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가 막 낳은 파리 알을 맨눈으로 관찰할 때는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극적인 사건들의 조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수정과동시에 활동에 착수한 툴킷 유전자들은 이미 발생 중인 배아의 지리를 그리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배아의 모든 세포들은 동일한 DNA를(동일한 유전자들을 품고 있지만 툴킷 유전자들은 배아의 일부분에서만, 또한 발생의 특정 시기에만 활동한다. 툴킷 유전자의 RNA나 단백질 산물의 색을 밝게 하는 강력한 기술을 동원하면 배아나 성장 중인 신체부속 내부에서 그들이 켜지고 꺼지는 패턴을 볼 수있다. 이 패턴이야말로 동물이 만들어지는 순서와 논리를 드러낸다. - P133
다음에는 그 밖의 툴킷 유전자들이 발현하여 상한 사시에서 신뼈, 손발가락, 관절, 근육, 힘줄로 자랄 부분들을 예고한다. 이런 요소들은 몸 가까운 쪽에서 먼 쪽 순서로 만들어진다. 미래에 위팔이나 허벅지가 될 부분이 먼저 놓이고, 다음으로 팔뚝이나 정강이가될 부분, 마지막으로 손이나 발이 될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우선 세포들이 응집하여 연골로 된 주형 같은 것이 생긴 다음, 그것이 뼈로바뀐다. 그런데 세포 차원의 응집 현상이 눈에 보이기 훨씬 전부터Sox9라는 툴킷 유전자가 발현하여 응집 형태를 예고한다(화보41]. 세포 움집 덩어리 사이마다 관절이 생기는데, 역시 세포 차원에서 이틈이 보이기 전부터 이미 GDFS 유전자가 줄무늬처럼 발현하여 미래에 앞다리에서 어깨, 팔꿈치, 손목, 손과 손가락뼈 사이의 관절들이 될 부분, 그리고 미래에 뒷다리에서 무릎, 발목, 발과 발가락의 관절들이 될 부분을 예고한다[화보4u]. 그런가 하면 스크레락시스라는또 다른 툴킷 유전자의 발현은 근육을 뼈에 이어주는 역할을 할 미래 힘줄들의 위치를 예고한다 [화보4v]. 아름다운 사지 형성 과정에는 세포들의 죽음도 한몫한다. 쥐, 병아리, 사람의 손가락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은 발생 중인 사지에서 손가락 사이를 채웠던 조직이 사멸했기 때문이다. 한 덩이로 붙어 있던 손과 발에서 어떤 종류의 툴킷 유전자들이 발현하여 손발가락 사이의 세포들에게 세포예정사를 일으키도록 알려준 것이다[화보4w]. 과자 틀로 반죽을 찍어내듯, 손발가락 사이의 조직들이 떨어져나가고 손발가락만 남는다. 반면 오리 같은 경우에는 손발가락 사이에 또 다른 툴킷 유전자들이 있어서 세포 사멸을 촉진하는 신호들을차단해버린다. 그래서 오리발에는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남는다. 동물의 사지는 뼈, 힘줄, 근육, 관절 등 동일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구조의 크기며 모양이며 수는 각기 다르다. 가령 위팔에는 긴뼈가 하나밖에 없지만 아래팔에는 두 개 있고, 손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들이 달렸다. 사지마다 구성요소의 크기와 모양과 수가 다른 것은 몇몇 혹스 유전자들이 (주로 혹스29~13과 혹스d9~13들이다)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뒤 다리가 발생할 때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살짝 교차하기도 하면서 발현한다. 대부분의 동물은 앞다리와 뒷다리의 구성도 확연히 다르다. - P145
동물 신체에서 가장 놀라운 진실 중 한 가지는 어느 수준에서 보더라도 규칙성이 있다는 점이다. 전체 신체 설계를 보든, 개별 구조나 부속의 세부를 보든, 똑같은 규칙성을 발견하게 된다. 후자의 사례로 들 만한 것은 가령 나비 날개를 뒤덮은 인편들, 일정한 간격을두고 돋아난 새의 깃털들이다. 어쩌면 세포 하나하나의 위치가 정교하게 할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기위해 꼭 그런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넓은 영역에 수많은 개별요소들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이른바 외측억제(lateral inhibition) 기법이라 불리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한 규칙이지만, 결과는 실로 아름답다. 자, 한 무리의 사람들을 한 장소에 모아둔다고 상상해보자. 그들에게 사방의 다른 사람들과 최소한 팔 길이만큼 떨어져 설 것을 요청한다. 저마다 주위에 반경이 팔 길이인 접근금지 구역을 갖는 셈이다. 결국에는 모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질서정연하게 늘어서게 될것이다(물론 [그림4-5)에서 보이듯 모두의 팔 길이가 같다는 전제에서의 이야기다. 세포들도 이런 식으로 미시적 차원에서 질서를 만들 수 있다. 특정 종류의 구조로 자라야 하는 세포들이 채택할 일반적인 원칙은 자기 주변에 억제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 안에 위치한 다른 세포들은 동일한 구조로 자랄 수 없다. 그 결과 규칙적인 무늬가 만들어진다. 곤충 몸에 난 털, 새나 파충류나 포유류의 몸에 난 깃털과 비늘과털의 무늬, 아름답게 메워진 절지동물의 겹눈 등등 말이다. 이 패턴들은 세포들의 국지적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모든 영역에 좌표를 할당해서 규정된 게 아니다. 배아에서 이런 패턴들은 이후의 구조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정해진 간격의 패턴으로 발현함으로써 그려진다. 가령 소닉 헤지호그 유전자는 병아리 발생의 후반부, 하지만 미래 깃털 아체들이 실제로 생겨나기 전에 발현한다(화보4x]. - P146
과거 천문학의 역사는 대개 하늘에 보이는 것들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처음에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 나중에는 강력한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다루었다. 우리는 별들의 탄생, 은하의 구조, 항성의 붕괴 등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 갈수록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우주론 연구자들은 최근에 정반대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빛이나 전파를 방출하는 것)은우주의 물질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등장한 것이다. 은하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의 행위는 그보다 훨씬 양이 많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그리고 ‘암흑에너지‘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게 유전학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유전암호가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된 생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DNA에서 유전자가존재하는 부분, 즉 게놈 속의 ‘별들‘을 열심히 관찰하였다. 하지만최근 들어 우리는 동물 게놈에서 눈에 보이는 유전자들이란 DNA의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보다는 특정 유전자남이1만, 우주1 대해 아다는 애비유와일지치의 일부가 아닌 DNA, 단지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것만으로는 기능을알아낼 수 없는 DNA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게놈의 ‘암흑물질‘이다. 우주의 암흑물질이 시야에 드러난 천체들의행동을 조정하듯, DNA의 암흑물질은 유전자들이 발생 중 언제 어느곳에 쓰일지 통제한다. 이장은 DNA의 암흑물질에 대해 알아보는 대목이다. 툴킷 유전자 사용을 통제할 줄 아는 이들이 어떤 형태로 신체부속 형성 지침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지침은 암흑 DNA 속에 유전자 스위치의 형태로 숨어 있다(이것이 내가 동원하는 두번째 비유이다). 유전자 스위치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주목받아 마땅한 개념이건만 아직은 실험실에서건 언론에서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스위치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만 하기보다는 생물학자들이 스위치를 발견하고 작동방식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을 돌아보려 한다. 분자생물학자들이 암흑을 들여다보고 스위치의 위치와 성격을 밝힌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유전자 스위치의 특징 중 가장 놀랍고 결정적인 것은 그들이 개개 툴킷 유전자의 활동과 구조를 굉장히 세심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놈 여기저기에 별자리처럼 마구뿌려져 있는 스위치들이야말로 동물 신체 조각조각, 줄무늬 하나하나, 뼈 하나하나 일일이 암호화하고 건설한 장본인이다. - P152
스위치의 기본 기능은 기존의 유전자 활동 패턴을 변형시켜 새로운 활동 패턴을 창출해내는 일이다. 유전자 스위치의 작동을 가장잘 보여주는 예로 파리 배아 동서 축을 따라 특정 경도에서 띠, 혹은줄무늬가 생기는 과정을 들 수 있다. 발생 초기, 축을 따라 어떤 위치에 있는 세포 15~20개 너비의 띠에서 몇몇 툴킷 단백질들이 발현하기 시작한다. 각 툴킷 단백질은 저마다 다른 DNA 서열에 결합하는데, 염기쌍 6~9개 정도 길이의 DNA들이다. 툴킷 단백질들이 자신의 DNA 서열을 찾아가는 모습은 특정 열쇠가 특정 자물쇠에 맞물리는 모습과 흡사하다. 이 경우 DNA 서열이 하나의 자물쇠가 된다. 이런 DNA 서열을 ‘표지(signature)‘ 서열이라고 부를 텐데, 특정 툴킷 단백질에 고유하게 할당된 서열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통제하는 스위치에는 표지서열들이 여러 개 들어 있고, 세포핵 속에 있는 특정 툴킷 단백질들이 와서 저마다 맞는 서열에 결합한다. 물론 배아에서 특정 경도 및 위도의 지점들, 즉 그 툴킷 단백질들이 존재하는 지점들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 P158
초기 파리 배아에서 줄무늬로 발현되는 유전자들은 생물학자들이 처음으로 스위치를 점검해본 유전자들에 속한다. 이 스위치들을따로따로 떼어놓고 점검해본 결과 몹시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알게되었는데, 줄무늬 한 줄 한 줄을 각기 다른 스위치들이 암호화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툴킷이 발현하여 그려진 줄무늬 일곱 개가 간격도 일정하고 비슷해 보인다 해도, 줄 하나마다 담당 스위치가 다르고, 서로 다른 경도 신호의 조합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한 종류 무늬를 그리는 데 장치가 그렇게 많아야 하다니끔찍하다. 하지만 파리 배아 줄무늬가 하나씩 따로 그려진다는 걸알게 된 것은 중요한 발견이었다. 덕분에 툴킷 유전자의 전체 발현패턴은 많은 부분들의 합이고, 부분마다 서로 다른 스위치의 통제를받는다는 일반 규칙을 알 수 있었다. - P168
여러 스위치들이 각자 관장하는 별개의 작업들을 다 더하면, 비로소 신체와 신체부속들이 만들어진다. 척추동물의 커다랗고 복잡한 골격은 일군의 툴킷 유전자들 주위에 옹기종기 모인 많은 스위치들이 뼈 하나씩 차근히 암호화하고 건설한 결과이다. 골격발생에 중요한 툴킷 중에 뼈 형성 단백질(BMP)이라는 것들이 있다. 연골과 뼈 형성을 촉진하는 단백질 군이다. 여기 속하는 BMP5 유전자가 어떻게 조절되는가 살펴보면 해부 구조들이 각각의 스위치들을 통해 한 조각 한 조각 암호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BMP5 유전자 주변에는 온통 스위치들이 가득하다. BMP5를 각기 갈비뼈, 사지, 손가락 끝, 외이, 내이, 척추, 갑상 연골, 비장, 흉골 등에서 발현시키는 스위치들이다(그림5-5]. 똑같은 단백질이 서로 다른 패턴, 장소, 시기에 생성되곤 하는 것이다. 각 작업이 특수할수 있는 것, 전체 패턴이 복잡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스위치들 덕분이다. 신체 각 부위를 담당하는 별개의 스위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신체부속의 설계 및 형성이 몹시 미세하게 조정된다는 뜻이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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