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의 손은 여성의 몸을 통해 수천 번이나 확인한 끝에 그 안에서 어떤 균열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거기에는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열 수 있는 마개나 숨겨진 자물쇠 따윈 없었다. 불룩 튀어나온 돌출부도, 그를 내부로 초대하는 비밀스러운 빗장도 없었고, 누르는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작은 스프링이 튀어나와서 욕망으로 가득 찬 복잡한 내부를 그의 눈앞에 드러내 보이는 버튼도 없었다. 어쩌면 인체의 내부는 전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할지도 모른다. 그저 표면이 거꾸로 뒤집혔거나 안쪽으로 휘었거나 나선형으로 휘감긴 것뿐일지도 모른다. 모나드의 표면에는 무한한 신비가 감춰져 있다. 놀랍도록 교묘하게 잘 포장된 이 구조물들은 자신에게 깃든 눈부신 풍요로움의 극히 일부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여행자도 자신의 짐 가방을 이처럼 완벽하게 정리하여 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질서와 안전, 미적 감각을 고려하여 장기들끼리 서로 적당히 떨어져 있도록 배치하고 지방 조직으로 내벽을채우고 완충 작용을 유도한다. 불안정한 비행기 안에서 반쯤 잠든 상태로 블라우 박사는 이처럼 열정적인 환상에 빠져들었다. - P204
이곳에서 사내는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몰랐다. 그의 어깨에 닿는 키 작은 여인들이 앵무새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채 그를 밀치면서 사람들 무리가 흘러가는 방향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그는 불교 신자로서 하루에도 여러 번 시간이 날 때마다 되뇌던 서약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의 기도와 행동으로 감각이 있는 모든 존재를 계몽하기위해 노력하겠다고 맹세했건만 갑자기 모든 것이 헛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마침내 두 눈으로 나무를 보았을 때 솔직히 그는 실망했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기도문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장소에 어울리는 예를 표하기 위해 여러 차례 몸을 숙여 절하고 시주를 두둑이 한 뒤에 두 시간도 안 되어 헬리콥터로 돌아왔다. 오후에 그는 이미 호텔에 도착했다. 샤워를 하면서 그는 땀과 먼지, 인파와 노점상들의 들척지근한 냄새, 어디에서나 맡을 수 있는 향불의 독특한 향기, 종이 접시에 담아 파는, 모두가 손으로 집어 먹는 커리 냄새를 물줄기로 씻어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를 전율하게 만든 것들, 그러니까 질병과 노쇠와 죽음을 실은 그가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었다는 깨달음. 깨달음을 얻었건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의 내면에서는 작은 변화의 조짐도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미 그러한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희고 폭신한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서 그는 자신이 정말 깨침을 갈망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한순간에 모든 진실을 보기를 원했던 것일까. 엑스레이를 들여다보듯 세상을 투시해서 그 공허한 뼈대를 확인하기를 바랐던 것일까. 바로 그날 저녁 그는 그 관대한 인도인 친구에게 뜻하지 않은선물을 선사해 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고는 양복 주머니에서 바스러진 나뭇잎 한 장을 꺼냈다. 두 남자가 경건한 자세로 나뭇잎을 향해 몸을 숙였다. - P258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다. 거기에 다른 세상은 없다. 순간들, 부스러기들,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바로 조각나 버리는 일시적인 배열들뿐.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선, 면, 구체,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반면에 시간은 미세한 변화의 측정을 위한 간단한 도구에 불과하다. 아주 단순화된 줄자와 마찬가지다. 거기엔 눈금이 딱 세 개뿐이다. 있었다. 있다. 있을 것이다. - P2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