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낭만적인 인간이 아닌지라 저런 조언을 그냥 ‘걱정에 압도되면 안 된다‘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하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삶이 망가지는 사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자세가 파국을 낳는 과정을 몇 번 봤다. 따지고 보면우리 뇌가 맡은 임무가 바로 걱정이다. 인간의 뇌는 자연이 만든 최고의 시뮬레이터다. 엄청난 산소를 소비하며 눈앞에 없는각종 상황을 쉬지 않고 시뮬레이션한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보다 훨씬 더 뛰어난 생존 도구다. 그 고급 도구를 사용하는대가로 우리는 끊임없이 앞날을 두려워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것들을 걱정한다. 불확실성이 주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나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키팅 선생님 말씀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에 더끌리는 편이다. 사실 내 생각은 좀더 암울한데, 세상 누구도 미래를 자기가 원하는 그 모습 그대로 창조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건 신의 영역이다. 내 생각에는, 사람은 비전을 만들고 거기에 기대 불안을 다스릴 수 있다. 비전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런 비전조차 힘을 발휘한다. - P205
사람이 도덕 판단의 기준을 몇 종류나 가졌는지에 따라 정치성향이 좌우된다는 도덕심리학 이론도 있다. 그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는 어떤 일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지, 그리고 공정한지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는 거기에 더해 공동체에 대한 헌신, 질서에 대한 존중, 고귀함을 향한 노력 같은 요소도 고려하는 것 같단다. 내게는 현대 심리학자들보다 20세기 정치 이론가 러셀 커크의 말이 더 다가온다. 커크는 진보의 가치를 인정하는 보수주의자였다. 다만 커크에 의하면 보수주의자는 보다 신중하다. 사회가 복잡한 유기체임을 이해하고, 인간의 지혜가 불완전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모든 걸 걸지 않고 전통을 존중한다. 변화의 시대에 인기 없는 태도겠다. 그래도 불확실한 접근법보다 오랜 가치를 극적인 돌파구보다 흔들림 없는 원칙을, 순간의 감홍보다는 일관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지닌 이에게 품격이 깃들 수는 있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품격은 가치, 원칙, 일관성을 위해 이익, 자존심, 감정을 억누를 때, 다시 말해 책임을 피하지 않으며 잘못을 인정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 P209
두려워하는 사람은 애도하지 않는다. 애도는 타인을 향하는마음인데,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살아야겠다는 욕구가 그를 휘감는다. 나는 2022년 10월29일 서울 한복판에서 있었던 참사를 현정부가 애도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은 탄핵될까봐 겁에 질렸다. 그래서 추모의 방식을 통제하려 든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여러 말들을 마찬가지의 이유로 의심한다. 자신이나 진영의 이익을 염두에 둔 꿍꿍이가 섞여 있는 것이 훤히 보여서다. 대통령 부부가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합성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비나이다~‘라고 적은 신부와 그걸 패러디라고 옹호한 또다른 신부도 이해할 수 없다. 깊은 슬픔은 사람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만든다. 슬퍼하는 자는 칼럼을 쓸 수 있는가. 애도하는 인간은 타인을향해 속셈이 있다거나, 겁에 질렸다거나, 경건하지 않다며 비판할 수 있는가. 모르겠다. 사회 전체가 정략으로 음탕해졌고, 아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암담한 기분이 든다. 누구도 온전히 슬퍼할 수 없는, 그런 시대에 비극을 겪은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 - P214
무엇 때문에 그리 신이 났는지 두 녀석은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 앞에서 까불고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차로 옆에서 그렇게 노는 것은 위험하다고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꼬마들이 신나게 까불며 자라서 젊음을 만끽하고, 대형 공연을 구경하고, 축제의 열기에 흠뻑 젖기를 바랐다. 핼러윈도 즐기기를 소망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채 차가 오지는 않는지, 아이들이 차로에 뛰어들지 않는지만 살폈다. 여차하면 달려들어 불상사를 막을 수 있게. 꼭 필요하다면 내 몸을 차도로, 자동차 앞으로 날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어른의 임무를 생각했다. - P215
친구는 상사가 아니다. "너 그거밖에 못해? 지금 시간이 모자라는데 꼭 잠을 자야 해?"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내 친구일 수없다. 그런 친구가 있다면 단호하게 "나는 네 부하가 아니다"라고 대꾸해줘야 한다. 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꿈이 ‘지금 임금이 밀리고 추행을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나를위해 참으라‘고 속삭인다면 결연하게 거절하라. 꿈은 동반자이지, 삶의 주인이 아니다. 아무리 속으로 친구라고 믿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랫동안 만나지 않으면 결국 멀어진다. 두어 달에 한 번씩이라도 짬을 내 안부를 물어야 한다. 서로 어떤 처지인지 살피고 상대에게 관심이 있음을 확인해야 우정이 유지된다. 꿈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게도 꿈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걸작을 쓰는 것이다. 바로 그 꿈 덕분에 내가 바라봐야 할 곳을 정확히 알게 되고, 남을 시기하지 않게 된다. 이 친구와 오래도록 깊고 다정한 대화를나누며, 단단하고 풍성하게 살고 싶다. - P234
근대 시민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삼국지를 이중으로 소비한다. 충, 의, 천하 같은 단어를 비유로 받아들이고, 그런 현대적해석을 인간관계와 처신에 적용한다. 유비가 조운 앞에서 제아들을 집어던졌듯, 타인의 마음을 사려면 화끈하게 내 걸 버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식으로 『삼국지』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를 칼럼에 써먹는 일과 비슷하다. 그러나 삼국지를 읽는 동안에는 그냥 전근대인이 되어버린다. 삼권분립이나 일사부재리원칙이 사람 마음을 뜨겁게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한 개인이 수십만 대군 앞에 당당히 서고, 흉기를 들고 일대일로 적과 무술을 겨루며, 흠모하는 상사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버리는 모습에 열광한다. 다들 마음 깊은곳은 고대인이다. 한데 그런 분리가 그리 깔끔하게 이뤄지지는 않는 것 같다. 다른 이의 세계관을 탐닉하다보면 결국 거기에 젖는다. 그 시대의 눈으로 주변을 보게 된다. 소설가 김훈이 "나와 내 또래 남자들은 『삼국지』를 너무 많이 읽어서 이 모양이 아닌가 싶을 때가있다"「우리 또래는 三國志를 읽어서 망했다」, 조선일보, 2017. 6. 30.)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주 잘 알 것같았다. - P407
아마 이런 예상은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내가하는 예상이건, 다른 이들이 펼친 예상이건, 모두 들어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 잡지 와이어드의 초대 편집장 케빈 켈리가 거의 삼십 년 전에 사용했던 표현들을 빌리고 고쳐서 써본다.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이 섞여 생태계를 이루고, 거기에서 새로운 야생이 태어날 것이다.‘ 그 야생의 생태계가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모른다. 어쩌면 모두가 걱정하는 인간의 일자리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끝까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다들 그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여기니까. 그리고 우리는 일자리를 지키는 대신 개인, 예술, 의미 같은 개념을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 뭔가가 무너지기는 할것 같다. -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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