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형태의 그래프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1966년 영국의 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토머스 매큐언Thomas McKeown 이다. 그의 의도도 바로 그 점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매큐언은 감염병을 소멸시킨가장 주요한 동력은 현대의학의 발달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결정적 원인은 사회경제적 환경 개선, 그리고 공중보건조치의 시행이었다. 가령 지난 두 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부가 크게 증대됨으로써,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깨끗한 물과 안전한 음식을 누릴 수 있는 인구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여기에 가족계획이 보급되고 교육이 개선되면서, 그런 요인들이 감염병 확산을 줄이는 데 백신이나 치료법보다 훨씬 더 크게 기여했다. ‘매큐언 가설McKeown hypothesis‘이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그 후 철저한 검증을 거쳐 입증됐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봐 밝혀두자면, 이 말은 약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의약품은 질병 희생자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다만 그 공헌의 정도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 P138
아직 상황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을 때 NPI를 적시에 실행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일은 공중보건 당국자와 정치인에게 중요한 과제다. NPI란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우며 크나큰 희생이 따르기도 하므로, 많은 사람이 피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특히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유행병이 돌 때 대중에게 현 상황을 정확히 이해시키는 것은 지도자의기초적 책무다. 더 나아가, 대중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를 하나의 NPI로 볼 수 있다. 이를 다른 조치들의 효과를 높이는 방편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 기능을 저해하되 인명을 살리는개입 조치를 시행하려면 대중의 신뢰가 필요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으려면 모든 정책안의 논리적 근거를 정직하게 알려야 한다. 까다로운 절충이 필요하다는 점도 숨김없이 논하고, 여기에 불확실성이 따른다는 점도 알려야 한다. 이것이 공중보건뿐 아니라 시민의 참여의식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 P149
한 사회가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면역자의 비율은 질병의 전염성이 얼마나 높은가에 달려 있다. 질병의 전염성이 낮을수록필요한 면역자의 수는 적어진다. 반대로 RO가 높을수록 유행 확산을 막는 데 필요한 면역자의 비율은 높아진다. 그래서 전염성이 최고 수준인 홍역의 경우, 확산을 막으려면 예방접종률이 무척 높아야한다. 한 지역에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6%만 되어도홍역은 확산될 수 있다. 이는 최근에도 많은 인구가 예방접종을 거부한 지역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례다. 다시 말해 홍역 유행을 막으려면 인구의 94% 이상이 자연적으로든 예방접종을 통해서든 면역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반면 RO가 상대적으로 낮은 병원체의 경우, 면역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도 된다. 그 필요한 비율을 계산하는 식이‘(Ro-1)/Ro‘다. SARS-2의 Ro를 3.0이라 하면 인구의 67%가 면역이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이 값은 다소 과도하게 추정한 값이다. 병원체의 감염재생산수 Ro는 한 인구집단 내의 모든 사람이 타인과 교류할 확률이 같다는 가정에서 계산된 값인데, 실제 세상은 그렇지않기 때문이다. 2장에서 봤듯이, 사회적 인맥 및 교류가 적은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도 있다. ‘인기인‘들이 자연적으로든 예방접종을 통해서든 면역이 되고 나면, 앞의 계산값보다 적은 면역자 수로도 집단면역에 도달하게 된다. - P152
SARS-2처럼 무증상 전파가 일어나는 병원체의 경우는 국경 봉쇄가 더욱 어렵다. 그런 병원체의 은밀한 특성을 생각해보면, 이치에도 맞아 보이고 널리 사용되는 국경 봉쇄라는 방책이 대체로 별효과가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한 예로, 2009년 3월 멕시코에서 처음 발생한 H1N1 범유행 때 중국에서 입국자에 대해 발열 검사와 의무 격리를 시행한 효과를 분석한 연구가 있다. 그에 따르면, 국경 통제는 유행 확산 시점을 기껏해야 4일도 안 되는 기간만큼 늦춘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정책 결정자들이 국경 봉쇄를 생각할 무렵이면, 아니 전염병 유행을 인지할 무렵이면, 바이러스는 이미 그 나라 땅에 들어와 있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일단 지역사회 전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외부 유입을 더 막는 것이 큰 효과가 없다. 그 후로는 외부유입 감염자가 기존 감염자에 비해 극히 적은 비율인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서 범유행 시작 30일째에 항공기 운항을 전면 취소하는 경우(엄청나게 빠른 대응인 셈이다) 일어날 결과를 형식적 모형으로 예측해보니, 설령 전체 항공편의 99.9%를 취소한다고 해도 전파력이 중간 정도인 (Ro=1.7) 전염병의 발병 정점을 겨우 42일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 P165
완벽한 검사란 있을 수 없어서, 모든 검사는 양성으로 잘못 판정하거나(거짓 양성) 음성으로 잘못 판정하는(거짓 음성) 결과가 나온다. 인구집단의 해당 속성 보유율 자체가 낮은 경우는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임신 검사가 있는데, 거짓 양성이 나오는 비율이 5%라고 하자. 다시 말해 임신이 아닌데 임신이라고 잘못 판정하는 경우가 5%라는 뜻이다. 만약 임신한 여성 100명의 집단을 검사한다면, 그중엔 어차피 임신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므로 이 오류율은 문제가 되지 않아서 100명 모두 임신으로 정확히 판정된다. 하지만 만약 6세 소년 100명의 집단에 똑같은 검사를 적용한다면, 그중엔 임신한 사람이 있을 수가 없으므로 100명 중 5명이 임신으로 잘못판정된다. 이렇게 어떤 검사가 해당 속성이 있는 사람을 양성으로 옳게 판정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지만 동시에 해당 속성이 없는 사람을 양성으로 잘못 판정하는 비율도 어느 정도 된다면, 그 검사의 정확도는 인구집단의 해당 속성 보유율, 즉 기저율base rate에 따라 달라진다. 기저율이 아주 낮은 경우, 거짓 양성 비율이 조금만 되어도 엄청난 착시효과가 나타나기 쉽다. 예컨대 바이러스 유행 초기에 항체 검사를한다면, 인구집단 내에 실제로 항체를 보유한 사람은 아주 적을 테니 양성 판정 결과 중 다수는 거짓 양성이 된다. 그래서 검사 결과만놓고 보면 바이러스의 확산 현황을 과대평가하게 된다(엄청나게 우수한 검사가 아니라면). - P177
처음에 바이러스는 대중교통 종사자든 유명인이든 가리지 않고골고루 생명을 앗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자연히, 경제·사회적 약자의 희생이 두드러졌다. 퀸스 중부 등에 있는 이주 노동자 거주 지역은 특히 타격이 컸다. 서로 인접한 네 지역, 즉 코로나Corona, 엘름허스트, 이스트 엘름허스트, 잭슨하이츠는 ‘진원지 내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네 지역은 총인구 60만 명 중 4월 8일 기준 확진자가 7260명에 달했다. 이에 비해 총인구가 그 3배인 맨해튼은확진자가 1만 860명이었다. 과거에 역병이 돌 때도 그랬지만,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은 달아났다. 3월 한 달 뉴욕시의 휴대전화 데이터를 대규모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시 전체 인구가 4~5% 감소했는데 부촌 몇 곳의 인구는 5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22 인구 유출이 시작된 시점은3월 초, 각종 NPI가 공식적으로 시행되기 전이었다. 부촌 주민들은대부분 인근의 뉴욕주 북부나 코네티컷주로 대피했고 애리조나주, 미시간주, 캘리포니아주 남부까지 이동한 이들도 많았다. 1233월 31일, 쿠오모 주지사는 "바이러스 뒤꽁무니 쫓기도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지금까진 따라잡느라 바빴습니다. 따라잡기에만 매달려선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때 뉴욕주확진자는 7만 6946명이었다. 125 4월 6일에는 뉴욕시에서만 확진자가 7만2181명, 사망자가 2475명에 이르러 미국 전체 코로나19 사망자의 25%를 차지했다. 주 전역에 발령된 자택대피령은 4월 29일까지 연장됐다. 마침내 4월 15일을 정점으로, 뉴욕의 발병자 수가감소세에 들어섰다. 3주 전부터 시행한 NPI의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코로나19의 확산 특성 및 임상적 진행 속도(감염 후 증상 발현까지 최고 2주, 중증으로 발전하기까지 약 1주)와 맞아떨어지는 결과였다. 4월 말 무렵, 곡선이 평탄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여파는 엄청났다. 뉴욕주 전역에서 시행한 항체 검사 결과, 뉴욕시 거주자의21.2%가 1차 파동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구 결과, 뉴욕시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미국 전역에 걸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태의 시발점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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