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핵폭탄들이 모든 대도시를 가루로 만들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첫 폭탄이 떨어지자마자 반대 진영의 핵폭탄이 비오듯 쏟아졌다. 혹자는 컴퓨터 시스템 때문에 그렇게즉각적인 반격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핵미사일 수백 개가 음산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갈랐다. 아마도 그 미사일들 가운데 하나가 진로를 이탈해서, 인간 세상을 산산조각 내는 대신에 태양계의 중심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또 금성이나 수성에 부딪히지도 않고 태양에 도달했으리라.
그 충돌로 어마어마한 빛이 발생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카미유는 잠을 자느라고 그 빛을 보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재난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불이 꺼졌다. 모든 불이 꺼졌다.
그리하여 지구는 어둠과 추위 속에 떨어졌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새벽빛은 밝아 오지 않았다. 그날부터 세계는 절대적인 암혹 속에 잠겨 버렸다.

카미유는 그날 이후로 매일 그랬듯이, 바지를 입고 셔츠를 걸친 다음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차갑고 매끈매끈한 거울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이건 아쉬움의 표현이 아니라, 살아갈 힘을 잃지 앓기 위한 의식일 뿐이다. - P230

몇 분 후 카미유는 웬 사람과 마주 앉게 되었다. 에테르 냄새를풍기는 그 사람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을 때리세요?」나는 나 자신을 방어했을 뿐이야. 그런데 당신은 누구지? 누군데 감히 나한테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지?」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까. 할아버지는 쓰레기차에 부딪히실 뻔한 적도 있고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치이실 뻔한 적도있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혼자 길을 건너는 게 위험할 것 같아서 어떤 젊은이가 도와주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하얀 지팡이로 그 젊은이를 마구 때렸대요.」「지팡이라니?」「양로원에서 준 지팡이 말이에요.」「그건 지팡이가 아니라, 브뤼슬리앙드야.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지. 내가 잠을 자다가 받은 거야.」「이제 명백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셔야 해요.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가실 수는 없어요.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세상이 어둠에 잠기지도 않았고요.」상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
「태양이 꺼지고 빛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빛을 감지할 수 없게 된 거예요. 제가 안과 의사로서 말씀드리는데, 할아버지의 시신경은 하룻밤 사이에 급격히 퇴화했어요. 그래서•••••• 카미유는 그 다음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셨어요.」 - P234

우리 어린 신들은 누구나 조금은 우쭐대는 경향이 있다. 그건신의 속성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시조 신이 이르신 것처럼, <서로 험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험담은 종교 전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스갯소리를 하고 흰소리를 칠지언정 다른 신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비슈누가 내 등을 치면서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내가 들어본 그 어떤 험담보다 고약한 말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참 재밌어. 하지만 너 혹시 이런 생각 해본적 없니?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높은 차원의 신들이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마치 우리가 인간을 가지고 장난을 치듯이 말이야」 까닭은 확실치 않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완전히 혼란에 빠져버렸다. 내가 어떤 우월한 존재들의 장난감이라니!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내가 자유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떤 존재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라니! 왝, 나는 구토를 하고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이튿날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비슈누에게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신들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신의 웃음이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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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여기에는 개인적이거나 개별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파급효과가 있다. 다른 생쥐가 ‘거슬려서‘ 공격적으로 행동한 우리 안의 외로운 생쥐를 다시 떠올려보자. 우리가 이웃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 환경이 얼마나 적대적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는지 생각해보자. 비접촉 시대의 위험성은 우리가 서로에 관해 잘 알지 못하게 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이 좀처럼 들지 않게 되고, 서로의 필요와 욕구에 무관심해진다는 점에 있다. 집에서 혼자 딜리버루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누군가와 함께 식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비접촉 생활은 단순히 기술적 진보, 편익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바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불가피성, 이 세 가지의 함수관계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19가 닥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 이미 분리와 원자화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었다. - P127

이 벤치가 앉기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그것이 이 벤치의 오롯한 목적이다. 거기서 노숙자가 쉬어가기 힘들게만들면, 거기서 스케이트보드 묘기를 펼치기 힘들게 만들면, 청년 무리가 거기서 무릎이나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기 힘들게만들면 사람들은 모여 쉴 만한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할 것이다.
캠든 벤치는 이례적인 물건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는 갈수록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이들을 몰아내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적대적 건축물‘이다. 배제에 초점을 둔 도시 설계, 공동체를 해치면서까지 누가 환영받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도시 설계. - P128

함께 노는 것이 금지된 아이들을 보는 것은 특히 충격적이다. 사실 과거나 현대나 이것은 매우 불편한 이미지들을 불러일으킨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부터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을 가운데 두고 설치된 시소를 타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35 문제는 이런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거나 단속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자꾸 분리를 시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리라는 것이다. 사립학교, 사립대학, 사유지, 전용 리무진, 놀이공원의 ‘프리패스‘, 식당과 호텔의 특별 고객 전용 구역, 비행기 일등석, 클럽의 VIP 구역의식지 않는 인기를 생각해보라. 흔히 부유층은 스스로를 대중에게서 분리하기 위해 할증료를 지불하는 것이 현실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이제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이러한 배제조치가 용인되지 않을까? 도덕적인 접근도 필요하지만 개인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앞서 봤듯이 배제된 느낌은 우리 모두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확인했듯이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를 때 혐오와 공포를 키울 가능성이 더 크다. 반이민자 정서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곳은 이민자가 가장 적은 지역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들지역 사람들은 이민자와 직접 마주치거나 교류하거나 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더 적다. 다양한 소득 집단·배경 · 민족 출신의 아이들이 자기동네에서조차 어울릴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해체와 사회 분열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 P135

사람들이 결속감을 느끼려면 충분한 재원이 마련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공장소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곳에서 다름을 초월한 관계는 물론, 모든 관계가 태동하고 발전하고 단단해질 수 있다. 인종, 민족, 사회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교류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 우리가 공유하는 기반이 없다면 우리는 공통의 기반을 발견할 수 없다.
이 점은 특히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밀려들 새로운 경제적 어려움의 파고를 생각하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앞으로 몇 달, 몇 년 동안 이러한 공간에 대한 공공 지출을 줄이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그 어느때보다 뚜렷해진 사회적 분열을 이제라도 바로잡으려면 이런 일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2008년 경기 침체 이래 생명력을 잃어버린 공공장소에 다시 자금을 투여해 예전의 활기를 되살리는 일은 이제 더는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기존의 공공장소에 다시 자금을 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새로운 건설사업에서 포용의 원칙을 중심에 둘 것을 약속해야 한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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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유럽에서 3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조사(많은 사회과학자가 사용하는 집중적인 조사)에서 이민에 대한 극단적인거부감을 보인 사람의 공통점은 젠더나 연령 같은 기본적인 인구통계학적 특성이 아닌 경제적 불안정, 동료 시민과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 사회적 고립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정치적으로 힘이 없고경제적으로 불안정하며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이이민자에게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라고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특성이 무엇인가? 모두 외로움의 핵심 동인이다.
대신 탓할 수 있는 누군가 당신과 다르게 묘사되는 누군가 당신이 사실상 알지 못하는 누군가(반이민 열풍이 가장 거센 곳은 일반적으로 이민자 수가 적은 지역들이다)를 희생양으로 바치는 것은 이미 여러 번 증명된 필승 전략이다. 이것은 세계 경제나 신자유주의나 자동화나 공공지출 삭감이나 정부 지출의 불공정한 우선순위를 탓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사실 이것들이야말로 사람들이 스스로 주변화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들임에도 그렇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감정이 이성과 복잡성을 이기며 두려움이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들은 타자를 적으로 만드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이 사실을 악용한다.  - P92

아렌트의 통찰은 1930년대 독일에서 21세기의 우리 세계까지, 외롭고 박탈당한 사람들의 정서를 하나로 모은다. 빌헬름이라는 청년이 이 정서를 정확히 대변한다. 빌헬름의 말만 들어본다면 그는 독일 제3제국에 사는 청년으로도 보이고 경제적 고난을 겪는 오늘날의어느 국가에 사는 청년으로도 보인다. "키 180센티미터 남짓의 호리호리한 체격에 머리칼과 눈동자가 검고 굉장히 지적인 인상의 잘생긴 청년인 빌헬름은 경기 침체로 수년간 실업자로 지냈다. 빌헬름은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를 위한 자리도 없었다. 내 세대는 그저 피하고 싶은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며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대학을 마치고 나는 1년간 실업자로 지냈다. [...] 실업자로 지낸 지 5년째 되어가자 몸도 영혼도 부서졌다. 독일은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세상 그 어디에도 나를 원하는 곳은 없을 터였다. [...] 내 인생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빌헬름이 묘사하는 것은 사실 1930년대다. 빌헬름의 이야기는이렇게 이어진다. "바로 그때 나는 히틀러를 만났다. [...] 내 인생은 새로운 의미로 가득 채워졌다. 이후 나는 독일의 부활을 위한 이 움직임에 내 몸과 영혼과 정신을 바쳤다." - P94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무언가, 더 중대한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남을 친근하게 대하거나 남이 우리를 친근하게 대할 때 그 행위가 진정성이 있든 아니면 아주 짧은 순간 연출된것이든 우리는 우리가 공통으로 지닌 것, 즉 우리가 공유하는 인류애를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는 혼자라는 느낌이 덜 든다.  - P110

킴 타이나 핵찌와 함께 먹는 것이 혼자 먹는 것보다는 틀림없이낫겠지만 나는 이런 식의 상업화되고 상품화된 관계가 우리 사회에불러올 결과가 우려스럽다. 돈으로 우정을 사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우려하는 이유는 이렇게 거래로 이루어진 관계가 외로움을 완화해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상당 수준 외로움을 완화해준다. 거래 기반의 관계가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정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매우 적기(돈으로 산 것이지 힘들여서 얻은 것이 아니므로) 때문에 우리가 결국 이것을 더 선호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인류학이나 경영학 분야의 연구를 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실제로 브리트니의 손님 가운데 몇 명은 "각자 나름의 문제로 각자 나름의 짐을 지고 있을 누군가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것보다는 그녀를 대여하는 것이 훨씬 만족스럽다고 했다.
아마도 이것이 먹방 팬들이 ‘현실‘ 우정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 여성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가 대학 시절 룸메이트의 전화를 받고 짜증을 느낀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제 막 식탁에 앉아 유튜브를 보려던 참이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 친구와 통화하면서 식사를 해야 했죠. 정말 짜증났어요."그렇다. 이 젊은 여성은 친구 - 그녀를 개인적으로 아는 누군가 - 와 대화하는 것보다 혼자 앉아서 먹방 유튜버 니코카도 아보카도가 4,000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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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사회적·경제적으로 주변화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 한때 지지했던 정당이 이제 자신들을 버렸으며 자신들에게 관심을보이거나 고충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21세기 들어 수십 년째 극단주의적인 정당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주변화되고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 그를 바라봐주고 그에게 귀 기울여주겠다고 약속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어찌 매혹적이지 않겠는가. "그동안 기억되지 않은 미국의 남녀를 내가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트럼프의 선거 구호와 "기억되지않는 프랑스, 엘리트라 자칭하는 저들이 버린 프랑스"를 섬기겠다는 마린 르펜의 맹세를 보자. 이토록 신중하게 선택된 메시지는 당연히 유혹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공업의 쇠퇴에다 2008년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와 긴축정책이 이어지면서 지난 수십 년간 실제로 많은 사람이 기억되지 못했다. 결국 비대칭적인 경제적 희생이 초래되었고 가장 크게 고통받은 사람들은 주로 비숙련직노동자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우파 포퓰리스트의 표적이 되었다.  - P79

많은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잘 아는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외로움은 기억되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목소리가 박탈된 느낌만이 아니다. 외로움은 또한 상실감이다. 물론 상실된 것은 공동체다. 경제적 안정의 상실이기도 하지만 매우 중요하게는 사회적 지위의 상실이다. 외로운 사람들을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들로 규정한 아렌트의 정의를 기억하는가? 그리고 사회적 지위는 동료애, 자부심, 신분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남성에게 그렇다. 단지 일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서와 연대와 목적이 있는 품위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사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말함으로써 구세계의 질서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세계에서는 마을의 심장부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전통 산업이 있었고, 사람들은 일을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강인한 감각과 강력한 공동체 정신을 경험할 수 있었다. 트럼프가 재차 반복했던 "우리의 위대한 탄광 노동자들이 다시 일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기억해보라. "나는 생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상식이 된 세상에서, 고용되지않았거나 지위가 낮은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세상에서 활기찬 공동체와 새로운 사회적 지위에 대한 약속은 특별한 환영을 받는다. - P80

이런 일자리가 예전 공장의 일자리보다 임금이 꼭 적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새‘일자리의 문제점은 임금이 적은 것만이아니다. 그보다 이러한 일자리의 문제점은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더낮게 여겨진다는 점,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자부심을 느끼기 힘들다는점에 있다. 심지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실업률이 급증하기이전에도 이런 ‘낮은 지위의 일자리‘가 유일한 선택지인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이 현상은 한때 제조업 중심지였으나 현재 탈공업화한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낮은 실업률 수치는 이 문제를은폐함으로써 통계 수치 아래 도사린 불만과 적의를 감춘다.
사회학자 노엄 기드론과 피터 A. 홀은 개리, 러스티, 테리, 에릭같은 수많은 노동자계층 백인 남성이 최근 몇 해 동안 우파 포퓰리스트들에게 돌아선 것은 소득 그 자체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 느낌때문이라고 믿는다. 기드론과 홀은 1987년에서 2013년 사이 12개선진국을 대상으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상실감과 투표 선호도의 관계를 분석한 2017년 논문에서 대학 졸업장이 없고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느끼는 백인 남성들은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의 질이 낮거나 직업이 없ㅓ서, 또는 대졸자와 유색 인종과 여성의 지위가 상승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
‘들의 지위가 낮아진 것 같아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파 포퓰리스-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파 포퓰리트 정당들은 그들에게 존중과 지위의 회복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 P81

온라인이든 대면이든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내세우는 공동체에는 당연히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타자에 대한 노골적인 배제다. 우파포퓰리스트 정당이 맥주의 밤과 에어바운스를 동원해 소속감을 불러일으킬 때는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이를테면 트럼프의 집회에서 수천 명이 찬송가를 부르듯 외치는 말 ‘벽을 세우자‘를 생각해보자. ‘함께‘를 말하는 우파 포퓰리스트의 메시지에 담긴 속뜻은 사실상 인종적·종교적·민족적 배제다. ‘우리‘와 ‘그들‘사이. 포퓰리즘의 가장 큰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외롭고 버려진 느낌을 받는 사람을 모아민족이나 인종에 기반한 공동체를 조성하면서 종족주의를 무기화하고 타자를 적으로 만든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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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동기가 분노나 의무감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을 도우면 긍정적인 생리적 반응이 나타난다. 그래서 남을 돕는 사람은 종종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알려진 기분, 즉 에너지와 힘, 따뜻함과 차분함이 혼합된 느낌을 경험한다. 이렇듯 외로운 세기에는 사람들이 돌봄을 받는 기분을 느끼고 실제로 돌봄을 받는 것만큼이나 남을 돌볼기회를 얻는 것 역시 중요하다. - P59

인간의 외로움과 타인을 향한 적대감의 연관성을 밝힌 과학적 연구는 매우 많다.‘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교수 재클린 올즈Jacqueline Olds 가 설명하듯 이러한 적대감은 초기 방어 행동인 ‘뒷걸음질 치기‘에서 나온다. 외로운 사람은 종종 인간적 온기에 대한 욕구와 다른 사람과 함께있고 싶은 욕구를 부정하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해줄 고치를 만든다. 그러면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날 혼자 내버려둬. 난 당신이 필요하지 않아, 저리 가라는, 대개는 비언어적인 신호를 남들에게보내기 시작한다.
이때 외로움은 뇌에서 다른 일을 벌인다. 몇몇 연구자들은 외로움과 공감 능력의 감소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공감 능력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능력,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행동뿐만 아니라 두뇌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고통과 마주했을 때 공감 능력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뇌 부위인 측두정엽이 활성화된다. 하지만 여러 연구를통해 외로운 사람의 뇌는 측두정엽의 활성도가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대신 일반적으로 경계심, 주의력, 시각과 관련된 뇌 부위인 시각피질이 활성화된다. 그러니까 외로운 사람은 일반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빨리 반응하지만(실제로 몇 밀리세컨드밖에 걸리지않는다) 반응의 무게중심은 관점이 아닌 주의력에 있다. 외로운 신체가 스트레스 반응을 증폭시키듯이, 주변을 몹시 경계하는 불안하고 외로운 정신도 자기 보존 차원에서 작동한다. 따라서 그는 고통받는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혹시 모를 위협 요소를찾아 주변을 살핀다. "숲속을 걷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뱀으로 착각하고 흠칫 놀라 물러선 적이 있습니까?" 시카고대 두뇌역학실험실 책임자 스테파니 카치오포Stephanie Cacioppo 박사는 묻는다. "외로운정신은 언제나 뱀을 봅니다." - P64

분노, 적의, 주변 환경을 위협적이고 매몰찬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 저하된 공감 능력 등 외로움은 위험한 정서 조합을 낳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외로움 위기는 병원에서뿐만 아니라 투표소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결속과 포용과 관용의 사회적 가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우려할 만한 영향을 민주주의에 미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려면(모든 시민의 요구와 불만이 원활히 전달되어 다양한 집단의 이익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두 가지 유대가 강력해야 한다. 하나는 국가와 시민 간의 유대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들 간의 유대다. 이러한 연결성의 유대가 무너지면, 그래서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신뢰하거나의지하지 못하고 단절감을 느낀다면, 그래서 국가가 자신을 보살피지 않는다고, 자신이 주변화되었다거나 버림받았다고 느낀다면 사회는 분열되고 양극화되며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오늘날의 상황이 이렇다. 이 외로운 세기에는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고 우리를 국가에 연결해주던 유대가 실낱처럼 가늘어지고 있다. 동료 시민이 자신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키고 단절시키고 있다고그리고 주류 정치인들이 자신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키고 단절시키고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거나 자신을 보살펴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 P65

‘포퓰리스트‘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자신이 ‘국민‘을 대표하며 오로지 자신만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외치면서 국민과 경제·정치·문화 ‘엘리트‘ 사이에 반목을 조장하는 정치인이 바로 포퓰리스트라고 말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악당으로 묘사하는 ‘엘리트‘란 국회, 법원, 자유 언론 등 합법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제도다. 흔히 극우 포퓰리스트는 문화적 차이와 국가 정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포퓰리스트들은 흔히 이민자나 다른 민족이나 종교의 ‘습격‘으로 마치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는 듯이 묘사한다. 그러면서 우리를 결속시켜주는 제도와 규범을 존중하는 화합된 사회 그리고 관용과 이해와 공정성의 문화에 아주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다. 그들은 사회의 결속이 아닌 분열을 추구하고 자신의 목적에만 부합한다면 주저 없이 인종적·종교적· 민족적 긴장을 부추긴다.
외로운 사람들, 불안하고 남을 신뢰하며 어딘가 소속되길 갈망하지만 항상 ‘뱀을 보는‘ 이들은 포퓰리스트에게 이상적인(그리고 가장 취약한) 목표물이다. - P67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에 제시된 증거문건을 통해 나치가 인종 말살을 위해 동원한 끔찍한 수법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어떻게 이런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아렌트는 알고 싶었다. 무엇이 평범한 사람을 집단 대학살에 가담하도록, 아니면 최소한 이를 용인하도록 만들었을까? 아렌트는 "나치즘의 핵심 구성원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추적해 근원적인 정치적 문제들을 발견하고자 했다. 1951년 아렌트는 이 주제에 대해 시대의 상징이 된 논쟁적 저작 『전체주의의 기원」을 발표했다. 이 책은 반시오니즘의 대두, 선전(프로파간다)의 역할, 인종주의와 관료주의가 결합한 제국주의 등 광범위한 주제를 아우른다. 그런데 아렌트는 이 책 후반부에서 놀랍게도 외로움이라는요소에 주목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전체주의는 ‘외로움을 기반으로삼는다. [•••]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절망적인 경험에 속한다." 나치즘을 추종한 사람들의 "주요 특성은 [•••] 야만과 퇴보가아닌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 "임을 발견한 아렌트는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개인적 자아를 투항함으로써 목적의식과 자긍심을 되찾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외로움 또는 "세상에 전혀 속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경험"이 "전체주의정부의 본질이며 이것이 ‘전체주의의 집행인과 희생자를 준비하는것이라고 아렌트는 쓴다. 
아렌트가 말하는 외로움은 내가 내린 외로움의 정의와 공명한다. 주변화되고 무력해진 느낌, 고립되고 배제되고 자기 자리와 지원을 빼앗긴 느낌. 이러한 차원의 외로움이, 여기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날로 확대되고 있는 위험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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