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애 첫 해외여행은 중국이었다. 모두가 진로를 모색하던 4학년 2학기까지 나는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11월이 되어 새로운 집행부가 선출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겨울방학의 초입에 학생처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는 학생회의 힘이 대단해서 학생처는 그저 커다란 말썽 없이, 즉, 운동권들이 총장실을 점거한다거나 하는 사건 없이 하루하루가 무탈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랄 때였다. 나는 가끔 학생처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그때마다 바로 튀어나와 나를 진정시키고 사태를 해결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예를 들어 학생회 간부들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이 있었는데, 그 장학금 대상이나 액수가 줄어든다거나 할 때가 있었다. 그 장학금은 개인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회나 운동 정파 내부의 비자금으로 쓰였다. 공식 예산으로 근거를 남기면서 할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 장학금으로 문건도 인쇄하고 수배자의 도피 자금도 제공하고 전단지도 만들어 뿌렸다. 그런 돈을 줄인다는 것은 바로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이다라고 우리는 생각했고 그럴 때가 바로 내가 학생처 문을 손으로 여는 대신 발로 차고 들어가야 할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 P30
중국에서의 나는, 그리고 나와 함께 여행한 운동권의 ‘동지‘들은 어떤 면에선 유럽에서 열심히 필기만 잔뜩 해온 나의 아버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사회주의 중국에 뭔가를 배우러 간다고 생각했다. 천안문 사태의 진실도알고 싶었다. 국내 언론들이 사회주의 중국을 폄훼하기 위하여 진상을 조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사회주의의 미래를 확신하는 젊은 청년들을 만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소망적 사고였을 뿐이었다. 자신이믿고 있던 것들이 아직은 건재하리라는 희망. 현실보다 믿음을 우선하는 태도였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 P35
후배와 나는 토플 같은 것은 공부해본 적 없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으로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승리할 것이라 믿었고, 미국이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라고 생각해 미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중국의 엘리트들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몇 달 전에 있었던 천안문 사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애매한 미소만 짓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소비에트의 해체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대신그는 우리에게 미국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없다고 대답했고 그는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우리는 많은 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사회주의 중국에 환상을 가진 서울의 대학생과 자본주의 미국으로유학 가는 게 꿈인 베이징 대학생의 대화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 이어졌다. - P41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P51
역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인물의 내면이다. 윤리적 태도, 성에 대한 관념, 정치적 성향 등, 십여 개의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다보면 인물에 대해 좀더 또렷한 윤곽이 그려진다. 그런데 인물의 내면 부분에서 내가 제일 고민하게 되는 항목은 ‘프로그램‘이다. 노아 루크먼은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믿음에 더 좌우된다.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된다.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 같은 고정관념도 프로그램이라 할수 있다. 이런 인종차별주의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백인은 어쩌다 뛰어난 지적 성취를 이룬 흑인을 만나면 ‘흑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대사를 칭찬이랍시고 치게 된다. 작가가 미리 생각해둔 프로그램이 인물의 대사가 되어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 관객은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 P58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처음 방문하는 그 낯선 세계에서 나는 허용된 시간만큼만머물 수 있다. 그들이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 나는 떠나야 한다. 더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또다시 낯선인물들로 가득한 세계를 찾아 방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자 마음이 참 편해졌다.
지금 와서 읽어보면 의미심장하다. 저 소설을 쓰던 2013년에 나는 막연하게나마 내가 어떻게 이렇게 진득하게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왜 다른 일로 달아나지 않았는지 감을 잡고있었던 것이다. 소설 쓰기는 나에게 여행이고, (비록 내가 창조했지만) 낯선 세계와 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입력된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자유의지라는 것이 때로 허망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우리내면의 어떤 허깨비와 싸우는 것일지도. 그게 뭔지도 모르는 채로. - P62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을 다룬 소설들은 어김없이 그들이 오래 살아온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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