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는 흔히 동반이환comorbidity 현상을 동반한다. 이는 문제의 일차적 장애 말고도 다른 장애가 존재하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양극성장애나 조현병으로 진단된 환자는 흔히 경계선인격장애같은 그 밖의 진단도 받게 된다. 나는 사이코패스이기만 하고 다른 병은 없는 사람을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증상, 원인이 되는 뇌영역, 관련 전달물질 면에서 여러 장애가 폭넓게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이 정신장애다. 나의 사이코패스적 특성은 다른 문제와 별개로 논의할 수 없다. 내가 매력적인 이유는 활기차고 말재간이 있으며 호언장담으로 앞에 놓인 장애물을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그 에너지와 유창함은 나의 경조증에서 나온다. 이렇게 나의 모든 행동이 한데 묶여 있다. - P236
인디애나폴리스 릴리연구소 Lilly Research Laboratory의 도론 새그먼Doron Sagman과 마우리시오 토엔 Mauricio Tohen은 양극성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공황장애, 강박장애, 물질남용의 위험이 크다고 썼다. 그뿐만 아니라 양극성장애 환자는 주요우울장애 환자와 달리 약 3분의 1이 반사회적 · 경계선 · 히스테리성 ·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동시에 보인다. 또한 자살하거나, 비만이거나. 제2형 당뇨가 생기거나, 흡연할 가능성도 더 높다고 한다. 최근에 이 양극성 동반이환의 목록을 본 나는 멈칫했다. 이 목록은 어린 시절부터 10대와 청년기를 거치는 내내 번갈아 사귀어온내 평생지기들(병명들)의 친숙한 ‘인명록‘인 셈이었다. 나는 이들장애와 연관된 증상을 잔뜩 짊어지고 있었고, 각각의 증상이 내 일생의 어떤 기간을 지배했다. 한 증상이 10대 초반에 절정을 이루다가 물러가면, 완비된 또 한 벌의 증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모든장애가 발병하기만 하면 길게는 몇 년에 걸쳐 나타났다. 일가 어른들과 임상의들이 내게 들려준 의견들에도 공통점이 하나 명백히드러났다. 이 장애들 대부분이 세로토닌계와 강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 P237
인격과 성격은 다르다. ‘인격 personality‘은 신경성(신경과민, 불안, 회피 등), 외향성, 친화성, 새로운 발상과 경험을 향한 개방성, 성실성(세심함, 근면성, 자제력, 성취욕 등) 같은 특성의 목록이다. 반면에 ‘성격 character‘은 인격보다 덜 분명하다. 한 사람의 진정한 성격은 그가 곤혹스럽고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여 어쩔 수 없이 힘든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에만 판단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인격은 많은 부분이 유전에 의한 것이므로 바꿀 수 없으며 성격은 스트레스 요인, 경험, 선택, 믿음에 따라 그보다는쉽게 바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웅들이 소설과 영화에서 보여주는 성격의 변화는 성격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음을 드러내는 일례다. 종교, 정부, 가족, 문명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성격을 ‘어두운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기반으로 한다. - P246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개인‘이 생존에 유리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어떨까? 사이코패스가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게있을까? 사이코패스들은 유능한 지도자일 수 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최근 실시한 연구에서는 전사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결정을 잘 내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사람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반면, 사이코패스는 기꺼이 도박을 건다. 불확실한 시기라도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군대를 움직이거나 부족을 데리고 산을 넘을 것이다. 그 결과로 그가 맡은 집단은 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집단에 모험을 시키는 것이 문명적으로는 이롭다. 그런 도박 중 일부는 성공해서 문명을 진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돌연변이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어떤 돌연변이는 커다란 이익을 주는 것과 같다. - P283
그래서 내가 사이코패스냐고? 단적으로 답하자면 ‘아니올시다. 그보다는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더 나은 답이다. 나는PCL-R에서 대인관계 특성(피상적이고, 과대망상증이 있고, 기만적이다), 정서 특성(가책도 공감도 하지 않는다), 행동 특성(충동적이고 무책임하다)을 포함한 많은 항목에 해당된다. 하지만 반사회 특성은 보이지 않는다. 분노를 조절할 줄 알고 전과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운 좋은 사이코패스라는 편이 가장 정확한 답일성싶다. 친절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와 통찰력 있는 어머니가 일찍부터 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보고 아들을 잘 이끌어주었기때문이다. 어머니가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 동안 나는 역경을 헤쳐나갔다. 2013년 늦겨울,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자서전하나 쓰는 데 얼마나 걸리는 게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 난 지금 내 자서전이 아니라 엄마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 거예요." 어머니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은 어머니가 나를 기른 방식에서 왔다. 나의 이야기는 나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머니됨과 아버지됨과 부모됨과 양육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하다. 60대에 시작한 뜻하지 않은 순례를 통해 발견한 것은 5년 전만해도 내가 믿지 않았던 뭔가다. 태어날 때 자연이 나누어준 형편없는 카드 한 벌을 올바른 양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지금까지 책을 읽었다면 눈치챘겠지만, 나는 결코 천사가 아니다. 하지만 훨씬 더 나쁜 모습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나는 사이코패시와 그 유전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버리면 인류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공감에 서툴고 공격성이 강한 사람들도 잘만 다루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나처럼 가족과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시적 수준에서는 사회에 보탬이 된다. 나는 사이코패시 스펙트럼상에도 골프처럼 스위트스폿이 있다고 믿는다. PCL-R로 25~30점인 사람들은 위험하지만, 20점 언저리의 사람들은 사회에 필수적이다. 대담하고 활기차고 인류의 생동감과 적응력을 지켜주는 나와 같은 사람들 말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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