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성공의 경험이 두려웠다.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거리두기‘를 했던 방역 과정의 사회적 비용을 실은 가장 약한사람들이 치렀기 때문이다. 책을 쓰기 위해 연구팀은 이주민이나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취약계층 당사자들이나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활동가들을 만나 팬데믹의 시간을 어떻게견뎌냈는지 물었다. 고용허가제 탓에 직장을 옮길 수 없던 이주 노동자들은 "너희들은 서로에게 안전하다"라고 말하며 함께 확진 통보를받은 동료들을 모아 야간 노동을 시키는 사업주에게 저항하지못했다. 선제적 코호트 격리라는 이름으로 아동양육시설의 아이들은 3개월 넘게 건물 앞 편의점에도 가지 못했고,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층간 이동조차 제한받았다. 감각이 예민해 종종 마스크를 찢고 하던 자폐 아동들은 감염되거나 밀접접촉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혼자 방에서 지내는 일이 불가능한 자폐 아동을 돌보기 위해 부모는 함께 방에 들어가 지내야 했고,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부모들은 직장을 잃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집단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환자복을 입은 채 계속 일을 해야 했다.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상상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었다. - P22
한국의 자살률은 2020년 10만 명당 25.7명으로 OECD(경제협력기구) 회원국 중 압도적 1위이다. 학회에서 만나는 외국인 연구자들은 이 수치에 경악하며 고소득 국가인 한국에서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지 묻는다. 그런데 국립재활원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 장애인의 자살률은10만 명당 57.2명이다. 한국인 전체보다 2배 이상 높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살아 있기를 포기하는가. 수많은 연구에서 언급되는 요인은 ‘희망의 부재이다.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없어서가아니다. 숨 막히게 자신을 옥죄는 좌절의 순간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이라는 체념이 생의 에너지를 빼앗는다. - P27
필요한 변화의 핵심은 노동이다. 모든 인간에게 그렇지만특히 장애인에게 노동은 재정적 안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노동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다른 사회적 활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한다. 지체장애인이 아침이면 직장에 출근해 일하고 저녁이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가 일상이 되는 사회에서 그들이 투표소와 극장과 병원에 가지 못할 리 없다. - P28
타인의 삶을 내 경험에 따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일은 고 황현산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고 자기 경험치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전선은 하나가 아니다. - P33
또 하나는 모든 인간은 특정한 맥락에서 가해자가 될 수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한국인이, 한국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성 결혼 이민자나 이주 노동자에게 인종차별의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남성이 권력을 가진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과의 관계에서 약자인 여성들이, 시스젠더만을 정상적인 몸으로 취급하는 성별 이분법의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와의 관계에서 기득권일 수 있습니다. A 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이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상상할수 없다는 이유로, 트랜스여성인 A 씨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려 했습니다.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한 이들은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아ter Outsider야 했습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Sister er」를 쓴, 흑인이자 여성이며 동성애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오드리 로드 Audre Lorde가 "나는 당신이 두려워하는 얼굴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꼭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명백히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폭력만이 어떤 얼굴을 인간의 범주에서 밀어내는 건아니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그런 폭력은 어떤 몸을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지워버릴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모인 ‘합리적인‘ 사회만이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지요. - P47
한 사회가 표준이라고 여기던 몸은 항상 기득권의 것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던 기득권은 소수자의 몸을 두고 매번 인간의 자격을 따져 물었지요. 그렇게 백인은 흑인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 물었고, 남성은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아도 되는지 따졌고, 이성애자는 동성애자의 존재가 질병인지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질문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향해 던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나는 정상인가? 그렇다면 정상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요. - P48
명시적 편견explicit bias은 의식적 수준에서 인간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나 믿음을 뜻합니다. 2018년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온 예멘인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명시적 편견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난민 신청을 했던 예멘인 484명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목소리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실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구체적인 정보 없이, 이슬람 문화에 대한 편견과 유럽 난민 사태의 영향으로 일부 한국인은 예멘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겼습니다. 반대로 암묵적 편견implicit bias은 무의식적 수준에서 가지고 있는 태도와 믿음을 뜻합니다. 난민이 내 주변의 한국인처럼 각자 고유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 살아간다고 믿으며, 그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도 못하면서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사람은 명시적 편견으로부터는 자유로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동네에 난민의 숫자가 증가할 때, 그로 인해 발생한 범죄가 없었음에도 불안함을 느끼거나 난민들이 오는 가게에 가길 꺼린다면 그 과정에서 암묵적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것입니다. - P51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기에 따돌림, 차별, 폭언과 같은 자극은 연구 윤리상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요건 중, 스트레스 호르몬을 가장 크게 증가시키고 원상태로 회복하는 데까지 가장 오래 걸리는 급성 자극은다름 아닌 사회적 평가 위협 social evaluative threat 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위협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작은 잘못이라도 찾아내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혈압, 우울증, 심장병을비롯한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가장 크게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흑인들은 유아원에서부터 일상적으로 과도한 사회적 평가 위협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017년 국제 학술지「랜싯」에 게재된 크리스토퍼 월더먼 Christopher Wildeman 교수 연구팀의 논문 「미국의 대규모 수감, 공중보건, 그리고 커져가는 불평등」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미국 흑인 남성 5명중 1명은 35세 이전까지 교도소에 한 번 이상 수감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 비극적인 숫자는 물질적으로 열악한 삶의 조전에서 비롯된 높은 흑인 범죄율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유난히 가혹한 사회적 평가 위협이 가져온 결과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P55
인간의 두뇌는 외부 자극을 범주화해서 이해하며 진화했습니다. 인간이 처음 사자와 호랑이를 봤을 때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험이 반복되면, 사자와 비슷한 생명체를 봤을 때 인간의 두뇌는 그것을 맹수로 분류하고 위험한 동물이라고 판단합니다. 그에 따라 도망치거나 싸우는 행동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러한 판단이 빠를수록, 또 무의식적 수준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질수록 생존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인간 두뇌에 깊이새겨진 고정관념에 기반한 편견이 활성화되는 과정은 생존하기 위해 수많은 외부 정보를 인지하고 처리해 온 과정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인간이 타인을 판단하는 방식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뇌의 신경망이 첫눈에 보이는 피부색이나 성별과 같은 정보를 조합해 어떤 사람을 특정 범주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데 0.1초가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인간이 눈을 깜빡하는 데 보통 0.1~0.4초가 걸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말그대로 눈 깜빡할 새보다 빠르게 타인을 고정관념에 따라 인지하고 분류해 믿을 만한지 판단합니다. 이 과정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입니다. - P56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암묵적 편견을 바꾸는 길은 권력의 적극적인 재분배를 통해 소수자의 삶을 바꾸어 내는 것과 함께, 우리 스스로가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나 역시 내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인식하고 경계하며 행동하는 일이라고요. 차별하는 줄 모르고 하는 차별 행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저는 차별금지법이 그 인식과 경계와 행동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P58
이 사건을 두고 교사의 노동권과 학생의 인권이 대립하는것인 양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시각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문제가 교사와 학생의 충돌로 드러난다 할지라도,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스템입니다.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교사가 학생이나 학부모와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학교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그 원인이지요. 모든 교사가 선하지는 않고 모든 학생이 선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이모인 공동체가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의 문제점을 상세히 따져보지 않고 교사 개인과 학생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직관적이고 쉬운 일입니다. 그만큼 폭력적이고, 또 그만큼 문제 해결로부터 멀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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