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형태의 그래프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1966년 영국의 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토머스 매큐언Thomas McKeown 이다. 그의 의도도 바로 그 점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매큐언은 감염병을 소멸시킨가장 주요한 동력은 현대의학의 발달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결정적 원인은 사회경제적 환경 개선, 그리고 공중보건조치의 시행이었다. 가령 지난 두 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부가 크게 증대됨으로써,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깨끗한 물과 안전한 음식을 누릴 수 있는 인구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여기에 가족계획이 보급되고 교육이 개선되면서, 그런 요인들이 감염병 확산을 줄이는 데 백신이나 치료법보다 훨씬 더 크게 기여했다. ‘매큐언 가설McKeown hypothesis‘이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그 후 철저한 검증을 거쳐 입증됐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봐 밝혀두자면, 이 말은 약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의약품은 질병 희생자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다만 그 공헌의 정도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 P138

아직 상황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을 때 NPI를 적시에 실행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일은 공중보건 당국자와 정치인에게 중요한 과제다. NPI란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우며 크나큰 희생이 따르기도 하므로, 많은 사람이 피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특히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유행병이 돌 때 대중에게 현 상황을 정확히 이해시키는 것은 지도자의기초적 책무다. 더 나아가, 대중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를 하나의 NPI로 볼 수 있다. 이를 다른 조치들의 효과를 높이는 방편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 기능을 저해하되 인명을 살리는개입 조치를 시행하려면 대중의 신뢰가 필요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으려면 모든 정책안의 논리적 근거를 정직하게 알려야 한다. 까다로운 절충이 필요하다는 점도 숨김없이 논하고, 여기에 불확실성이 따른다는 점도 알려야 한다. 이것이 공중보건뿐 아니라 시민의 참여의식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 P149

한 사회가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면역자의 비율은 질병의 전염성이 얼마나 높은가에 달려 있다. 질병의 전염성이 낮을수록필요한 면역자의 수는 적어진다. 반대로 RO가 높을수록 유행 확산을 막는 데 필요한 면역자의 비율은 높아진다. 그래서 전염성이 최고 수준인 홍역의 경우, 확산을 막으려면 예방접종률이 무척 높아야한다. 한 지역에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6%만 되어도홍역은 확산될 수 있다. 이는 최근에도 많은 인구가 예방접종을 거부한 지역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례다. 다시 말해 홍역 유행을 막으려면 인구의 94% 이상이 자연적으로든 예방접종을 통해서든 면역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반면 RO가 상대적으로 낮은 병원체의 경우, 면역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도 된다. 그 필요한 비율을 계산하는 식이‘(Ro-1)/Ro‘다. SARS-2의 Ro를 3.0이라 하면 인구의 67%가 면역이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이 값은 다소 과도하게 추정한 값이다. 병원체의 감염재생산수 Ro는 한 인구집단 내의 모든 사람이 타인과 교류할 확률이 같다는 가정에서 계산된 값인데, 실제 세상은 그렇지않기 때문이다. 2장에서 봤듯이, 사회적 인맥 및 교류가 적은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도 있다. ‘인기인‘들이 자연적으로든 예방접종을 통해서든 면역이 되고 나면, 앞의 계산값보다 적은 면역자 수로도 집단면역에 도달하게 된다. - P152

SARS-2처럼 무증상 전파가 일어나는 병원체의 경우는 국경 봉쇄가 더욱 어렵다. 그런 병원체의 은밀한 특성을 생각해보면, 이치에도 맞아 보이고 널리 사용되는 국경 봉쇄라는 방책이 대체로 별효과가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한 예로, 2009년 3월 멕시코에서 처음 발생한 H1N1 범유행 때 중국에서 입국자에 대해 발열 검사와 의무 격리를 시행한 효과를 분석한 연구가 있다. 그에 따르면, 국경 통제는 유행 확산 시점을 기껏해야 4일도 안 되는 기간만큼 늦춘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정책 결정자들이 국경 봉쇄를 생각할 무렵이면, 아니 전염병 유행을 인지할 무렵이면, 바이러스는 이미 그 나라 땅에 들어와 있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일단 지역사회 전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외부 유입을 더 막는 것이 큰 효과가 없다. 그 후로는 외부유입 감염자가 기존 감염자에 비해 극히 적은 비율인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서 범유행 시작 30일째에 항공기 운항을 전면 취소하는 경우(엄청나게 빠른 대응인 셈이다) 일어날 결과를 형식적 모형으로 예측해보니, 설령 전체 항공편의 99.9%를 취소한다고 해도 전파력이 중간 정도인 (Ro=1.7) 전염병의 발병 정점을 겨우 42일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 P165

완벽한 검사란 있을 수 없어서, 모든 검사는 양성으로 잘못 판정하거나(거짓 양성) 음성으로 잘못 판정하는(거짓 음성) 결과가 나온다. 인구집단의 해당 속성 보유율 자체가 낮은 경우는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임신 검사가 있는데, 거짓 양성이 나오는 비율이 5%라고 하자. 다시 말해 임신이 아닌데 임신이라고 잘못 판정하는 경우가 5%라는 뜻이다. 만약 임신한 여성 100명의 집단을 검사한다면, 그중엔 어차피 임신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므로 이 오류율은 문제가 되지 않아서 100명 모두 임신으로 정확히 판정된다. 하지만 만약 6세 소년 100명의 집단에 똑같은 검사를 적용한다면, 그중엔 임신한 사람이 있을 수가 없으므로 100명 중 5명이 임신으로 잘못판정된다.
이렇게 어떤 검사가 해당 속성이 있는 사람을 양성으로 옳게 판정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지만 동시에 해당 속성이 없는 사람을 양성으로 잘못 판정하는 비율도 어느 정도 된다면, 그 검사의 정확도는 인구집단의 해당 속성 보유율, 즉 기저율base rate에 따라 달라진다. 기저율이 아주 낮은 경우, 거짓 양성 비율이 조금만 되어도 엄청난 착시효과가 나타나기 쉽다. 예컨대 바이러스 유행 초기에 항체 검사를한다면, 인구집단 내에 실제로 항체를 보유한 사람은 아주 적을 테니 양성 판정 결과 중 다수는 거짓 양성이 된다. 그래서 검사 결과만놓고 보면 바이러스의 확산 현황을 과대평가하게 된다(엄청나게 우수한 검사가 아니라면). - P177

처음에 바이러스는 대중교통 종사자든 유명인이든 가리지 않고골고루 생명을 앗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자연히, 경제·사회적 약자의 희생이 두드러졌다. 퀸스 중부 등에 있는 이주 노동자 거주 지역은 특히 타격이 컸다. 서로 인접한 네 지역, 즉 코로나Corona, 엘름허스트, 이스트 엘름허스트, 잭슨하이츠는 ‘진원지 내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네 지역은 총인구 60만 명 중 4월 8일 기준 확진자가 7260명에 달했다. 이에 비해 총인구가 그 3배인 맨해튼은확진자가 1만 860명이었다. 과거에 역병이 돌 때도 그랬지만,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은 달아났다. 3월 한 달 뉴욕시의 휴대전화 데이터를 대규모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시 전체 인구가 4~5% 감소했는데 부촌 몇 곳의 인구는 5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22 인구 유출이 시작된 시점은3월 초, 각종 NPI가 공식적으로 시행되기 전이었다. 부촌 주민들은대부분 인근의 뉴욕주 북부나 코네티컷주로 대피했고 애리조나주, 미시간주, 캘리포니아주 남부까지 이동한 이들도 많았다. 1233월 31일, 쿠오모 주지사는 "바이러스 뒤꽁무니 쫓기도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지금까진 따라잡느라 바빴습니다. 따라잡기에만 매달려선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때 뉴욕주확진자는 7만 6946명이었다. 125 4월 6일에는 뉴욕시에서만 확진자가 7만2181명, 사망자가 2475명에 이르러 미국 전체 코로나19 사망자의 25%를 차지했다. 주 전역에 발령된 자택대피령은 4월 29일까지 연장됐다. 마침내 4월 15일을 정점으로, 뉴욕의 발병자 수가감소세에 들어섰다. 3주 전부터 시행한 NPI의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코로나19의 확산 특성 및 임상적 진행 속도(감염 후 증상 발현까지 최고 2주, 중증으로 발전하기까지 약 1주)와 맞아떨어지는 결과였다.
4월 말 무렵, 곡선이 평탄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여파는 엄청났다. 뉴욕주 전역에서 시행한 항체 검사 결과, 뉴욕시 거주자의21.2%가 1차 파동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구 결과, 뉴욕시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미국 전역에 걸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태의 시발점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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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일 - 점진적으로 강화된 마름에 대한 강조,
미의 기준이 매릴린 먼로에서 케이트 모스로 이동한 것, 이와더불어 식사장애가 부상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 즉 신체 사이즈를 줄이는 것과 자아 자체의 소형화에 대한강조가 여자들이 삶의 다른 영역들에서 성취를 이뤄내기 전까지는 그렇게 열기를 띠지 않았다는 사실은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 1970년대 말, 내가 거식중에 휘말리기 시작한 무렵, 여자들에게는 교육과 피임, 낙태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고, 삶의 대부분 영역에서 널리 차별에 대한 보호도 받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의사들은 식욕을 억제하는 암페타민을 한 해에 100억 알씩 처방했고 다이어트 기업 웨이트워처스의 지사가 49개 주에생기고 회원 수가 300만 명에 달했으며 다이어트 식품 업계가식품 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문으로 다른 모든 범주를 가볍게 넘어서려던 시점이었다. 수전 팔루디가 1991년에 출간한 책에서 예리하게 묘사했듯,
이렇게 나란히 전개된 두 가지 상황은 페미니즘의 강한 힘에대한 반격이 미학적으로 표출된 양상이었다. 점점 더 많은 여자들이 세계 내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할 권리를 요구하고있던 때에, 남자들이 주도하며 동시에 전통적 권력 구조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던 (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문화가 여자들에게 ㅊ반대의 메시지를 날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자들이 정신적으로 더 큰 존재가 되자, 육체적으로는 더 작아지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한때 남자들이 장악했던 영역(각급 학교, 스포츠, 직장, 침실)에서 여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하자, 여성을 어린애로 취급하고 수동적이고 연약하며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묘사하는 여성성의 이미지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로절린드 카워드가 여성의 욕망에서 썼듯이 "여성의 몸은 이 사회가 메시지를 쓰는 장소" 이며,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미국의 평균적 모델의 점점 줄어드는 실루엣에 점점 더 명료하게 새겨졌다. 너무 많이 갈망하지 마라, 너에게 주어진 한계선 밖으로 나가지 마라. - P70

 일반적으로 나와 같은 세대의 여자들은 성장하는 동안에 허기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에 대해 별로 배우지 못했고, 자신의 욕구를 평가하고적절하게 반응하는 방법에 관한 논의도 거의 하지 못했으며, 뷔페처럼 펼쳐진 가능성들과 어떻게 협상해야 하는지에 대한귀한 모범을 본 일도 극히 드물었고, 그 가능성들을 받아들여포용하는 방법에 대한 모범은 더욱더 드물게 보았다. 너무 많이 먹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금기이며, 자신의몸과 체중에 대한 어머니의 염려는 훈계라는 외피에 싸여 딸에게 전해진다. 항상 양이 가장 적은 걸 골라 데이트하러 가기 전에는 그 사람 앞에서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항상 미리 식사를 하고 가라. 그거 먹지 마. 금방 네 엉덩이로 갈 테니까. 성적 갈망은 침묵에 부쳐지는 게 그나마 가장 나은 경우이고, 최악의 경우에는위험과 죄악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파멸의 위험을 지닌 가마솥으로 제시된다. 나와 같은 연령대 여자들의 기억 은행에는 험악하게 노려보는 어머니의 이미지, 신랄한 힐난의 메아리(그 옷 벗어! 매춘부 같아 보이잖아!), 약탈적인 남자아이들의욕망에 관한 위협조의 잔소리 조각들이 잔뜩 들어 있다. 그리고 야망의 세계는 여러 면에서 아직 파악되지 않은 미지의 영토였고, 그 세계에서 요구되는 특성과 기술-강한 자아, 경쟁심, 지적 자신감은 여자아이들의 기를 때로 적극적으로 꺾었고(자랑하지 마, 자만하지 마, 너무 똑똑하게 굴지 마) 모범을 보여주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 P76

선택지들이 폭발적으로 열어젖혀진 세계에 이처럼 복잡하게 뒤엉킨 유산이 전해졌으니 모든 예스는 과거의 노와 충돌할소지가 다분했고 여기엔 당연히 엄청난 혼란이 따른다. 욕구의 밑바닥에 깔린 질문들도 어마어마하다. 무엇이면 만족하겠는가? 당신이 필요로 하는 건 도대체 어느 만큼이고, 무엇인가? 진정한 열정은, 아름다움 혹은 날씬함이라는 외적 목표 뒤에 감춰진 진짜 허기는 무엇인가? 비교적 최근까지도 여자들은 이런 질문을 탐색해보라는 권고를 받은 적이 없었거나, 적어도 깊이 있고 일치되는 견해에 따라 사회가 지지하는 방식으로 권고받은 적은 없었다. 우리는 한 세대에 걸쳐 열어젖혀진 문들과 기존 사회구조의 몰락이 자극하고 장려한, 이른바 포스트 페미니즘적 욕구를 품게 되었지만, 이런 욕구를 갖는 일에대해 항상 명백하고 확고한 지지나 허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전통적으로 욕구에 늘 따라붙던 경각심과 경고가 완전히 제거된 것도 아니며, 욕구를 지지해줄 심층적 권리 의식도 아직 갖지 못했다.
자유는 권력과 같지 않다. 이걸 짚고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 선택할 자유도 실질적인 경제적 힘과 정치적 힘의 중량이 어떤 식으로든 밑받침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안정을 깨뜨리는 느낌, 지속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얄팍하고 힘없는 느낌을 줄수 있다.  - P77

이름 붙이지 못한 허기는 무시무시한 허기가 되고 자기 불신의 근원이 된다. 이는 욕구가 지닌 또 하나의 황금률이다. 우리는 논의하거나 탐색할 수 없는 것은 두려워하게 되고, 금지된 것에는 끌리는 동시에 겁을 먹게 된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이해에 대해 은밀함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정교한 순화의 형식을 택하는 것으로도 반응했던 것 같다. 욕구를 지하로 몰아가 더 안전한 곳들로, 덜 두려운 경로로 빼돌린 것이다. 가족의 스타일과 다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가족들이 가치를 두지 않는 것들에 갈망을 느끼는 것은 그들과 나를 더욱 소원하게 만드는 무서운 일이었기에, 나는 인정에 굶주린 수많은 고분고분한 여자아이들이 배우는 것을, 그러니까 남들이 내게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법을 배웠다. 배경 속으로 녹아들기. 잘 살펴보기. 남들이 무얼 기대하는지 판단하고 그에 따라 반응하기.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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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페스트 또는 흑사병으로 불리는 병은 보통 가래톳 페스트bubonic plague 선페스트 또는 림프샘 페스트라고도 한다-옮긴이를 가리킨다. 역사학자 프랭크 스노든Frank Snowden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병에는 "네종류의 주역four protagonists"이 필요하다. 첫째는 병의 원인균인 페스트균이다. 둘째는 페스트균을 옮기는 벼룩이다. 셋째는 벼룩을 실어 나르며 숙주 역할을 하는 쥐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쥐와 마찬가지로 이 균에 희생되는 인간이다. 페스트균은 벼룩을 통해 동물 개체에서 동물 개체로, 그리고 종에서 종으로(가령 쥐에서 인간으로) 옮아간다. 이처럼 페스트는 야생 설치류가 주로 걸리는 병이 우연히 인간에게 옮겨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점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다른 인수공통감염병과 유사하다.
페스트는 쥐의 병이기도 하므로, 보통 사람이 죽기 직전에 쥐가먼저 끔찍하게 죽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땅 위에 나와 물을 찾다가길바닥에서 죽는 쥐들이 많이 목격됐다. 당시 흑사병을 묘사한 그림에 쥐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쥐는 불길한 징조였다.
페스트균을 보유한 벼룩이 쥐에서 사람 몸으로 옮겨 가면, 그때부터 균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벼룩은 사람 간 밀접한 접촉을통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직접 퍼져 나갈 수 있다. 벼룩은 동물의 몸에서 나는 열을 감지해 숙주로 삼을 대상을 찾게끔 진화되어 있다. 그래서 벼룩은 숙주가 죽어 몸이 싸늘하게 식으면 새 숙주를 찾아 주변으로 뛴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소중한 이의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벼룩의 다음 숙주가 되곤 했다. - P121

우리는 과거 범유행의 교훈을 여러 이유로 잊는다. 어떤 경우는너무 오래전 일이라 집단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거나 다른 사건에가려 주목받지 못한다. 그런 전염병들은 소수의 역사학자나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거나, 설화나 신화의 주제가 된다. 2020년 4월초 유대교의 절기인 유월절 기간에 내 유대인 친구들 몇 명이 한 말이 있다. 성서 속의 역병 이야기가 늘 추상적으로만 느껴졌는데, 이제는 실감이 난다는 것이었다. 유월절 만찬 때 읽는 「출애굽기」이야기의 요지가 더 명확히 와닿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더 단순한이유로 우리의 기억에서 잊히는 경우도 있다. 역학적 측면에서 그규모나 파장에 한계가 있었다는 이유다. 범유행병이었지만 그리 치명적이지 않았거나(2009년 H1N1 인플루엔자), 전염성이 높지 않아 발병자가 적었거나(메르스), 너무 빨리 소멸했거나(SARS-1), 특정인구집단 내에서만 발병했거나(에볼라), 백신으로 정복됐거나(홍역과 소아마비), 치료가 가능하거나(HIV), 박멸됐다는(천연두) 이유로 대부분 사람의 기억에서 까맣게 잊히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바뀌어버린 우리의 일상이 생경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생경한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전염병은 인간의 삶에 늘 따라오는 요소 중 하나다. 2020년에 벌어진 사건은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 겪는 일일 뿐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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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르누아르가 그린 욕구

여자들이 물가에서 어슬렁어슬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더없이 이례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큰 덩치와 관능성과 풍만함과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눈부신 매력을 발산한다. 강기슭을 따라 느긋하게 자리 잡은 채 태양을 향해 팔을 들어올리고, 유연하면서 널찍하고 튼튼한 등 뒤로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흘러내린다. 움직임에 부드러움과 더불어 힘과 육감이 배어있는 걸 보면, 이들은 자신의 중량과 물질적 실체가 주는 감각을 한껏 즐기는 듯하다. - P13

굶기는 비할 데 없이 뒤틀린 방법이긴 했으나 어쨌든 곧 세상에 나가 새로운 권리와 특권을 차지할 준비를 하고 있던, 그러나 아직 자아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겁먹은 젊은 여자의 불안을 처리해주었다. 거대하고 모호하고 압도적인 대상(일이나 사랑) 대신 작고 구체적이며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대상(팝콘 한 알에 초점을 맞추게 한 것이다. 또한 굶기는 새롭게 바뀐 풍경 속 내 위치에 대해 느끼기 시작한 불편함을 처리할 방법도 제공해주었다. 그러니까 내게 굶기는 갈망이라는 더 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흥정이었던 셈이다. 나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큰 존재가 되어도 된다(야심을 가져도 된다. 강력한 힘을 행사해도 된다. 경쟁에서 이겨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지만, 자신을 한 마리 굴뚝새처럼 작고 연약하고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만듦으로써 그 불편함을 상쇄하려 했다. 또한 굶기는 역시 과장된 방식으로, 여성 전반에대한, 특히 여성의 신체에 대한 엄청나게 많은 (그 일부는 내가족에게서 물려받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문화가 뒷받침한) 감정들과 여성의 신체는 선천적으로 어떤 부끄러운 결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순순히 받아들인 결과였다. 물론 굶기는 애초에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품고 있던 동경과 허함과 슬픔 등 온갖 오래된 감정들에도 대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 모든 갈망을 한 장소에 몰아넣고 다이아몬드처럼 응축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은 한편으로는 내가 얼마나 많이 원하는지,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결코 충분히 얻지 못할 것을 얼마나 확신하는지에 대한) 무시무시하고도 막강한 상징이 되었고, 따라서 나의 음식 거부는 내가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인 해결책이 되었다. 난 너무 배가 고파, 이 허기는 결코 충족되지 않을 거야. 어떤 사람이 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이 이러하다면 (당시의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굶기는 합리적인일이 되고 음식 통제는 그 배고픔과 충족될 수 없음의 간극을표현하는 동시에 거부하는 방법이 된다. 당신의 필요들이 당신을 압도하는가? 당신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 필요를 충족해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가? 심지어 자신이 필요로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가? 그렇다면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말라. 표류하고 있는 듯 혼란스러웠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그 시기에 굶기는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두각을 나타내고 통제력을 발휘할 수단을 내가 잘할 수있는 일을 제시해주었다. - P29

내 경우엔 굶기가 음주로 이어졌는데, 그러자 (내가 통제력이 대단히 강하고 꽤 우월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던) 식욕 거부가 점차 더욱 전면적인 자기 존재에 대한 거부로 넘어갔고, 술이 음식을 밀어내고 내가 특별히 선택한 물질의 자리를 차지했다. 다른 여자들이 각자 선택한 물질이 무엇인지는 내 경우처럼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개는 그에 못지않게 강한 악력으로 그들을 움켜쥐고있고 욕구라는 더 폭넓은 주제와도 똑같이 연결되어 있다. 남자들과의 강박적인 관계, 통제되지 않는 쇼핑과 빚, 삶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외모에 대한 집착, 온갖 종류의 ‘이름‘들. 이 모든 것이 허함과 관련되어 있고 내면의 공백을 잘못된 방향에서 메우려는 노력과 관계있으며 모두 똑같은 어두운 감정에서 비롯된다. 많은 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감정은, 갈망은 그 자체로 어쩐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릴 권리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스스로 노력해 얻어내야만 한다는 생각, 욕구를 채우려면 희생을 치러야한다는 생각이다.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많이 원하거나, 너무 섹스나 야망이나 갈망에 치우쳐 행동하면 분명 그 청구서가 날아들고, 거기에는 대개 분노에 찬 자기 비난의 야유가 따라붙는다. 넌 돼지야, 게으름뱅이야, 형편없는 인간이야. 욕망 대 박탈, 탐닉 대 자제, 돌봄 대 자기부정. 이런 것들이 특히 여성의 드라마 무대에 반드시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 P32

욕구appetite라는 단어는 흔히 음식과 관련해 쓰이기는 하나상당히 폭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이렇게정의한다. (1) 자연스러운 욕망, (2) 만족 혹은 충족하고자 하는 선천적이거나 습관적인 욕망 혹은 성향, (3) 욕망의 대상. 나 역시 이처럼 폭넓은 관점을 취하여 우리가 취하는 대상들, 우리가 허하거나 초조하거나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 하는 행위들, 우리에게 가득함과 만족, 완전함의 느낌을 주리라고 상상하는 실체와 행동을 욕구라고 지칭한다. 이런 의미에서 욕구는 꼭 생사가 달린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서 ‘필요‘나 ‘본 - P37

능‘과는 다르다. (음식이나 음료에 대한 충족되지 않은 필요는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초콜릿에 대한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그러지 않을 것이며, 포식 동물 앞에서 도피 본능이 제구실을 하지 않는 것은 목숨을 앗아갈 수 있지만 파괴적인 연애 관계에서 그러지 않는 것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욕구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생존을 위한 필요와 그보다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단어인 욕망 사이 애매한 중간 지대에 자리한다. 욕구는
‘드라이브‘ 기어가 들어간 욕망으로, 일반적인 바람보다는 더활성화되어 있고 목표 지향적이며 늘 종착지를 염두에 두고있다. 욕구는 이제 막 생겨난 어렴풋한 것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무형의 것에 형태를 부여한다. 내면에서 보글보글 피어오른 감정들이 구체적이고 외적인 것에 달라붙어, 손에 잡히지않는 느낌(동경, 갈망, 허함)을 행위와 행동, 물질과 물건으로 바꿔놓는다. 이 음식, 저 구두, 저 연인••• 물론 가장 명백한 욕구는 육체적인 것, 즉 음식과 섹스에 대한 욕구겠지만 나는 물건들에 대한 욕구, 야망, 그리고 (어쩌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 역시 매우 핵심적이며 삶을 정의하는 욕구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은 음식과 섹스와 더불어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고 열망에 불을 붙이고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유도하고 또 자주 결정한다. - P38

솔직히 나는 그 반대가 참이 아닐까 한다. 이 새 천 년의 초입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깔린 가장 주된 욕구는 아마 욕구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있는그대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고 싶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갖추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 말이다. 많은 여성들이 그 두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이어트와 체중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엄청난 수치에서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균형과 넓은 시야와 우선순위의 문제들을 고민하느라 여자들로 하여금 한밤중에도 잠 못 이루게 하고 여자들의 신경을 갉아대는 감정들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에는 우선 이따금만 지각될지는 몰라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인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욕구를 한껏 충족하는 일이 아니라 욕구를 억누르려 애쓰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많은 이들이 가짜 신들을 숭배하느라고, 다시 말해 결코 만족을 주지 않을 것만 같은 방식으로 만족을 추구하는라고 (5킬로그램을 줄이는 것으로 안 된다면 아마 저 직장이, 저 집이, 혹은 저 연인이 만족을 줄지도 몰라)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명확히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느낌이 또 하나 있는데, 전반적으로 이것이 살아가는 방식 치고는 너무 고통스러운 방식이라는 느낌, 이 방식이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더 불안하게 혹은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고, 어쩐지 기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마치 갈망에 대한, 우리를 먹여주고 채워주고 기쁘게 하는 것들을 원하는 일에 대한 우리의 권리 자체를 어디쯤에선가 도둑맞은것처럼 말이다. - P41

저 옛날의 나에게 ‘좋은 하루‘란 스물네 시간 동안 800칼로리 이하를 먹는 날을 의미했다. 그걸로 끝. 안녕은 그처럼 절대적인 접근 불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되었다. 오늘날 내게 좋은 하루란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집 근처 강에서 노를 저으며 하루를 시작한 날을 의미할 수도 있다. 조정은 나자신이 유능하고 강하며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활동이다. 또는 하루치 일을 견실하게 해낸 날을 의미할 수도 있고, 친구와 웃으며 통화한 날, 좋은 음식으로 식사한 날, 혹은 밤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존재,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와 포옹한 채 시간을 보낸 날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제나에게 좋은 하루란 고립과 완벽주의와 자기 징벌과 관련된 내 최악의 충동들에 성공적으로 저항했음을 의미하고, 그 대신 재미와 생산성과 연결성 사이에 적당한 균형을 찾았음을 의미한다. 좋은 날들로 향하는 내 길을 찾기 위해, 더욱 힘을북돋는 방식으로 안녕을 정의하기 위해 나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자주 고통을 참아가며 르누아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기어갔다. 충족될 자유를 향한 16년간의 느린 걸음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만큼,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고 살아 있음을 마음껏 즐길 만큼 그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 안에 진정한 성배가 한 여자의 갈망의 핵심이 들어 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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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어느 한 환자를 놓고 보면 SARS-2가 SARS-1보다 덜 치명적이라는 말이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SARS-2가 SARS-1보다 전체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구 1000명의 집단이 있다고 하자. 어떤 병원체에 그중 20명이 감염되어 심하게 앓다가 2명이 사망했다. 그러면 CFR이 10%가 된다. 역시 인구 1000명인 집단이 또하나 있다고 하자. 이 집단은 또 다른 병원체에 역시 20명이 감염되어 심하게 앓다가 2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감염된 사람이 그 외에도180명이 더 있는데 다행히 병세가 가볍거나 심각하지 않아서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 집단은 200명 중 2명이 사망했으니 CFR이1.0%가 된다. CFR로 보면 두 번째 병이 첫 번째 병보다 훨씬 온건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두 번째 병이 더 나쁘다는 건 두말할나위 없다. 둘 중 한 집단에 들어가라면 두 번째 집단에 들어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 P85

SARS-1이 SARS-2보다 통제하기 쉬웠던 이유로는 SARS-1의 중요한 특징 또 한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환자가 증상을 보이기 전까지는 대체로 전파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SARS-1 감염자의 상당 비율이 의료 종사자였던 것도 그래서다. 의료 종사자는 중증의 환자들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사망 직전의 환자를 비롯해 중증의 환자가 병원에 입원할 때는 전염성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다. 반면, SARS-2는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전파될 수 있다. - P86

무증상 전파는 공중보건 관리에 큰 애로가 될 수 있다. 감염자가감염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병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파가 대부분 증상 발현 전에 이루어진다면(HIV의 경우처럼), 환자가 발견된 후에 접촉자 추적과 격리를 수행하는 대응 위주의 방역조치는 효과가 없다. 반대로 무증상 전파가 적다면, 유증상자를 일찍 가려내고 격리하기는 비교적 쉬우므로 방역에 유리하다. 다시 말해. 설령 SARS-2 유증상자를 모두 격리한다고 해도 감시망을 빠져나간 무증상자가 병을 전파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무증상 전파가 존재한다고 해서 유증상자를 가려내 자가격리시키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감염자나 환자의 격리는 필수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유행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증상자 또는 미미한 증상자의 검사가 매우 중요한 이유이자, 미국에서 코로나19의 광범위한 검사 도입이 (예컨대 한국 같은 나라보다) 늦어진 점이참으로 안타까운 이유다. 검사를 통해 무증상자라 할지라도 감염 사실을 알리고 자가격리를 권고 또는 강제할 수 있다. - P89

CFR과 잠복기, 잠재기 이외에 SARS-2의 또 한 가지 주요 지표도 2020년 초에 조사가 이루어졌다. 감염자 1명이 평균적으로몇 명을 감염시키느냐 하는 것으로, 이를 실제감염재생산수 effectivereproduction number라 하고 Re로 나타낸다(실제감염재생산율 effective reproductive rate 이라고도 한다).
Re보다 더 기초적인 지표가 기초감염재생산수 basic reproduction number Ro다. 전염병 유행을 다룬 영화 <컨테이젼>(2011)에서 케이트윈즐릿이 연기한 인물이 회의 중 화이트보드에 휘갈겨 썼던 것이 Ro다. Ro는 감염 이력이 없고 면역이 없어서 감염이 가능한 사람으로만 구성된 인구집단에서 첫 감염자가 평균적으로 감염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2차 감염자의 수를 가리킨다. Ro는 어떤 병원체의 최초 확산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병원체가 얼마나 쉽게전염되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Re는 유행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인구집단에 일부 면역이 생겼을 때 유행이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즉, Re는 방역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값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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