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가 막 낳은 파리 알을 맨눈으로 관찰할 때는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극적인 사건들의 조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수정과동시에 활동에 착수한 툴킷 유전자들은 이미 발생 중인 배아의 지리를 그리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배아의 모든 세포들은 동일한 DNA를(동일한 유전자들을 품고 있지만 툴킷 유전자들은 배아의 일부분에서만, 또한 발생의 특정 시기에만 활동한다. 툴킷 유전자의 RNA나 단백질 산물의 색을 밝게 하는 강력한 기술을 동원하면 배아나 성장 중인 신체부속 내부에서 그들이 켜지고 꺼지는 패턴을 볼 수있다. 이 패턴이야말로 동물이 만들어지는 순서와 논리를 드러낸다. - P133

다음에는 그 밖의 툴킷 유전자들이 발현하여 상한 사시에서 신뼈, 손발가락, 관절, 근육, 힘줄로 자랄 부분들을 예고한다. 이런 요소들은 몸 가까운 쪽에서 먼 쪽 순서로 만들어진다. 미래에 위팔이나 허벅지가 될 부분이 먼저 놓이고, 다음으로 팔뚝이나 정강이가될 부분, 마지막으로 손이나 발이 될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우선 세포들이 응집하여 연골로 된 주형 같은 것이 생긴 다음, 그것이 뼈로바뀐다. 그런데 세포 차원의 응집 현상이 눈에 보이기 훨씬 전부터Sox9라는 툴킷 유전자가 발현하여 응집 형태를 예고한다(화보41]. 세포 움집 덩어리 사이마다 관절이 생기는데, 역시 세포 차원에서 이틈이 보이기 전부터 이미 GDFS 유전자가 줄무늬처럼 발현하여 미래에 앞다리에서 어깨, 팔꿈치, 손목, 손과 손가락뼈 사이의 관절들이 될 부분, 그리고 미래에 뒷다리에서 무릎, 발목, 발과 발가락의 관절들이 될 부분을 예고한다[화보4u]. 그런가 하면 스크레락시스라는또 다른 툴킷 유전자의 발현은 근육을 뼈에 이어주는 역할을 할 미래 힘줄들의 위치를 예고한다 [화보4v].
아름다운 사지 형성 과정에는 세포들의 죽음도 한몫한다. 쥐, 병아리, 사람의 손가락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은 발생 중인 사지에서 손가락 사이를 채웠던 조직이 사멸했기 때문이다. 한 덩이로 붙어 있던 손과 발에서 어떤 종류의 툴킷 유전자들이 발현하여 손발가락 사이의 세포들에게 세포예정사를 일으키도록 알려준 것이다[화보4w]. 과자 틀로 반죽을 찍어내듯, 손발가락 사이의 조직들이 떨어져나가고 손발가락만 남는다. 반면 오리 같은 경우에는 손발가락 사이에 또 다른 툴킷 유전자들이 있어서 세포 사멸을 촉진하는 신호들을차단해버린다. 그래서 오리발에는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남는다.
동물의 사지는 뼈, 힘줄, 근육, 관절 등 동일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구조의 크기며 모양이며 수는 각기 다르다. 가령 위팔에는 긴뼈가 하나밖에 없지만 아래팔에는 두 개 있고, 손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들이 달렸다. 사지마다 구성요소의 크기와 모양과 수가 다른 것은 몇몇 혹스 유전자들이 (주로 혹스29~13과 혹스d9~13들이다)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뒤 다리가 발생할 때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살짝 교차하기도 하면서 발현한다. 대부분의 동물은 앞다리와 뒷다리의 구성도 확연히 다르다.  - P145

동물 신체에서 가장 놀라운 진실 중 한 가지는 어느 수준에서 보더라도 규칙성이 있다는 점이다. 전체 신체 설계를 보든, 개별 구조나 부속의 세부를 보든, 똑같은 규칙성을 발견하게 된다. 후자의 사례로 들 만한 것은 가령 나비 날개를 뒤덮은 인편들, 일정한 간격을두고 돋아난 새의 깃털들이다. 어쩌면 세포 하나하나의 위치가 정교하게 할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기위해 꼭 그런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넓은 영역에 수많은 개별요소들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이른바 외측억제(lateral inhibition) 기법이라 불리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한 규칙이지만, 결과는 실로 아름답다.
자, 한 무리의 사람들을 한 장소에 모아둔다고 상상해보자. 그들에게 사방의 다른 사람들과 최소한 팔 길이만큼 떨어져 설 것을 요청한다. 저마다 주위에 반경이 팔 길이인 접근금지 구역을 갖는 셈이다. 결국에는 모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질서정연하게 늘어서게 될것이다(물론 [그림4-5)에서 보이듯 모두의 팔 길이가 같다는 전제에서의 이야기다.
세포들도 이런 식으로 미시적 차원에서 질서를 만들 수 있다. 특정 종류의 구조로 자라야 하는 세포들이 채택할 일반적인 원칙은 자기 주변에 억제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 안에 위치한 다른 세포들은 동일한 구조로 자랄 수 없다. 그 결과 규칙적인 무늬가 만들어진다. 곤충 몸에 난 털, 새나 파충류나 포유류의 몸에 난 깃털과 비늘과털의 무늬, 아름답게 메워진 절지동물의 겹눈 등등 말이다. 이 패턴들은 세포들의 국지적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모든 영역에 좌표를 할당해서 규정된 게 아니다. 배아에서 이런 패턴들은 이후의 구조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정해진 간격의 패턴으로 발현함으로써 그려진다. 가령 소닉 헤지호그 유전자는 병아리 발생의 후반부, 하지만 미래 깃털 아체들이 실제로 생겨나기 전에 발현한다(화보4x]. - P146

과거 천문학의 역사는 대개 하늘에 보이는 것들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처음에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 나중에는 강력한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다루었다. 우리는 별들의 탄생, 은하의 구조, 항성의 붕괴 등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 갈수록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우주론 연구자들은 최근에 정반대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빛이나 전파를 방출하는 것)은우주의 물질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등장한 것이다. 은하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의 행위는 그보다 훨씬 양이 많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그리고 ‘암흑에너지‘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게 유전학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유전암호가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된 생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DNA에서 유전자가존재하는 부분, 즉 게놈 속의 ‘별들‘을 열심히 관찰하였다. 하지만최근 들어 우리는 동물 게놈에서 눈에 보이는 유전자들이란 DNA의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보다는 특정 유전자남이1만, 우주1 대해 아다는 애비유와일지치의 일부가 아닌 DNA, 단지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것만으로는 기능을알아낼 수 없는 DNA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게놈의 ‘암흑물질‘이다. 우주의 암흑물질이 시야에 드러난 천체들의행동을 조정하듯, DNA의 암흑물질은 유전자들이 발생 중 언제 어느곳에 쓰일지 통제한다.
이장은 DNA의 암흑물질에 대해 알아보는 대목이다. 툴킷 유전자 사용을 통제할 줄 아는 이들이 어떤 형태로 신체부속 형성 지침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지침은 암흑 DNA 속에 유전자 스위치의 형태로 숨어 있다(이것이 내가 동원하는 두번째 비유이다). 유전자 스위치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주목받아 마땅한 개념이건만 아직은 실험실에서건 언론에서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스위치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만 하기보다는 생물학자들이 스위치를 발견하고 작동방식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을 돌아보려 한다.
분자생물학자들이 암흑을 들여다보고 스위치의 위치와 성격을 밝힌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유전자 스위치의 특징 중 가장 놀랍고 결정적인 것은 그들이 개개 툴킷 유전자의 활동과 구조를 굉장히 세심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놈 여기저기에 별자리처럼 마구뿌려져 있는 스위치들이야말로 동물 신체 조각조각, 줄무늬 하나하나, 뼈 하나하나 일일이 암호화하고 건설한 장본인이다. - P152

스위치의 기본 기능은 기존의 유전자 활동 패턴을 변형시켜 새로운 활동 패턴을 창출해내는 일이다. 유전자 스위치의 작동을 가장잘 보여주는 예로 파리 배아 동서 축을 따라 특정 경도에서 띠, 혹은줄무늬가 생기는 과정을 들 수 있다. 발생 초기, 축을 따라 어떤 위치에 있는 세포 15~20개 너비의 띠에서 몇몇 툴킷 단백질들이 발현하기 시작한다. 각 툴킷 단백질은 저마다 다른 DNA 서열에 결합하는데, 염기쌍 6~9개 정도 길이의 DNA들이다. 툴킷 단백질들이 자신의 DNA 서열을 찾아가는 모습은 특정 열쇠가 특정 자물쇠에 맞물리는 모습과 흡사하다. 이 경우 DNA 서열이 하나의 자물쇠가 된다. 이런 DNA 서열을 ‘표지(signature)‘ 서열이라고 부를 텐데, 특정 툴킷 단백질에 고유하게 할당된 서열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통제하는 스위치에는 표지서열들이 여러 개 들어 있고, 세포핵 속에 있는 특정 툴킷 단백질들이 와서 저마다 맞는 서열에 결합한다. 물론 배아에서 특정 경도 및 위도의 지점들, 즉 그 툴킷 단백질들이 존재하는 지점들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 P158

초기 파리 배아에서 줄무늬로 발현되는 유전자들은 생물학자들이 처음으로 스위치를 점검해본 유전자들에 속한다. 이 스위치들을따로따로 떼어놓고 점검해본 결과 몹시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알게되었는데, 줄무늬 한 줄 한 줄을 각기 다른 스위치들이 암호화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툴킷이 발현하여 그려진 줄무늬 일곱 개가 간격도 일정하고 비슷해 보인다 해도, 줄 하나마다 담당 스위치가 다르고, 서로 다른 경도 신호의 조합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한 종류 무늬를 그리는 데 장치가 그렇게 많아야 하다니끔찍하다. 하지만 파리 배아 줄무늬가 하나씩 따로 그려진다는 걸알게 된 것은 중요한 발견이었다. 덕분에 툴킷 유전자의 전체 발현패턴은 많은 부분들의 합이고, 부분마다 서로 다른 스위치의 통제를받는다는 일반 규칙을 알 수 있었다. - P168

여러 스위치들이 각자 관장하는 별개의 작업들을 다 더하면, 비로소 신체와 신체부속들이 만들어진다. 척추동물의 커다랗고 복잡한 골격은 일군의 툴킷 유전자들 주위에 옹기종기 모인 많은 스위치들이 뼈 하나씩 차근히 암호화하고 건설한 결과이다. 골격발생에 중요한 툴킷 중에 뼈 형성 단백질(BMP)이라는 것들이 있다. 연골과 뼈 형성을 촉진하는 단백질 군이다. 여기 속하는 BMP5 유전자가 어떻게 조절되는가 살펴보면 해부 구조들이 각각의 스위치들을 통해 한 조각 한 조각 암호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BMP5 유전자 주변에는 온통 스위치들이 가득하다. BMP5를 각기 갈비뼈, 사지, 손가락 끝, 외이, 내이, 척추, 갑상 연골, 비장, 흉골 등에서 발현시키는 스위치들이다(그림5-5]. 똑같은 단백질이 서로 다른 패턴, 장소, 시기에 생성되곤 하는 것이다. 각 작업이 특수할수 있는 것, 전체 패턴이 복잡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스위치들 덕분이다. 신체 각 부위를 담당하는 별개의 스위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신체부속의 설계 및 형성이 몹시 미세하게 조정된다는 뜻이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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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소한의 곤란도 겪지 않은 채 차분하고 교묘한 솜씨로 고통의 낭떠러지를 타고넘었고 동물들의 생고기 냄새와 막 다리미질을 끝낸 옷 냄새가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늪지로 변해 있던 레메디오스를 만쳐들났다. 붕 떠서 그 늪지를 빠져나왔을 때 그는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기도 모르게 훌쩍훌쩍 흐느꼈다. 그러고 나서는 고통스러운 종기 같은 것이 몸속에서 터졌다고 느끼면서 콸콸 쏟아지는 샘물처럼 펑펑 울어 댔다. 필라르 테르네라는 손가락 끝으로 그의 머리를 살살 긁으면서 그가 제대로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를 괴롭히던 어두운 물질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그에게 물었다. "상대가 누구야?" 아우렐리아노는 모든 걸 다 얘기했다. 필라르 테르네라는, 예전에는 비둘기들이 놀라 달아날 정도로 웃어 댔지만 이제는 곁에서 자던 아이들이 깨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웃었다. "자기가 그 애를 마저 다 키워야 할 거야." 필라르 테르네라가 놀려댔다. 그러나 아우렐리아노는 그 조롱 속에 깊은 이해심이 깔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우렐리아노가 남성으로서의 자기 능력에 대한 의구심뿐만 아니라 여러 달 동안 가슴속에 감추고 참아 왔던 괴로운 짐을 그곳에 놔두고 방을 나섰을때 필라르 테르네라는 자발적으로 약속 하나를 했다.
"내가 그 여자애를 만나 얘기를 좀 해 볼게. 그 애를 쟁반에고이 담아 대령할 테니 두고 봐." 필라르 테르네라가 아우렐리아노에게 말했다. - P113

레베카가 강인한 성격과 아랫배의 탐욕과, 고집스러운 기질로 남편의 엄청난 에너지를 흡수해 버렸기 때문에 남편은 여자나 밝히는 게으름뱅이에서 거대한 일 동물로 변했다. 그들은 깨끗하고 잘 정리된 집 한 채를 갖고 있었다. 동이 트면 레베카가 집 문을 모두 활짝 열어 놓았기 때문에 무덤 쪽에서 창문으로 불어 들어온 바람이 마당 쪽 문을 통해 빠져나갔고, 죽은 사람의 뼛가루로 인해 벽이 하얗게 되고 가구의 빛이 바랬다. 흙을 먹고 싶은 욕망과 부모의 뼈가 내던 덜그럭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피에트로 크레스피의 수동적인 태도 때문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던 그 조바심은 어느덧 기억의 다락방속으로 쫓겨나 있었다. 레베카는 전쟁의 불안감은 남의 일인양 하루 종일 창가에 앉아 자수를 하다가 마침내 찬장 속에든 세라믹 그릇들이 진동하기 시작하면, 각반과 박차를 차고 쌍발 엽충을 둘러멘 거대한 남편이 지저분한 사냥개들을 앞세우고 나타나기 훨씬 전에 음식을 데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남편은 가끔씩 어깨에 사슴 한 마리를 지고 왔으며, 거의 항상 토끼나 야생 오리 한 꾸러미를 꿰차고 나타났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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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 유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다 복잡한 유기체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현상인지 이해하기 위해 먼저 DNA, RNA, 단백질의구조 및 기능에 대해 짧게 살펴보자. 낯설고 골치 아픈 이야기일지몰라도 생물학의 논리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이 요소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하며, 각각의 역할과 상호작용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앞으로 읽게 될 몹시 대단한 발견들의 가치를 음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 발견들의 충격은 살아 있는유기체의 몸을 구성하는 여러 분자들에 대해 잘 알수록 커진다.
DNA, RNA, 단백질의 관계는 이렇다. DNA는 RNA를 만드는 주형이며 RNA는 단백질을 만드는 주형이다.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는 두 단계를 거쳐 단백질로 해독되는 셈인데, 세포와 신체 내에서 실제 업무를 해내는 것은 단백질들이다.
먼저 염색체, 유전자, DNA의 관계를 알아보자[그림3-1]. 세포 안에들어 있는 굉장히 기다란 DNA 분자를 염색체라고 한다. 그 DNA 분자 위에는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각각의 유전자가 자리하고 있다. DNA는 뉴클레오티드라는 구성 요소들이 두 개의 기다란 가닥을 이룬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각 뉴클레오티드는 A. C. G. T라는 약자로 불리는 네 가지 염기들 중 하나를 갖는다. 두 개의 DNA 가닥이한데 얽혀 있는 것은 양쪽 가닥에 있는 염기들이 서로 쌍을 이루어 강하게 결합하기 때문이다. 염색체의 수는 적은 경우에는 하나일 수도 있고(대장균), 훨씬 많을 수도 있다(사람은 23쌍이 있다).  - P89

이제 DNA의 정보가 어떻게 해독되는지 알아보자.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는 첫 단계는 전사 과정으로, ‘메신저 RNA‘(mRNA)가 DNA 분자 중 한 가닥과 상보하는 염기서열을 전사한다. 두번째 단계는 그렇게 만들어진 mRNA가 단백질로 해독되는 과정으로서, 번역이라고 불린다[그림3-2]. RNA 염기서열을 단백질 서열로 번역하는 데는 보편적인 유전암호가 또 존재한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는 조각들이 모여 긴 사슬을 이룸으로써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DNA 염기서열과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에는 직접적인 대응관계가 있다. 아미노산 서열의 내용은 단백질의 모양과 화학적 속성을 결정한다. 산소를 나를지, 근섬유를 만들지, 락토오스를 분해할지 등을 정하는 것이다. - P91

1. 유전자의 활동은 DNA 결합 단백질이 붙었다 떨어졌다 함으로써조절된다.
2. DNA 결합 단백질은 그 유전자 근처에 있는 특정 DNA 서열을 감지할 줄 안다.

박테리아의 유전자 스위치를 발견한 것은 누누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엄청난 개념적 충격이었다. 자콥과 모노는 이것이 세포의 생리를 통제하는 우아한 메커니즘일 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보다 복잡한 유기체들에서 어떻게 세포 분화가 통제되는지 밝히는 데 대단한 도움을 줄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혈액, 뇌, 근육 세포 등의기능이 각 조직의 임무에 맞도록 전문화된 단백질 생산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테리아의 효소 유도 연구는 동물의 기관세포들이 각기 전문적 기능을 펼친다는 개념을 이끌어낸 선구자인셈이다. 

약 180개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부분으로서, 단백질로 번역해보면 아미노산 60개에 해당했다. 각각의 호메오 유전자는 특정 신체부위와 부속에 저마다 독특한 영향을 미치지만 한편으로 모든 호메오 단백질들이 모종의 공통적 기능을 갖는다는 뜻이었으므로, 실로 대단히 흥분되는 발견이었다. 분자생물학자들 사이에는 DNA의 모양새를 따서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호메오 유전자들에 공통되는 180개 염기쌍 서열이 기다란 DNA 서열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작은 ‘상자‘ 모양을 하고 있었기에, 생물학자들은 그것을 호메오박스(homeobox) 유전자라고 불렀다. 그것이 암호화하는 단백질 부분이 호메오도메인이다. 나중에는 호메오박스를 가진 호메오 유전자들을 일컬어 혹스(Hox) 유전자라 줄여 부르게 되었다. - P96

처음에는 호메오박스의 기능에 대해 상충하는 해석들이 난무했다. 호메오박스의 중요성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고작해야 세포 속에서 단백질들의 이동 위치를 알려주는 등의 평범한 기능을 암호화하고 있으리라 주장한 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호메오박스가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옥스퍼드 대학의 조너선 슬랙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로제타석의 발견에 호메오박스 발견을 견주었다. 호메오박스는 모든 동물의 발생을 해독하는 열쇠가 되어줄까?
척추동물을 포함한 몇몇 동물들에서 혹스 유전자가 발견되고 몇년이 지났을 때, 그것을 덮어버릴 만큼 대단한 사건이 벌어졌다. 쥐의 혹스 유전자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보았더니 파리와 마찬가지로 몇 개의 복합체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4개 복합체이다). 게다가 각 복합체 속 유전자들의 순서는 각각이 발현되는 쥐의 신체부위 순서에 정확하게 대응했다. 상이한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이 그저 유전자 염기서열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복합체 조직을 이루는 방식. 나아가 배아에서 활용되는 방식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림3-5].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혹스 유전자 복합체들은 파리와 쥐처럼 상이한 동물들의 발생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동물계의 거의 모든 일원들, 사람이나 코끼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초파리 연구를 열렬히 지지했던 생물학자들조차 혹스 유전자가 이토록 보편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토록 중요하리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의미였다. 상이한 동물들이 그저 비슷한 종류의 도구로 만들어진 것을 넘어서 아예똑같은 유전자들로 만들어졌다니! - P99

아이리스, 아니리디아, 스멀 아이 유전자를 한데 묶어 팍스-6(Pax-6)라고 부른다. 묘사 면에서는 심심한 이름이지만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가 하는 점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사실은 팍스-6 유전자가 동물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항상 눈 발생에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팍스-6는 와충류 같은 단순한 구조부터 훨씬 복잡한 척추동물까지, 모든 동물의 모든 종류의 눈 형성과 관련이 있다. 팍스-6 유전자가 동물계의 눈 발생에 광범위하게 연관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상이한 집단의 동물들이 저마다 바닥에서부터 새 눈을 만들어낼 때 우연히도 매번 팍스-6유전자가 소환되어 사용된 것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형태인지는 몰라도 동물들의 공통 선조가 가졌던 눈이 발달할 때 팍스-6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오래전에 맡겨진 역할이 진화 역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온전히 보존된 것이다.  - P104

간단히 말하면,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동물의 몸에서 튀어나온 부속지들의 형성에는 하나같이 DLL 유전자가 관련되어 있었다. 병아리의 다리, 어류의 지느러미, 해양 선충들의 부속지(‘족‘이라 불린다), 멍게의 병낭과 입수관, 성게의 관족 등이 다 그랬다. 몸통에 달려 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너무나 상이한 구조들을 형성하는 데 똑같은 툴킷 유전자가 작용하는 것이다. 팍스-6 유전자와 흡사한 상황이다. 확인된 동물들은 분류 체계의 서로 다른 주요가지들을 대표하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니 팍스-6와 눈 진화의 관계를 두 가지로 해석했듯, DLL과 부속지 진화의 관계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매번 새로이 구조들이 생겨날 때 DLL이 독립적으로 여러번 사용된 것이거나, 공통의 선조가 모종의 부속지를 만들어낼 때 DLL을 사용했기 때문에 역할이 진화 역사 내내 재사용되며 보전된것이다. - P105

파리, 척추동물, 기타 동물들의 팍스-6, 디스탈리스, 틴먼족 단백질들에 공통되는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그 단백질들이 모두 호메오도메인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죄다 DNA 결합 단백질들이라는 뜻이다. 이 호메오도메인들은 앞서 보았던 혹스 단백질 호메오도메인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호메오도메인에는 약 스물네 가지의 계열이 있는 듯하다.
혹스, 팍스-6, DII, 틴먼 단백질은 서로 다른 계열에 속한다. 서로 다른 동물들의 팍스-6 단백질끼리가 서로 다른 호메오단백질 계열들끼리보다 더 비슷하다. 혹스 단백질, DII 단백질, 틴먼 단백질 역시 계열이 다른 호메오도메인 단백질들보다 제 계열 내의 일원들끼리더 비슷하다. 호메오도메인 종류가 구분되는 것은 전문 기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DNA에서 서로 다른 염기서열에 결합한다). 어쨌든 모두 DNA에 결합하고, 기관이나 부속지 발생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을 볼 때, 그들이 발생 중인 눈, 부속지, 심장 등에서 유전자 상태를 켜고 끄는 조절 역할을 맡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큰 까닭은 어쩌면 많은 수의 유전자들을 조절하기 때문인지도, 어쩌면 기관 형성의 초기에 개입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둘 다인지도 모른다(어느 쪽이든 이들이 없으면 기관이나 신체부속 형성이 망가지긴 마찬가지다). - P106

척추동물의 툴킷 유전자들이 잘못되는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은 이런 선천적 장애 외에 암이 있다. 세포 안팎의 조절장치들이 잘못될 경우 생겨나는 것이 종양인데, 세포의 신호 반응 능력에 이상이 있을 때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저세포암이 여기에 꼭 들어맞는 사례이다. 피부암 중 가장 흔한 종류로서 특히 햇볕에 지나치게 노출된 얼굴과 목에 자주 발생한다. 여러 종양세포들이돌연변이 소닉 헤지호그 수용체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신호전달 경로의 활동이 지나치게 왕성해지는 돌연변이다. 그러므로 종양을 치료하는 한 화학요법으로 신호전달 경로 억제제를 투여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읽으며 짐작했겠지만 바로 그 사이클로파민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사산한 양에서 식물의 독성물질을 지나 인간의 암 화학치료라니, 참으로 신기한 과학 발전 역정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역시 헤지호그 경로 돌연변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몇몇 뇌종양과 췌장암에도 이 접근법이 쓰이고 있다. - P115

공동의 툴킷이 발견되자 다양성의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필연적으로 변화가 왔다. 우리는 여러 동물의 툴킷 유전자들에 관한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 툴킷 유전자들이 동물계에 널리 퍼져 있는것은 무슨 의미일까? 툴킷이 매우 오래된 것으로서 대부분의 동물종류가 진화해 갈라지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또 파리류, 선충류, 사람, 한 종류의 쥐와 물고기, 기타 몇몇 동물들의 완전한 게놈 서열 분석 자료를 갖고 있다. 게놈을 비교해본 결과, 파리와 사람이 공통의 발생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약과였다. 쥐와 사람은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2만 5천 개가량 갖고 있고, 침팬지와 사람은 DNA의 약 99퍼센트가 동일하다. 공통의 툴킷이 있을뿐더러 상이한 종들의 게놈이 몹시 흡사하다는 사실은 명백히 역설이다. 공유하는 유전자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차이가 생겨나는 가? 어떻게 동일한 혹스 유전자 집합들이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 여러 절지동물들을 조각해낸단 말인가? 포유동물들 사이의 크나큰 차이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영장류, 유인원, 인간의 차이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 P116

개구리와 파리의 배아 및 유충은 포식자들에 한없이 취약한 상태다.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 질주하듯 발생을 해치워버릴 수밖에 없다. 암컷이 생산한 수백 개의 알 중 성체로 무사히 자라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람의 생태는 전연 다르다. 사람은 최고로 안전한 장소에서 발생을 겪으며, 어쨌든 처음에는 매우 느린 속도로 발생을 진행시킨다. 인간 수정란의 초기 분열들은 매 스무 시간마다 한 번씩 벌어지므로, 올챙이가 완벽하게 만들어질 시간 동안 고작 32개세포를 만들 수 있다. 낭배 형성은 13일째에야 시작되며 머리 영역을 뚜렷이 알아볼 수 있게 되는 데 약 3주가 걸린다. 배아 뒤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마디들 같은 것이 두 줄로 생기는데 척추동물이란 증거이다(이 원체들로부터 나중에 척추 및 주변 근육과 피부가 생겨난다). 이쯤일 때 인간 배아의 길이는 2.5밀리미터 남짓하다. 태어나려면 아직도 여덟 달을(길기도 하지!) 지내야 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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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상은 무조건 물리쳐야 할 해악인가? 그렇지 않다. 성리학적 세계관과 사유에 지배당한 조선 사대부에게는 마음을 제멋대로 풀어놓는 상태인 ‘방심‘, ‘잡념‘, ‘망상‘, ‘상념‘이 자신을 망치는 가장 해로운 적이었다. 그러나 성호학파의 문인 이학규(李學逵)는 오히려 망상을 통해 절망으로 가득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와 활력을 찾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망상 덕분에 유배지에 갇혀 있는이 몸도 크게는 온 천하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작게는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터럭 끝까지도 헤매고 다닐 수 있다고 망상을 하는 순간 자신의 마음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할 만하다고. 만약 지금 마음속 한 가닥 망상을 없애려고 한다면, 그의 삶은 불씨가 죽어 버린 잿더미처럼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영원히 살아 움직임을 증명할 수 있는것은 망상에 있을 따름이다.
성리학적 세계관과 사유에 얽매이고 구속당하기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이른바 ‘망상 예찬‘이다. 망상이 있어야 사람의 정신과 마음은 비로소 사상의 한계와 세상의 경계를 넘어서 무한과 무궁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망상이 없다면 사상의 한계와 사유의 경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망상하고 또 망상하라.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삶이 바로 그 망상 속에 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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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으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특유의 무관심을 보이는 동안 집에서 만든 작은 동물 모양의 캐러멜은 마을에서 계속 팔리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불면증으로 푸른색이 된 달콤한 병아리들, 불면증으로 분홍색이 된 맛있는 생선들, 불면증으로 노란색이 된 보드라운 망아지들을 빨아 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급기야는 온 동네사람들이 월요일 동틀 무렵까지 깨어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당시에 할 일은 엄청나게 많은데 시간이 모자랐던 마콘도 사람들은 잠을 안 자게 되는 것을 오히려 즐거워했다. 어찌나 열심히 일들을 했던지 이내 할 일이 더 이상 없게 되었고, 새벽 3시에 시계에서 나오는 왈츠의 음표들을 세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게 되었다. 피로 때문이 아니라 꿈이 그리워 잠을 자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피곤해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다. 함께 모여 앉아 끝없이 얘기를 주고받고, 똑같은 농담을 몇 시간씩이나 되풀이하고, 거세한 수탉얘기를 신경질이 날 정도까지 비비 꼬아서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얘기하는 사람이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거세한 수탉 얘기를 또 들려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얘기를 듣는 사람이 그러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듣고 싶다고 대답하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라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자리를 뜰라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자리를 뜨라고 부탁한 적이 없고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는 등, 그런 식으로 며칠밤이 새도록 지속되는 지독한 모임에서 밑도 끝도 없는 장난을 쳐댔다. - P78

"우린 이 마을에서 종이를 가지고 명령을 내리지 않소.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주겠는데요. 이 마을에는 조정할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린 그 어떤 조정관도 필요없소." 그는 침착성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
그리고 돈 아폴리나르 모스코테의 뻔뻔스러운 태도 앞에서 시종일관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 자기들이 마을을 어떻게 세웠으며, 땅을 어떻게 분배했으며, 그 어떤 정부도 귀찮게하지 않고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서, 어떻게 길을 닦았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개선해 왔는지 모든 것을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우리는 워낙 평화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자연사를 한 사람조차도 없소. 우리에겐 아직 묘지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겠죠?" 사실, 마콘도 사람들은정부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는 걸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까지 자신들을 평화롭게 성장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만도 다행스럽게 여겼고, 외지 사람으로부터 이래라저래라 명령이나 받으려고 마을을 세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계속해서 그대로 내버려 두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지와 똑같은 색깔의 흰 생면직 저고리를 입은 돈 아폴리나르 모스코테는 단 한순간도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따라서 당신이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정착하겠다면 대단한 환영을 받을 거요. 하지만 만일 당신이 사람들에게 집을 파랗게 칠하라고 강요하면서 무질서를 조장하기 위해 왔다면 당신이 가져온 그 잡동사니 세간들을 가지고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요. 우리 집은 비둘기처럼 하얀색으로 칠할 테니까 말이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결론을 내렸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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