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 유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다 복잡한 유기체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현상인지 이해하기 위해 먼저 DNA, RNA, 단백질의구조 및 기능에 대해 짧게 살펴보자. 낯설고 골치 아픈 이야기일지몰라도 생물학의 논리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이 요소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하며, 각각의 역할과 상호작용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앞으로 읽게 될 몹시 대단한 발견들의 가치를 음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 발견들의 충격은 살아 있는유기체의 몸을 구성하는 여러 분자들에 대해 잘 알수록 커진다.
DNA, RNA, 단백질의 관계는 이렇다. DNA는 RNA를 만드는 주형이며 RNA는 단백질을 만드는 주형이다.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는 두 단계를 거쳐 단백질로 해독되는 셈인데, 세포와 신체 내에서 실제 업무를 해내는 것은 단백질들이다.
먼저 염색체, 유전자, DNA의 관계를 알아보자[그림3-1]. 세포 안에들어 있는 굉장히 기다란 DNA 분자를 염색체라고 한다. 그 DNA 분자 위에는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각각의 유전자가 자리하고 있다. DNA는 뉴클레오티드라는 구성 요소들이 두 개의 기다란 가닥을 이룬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각 뉴클레오티드는 A. C. G. T라는 약자로 불리는 네 가지 염기들 중 하나를 갖는다. 두 개의 DNA 가닥이한데 얽혀 있는 것은 양쪽 가닥에 있는 염기들이 서로 쌍을 이루어 강하게 결합하기 때문이다. 염색체의 수는 적은 경우에는 하나일 수도 있고(대장균), 훨씬 많을 수도 있다(사람은 23쌍이 있다).  - P89

이제 DNA의 정보가 어떻게 해독되는지 알아보자.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는 첫 단계는 전사 과정으로, ‘메신저 RNA‘(mRNA)가 DNA 분자 중 한 가닥과 상보하는 염기서열을 전사한다. 두번째 단계는 그렇게 만들어진 mRNA가 단백질로 해독되는 과정으로서, 번역이라고 불린다[그림3-2]. RNA 염기서열을 단백질 서열로 번역하는 데는 보편적인 유전암호가 또 존재한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는 조각들이 모여 긴 사슬을 이룸으로써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DNA 염기서열과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에는 직접적인 대응관계가 있다. 아미노산 서열의 내용은 단백질의 모양과 화학적 속성을 결정한다. 산소를 나를지, 근섬유를 만들지, 락토오스를 분해할지 등을 정하는 것이다. - P91

1. 유전자의 활동은 DNA 결합 단백질이 붙었다 떨어졌다 함으로써조절된다.
2. DNA 결합 단백질은 그 유전자 근처에 있는 특정 DNA 서열을 감지할 줄 안다.

박테리아의 유전자 스위치를 발견한 것은 누누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엄청난 개념적 충격이었다. 자콥과 모노는 이것이 세포의 생리를 통제하는 우아한 메커니즘일 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보다 복잡한 유기체들에서 어떻게 세포 분화가 통제되는지 밝히는 데 대단한 도움을 줄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혈액, 뇌, 근육 세포 등의기능이 각 조직의 임무에 맞도록 전문화된 단백질 생산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테리아의 효소 유도 연구는 동물의 기관세포들이 각기 전문적 기능을 펼친다는 개념을 이끌어낸 선구자인셈이다. 

약 180개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부분으로서, 단백질로 번역해보면 아미노산 60개에 해당했다. 각각의 호메오 유전자는 특정 신체부위와 부속에 저마다 독특한 영향을 미치지만 한편으로 모든 호메오 단백질들이 모종의 공통적 기능을 갖는다는 뜻이었으므로, 실로 대단히 흥분되는 발견이었다. 분자생물학자들 사이에는 DNA의 모양새를 따서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호메오 유전자들에 공통되는 180개 염기쌍 서열이 기다란 DNA 서열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작은 ‘상자‘ 모양을 하고 있었기에, 생물학자들은 그것을 호메오박스(homeobox) 유전자라고 불렀다. 그것이 암호화하는 단백질 부분이 호메오도메인이다. 나중에는 호메오박스를 가진 호메오 유전자들을 일컬어 혹스(Hox) 유전자라 줄여 부르게 되었다. - P96

처음에는 호메오박스의 기능에 대해 상충하는 해석들이 난무했다. 호메오박스의 중요성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고작해야 세포 속에서 단백질들의 이동 위치를 알려주는 등의 평범한 기능을 암호화하고 있으리라 주장한 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호메오박스가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옥스퍼드 대학의 조너선 슬랙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로제타석의 발견에 호메오박스 발견을 견주었다. 호메오박스는 모든 동물의 발생을 해독하는 열쇠가 되어줄까?
척추동물을 포함한 몇몇 동물들에서 혹스 유전자가 발견되고 몇년이 지났을 때, 그것을 덮어버릴 만큼 대단한 사건이 벌어졌다. 쥐의 혹스 유전자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보았더니 파리와 마찬가지로 몇 개의 복합체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4개 복합체이다). 게다가 각 복합체 속 유전자들의 순서는 각각이 발현되는 쥐의 신체부위 순서에 정확하게 대응했다. 상이한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이 그저 유전자 염기서열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복합체 조직을 이루는 방식. 나아가 배아에서 활용되는 방식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림3-5].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혹스 유전자 복합체들은 파리와 쥐처럼 상이한 동물들의 발생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동물계의 거의 모든 일원들, 사람이나 코끼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초파리 연구를 열렬히 지지했던 생물학자들조차 혹스 유전자가 이토록 보편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토록 중요하리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의미였다. 상이한 동물들이 그저 비슷한 종류의 도구로 만들어진 것을 넘어서 아예똑같은 유전자들로 만들어졌다니! - P99

아이리스, 아니리디아, 스멀 아이 유전자를 한데 묶어 팍스-6(Pax-6)라고 부른다. 묘사 면에서는 심심한 이름이지만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가 하는 점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사실은 팍스-6 유전자가 동물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항상 눈 발생에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팍스-6는 와충류 같은 단순한 구조부터 훨씬 복잡한 척추동물까지, 모든 동물의 모든 종류의 눈 형성과 관련이 있다. 팍스-6 유전자가 동물계의 눈 발생에 광범위하게 연관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상이한 집단의 동물들이 저마다 바닥에서부터 새 눈을 만들어낼 때 우연히도 매번 팍스-6유전자가 소환되어 사용된 것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형태인지는 몰라도 동물들의 공통 선조가 가졌던 눈이 발달할 때 팍스-6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오래전에 맡겨진 역할이 진화 역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온전히 보존된 것이다.  - P104

간단히 말하면,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동물의 몸에서 튀어나온 부속지들의 형성에는 하나같이 DLL 유전자가 관련되어 있었다. 병아리의 다리, 어류의 지느러미, 해양 선충들의 부속지(‘족‘이라 불린다), 멍게의 병낭과 입수관, 성게의 관족 등이 다 그랬다. 몸통에 달려 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너무나 상이한 구조들을 형성하는 데 똑같은 툴킷 유전자가 작용하는 것이다. 팍스-6 유전자와 흡사한 상황이다. 확인된 동물들은 분류 체계의 서로 다른 주요가지들을 대표하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니 팍스-6와 눈 진화의 관계를 두 가지로 해석했듯, DLL과 부속지 진화의 관계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매번 새로이 구조들이 생겨날 때 DLL이 독립적으로 여러번 사용된 것이거나, 공통의 선조가 모종의 부속지를 만들어낼 때 DLL을 사용했기 때문에 역할이 진화 역사 내내 재사용되며 보전된것이다. - P105

파리, 척추동물, 기타 동물들의 팍스-6, 디스탈리스, 틴먼족 단백질들에 공통되는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그 단백질들이 모두 호메오도메인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죄다 DNA 결합 단백질들이라는 뜻이다. 이 호메오도메인들은 앞서 보았던 혹스 단백질 호메오도메인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호메오도메인에는 약 스물네 가지의 계열이 있는 듯하다.
혹스, 팍스-6, DII, 틴먼 단백질은 서로 다른 계열에 속한다. 서로 다른 동물들의 팍스-6 단백질끼리가 서로 다른 호메오단백질 계열들끼리보다 더 비슷하다. 혹스 단백질, DII 단백질, 틴먼 단백질 역시 계열이 다른 호메오도메인 단백질들보다 제 계열 내의 일원들끼리더 비슷하다. 호메오도메인 종류가 구분되는 것은 전문 기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DNA에서 서로 다른 염기서열에 결합한다). 어쨌든 모두 DNA에 결합하고, 기관이나 부속지 발생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을 볼 때, 그들이 발생 중인 눈, 부속지, 심장 등에서 유전자 상태를 켜고 끄는 조절 역할을 맡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큰 까닭은 어쩌면 많은 수의 유전자들을 조절하기 때문인지도, 어쩌면 기관 형성의 초기에 개입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둘 다인지도 모른다(어느 쪽이든 이들이 없으면 기관이나 신체부속 형성이 망가지긴 마찬가지다). - P106

척추동물의 툴킷 유전자들이 잘못되는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은 이런 선천적 장애 외에 암이 있다. 세포 안팎의 조절장치들이 잘못될 경우 생겨나는 것이 종양인데, 세포의 신호 반응 능력에 이상이 있을 때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저세포암이 여기에 꼭 들어맞는 사례이다. 피부암 중 가장 흔한 종류로서 특히 햇볕에 지나치게 노출된 얼굴과 목에 자주 발생한다. 여러 종양세포들이돌연변이 소닉 헤지호그 수용체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신호전달 경로의 활동이 지나치게 왕성해지는 돌연변이다. 그러므로 종양을 치료하는 한 화학요법으로 신호전달 경로 억제제를 투여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읽으며 짐작했겠지만 바로 그 사이클로파민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사산한 양에서 식물의 독성물질을 지나 인간의 암 화학치료라니, 참으로 신기한 과학 발전 역정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역시 헤지호그 경로 돌연변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몇몇 뇌종양과 췌장암에도 이 접근법이 쓰이고 있다. - P115

공동의 툴킷이 발견되자 다양성의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필연적으로 변화가 왔다. 우리는 여러 동물의 툴킷 유전자들에 관한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 툴킷 유전자들이 동물계에 널리 퍼져 있는것은 무슨 의미일까? 툴킷이 매우 오래된 것으로서 대부분의 동물종류가 진화해 갈라지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또 파리류, 선충류, 사람, 한 종류의 쥐와 물고기, 기타 몇몇 동물들의 완전한 게놈 서열 분석 자료를 갖고 있다. 게놈을 비교해본 결과, 파리와 사람이 공통의 발생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약과였다. 쥐와 사람은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2만 5천 개가량 갖고 있고, 침팬지와 사람은 DNA의 약 99퍼센트가 동일하다. 공통의 툴킷이 있을뿐더러 상이한 종들의 게놈이 몹시 흡사하다는 사실은 명백히 역설이다. 공유하는 유전자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차이가 생겨나는 가? 어떻게 동일한 혹스 유전자 집합들이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 여러 절지동물들을 조각해낸단 말인가? 포유동물들 사이의 크나큰 차이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영장류, 유인원, 인간의 차이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 P116

개구리와 파리의 배아 및 유충은 포식자들에 한없이 취약한 상태다.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 질주하듯 발생을 해치워버릴 수밖에 없다. 암컷이 생산한 수백 개의 알 중 성체로 무사히 자라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람의 생태는 전연 다르다. 사람은 최고로 안전한 장소에서 발생을 겪으며, 어쨌든 처음에는 매우 느린 속도로 발생을 진행시킨다. 인간 수정란의 초기 분열들은 매 스무 시간마다 한 번씩 벌어지므로, 올챙이가 완벽하게 만들어질 시간 동안 고작 32개세포를 만들 수 있다. 낭배 형성은 13일째에야 시작되며 머리 영역을 뚜렷이 알아볼 수 있게 되는 데 약 3주가 걸린다. 배아 뒤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마디들 같은 것이 두 줄로 생기는데 척추동물이란 증거이다(이 원체들로부터 나중에 척추 및 주변 근육과 피부가 생겨난다). 이쯤일 때 인간 배아의 길이는 2.5밀리미터 남짓하다. 태어나려면 아직도 여덟 달을(길기도 하지!) 지내야 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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