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는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임상의사가 아닌 보건학자의 삶을 선택했던 것은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만나고 차트에 적힌 병력을 읽어보면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한 게 분명한데, 병원에서는 약으로 이들의 증상을 치료하려 했습니다. 물론 현대의학이 이룬 성과는 놀라운 것이어서, 그 약들은 실제로 증상을 완화하고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이들을 종종 삶의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돌아가야 할 가정은 과거와 다름없이 폭력적인 공간이었고, 병원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다시 입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 주생계가 막막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의학 교과서에 적힌 대로
"다친 허리를 치료하려면 며칠은 조심하며 누워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일은 허망했습니다. 먹고사는 일의 무게 때문에 검진 시기를 놓쳐, 몸 여기저기 전이된 유방암을 진단받은 여성에게 의학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며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물었던 것같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을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임상의사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제력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하면 내 고민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부조리한 사회가 질병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게 명확해질수록, 그 대답은 더 무겁고 또 멀게 느껴졌습니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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