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일찌감치 실시된 시선 훈련으로, 시선을 안이 아니라 밖으로 유도하는 방식, 몸을 자아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자 자신인 것이 아니라 여자가 갖고 있는 무엇으로 경험하는법을 배우는 한 방식이었다. 7학년부터 시작해 우리는 계속이 기술을 연마해나가고, 몸을 부분들로 분해하여 점점 더 철저하게 점검하고, 다리와 팔, 배와 가슴, 엉덩이와 머리카락을 별개의 존재들로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그 존재들은 대부분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언제나 위계적 용어와 비교의 용어로 기술되며, 다른 이들과의 비교 속에서 관찰된다. 내 머리카락 대니나의 머리카락, 내 눈 대 질의 눈. 이건 고쳐야 하고 저건 숨겨야 해. 하나씩 하나씩, 우리는 자신을 해체하는 법을 배웠다. - P190
그런 독해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내게는 기업이라는 은유가 다소 고정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여자들은 모두 똑같은 백지들이고, 그들과는 별개인 제3의 존재, 그러니까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외적인 그것이 종이 위에 뭔가를 쓴다는 말 같다. 철학자 엘리자베스 그로스는 그보다는 좀더 유연한 캘리그래피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10 캘리그래피는쓰는 행위만이 아니라 쓰는 데 사용되는 구체적 재료들과 그 재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상호작용까지 고려하는 과정으로, 이 과정의 최종 산물-여자의 핵심적 자기의식은사용된 종이의 종류와 질감, 메시지에 저항하거나 흡수하는역량, 쓰기 도구의 질, 잉크의 질에 따라 다를 것이다. - P198
그로스는 우리가 모두 시초부터 기입된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낱낱의 종잇장들처럼 부서지기 쉽게 태어나거나탄력성을 지닌 채 태어났을 수도 있고, 선천적으로 무겁거나얄팍하게, 선천적으로 아름답고 독특하게, 선천적으로 평범하고 밋밋하게 태어났을 수도 있다. 이런 특성들이 환경, 가족, 기질과 충돌하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우리를 변모시키고 사회적 명령에 대한 저항 혹은 취약성을 형성한다. 이 캘리그래피패러다임의 폭은 대단히 다양하다. 이 패러다임은 욕구에 관한 문화의 메시지들이 저마다 지속성의 차원에서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고, 또한 문화가 훨씬 거대한 수프에 들어가는 재료 중 겨우 하나일 뿐인 이유도 설명해준다. 40대의 한-무척 아름답고 뼈대가 굵으며 선천적으로 육감적인 몸매의 여성은 10대 시절에 겪은 전형적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볼링장에서 어머니가 자기때문에 몹시 창피하다는 듯 다급하게 달려와서는 화난 쇳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면 끈이 달린 브라를 사! 가슴이 덜렁거리고 젖꼭지가 딱딱해져 있잖아!"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굵은 나무줄기로 만든 곱고 섬세한 종이 한 장에 갑자기 수치의 잉크 얼룩이 묻고, 이어서 그 얼룩이 반복적으로 묻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것은 분노와 공포로 휘갈겨 쓴메시지다. 몸의 쾌락을 즐기지 마. 몸을 자랑스레 내보이지 마. 몸은 나쁘고, 너도 나빠. 폭식증에서 벗어나는 중인 또한 여성은 너무나도 수줍었던 열네 살 시절 추수감사절 만찬 자리에서 으깬 감자를 더 먹으려고 손을 뻗을 때 삼촌 하나가 가슴 근처 살을 찌르면서 그의 체중에 대해 음란한 말을 던졌던일을 떠올린다. 이 사람은 부드럽고 조곤조곤 말하고, 불확실한 태도와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의 말을 들을 때 내게는 약하고 물기를 잘 흡수하며 무디고 둔탁한 도구를 사용하면 쉽게 찢어지는 무른 라이스페이퍼 한 장이 떠오른다. 사랑과 섹스 중독자들을 위한 열두 단계 치료 모임에 참석했을 때다. 한 근친 강간 생존자가 여자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의식에 폭력이 지울 수 없이 새겨지는 방식을 간명하게 요약했다. "수년 동안 나 자신에게 성감을 동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게 수치심과 폭행을 당한다는 느낌을 주는 관계를 맺는 것뿐이었어요." 이 말을 들으며 나는 한 여자의 자기상이 얼마나 심오하게 여러 층위로 구성될 수 있는지, 그 자기상의 힘이 얼마나 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는지 생각했다. 훌륭한 캘리그래퍼 - 사랑을 주는 부모, 지지해주는 교사, 따뜻하게 보살피는 공동체 - 는 가장 평범한 종이를 가지고도 가장 섬세한 잉크를 사용해 가치와 존중과 사랑스러움에 관한 초기의 메시지들을 세심하게 새김으로써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쁜 - 방기하고 학대하는 잔인한 - 캘리그래퍼는 가장 고운 종이도 처참히 망쳐버릴 수 있다. - P199
"뚱뚱할 때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게 일시적인 상태인 최해요." 레슬리 역시 마찬가지여서 과거에는 체중을 비밀에 붙었다. 마치 그게 실제로는 자기 체중이 아닌 것처럼, 친구들도 레슬리 본인도 레슬리의 체중에 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뚱뚱한‘이라는 단어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은 방 안에서 나는 나쁜 냄새를 모른 척하듯 레슬리의 뚱뚱함을 모른 척했다.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사라지듯 뚱뚱함이 사라지고 진짜 레슬리가 나타날 거라는 듯이. 내면화된 자기혐오의 목소리에 대해 레슬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다이어트하는 사람들 사고방식의 일부예요. 모두가 자기 안에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리는 날씬한 사람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레슬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그 여자를 깔고 앉아 죽여버린 거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 말을 하면서 레슬리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었다. 힘차고 호탕한 그 웃음에는 자신에 대한 인정이 손에 잡힐 듯 뚜렷이 배어 있어서, 마치 향수를 뿌린 것처럼 한동안 우리 테이블 주위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웃음소리는 몇 시간 동안이나 내귓가에 남아 있었고, 그 이미지도 그만큼 오래 머물렀다. 젊은 여자가 자신의 덩치로 자기혐오를 질식시켜버리는 이미지. 심지어, 젊은 여자가. - P226
이처럼 개인적인 면에서도 의학적인 면에서도 복잡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스물네 살 당시 레슬리와 나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힘이있는 뚱뚱한 여자와 아무 힘도 없는 빼빼한 여자. 자신감과 유머가 있는 뚱뚱한 여자와 찡그린 표정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빼빼한 여자. 스스로 자처한 추방에서 탈출한 뚱뚱한 여자와냉장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수치심의 초상과도 같은 빼빼한 여자. 여자들이 품고 사는 자기혐오의 강도는 언제나 내게깊은 충격을 안긴다. 그것은 그야말로 만성적인 고통을 안고사는 방식이다. 각자 정반대의 위치에서 바라보았지만 레슬리와 내가 둘 다 똑같이 이해하게 된 사실은, 자기의 가치를 외모와 결부시키는 일은 매일 한순간도 빠짐없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외줄 타기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다이어트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몸은 항상 박탈에 저항하고, 왜 그냥 저 구운감자를, 저 버터 조각을, 저 부드러운 사워크림 약간을 먹는것조차 허락해주지 않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자기비판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여자들이 하는 무자비한 자기비판은 더욱 고통스럽다. 저울에 올라설 때, 복도를 걷는데양쪽 허벅지가 서로 쏠리는 걸 느낄 때, 삼면거울에 비친 자신의 실루엣을 볼 때, 너무 큰 엉덩이와 너무 나온 배를 볼 때후려치듯 쏟아지는 신랄하고 패배감에 젖은 혐오감, 역겨워, 난 역겨운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건 너두 극심하게 고통스러운 방식이다. 그러나 치료하지 않은 고통은 계속 남는다. 그 방식을 재고해볼 계기를 만나지 못하면 고통을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울지모른다. 레슬리를 만나고 얼마 후 나는 내가 아는 어떤 이에게레슬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성인기의 삶 대부분 동안 체중에 대해 걱정하며 살아온 사람이었고, 자기 다리에 대한 불만이 워낙 심해 40년 동안 치마를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했다. "당신한테는 강함이 보이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심장마비, 당뇨병, 뇌졸중이 보여요. 그런 식의 부인과 자기 파괴에 찬사를 보내기는 어려워요." 나는 이 사람 말에 그렇게 확신이 서지 않고, 부인과 자기파괴에 관한 우리의 정의가 그리 일치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성형수술 통계를 들여다본다. 나 자신이 날씬함과 맺고 있던 예속적이고 지독하게 불건전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면서 짜증난 소리를 뱉어내고, 역겹다는 듯 자신의 살을 움켜쥐고, 아이스티에 가짜 설탕을 다섯 봉지씩 쏟아붓는 여자를 본다. 그러고 나면 레슬리를 많은 여자들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패러다임 이동의 화신으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레슬리는 의자에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할 때 묻어나는 위험은 나이를 의심하게 했다. 레슬리에게는 수동적인 면이나 연약한 면, 나약한 면 위협적이지 않은편, 예의를 차리며 주저하는 면이 전혀 없다. 레슬리에게서는이 문화에서 엄청나게 희귀한 조합이 보인다. 사이즈와 무게, 그리고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음이라는 조합이.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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