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사회적·경제적으로 주변화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 한때 지지했던 정당이 이제 자신들을 버렸으며 자신들에게 관심을보이거나 고충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21세기 들어 수십 년째 극단주의적인 정당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주변화되고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 그를 바라봐주고 그에게 귀 기울여주겠다고 약속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어찌 매혹적이지 않겠는가. "그동안 기억되지 않은 미국의 남녀를 내가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트럼프의 선거 구호와 "기억되지않는 프랑스, 엘리트라 자칭하는 저들이 버린 프랑스"를 섬기겠다는 마린 르펜의 맹세를 보자. 이토록 신중하게 선택된 메시지는 당연히 유혹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공업의 쇠퇴에다 2008년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와 긴축정책이 이어지면서 지난 수십 년간 실제로 많은 사람이 기억되지 못했다. 결국 비대칭적인 경제적 희생이 초래되었고 가장 크게 고통받은 사람들은 주로 비숙련직노동자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우파 포퓰리스트의 표적이 되었다. - P79
많은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잘 아는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외로움은 기억되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목소리가 박탈된 느낌만이 아니다. 외로움은 또한 상실감이다. 물론 상실된 것은 공동체다. 경제적 안정의 상실이기도 하지만 매우 중요하게는 사회적 지위의 상실이다. 외로운 사람들을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들로 규정한 아렌트의 정의를 기억하는가? 그리고 사회적 지위는 동료애, 자부심, 신분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남성에게 그렇다. 단지 일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서와 연대와 목적이 있는 품위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사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말함으로써 구세계의 질서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세계에서는 마을의 심장부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전통 산업이 있었고, 사람들은 일을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강인한 감각과 강력한 공동체 정신을 경험할 수 있었다. 트럼프가 재차 반복했던 "우리의 위대한 탄광 노동자들이 다시 일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기억해보라. "나는 생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상식이 된 세상에서, 고용되지않았거나 지위가 낮은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세상에서 활기찬 공동체와 새로운 사회적 지위에 대한 약속은 특별한 환영을 받는다. - P80
이런 일자리가 예전 공장의 일자리보다 임금이 꼭 적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새‘일자리의 문제점은 임금이 적은 것만이아니다. 그보다 이러한 일자리의 문제점은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더낮게 여겨진다는 점,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자부심을 느끼기 힘들다는점에 있다. 심지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실업률이 급증하기이전에도 이런 ‘낮은 지위의 일자리‘가 유일한 선택지인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이 현상은 한때 제조업 중심지였으나 현재 탈공업화한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낮은 실업률 수치는 이 문제를은폐함으로써 통계 수치 아래 도사린 불만과 적의를 감춘다. 사회학자 노엄 기드론과 피터 A. 홀은 개리, 러스티, 테리, 에릭같은 수많은 노동자계층 백인 남성이 최근 몇 해 동안 우파 포퓰리스트들에게 돌아선 것은 소득 그 자체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 느낌때문이라고 믿는다. 기드론과 홀은 1987년에서 2013년 사이 12개선진국을 대상으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상실감과 투표 선호도의 관계를 분석한 2017년 논문에서 대학 졸업장이 없고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느끼는 백인 남성들은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의 질이 낮거나 직업이 없ㅓ서, 또는 대졸자와 유색 인종과 여성의 지위가 상승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 ‘들의 지위가 낮아진 것 같아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파 포퓰리스-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파 포퓰리트 정당들은 그들에게 존중과 지위의 회복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 P81
온라인이든 대면이든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내세우는 공동체에는 당연히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타자에 대한 노골적인 배제다. 우파포퓰리스트 정당이 맥주의 밤과 에어바운스를 동원해 소속감을 불러일으킬 때는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이를테면 트럼프의 집회에서 수천 명이 찬송가를 부르듯 외치는 말 ‘벽을 세우자‘를 생각해보자. ‘함께‘를 말하는 우파 포퓰리스트의 메시지에 담긴 속뜻은 사실상 인종적·종교적·민족적 배제다. ‘우리‘와 ‘그들‘사이. 포퓰리즘의 가장 큰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외롭고 버려진 느낌을 받는 사람을 모아민족이나 인종에 기반한 공동체를 조성하면서 종족주의를 무기화하고 타자를 적으로 만든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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