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어딘가로 자꾸만 사라져 버리는 창밖 풍경을 내다보았다. 그렇다면 ‘거기에 있었다‘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인지 의문을 품은 적은 없을까? 지금은 그저 몇 토막의 추억만 떠오르는, 프랑스에서 보낸 이 주. 중세 도시의 오래된 성벽에서 갑자기 엄습한 허기, 포도 덩굴로 뒤덮인 지붕 밑 카페에서 보낸 어느 저녁나절. 노르웨이는 또 어땠는가. 호수의 차가운 냉기,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던 한낮, 상점이 문 닫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산 맥주, 숨 막히게 아름다웠던, 난생처음 본 피오르의 풍경.
"제가 본 것들, 그건 모두 제 것입니다." - P41

가방에서 끄집어낸 물건들로 잔뜩 어질러진 방 한가운데, 옷을입은 채로 그가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다. 그의 시선은 물건들이 만들어 낸 별자리와 같은 문양, 그것들의 형상, 놓인 위치와 가리키는 방향을 유심히 관찰한다. 이것은 어쩌면 징조일지도 모른다. 거기 어딘가에 그에게 발송된 편지가 있다. 아내와 아이의 문제에 관한 편지. 하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의 문제에 관한 편지. 글자도 모르겠고 기호도 모르겠다. 그러하니 아마도 인간의 손이 쓴 편지는 아닌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호들이 그와 연관되어있음은 명백하다. 그가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들이 보인다는 것, 그 자체가 신비로운 일이다. 아니, 그가 지금 바라보고 있다는 것, 나아가 그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놀라운 신비다. - P80

하지만 시간에 대해 나는 의견이 다르다. 모든 여행자의 시간은수없이 많은 시간이 하나로 모인 결합체다. 그것은 혼돈의 대양속에서 정리된 시간, 섬과 군도의 시간이다. 기차역의 시계가 만들어 내는 시간, 가는 곳마다 달라지는, 그때그때 약속된 시간이자 자오선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오후와 저녁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온다. 그저 잠시 머무는 대도시에서의 빡빡한 시간은 하룻저녁을 송두리째 바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행기에서 목격할 수 있는, 인적 없는 평원의 느긋한 시간이 있다.
나는 세상이 뇌 속에, 그 주름 속에, 솔방울샘 안에 있고, 목구멍 안에 걸려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라는 이름의 구체(球體). 그래서 그것은 기침으로 쏟아 내거나 침으로 뱉어 낼 수 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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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있다

나는 서너 살이다. 창틀에 앉아 있는데, 주위엔 온통 널브러진 장난감들, 거꾸로 처박힌 블록 탑들, 눈이 불거져 나온 인형들. 집안은 컴컴하고 방마다 공기가 차갑게 식어 흩어지고 있다. 아무도 없다. 다들 떠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점점 사그라드는 그들의 음성, 발소리의 메아리, 웃음소리가 멀어져 가며 계속 귓가에 울린다. 창밖은 텅 빈 정원. 어둠이 하늘에서 내려와 조용히 번져 가며, 마치 검은 이슬처럼 만물에 내려앉는다.
가장 끔찍한 것은 정적, 두 눈에 생생히 보이는, 끈적거리는 그것, 차가운 석양, 그리고 불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나트륨램프의 가녀린 불빛. - P11

별로 크지 않은 그것은 오드라강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 역시 작은 아이였다. 강의 위상을 결정짓는 건 크기에 따른 순위다. 나중에 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그리 대단치 않은 평범한 강이었지만, 그래도 존재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마존 여왕의 궁전에 초대된 시골 자작 부인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당시의 내게는 충분히 거대했다. 오랜 세월 아무런 속박도 당하지 않으면서 마음껏 흐르고, 범람의 기운이 충만한, 예측 불가능한 강. 강변 근처 어디쯤에서는 물속에 잠긴 장애물이 물줄기를 가로막아 소용돌이를 일으키기도 했다. 강은 유유히 퍼레이드를 하면서 저 멀리 북쪽어딘가, 수평선 너머에 감춰진 자신의 목적지에 집중했다. 강물을 쉼 없이 응시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수평선을 따라 시선을 위쪽으로 옮기다 보면 어김없이 균형감을 잃곤 했기 때문이다. - P14

한 번이라도 소설 쓰기를 시도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안다. 그건 아마도 스스로에게 부과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업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홀로 두고, 좁은 1인용 방에 가두고, 완전한 고독 속에 빠져들어야만 하니까. 그것은 통제할 수 있는 정신병이고, 스스로에게 작업의 족쇄를 채우는 강박적인 편집증이며, 그것도 우리가 잘알고 있는 만년필이나 버슬, 베네치아의 가면 따위는 모두 버리고, 정육점 도살업자의 앞치마를 입고, 고무 장화를 신고, 손에는 내장을 제거하는 칼을 들어야만 하는 일이다. 작가의 지하실에서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다리가 보이고 구두 굽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누군가가 멈춰 서서 몸을 숙여 창문을 들여다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비로소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몇 마디 대화도 나눌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급히 설계한 ‘호기심의 방‘에서 저절로 진행되고 있는 자신의 게임에 온 정신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임시로 세워 놓은 무대에 말들이 올려진다. 작가와 주인공, 작중 화자와 독자, 서술하는 자와 서술당하는 자. 발과 구두, 구두 굽과 얼굴 들은 언젠가는 그 게임의 일부가 된다. - P27

망가지고 손상되고 상처 나고 부서진 모든 것에 자꾸만 끌리는것. 이것이 나의 증상이다. 시시한 것들, 뭔가를 만들다가 발생한 실수, 막다른 골목. 좀 더 발전할 수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더이상 뻗어 나가지 못한 것들,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즉 애초의 설계에서 너무 많이 확장된 것들 말이다. 표준을 벗어난 것, 너무 작거나 너무 큰 것,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 끔찍하고 역겨운 것. 좌우대칭이 어긋난 모형,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사방으로 번식하고, 싹을 틔우는 것, 혹은 그 반대로 수많은 개체가 하나로 줄어든 경우도 그렇다. 반면에 통계 수치에 따라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 예를 들어 모두가 흡족한 표정으로 화목한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축하하는 풍경은 내게 아무런 흥미도 일으키지 못한다. 내 감수성은 기형학(畸形學)이나 괴짜를 향하고 있다. 나는 이런 기형의 상태 속에서 존재가 참모습을 드러내고 본성을 나타낸다는 고통스럽고도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갑작스럽고 우연한 출현. 당황해서 튀어나오는 "아이쿠." 소리, 완벽하게 주름 잡힌스커트 아래로 삐져나온 속치마 솔기, 벨벳 의자 덮개 밑에서 돌연 모습을 드러낸 흉측한 금속 받침대, 부드러움에 대한 환상을 뻔뻔하게 깨뜨린, 푹신한 안락의자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스프링 하나.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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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가 모든 것을 조종한다고 믿는 과학자로서의 내 삶이시작된 것이다. 자유의지와 신에 대한 믿음은 이 3학년 때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 무렵, 한때 뉴욕의 교구에서 ‘올해의 가톨릭 소년‘이었던 내가 가톨릭교회를 떠났다. 나는 교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스테이플턴 신부에게 다가가 나의 불신에 관해 말하고 공식적으로 마지막이 될 고해를 부탁했다. 신부는 껄껄 웃으면서 "신부들은 보통사람들이 교회에서 나가는 걸 도와주지는 않는데"라고 했지만,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품행이 바르고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그리스도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투스의 가르침을 섭렵한 학생이었다. "자네한텐 교회가 더는 필요 없을뿐더러, 실은 교회가 자네를 미치게 하고 있어. 강박증을 비롯한 온갖걸로 말이야." 신부의 말과 함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나는 자유와 홀가분함을 느꼈다. 마치 스위치가 탁 켜져서는 나의 뇌 안에 (과신에 가까운) 긍정적이고 공격적인 에너지가 가득 채워진듯했다. - P59

2005년, ADHD,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PTSD, 알츠하이머병 같은 정신장애를 연구하는 정신과의사 다니엘 에이먼 Daniel Amen이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에이먼은 수십 년동안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일반 살인마의 뇌 스캔 사진 약 50개를 모았는데, 내가 거기에서 어떤 패턴을 발견할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나는 에이먼에게 그 사진들을 보내되, 꼬리표를 떼고 다른 스캔 사진들(건강한 피험자, 조현병 환자, 우울증 환자들의 뇌 사진)과 섞어달라고 했다. 피험자에 대해 알지 못하는 맹검과정 blind process을 따랐던 것이다. 맹검은 우리가 데이터에서 지각하는 패턴이 사전지식과 피험자를 향한 편견의 영향을 쉽게 받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모든 뇌를 살펴보고 나니, 나는 뇌 회로 패턴들을 두 가지 살인자유형을 비롯해 몇 가지로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맹검암호를 죄다 해제하고 각 집단마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보게 된그 순간, 나는 그 정보가 무엇을 예고하는지를 알아차리고 얼어붙어버렸다. - P69

전전두피질의 배측과 그 부분을 상호연결하는 피질하subcortical영역들은 ‘차가운 인지 cold cognition‘ 즉 지각, 단기기억, 실행기억, 계획, 규칙 만들기 등의 사고 처리와 연관된다. 이 같은 사고를 생성하는 일뿐 아니라 적절한 맥락에서 정해진 성공과 실패의 규칙에 따라 여타의 사고를 억제하는 일 또한 담당한다. 삶은 스크래블이든 골프든 사업이든 간에 규칙과 우연으로 가득하고, 배측전전두피질 dorsal prefrontal cortex은 당신에게 충동에 따라 행동해도 괜찮을 때(게임에서 패를 내거나 공을 때리거나 주식을 사야 할 때)와 그래선 안 되는 때를 알려준다. 안와피질과 복내측전전두피질 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로 크게 구분되는 아래쪽, 즉 복측의 전전두피질 또한 비슷한 기능에 관여한다. 하지만 ‘뜨거운 인지 hot cognition‘, 다시 말해 정서기억과 사회, 윤리, 도덕을 바탕으로 한 행동을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는 일에 더 많이 관여한다. 배측전전두계 기능이 뛰어난 사람은 계획과 실행 기능이, 복측전전두계의 기능이 뛰어난 사람은 충동적이고 부적절한 대인관계와 사회적 행동을 제어하는 데 우월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두 계의 기능이 부실하면 이런 고차원적인 행동을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제어하지도 못하게 된다. - P77

남들과 관계를 맺는 데는 차가운(합리적) 인지도 필요하고 뜨거운(정서적) 인지도 필요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적절한반응은 무엇일지 이해도 해야 하고, 남들의 느낌과 마음에 공감할(상대방이 경험할 느낌과 마음을 실제로 흡사하게 ‘느낄‘)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뜨거운 계통, 이를테면 안와피질이 손상된사람은 남들의 사고도 예측할 수 없지만 자신의 느낌을 공유하지도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공감empathy과 ‘마음이론 theory of mind‘을 나눌 수 있는데, 공감은 남들의 아픔에 대한 기본적 연대감으로서 생애의 매우 초기에 발달하고, 마음이론은 더 정교한 내측전전두계medial prefrontal system에서 우리로 하여금 남들의 사고와 믿음을 비록자신의 것과 다를지라도 고려할 수 있게 해준다. 자폐장애 환자는 마음이론이 없지만 공감을 못하지는 않는 반면, 사이코패스는 공감을 못하지만 마음이론이 없지는 않다. 사이코패스는 공감은 못해도 동정 sympathy을 할 수는 있다. 동정은 정서기억을 인출하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고통스러운 사건이 닥칠지를 예측하는 능력과 그 사람을 도우려는 의지의 결합물이다. - P79

뉴런들이 연결되어 이루는 이른바 고리 Loop 수백만 개가 대뇌기저핵을 통과하면서 시상, 시상상부 epithalamus, 시상밑부 subthalamus시상하부 hypothalamus라 불리는 시상구조와 뇌간, 소뇌 회로cerebellarcircuit와 같은 피질하의 간이역들과 함께 피질의 명령 정보를 통합한다. 이 고리 가운데 일부는 똑같은 뇌 영역들을 연결하는 닫힌(또는 직접적) 되먹임 고리 closed feedback loop인 반면, 일부는 양상이 서로 다른 지각, 감정, 의식, 주의, 계획, 의지를 통합하기 위해 정보를 인접한 뇌 경로로 전달하는 열린 고리 open loop다.
고리마다 평행한 두 경로가 들어 있는데, 하나는 행동을 유발하는 ‘해‘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하지마‘ 경로다. 이 두 경로가 운동뉴런 motor neuron 으로 수렴되면 운동뉴런이 ‘해‘(흥분)와 ‘하지마‘(억제)를 합산해 당신이 움직일지 말지를 결정한다. 도파민은 고리에서 ‘해‘ 경로 켜기와 ‘하지마‘ 경로끄기를 동시에 하는 까닭에, 당신이 소파에 누워 TV로 경기를 보다가 맥주를 가지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을 때 스위치가 켜지는 주요 신경전달물질이다. 도파민 세포가 죽어버린 사람들은 소파에서 일어설 능력이 없다. 파킨슨병이 있는 사람들은 일어서려는 의지(전전두피질)도 있고 일어서서 걷기 시작한다는 계획(전운동피질)과 명령신호(운동피질)도 있지만, ‘해‘ 경로를 활성화하고 ‘하지마‘ 경로를 불활성화하는 도파민이 없어서 동작을 시작하지 못한다.
뇌 안에서 닫힌 회로와 열린 회로 수백만개가 피질과 피질하 영역을 연결하고 있어서, 뇌의 넓은 영역은 가장 단순한 행동에까지 관여하게 된다. 그래서 PET나 MRI 스캔 또는 뇌전도electroencephalography,EEG를 관찰하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피질과 피질하 영역 둘다에서 많은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 P80

활동이 소실된 이들 영역 모두로 구성되는 뇌의 주요 덩어리를 변연피질 Limbic cortex, 또는 감정을 조절하는 주된 영역이라는 이유에서 감정피질 emotional cortex이라 부른다. 이 피질 기능 소실의 고리는 완전한 원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내가 주목한 것은 안와피질, 대상피질, 측두피질 temporal cortex의 ‘연결장치‘ 역할을 하는 피질조각인 섬엽 insula도 이들 사이코패스 살인자에게서 손상이나 기능저하의 징후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사이코패스의 뇌에 관한 이전의 연구에서는 대부분 안와전두피질 orbital prefrontal cortex 및 복내측전전두피질과 편도체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내가 채워 넣은 부분은 불안 및 공감과 관계 있는 다른 영역들을 확인해주는 동시에 사이코패스들이 때로는 그토록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설명해주었다. 나는 이 패턴의 단순성과 우아함에 들뜬 나머지 어쩌면 내가 인간의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이해하는 성배를 발견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두엽, 특히 전전두피질의 아래쪽(복측)과 안쪽(내측) 부분이 어떻게 작용하기에 사이코패시 특성들이 생겨나는지 궁금했다. 사이코패스는 보통 뜨거운 인지에 작용하는 복측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지만, 배측계는 정상이거나 오히려 비범해서 양심과 공감으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탈 행동에 관한 냉정한 계획과 실행법을 정교히 조율하고 설득력 있게 다듬으며 용의주도하게 가공할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배측계가 너무도 잘 작동하기 때문에 자신이 마음을 쓰는 것처럼 보이는 법을배울 수 있어서 더욱더 위험하다. - P83

내가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뇌 스캔 사진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뇌 스캔 사진과 패턴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의외의 사실은 내게 분명 멈칫할 이유가 되었다. 무엇이 사이코패스를 만드는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그토록 확신했건만, 나의 뇌 패턴과 행동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은 내가 만든 사이코패스이론이 틀렸거나 적어도 불완전하다는 의미일지도 몰랐다. - P92

돌연변이 중 일부는 치명적이지 않아서 세포와 개체군population에 의해 보관된다. 이들을 단일뉴클레오티드다형성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즉 SNP라 부른다. 변화가 인간 개체군의 1퍼센트 미만에서 발견되면 돌연변이라 하고, 1퍼센트 이상에서 발견되면 전형적으로 SNP라 부른다. 인간에게는 약 2,000만 개의 SNP가 있고,
이것이 곱슬머리에서 비만을 거쳐 마약중독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외모와 행동의 다양성을 설명해준다. 1990년대 이래로 여러 특성과 질환의 유전적 ‘원인‘에 대한 사냥이 집중된 장소가 바로 이 SNP다.
그 밖에 중요한 유전부호genetic code 변경에는 소위 촉진자 promoter와 억제자 inhibitor, 즉 산물을 만드는 능력을 조절하는 유전자 조각이 관련된다. 이 둘의 조절을 받아 만들어진 산물의 일부가 신경전달물질의 행동을 조절한다. 따라서 촉진자와 억제자는 유전자의 휘발유와 브레이크 페달처럼 뇌에서 세로토닌 serotonin 이나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전달을 제어한다. 세로토닌은 우울증, 양극성장애, 수면장애, 섭식장애, 조현병, 환각, 공황장애는 물론 사이코패시와도 관련되는데, 분해효소는 MAO-A이다. 이 효소를 생산하는 (하이픈이 없는) 유전자 MAOA의 촉진자는 짧거나 긴형태 둘 중 한 가지다. 짧은 촉진자를 가진 MAOA 유전자의 변형은 공격적 행동과 연관되어왔고 ‘전사유전자 warrior gene‘ (전사유전자transcription gene와 다른 유전자다 옮긴이)라고 불린다.
병을 일으키는 데 연관되는 SNP는 아마도 20개나 50개 또는 그이상이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전사유전자가 공격성, 폭력성, 보복성을 일으킨다‘는 말은 유전학자들로부터 야유를 받을 것이다. - P102

전사유전자는 뇌 구조의 변화와도 연관되어왔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안드레아스 마이어-린덴베르크 Andreas Meyer-Lindenberg 와 동료들이 시행한 연구에서는 전사유전자가 편도체, 전대상피질, 안와피질, 즉 반사회적 행동과 사이코패시에 연관되는 모든 영역의 부피를 8퍼센트 줄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사유전자의 효과는 일반적으로 남성에게서 나타난다. 전사유전자가 이른바 두 성염색체 가운데 Y 염색체가 아닌 X염색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X염색체의 약 30퍼센트에서 일어난다. 누구나 알듯이, 여성의 성염색체 조합은 XX이고 남성의 조합은 XY다. 남성은 어머니에게서 단 하나의 X염색체를 물려받기 때문에 만일 저기능의 변종을 받으면 상쇄할 다른 유전자가 없다. 확실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성은 X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각 하나씩 받는다. 수정이 되고 초기 난세포 분열이 끝나고 나면, 여성에게서 쌍을 이루는 두 X염색체 중 하나는 무작위로 활성이 사라지지만, MAOA를 포함한 일부 유전자는 활성이 유지된다. 따라서 여성이 MAO-A 효소가 충분하지 않아 지나치게 많은 세로토닌을 가지려면 저발현 형태의 MAOA 유전자가 양쪽 X상에 필요하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만큼 전사유전자의 영향을 쉽게 받지 않는다. 각각의 X염색체에서 전사유전자가 발생할 확률이 30퍼센트여서, 여성이 양쪽에 전사유전자를 가질 확률은 30퍼센트 곱하기 30퍼센트, 즉 9퍼센트다. 이는 인구 중에서 공격적 남성이 공격적 여성보다 많은 이유를 부분적으로는 설명해준다. 그리고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공격적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의 존재가 이 차이를 더 크게 한다. - P111

세로토닌 말고도, 도파민 역시 사이코패스와 상관있다. 2010년, 밴더빌트대학교 조슈아 부크홀츠 Joshua Buckholtz는 사이코패시가 뇌안에 도파민이 과다하게 방출되는 것과 연관 있음을 보여주었다. 도파민이 많다는 건 보상을 추구하는 욕구가 과다하다는 뜻인데, 도파민 전달을 증대시키는 유전자들은 사이코패스에게서 흔히 보이는 중독행동addictive behavior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코패스들은 마약에서든, 성행위에서든, 소름 끼치는 폭력에서든 점점 더많은 자극을 찾기 때문이다. - P113

공감 및 공격 특성 연관 유전자의 대립유전자들은 사이코패시를 이해하는 데서 어느 정도의 전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에게 있는 다른 중요한 특성, 이를테면 과대망상, 말주변, 병적 거짓말, 도덕과 윤리의 부재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확인된 적이 없다. 이들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뇌의 해부구조와뇌 안에서 변화된 연결들을 분석하는 것(뇌의 어떤 특징이 이기능과 연관되는가?)이 먼저고, 유전정보(어떤 유전자가 이 특징에영향을 미치는가?)를 이해하는 일이 다음일 것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연구자들은 단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유전자가 인간의 적응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이해했다. 가령 어느 연구실에서 조현병과 연관된 유전자 하나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결과를 발표했다고 치자. 그리고 다른 연구실에서 또 다른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이 연구결과들을 재현하려고 하면 통계적 의미를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좌절했고, 불량 데이터가 다량으로 발표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가졌다. 연구자들은 대규모 실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원인 유전자가 한둘이 아니라 아마도 열다섯 아니 스무 가지쯤 있어서 저마다 증상에 몇 퍼센트의 편차를 제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전자 대부분은 예컨대 눈과 머리털의 색깔을 통제하는 유전자와 같이 우성 아니면 열성으로 특징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상호작용하는 수많은 유전자가 행동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이들 유전자의 무수한 조절체 역시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공격성도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안드로겐androgen을 비롯해 수많은세포기능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이 상호작용하여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행동이다. 딱 하고 스위치를 켜거나 꺼서 누군가의 인격을 폭력적인 또는 온화한 것으로 바꿀수는 없는 것이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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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폴은 지금 두렵다. 시몽은 너무나 젊지만 자신은점점 더 늙어 갈 것이고, 언젠가 시몽은 자신에게서 어떤 매력도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면 로제는 지금처럼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며 자신을 외롭게 만들지라도 그는 항상 낡은 가구처럼 자기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경험적으로 폴은 너무나 잘 알고있지 않은가, 로제는 한눈을 팔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떠날 사람은 아니라는 걸. 더군다나 로제도 자신과 비슷하게 늙어갈 것이다. 그러니 얼마 지나지 않아 로제의 바람기도 사그라들지 않을까. 그렇지만 시몽은 로제와는 전혀 다르다. 아직 삶의 절정에 이르지 않은 젊고 매력적인 연하의 남자였기 때문이다. 과연시몽은 그의 삶의 절정에서도 여전히 폼을 사랑할 수 있을지. 그렇다. 폴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미래의 불확실성이었던 것이다.
영원히 홀로 남겨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지금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익숙한 삶을 떠나 시몽을 선택하면 잠시 행복하겠지만 머지않아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로제를 선택하면 지금은 불행할 수 있지만 버려질 위험은 별로 없다. 그녀는 사랑의 위힘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소심했던 것이다. 불안한 사랑보다는 불행한 안정에 손을 들어 준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스피노자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소심함(timor)은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큰 악을 더 작은 악으로 피하려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 P463

 그렇지만 미래란 항상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미래는 나 자신과 타자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면서 도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스스로 미래의 모습을 합리적으로 예측할지라도, 타자는 우리의 예측이상으로 움직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예측 자체를 무화시킬 수 있다. 그러니 바라는 대로 되었다고 해도 혹은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원인을 완전히 우리 자신에게만 돌릴 일이 아니다. 어쨌든 지나치게 대담한 사람에게는 소심함이 필요하고, 반대로 불필요하게 소심한 사람에게는 대담함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야만이 미래에대해 균형 잡힌 시선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소심함과 대담함의 중도, 혹은 중용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소심한 사람을 대담하게 만드는 하나의 행동 강령을 추천하고 싶다. ‘아님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자는 것이다. 소심함을 극복하려면 그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님 말고!‘라는 쿨한 자세를 갖는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실천하는 것마저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소심한 자신과는 다른 모습을 조금씩 갖추게 될 것이다. - P468

치욕(pudor)이란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행위에 수반되는 슬픔이다. 반면수치심(verecundia)이란 치욕에 대한 공포나 소심함이고 추한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인간을 억제하는 것이다.
ㅡ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스피노자는 "치욕이란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받는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어떤 행동에 대한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강자에게 아부하고 약자에게는 군림할 때, 혹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느라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수 있다. 바로 이럴 때 우리는 치욕에 몸을 떨기 마련이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치욕‘은 슬픈 감정인 셈이다. 인간이라면 누가 이런 슬픈 감정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치욕을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인간이란 기쁨은 가급적 유지하려 하고 슬픔은 멀리하려는 존재이니까. 그래서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중요한 것이다. 수치심은 앞으로 치욕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이나 소심함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가 치욕과 수치심을 구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치욕은 슬픈 감정이지만, 수치심은 그런 슬픈 감정이 들지 않도록 하려는 원동력이니까. 그러니까 수치심을 갖고 있을 때, 우리는 치욕의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수치심을 갖고 있을 때, 우리에게는 치욕을 멀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법이니까. - P491

함무라비 법전이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잘해 주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에게는 그만큼 위해를 가해야 한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 거꾸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은 함부로 대하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에게는 비위를 맞추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일단 함무라비 법전을 관철시키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이 노예 도덕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간파해야만 한다. 강한 자에게 핍박을 받는 약자가 어떻게 강자에게 자신이 당한것을 되돌려줄 수 있다는 말인가, 복수를 시행할 힘조차 없는데, 이럴 때 예수의 속삭임이 우리의 나약함을 정당화하며 찾아온다.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사랑으로 갚는 것은 정말로 성스럽고 위대한 일이야." 이런 속삭임이 귀에 들어오는 순간, 마치 자신에게 원수를 갚을 수도 있고 갚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는 양 스스로를 기만하게 된다. 약자가 복수를 포기하는 순간, 자신이 강자에게 복수할 수조차 없는 존재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잊지 말자. 사랑이든 복수든 그것은 오직 자유로운 자, 혹은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약자는 원수를 용서할 자격조차 없다. 강자가 되었을 때에만 약자는 원수를 용서할 자격을 갖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니 해악을 당했지만 복수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면, 아주 천천히 힘을 키워서 강해져야 한다. 5년이든 10년이든 치욕을 잊지 말고 가슴속에 새겨야 한다. 마침내 해악을 가한 사람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게 되는 날, 우리는 진정 결정할 수 있다. 계획대로 복수를 추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용서할 수도 있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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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2005년 10월의 가을날, 따뜻한 인디언서머가 남부 캘리포니아에 마지막 자취를 남기는 동안 나는 《오하이오주 형법 저널 Ohio StateJournal of Criminal Law)에 제출키로 한 논문을 마지막으로 다듬고 있었다. <젊은 사이코패스의 뇌를 이해하기 위한 신경해부학적 배경 Neuroanatomical Background to Understanding the Brain of a Young Psychopath>은 내가10년에 걸쳐 분석한 사이코패스 psychopath 살인자들의 뇌 스캔 사진을 기초로 하는 논문이었다. 사진의 주인들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놈들이다. 이 범죄자들이 여러 해에 걸쳐 저지른 흉악한 짓들을 들으면 당신은 꽁무니를 빼고 달아날 것이다. 내가 비밀 유지 서약을 지킬 필요가 없어서 그 일들에 관해 밝힐 수만 있다면 말이다. - P6

 PCL-R은 전체 20개 항목별로 사이코패스 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0점), 부분적으로 존재한다(1점), 확실히 존재한다(2점)로 점수를 매긴다. 검사에서 40점 ‘만점‘을 받은 사람은 명백한 사이코패스다. 30점이 진단을 내리는 경계선이지만, 25점을 기준으로 할 때도 있다. 점수는 보통 임상의가 피험자와 면담하는 동안에 검사 등급 진단훈련을 받은 사람이, 때로는 전과와 병력과 제3의 보증인을 참고하여 매긴다. 이 평가는 피험자를 잘 아는 누군가가, 피험자가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릴 수도 있다.
사이코패시 특성은 네 가지 범주 또는 ‘요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인관계 요인에는 피상성, 과대망상증, 사기성의 특성이 포함된다. 정서 요인에는 가책의 부재, 공감의 부재, 행동에 대한 무책임이 포함된다. 행동 요인에는 충동성, 목표의 부재, 낮은 신뢰도가 포함된다. 반사회 요인에는 성급함, 청소년 비행 전력, 전과가 포함된다. 반사회적인격장애는 사이코패시와 관계는 있지만 그보다 훨씬 흔하고 성격에 근거한 문제보다는 밖으로 드러나는 파괴적 행동을 재는 척도다. 사이코패시 점수는 범죄의 상습성, 심각성 고의성을 더 잘 예측한다. - P22

한 가지 비판은 PCL-R이 계급과 민족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점이다. 범죄가 들끓는 LA 도심에 있는 하류계급 동네에서의 규범적 행동과 미네소타 상류계급 동네에서의 규범적 행동은 다르다. PCL-R이 폭력성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가를 둘러싸고도 논쟁이 있다. 스웨덴의 룬드대학교, 고센버그대학교, 웁살라대학교의 메르타 발리니우스 Marta Wallinius와 그 동료들은 2012년에 PCL-R이 폭력적 행동을 예측하는 데서 반사회 측면(성급함 등)은 분명히 효과적이지만, 대인관계 측면(피상성 등)은 전혀 그렇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형사사법 제도는 이런 연구 결과에 관심이 각별하다. - P27

사이코패스는 존재 여부부터 논쟁거리지만, 정신의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이코패스라 지칭하는 사람들을 정의하는 특성하나가 ‘대인 공감의 부재‘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의 운동장이 평평하다고나 할까. 우리는 대부분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사이코패스는 그런 욕구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대개 사람을 능숙하게 조종하고, 둘째가라면 서러운 거짓말쟁이에다, 말재주가 상당하고 상대가 경계심을 풀 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과 달리 결과를 두려워 않을 수도있다. 거짓말이나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동안은 누구나 그렇듯 붙잡힐까 봐 긴장도 할 수 있지만, 사이코패스 중 일부는 냉정하게 침착함을 유지한다. 가장 위험한 사이코패스라도 때로는 명랑하고 근심 걱정 없으며 사교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뚜렷한 거리감, 소리 없는 냉담함,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낼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흔히 충동적이지만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 따윈 느끼지 않는데, 이는 당신을 끌어들여 무모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장난에 동참하게 하고는 누가 다친다 해도 정작 본인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거라는 뜻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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