 지불한다. 반면에 수탈의 경우에는 자본가가 타인의 자산을 (대가를 거의 혹은 전혀 지불하지 않은 채) 폭력적으로 징발하는 쪽을 선호하기에 이러한 온갖세심함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즉 강제 노동, 토지, 광물, 에너지를 기업 활동에 몰아줌으로써 기업의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늘린다.
이렇듯 수탈과 착취는 서로를 배제하기는커녕 손잡고 함께간다. (이중으로)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는 ‘징발된 에너지원으로움직이는 기계를 통해 ‘약탈품인 원자재‘를 변형시킨다. 그럼에도 이들의 임금은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재생산 비용을 충분히지급받지 못하는 ‘타자‘(부자유하거나 종속적인)가 고착취 공장에서 생산한 소비재와, 빼앗긴 땅에서 부채 노예peons"가 키운 먹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덕분이다. 말하자면 착취의 밑바탕에는 수탈이 있으며, 수탈 덕분에 착취는 높은 이윤을 거둔다. 수탈은 자본주의 시스템 태동기에 한정되기는커녕 착취만큼이나 자본주의 사회에 구성적이며 그 구조적 토대 노릇을 하는 내재적특징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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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진하게 화장을 한, 장미꽃 색깔의 니트 드레스를 입은 중년여인이 계단을 밟고 기차에 올라타는 것을 봤다. 그녀 뒤로 여름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은 채 핸드백을 움켜쥔 아가씨가 올라왔다. 그다음에 기차에 오른 사람은 노인으로 아주 천천히. 나름대로 위엄을 갖춰움직이고 있었다. 노인은 백발이었고 하얀 실크 크라바트를 매고 있었지만, 신발이 없었다. 승객들은 당연히 이 세 사람이 동행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이 밤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일이 행복한 일은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승객들은 살아오는 동안 그보다 더 희한한 일들도 봐왔다. 그들도 잘 알다시피 세상은 별의별 종류의 일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이 일은 예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이 세 사람이 통로를 걸어자기 자리를 잡는 동안 여인과 백발노인은 서로 나란히 앉았고, 핸드백을 든 아가씨는 몇 자리 뒤쪽에 앉았다. 그들은 더이상 다른 생각으로 이어가지 않았다. 대신에 승객들은 역을 바라보며 그 역에 기차가 서기 전에 저마다 빠져들었던 생각, 그러니까 저마다의 문제들로 돌아갔다. 차장은 철로를 살펴봤다. 그리고 그는 기차가 온 방향을 훑어봤다. 그는 팔을 들어 손전등으로 기관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기관사는 그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눈금판을 돌리고 레버를 내렸다. 기차는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였으나, 곧 속력을내기 시작했다. 기차는 환한 객차 불빛을 노반에 흩뿌리며, 다시 어두운 시골 동네를 빠르게 통과할 수 있을 때까지 점점 더 빨리 움직이기시작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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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주가 노동자에게 주는 급여를 줄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도배열 아래에서 많은 가계는 현금 급여 이외 소득원에서 생계의 일부를 확보한다. 이를테면 자급 활동(텃밭, 바느질), 비공식호혜 활동(상호부조, 현물 교환), 공적이전소득(복지수당, 사회서비스, 공공재) 등이다. 이러한 제도배열에서는 인간 활동과 재화의 상당 부분이 시장의 영향권 바깥에 머문다.
이러한 활동과 재화는 단순히 자본주의 이전 시대가 남긴 잔재가 아니며, 사멸 중인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20세기 중반에 포드주의가 중심부의 선진공업국에서 노동계급 소비주의를 촉진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의 고용과 여성의 가사활동을 결합한 반-프롤레타리아화된 가계 덕분이면서 동시에 주변부의 상품소비가 발전하지 못하게 막은 덕분이기도 했다. 반-프롤레타리아화는 신자유주의에 들어서 오히려 더 강화됐는데,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축적 전략이란 한마디로 수십억 민중을 공식 경제에서 추방해 비공식 회색 지대(자본이 부를 쪽쪽 빨아먹는)로 옮겨버리는 것이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런 종류의 ‘원시 축적‘은자본이 이윤을 뽑아내는 원천이자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현재진행형 과정이다.
따라서 요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화된 측면‘과 ‘비시장화된 측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외적 현상이나 우연적인 경험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DNA에 각인된 특징이다. 사실 ‘공존‘은 이 둘의 관계를 포착하기에는 너무 약한 단어다. 더 나은단어는 ‘기능적 중첩imbrication‘이나 ‘종‘이겠지만, 이런 말들도 이 관계의 도착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앞으로 논의를통해 더 분명해지겠지만, 이러한 측면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말은 ‘제살깎아먹기cannibalization‘다. - P36

인식의 전환에서 한 가지 핵심적인 것은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사회적 재생산‘이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뜻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subjectivation‘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들을 형성하고, 그들을 육체를 지닌 자연적 존재로지속시킨다. 또한 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고 그들의 활동반경을 이루는 아비투스habitus 와 사회-윤리적 내용 혹은 인륜성Sittlichkeit을 형성한다. - P40

자본주의는 ‘자연‘의 관할영역과 ‘경제‘의 관할영역 사이에 선명한 분할을 전제하며, 실제로 이를 등장시킨다. 이때 자연은 ‘원자재‘를 지속적으로 무상 공급하는, 쉽게 전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되고, 경제는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생산되는 가치의영역이라고 인식된다. 이와 더불어, 이미 존재하던 ‘인간‘과 ‘비인간) 자연‘ 사이의 구별도 강화된다. 이 구별에서 인간은 영적이고 사회문화적이며 역사적인 존재라 여겨지고, 비인간 자연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몰역사적 물질이라 여겨진다. 이런 구별의 심화 역시, 여러 면에서 사회생활의 리듬이 비인간 자연에 순응하던 이전 세계가 해체된 결과였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자연의 계절적 리듬에서 폭력적으로 분리해내고는, 화석 연료 기반의 제조업이나 화학 비료를 통해 억지로 확대된 이윤 주도 농업에징용한다. 마르크스가 ‘물질대사 균열metabolic rift‘이라 칭한 바가 시작됨으로써, 바야흐로 (다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인 ‘인류세‘라고 불리는 완전히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열렸다‘ ‘인간 활동‘(실은 자본 활동)이 지구를 놓고 제살 깎아먹는 짓을 벌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분할 역시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했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거듭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국면은 ‘더 많은 자연‘을 경제 영역의 본이야기에 끌어들이는 새로운 인클로저 물결(예를 들어, 물의 상품화)이 시작되게 만들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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