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중국의 고대 병법서 『삼십육계』의마지막 부분은 「패전계」로 적의 힘이 강하고 나의 힘은 약할 때의 방책이 담겨 있다. 서른여섯 개 계책 중에 서른여섯번째, 즉 마지막 계책은 ‘주위상走爲上‘으로, 불리할 때는 달아나 후일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흔히 ‘삼십육계 줄행랑‘이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온 것이다. 근대 이후로 인간은 자연과 세계를 개조하고 통제하며 발전해왔고, 그런 정신을 이어받은 자기계발서들은 우리에게 주변의 문제들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고대의 지혜에 끌린다. 인생의 난제들이 포위하고 위협할 때면 언제나 달아났다. 이제 우리는 칼과 창을 든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른 적, 나의 의지와 기력을 소모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대결한다. 때로는 내가 강하고, 때로는 적이 강하다. 적의 세력이 나를 압도할 때는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삼십육계의 마지막 계책을 써야 한다.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알 것이다. - P67

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철학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사상은 옥수수 같은 곡물과 달리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것. 인맥이나 터전에 얽매인 직업, 대표적으로 정치인이나 농민과는다르다고 말한다. - P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펜서는 <청각 장애 아동을 두려움에 떨게 놔두지 않으려면 그 부모가 먼저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해요. 우리 부모님은 내가 두려움을 느끼지않도록 하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말했다. - P155

구화법주의와 수화법주의 간의 논쟁과, 수화를 이용해서 가르칠 경우에는 전적으로 수화만을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수화와 구어를 병행하여교사들이 말을 하면서 동시에 수화를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통합적 의사소통>이나 <동시 의사소통> 같은 기술로 진행되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싼논쟁이 여전히 뜨겁다." 이런 통합적 의사소통이나 동시 의사소통 같은방법은 청각 장애 아동에게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경로를 제공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서로 무관한 문법과 통사론을 통합하려는 시도가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테면 구어와 수화에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수화를 하면서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중국어로 글을 적으면서 영어로 말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어는 단어들이 정해진 순서대로 발화되는 순차적인 언어다. 청자의 단기 기억력은 한 문장으로 연결된 단어들을기억하고 그 단어들의 상호 관계에서 의미를 추출한다. 한편, 수화는 동시언어라서 개별적인 각각의 수화가 합쳐져서 복합적인 의미를 만든다. 예를 들어, 하나의 복잡하고 유동적인 동작만으로 그는 이스트 코스트에서 웨스트 코스트로 이사했다>라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모든 수화에는 손의 형태, 그 형태가 만들어지는 몸에 밀착하거나 근접한 위치, 방향을 가리키는 움직임이 포함된다. 여기에 더해서 얼굴 표정은 감정을 전달할 뿐 아니라 개별적인 수화 동작들에 대해서 구조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표정과 수화의 조합은 단기 시각 기억만 이용할 때보다 훨씬 효과적인데 이는 단기 시각 기억이 청각 기억보다 적은 숫자의 별개 이미지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수화로 먼저 <그는>, 그다음에 <이스트 코스트>, 그다음에 <에서> 등의 방식으로 말하려고 한다면 물리적인 노력이 너무 많아질 뿐더러 논리도 없어질 것이다. 여러 가지 다른 단어들을 동시에발음해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뒤죽박죽된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도출될 것이다. 따라서 영어를 말로 하듯이 단어 하나하나씩 표현하는, 이를테면 <정확한 수화 영어>나 <피긴 수화 영어>, <개념상 정확한 수화 영어>처럼 수화로 암호화된 영어 형태는 대체로 이미 말을 배우고 난 다음에 후천적으로 청각을 잃은 사람들이 선호한다. 그런 사람들은 구어에 기초한 사고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입장에서는 구어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수화가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표현수단으로 적합하지 않은 문법이 직관적으로 이해될 리 만무한 까닭이다. - P156

대부분의 사회에서 청각 장애 관련 쟁점은 언어학적 예외에 속한다. 그런데 나는 수화를 공용어로 삼는다는 맥락의 개념에 흥미를 느꼈다. 발리 북쪽에 있는 벵칼라라는 작은 마을에는 선천적인 형태의 청각 장애가250년간 계속 이어져 왔고 전체 인구의 2퍼센트 정도는 항상 청각 장애인이다. 벵칼라의 모든 주민은 청각 장애인과 함께 성장하고, 이 마을에서만 사용되는 독특한 수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쩌면 건청인과 청각 장애인 간 경험 단절의 폭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좁을 것이다. - P158

 크리스티나 팔머가 말했다. 「우리는 농인 민족성 가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요컨대 건청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다른 농인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거나 농인 커뮤니티에 대해 배우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들의 문화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없어요‘ 구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청각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에게 부담이 된다면, 수화를 사용하기로 하는 결정은 세력 기반의 이동을 초래하여 다른 건청인 가족 구성원에게 이해와 관련해 보다 큰 부담을 지운다. 실제로 부모는 그들 자신이 수화를 배워서 청각 장애가 있는 자식과 항상 서투른 수화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니면 아이에게 구화법을 강요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부모는 그 아이가 언제나 서투른 말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할 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익숙한 격언 중 하나는 자식이 부모를 위해 희생하기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화를 당연한 선택으로 여기는 것은 비주류가 주류를, 또는 주류가 비주류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어느 한쪽의 비전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행위다. - P175

기업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존스 홉킨스와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연구에 따르면, 기타 청각 장애 시설을 이용하는 비용과 비교할 때 인공와우이식수술을 받으면 청각 장애 아동 한 명당 평균 5만 3천 달러가 절약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다 복잡한 계산법이 필요하다. 인공와우이식수술을 받더라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고 그 결과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식수술을 받지는 않았지만 일찍부터 수화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청각 장애인은 정신적 외상을 유발할 정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느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만큼 많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건청인 부모들은 인공와우이식수술 문제를 간단하게 생각하기 쉽다. 한 어머니가 말했다. 「만약 당신의 아이에게 안경이 필요하다면 당신은 안경을 해줄 겁니다. 다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의족을 해주겠죠. 똑같은 거예요.」 또 한 어머니는 만약 내 딸 도로시 제인이 스무 살이 되어서도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수술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요컨대 나는 내딸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이식수술을 받고 건청인 그룹으로 재분류된 사람들에게는 만약 그들이 장애인이었다면 받게될 혜택이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식수술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마치 <치료법>이 있음에도 장애를 <선택>했고,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동정>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이식수술이 존재함으로써 다른 청각 장애인들의 장애 상태가 폄하될 수 있다. - P181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어요. <내게는 청각 장애가 있는 아들한 명이 있고, 내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 아들이 세 명 더 있어요.> 이기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로리가 나와 함께 노래도 하고 기타도 연주하길 바랍니다. 반대로 로리는 내가 수화를 능숙하게 구사하길 바라죠.
나는 이런 논쟁에서 항상 자녀가 승리해야 하는지, 자녀의 역할은 단지 존재 그 자체인 반면에 부모의 역할은 위기에 잘 대처하는 것이라고 명시된 일종의 문서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밥 오스브링크는 내가 인터뷰한 다른 많은 사람들에 비해 자긍심도 강하지만 동시에 보다 우울한 듯보였다. 로리는 세 살 때 청능을 잃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부모나 자녀의 인생에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나는 밥의 아쉬움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예컨대 한 번은 음악에서 또 한 번은 스포츠에서 아들과 깊은 유대를 잃어버린 데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의 설명이다. "내가 놓쳐 버린 것들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이를테면 로리가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마치 이해한 것처럼 행동했을 때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요. 다른 사람들이 웃을 때 같이 웃고 있었지만정작 무슨 농담이었는지도 몰랐던 거예요. 로리가 청각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했을 그 모든 일을 여과 없이 다 겪어야 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내 가슴 한편에는 늘 그로 인한 슬픔이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로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슬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 P1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부분의 건청인은 청각 장애가 청능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 청각 장애인은 청각 장애를 청능의 부재가 아니라 청각 장애의 존재로 본다. 농문화는 하나의 어엿한 문화이자 삶이며, 언어이면서 미학적특징이고, 신체적인 특징이자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지식이다. 이 문화에서는 건청인의 경우와 달리 몸과 마음의 긴밀한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들에게 언어란 단지 혀와 후두의 제한된 구조가 아니라 주요한 여러근육 조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인 까닭이다. 사회 언어학의 초석중 하나인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르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작고하기 불과 얼마전인 2000년에 윌리엄 스토키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수화가 구어와 얼마나 비슷한지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어요. 수화의 유효성을 확립하기 위해서였죠. 일단 수화의 유효성이 폭넓게 수용되고 나면 우리는 보다 흥미로운 주제, 즉 수화와 구어의 차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수화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삶을 인식하는 방식과 그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건청인이 삶을 인식하는 방식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수있답니다‘ - P119

레이철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선 활동에 참여했고, 언젠가 건청인 세계를 향한 혼란스럽고 비생산적인 적대감을 발견했다. 「나는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 커뮤니티에 사춘기가 길어지도록 종용하는 무언가가 있다는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사춘기가 자기 자신을 경험하는 방법으로서는 효과적이지만 보다 넓은 세상에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아요」 정치적 성향을 띤 농인 커뮤니티를 곤란해하기는 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청각 장애에도 어느 정도 자긍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적어도 청각 장애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면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이철이 말했다. 찰리가 자기와 같은 기숙사에 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생각나요. 그 소년은 밤마다 자신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찰리가 그러더군요. <엄마,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게 정말 슬프지 않아요? 그렇죠?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예요.> 나는 <아, 우리가 제대로해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P1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윌리엄은 조잡하고 몸짓에 불과한 의사소통 시스템으로 간주되었던 수화에 수화 특유의 논리적인 규칙과 체계를 바탕으로 한 복잡하고 심오한 문법이 존재한다고 증명했다. 수화는 대개 좌뇌 (언어를 관장하는 영역이며 수화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 영역에서 소리와 문자화된 정보를 처리한다)의 영향을 받는다. 우뇌(시각적인 정보와 몸짓의 감정적인 내용을 처리한다)의 영향력은 훨씬 미미한 수준이다. 영어나 프랑스어, 중국어로 이야기할 때도 수화를 사용할 때와 동일한 핵심적인 능력들이 발휘된다. 물리적인 충격으로 좌뇌에 손상을 입은 청각 장애인은 여전히 몸짓 언어를 이해하거나 스스로 표현할 수 있지만, 수화를 사용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은 잃게 된다.‘ 좌뇌가 손상된 건청인이 이전처럼 표정을 짓거나다른 사람의 표정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말을 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은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경 촬영법을 통해 확인해 보면 어릴 때 수화를배운 사람은 수화 능력이 거의 대부분 언어 영역에 보관되지만, 어른이 되어 수화를 배운 사람은 시각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뇌 영역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신경학적인 생리 기능이 수화를 언어로 받아들이려는 생각과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103

언어가 결여된 채 사고하는 행위를 상상할 수 없듯이 사고가 결여된채 언어를 구사하는 행위도 상상할 수 없다. 의사소통 능력의 부재는 정신병이나 기능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난청이 있으면 언어능력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연구자들은 교도소 수감자 중 3분의 1 이상이 청각장애나 난청이 있다고 추정해 왔다. 청각 장애가 없는 보통의 두 살짜리 아기는 300개 정도의 어휘를 사용한다. 반면 건청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보통의 두 살짜리 청각 장애 아동은 30개 정도의 어휘를 사용한다." 부모가 높은 수준으로 개입하는 가정과 수화를 배우고 있는 가정을 제외하면이 수치는 더욱 극적으로 줄어든다. 아이오와 대학에서 문화사를 가르치는 더글러스 베인턴Douglas Baynton 교수는 <중증 청각 장애인이 어린 나이에 영어로 말하는 법을 배울 때의 어려움은 건청인이 방음된 유리 상자에갇혀 일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수화를 금지한다고 청각 장애 아동이 발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어능력을 저하시킬 뿐이다. - P105

청각 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청각 장애 아동은 건청인 부모를 둔청각 장애 아동보다 대체로 더 높은 수준의 성취도를 보인다. 흔히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듯이 청각 장애인의 청각 장애 아동은 집에서 제1언어로 수화를 배운다. 그들은 집에서 전혀 구어를 사용하지 않을뿐더러수업을 수화로 진행하는 학교에 다니지만, 건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집에서 구어를 사용하며 일반 학교를 다니는 청각 장애 아동에 비해 보다 유창한 문어 능력을 개발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청각 장애인의 청각 장애 아동은 수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성숙함이나 책임감, 독립심, 사교성, 낯선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려는 의지에서도앞서 있다.
헬렌 켈러는 <시각 장애는 사물과 우리를 차단하지만 청각 장애는 사람과 우리를 차단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많은 청각 장애인에게 수화를 통한 의사소통은 들을 수 없다는 사실보다 훨씬 의미가 있다. 수화를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를 사랑한다. 설령 그들이 건청인 세계의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같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장애학을 가르치며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아이CODA>인 작가 레너드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도 나는 수화로 <우유>를 언급할 때 발성을 통해 그 단어를 이야기할 때보다 훨씬 우유 같은 느낌을 받는다. 수화는 춤으로 표현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손가락과 얼굴이 끊임없이 그들만의 파드되를 연출한다. 수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동작이 그들과 동떨어진 의미 없는 몸짓으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수화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몸짓을 보고 그 안에서 아주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건청인들이 이를테면 <마른>, <건조된>, <몹시 건조한>, <바싹 말라 버린>, <수분이 하나도 없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유사한 의미에 정도의 차이를 둠으로써 재미를 발견하듯이, 청각 장애인도 수화를 표현하는 동작에 미묘한 변화를 줌으로써 유사한 구분을 만들 수 있다. 재키 로스가 말했다「우리는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항상 수화를 사용했다. 어면 이론으로도 우리의 언어를 죽일 수 없었다.」 - P1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생애 첫 해외여행은 중국이었다. 모두가 진로를 모색하던 4학년 2학기까지 나는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11월이 되어 새로운 집행부가 선출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겨울방학의 초입에 학생처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는 학생회의 힘이 대단해서 학생처는 그저 커다란 말썽 없이, 즉, 운동권들이 총장실을 점거한다거나 하는 사건 없이 하루하루가 무탈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랄 때였다. 나는 가끔 학생처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그때마다 바로 튀어나와 나를 진정시키고 사태를 해결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예를 들어 학생회 간부들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이 있었는데, 그 장학금 대상이나 액수가 줄어든다거나 할 때가 있었다. 그 장학금은 개인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회나 운동 정파 내부의 비자금으로 쓰였다. 공식 예산으로 근거를 남기면서 할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 장학금으로 문건도 인쇄하고 수배자의 도피 자금도 제공하고 전단지도 만들어 뿌렸다. 그런 돈을 줄인다는 것은 바로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이다라고 우리는 생각했고 그럴 때가 바로 내가 학생처 문을 손으로 여는 대신 발로 차고 들어가야 할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 P30

중국에서의 나는, 그리고 나와 함께 여행한 운동권의 ‘동지‘들은 어떤 면에선 유럽에서 열심히 필기만 잔뜩 해온 나의 아버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사회주의 중국에 뭔가를 배우러 간다고 생각했다. 천안문 사태의 진실도알고 싶었다. 국내 언론들이 사회주의 중국을 폄훼하기 위하여 진상을 조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사회주의의 미래를 확신하는 젊은 청년들을 만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소망적 사고였을 뿐이었다. 자신이믿고 있던 것들이 아직은 건재하리라는 희망. 현실보다 믿음을 우선하는 태도였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 P35

후배와 나는 토플 같은 것은 공부해본 적 없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으로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승리할 것이라 믿었고, 미국이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라고 생각해 미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중국의 엘리트들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몇 달 전에 있었던 천안문 사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애매한 미소만 짓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소비에트의 해체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대신그는 우리에게 미국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없다고 대답했고 그는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우리는 많은 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사회주의 중국에 환상을 가진 서울의 대학생과 자본주의 미국으로유학 가는 게 꿈인 베이징 대학생의 대화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 이어졌다.  - P41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P51

 역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인물의 내면이다. 윤리적 태도, 성에 대한 관념, 정치적 성향 등, 십여 개의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다보면 인물에 대해 좀더 또렷한 윤곽이 그려진다. 그런데 인물의 내면 부분에서 내가 제일 고민하게 되는 항목은 ‘프로그램‘이다. 노아 루크먼은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믿음에 더 좌우된다.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된다.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 같은 고정관념도 프로그램이라 할수 있다. 이런 인종차별주의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백인은 어쩌다 뛰어난 지적 성취를 이룬 흑인을 만나면 ‘흑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대사를 칭찬이랍시고 치게 된다. 작가가 미리 생각해둔 프로그램이 인물의 대사가 되어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 관객은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 P58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처음 방문하는 그 낯선 세계에서 나는 허용된 시간만큼만머물 수 있다. 그들이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 나는 떠나야 한다. 더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또다시 낯선인물들로 가득한 세계를 찾아 방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자 마음이 참 편해졌다.

지금 와서 읽어보면 의미심장하다. 저 소설을 쓰던 2013년에 나는 막연하게나마 내가 어떻게 이렇게 진득하게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왜 다른 일로 달아나지 않았는지 감을 잡고있었던 것이다. 소설 쓰기는 나에게 여행이고, (비록 내가 창조했지만) 낯선 세계와 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입력된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자유의지라는 것이 때로 허망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우리내면의 어떤 허깨비와 싸우는 것일지도. 그게 뭔지도 모르는 채로. - P62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을 다룬 소설들은 어김없이 그들이 오래 살아온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 P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