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공포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두려움에 질린 사람은 스스로 격리하거나 마스크를 쓰거나, 그 밖에 본인과 사회에 이로운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활동 인구가 줄기 때문에 유행병의 피해가 일반적으로 줄어든다. 겁에 질린 사람은 동네 술집에서 남들과 어울리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이로움도 반드시 오래간다고는 할 수 없다. 움츠렸던 사람들이 때 이르게공포에서 ‘회복‘하게 되면, 부적절한 시기에 (예컨대 아직 확산이 충분히 통제되지 않았을 때) 사회 활동을 재개하기도 한다. 이는 2차, 3차파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일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는 것이, 공포로 인해 달아나는 사람들이 생기면 (앞에서 살펴봤듯이 전염병 발병기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때까지 탈이 없던 지역에 확산의 씨앗이 뿌려지면서 유행이 전체적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공포로 인해 낙인찍기와 희생양 만들기가 성행하거나정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할 만큼 대중의 불안감이 고조될 경우, 이 역시 유행병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 - P218

감정과 거짓 정보의 유행은 그 바탕에 깔린 바이러스의 유행과 우려스러운 모습으로 서로 뒤얽힌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범유행 시기 공공교육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과학적 지식이빈약하고 알려진 사실들은 상황에 따라 바뀔지라도, 당국자들은 얼마든지 기민한 동시에 정직한 자세로 대처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한다. 물론 당국자들도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이전에 했던 권고를 수정하거나 숫제 뒤집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 변경의 이유를 설명한다면, 그리고 정보를 공유할 때마다 근거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그리고 예측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같이 논한다면 대중의 냉소를줄이고 참여 의지를 높일 수 있다.
바이러스 자체가 초래한 상처로, 또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초래한 상처로 우리는 수없이 절망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이중으로 가해진 생물적·사회적 충격에 더해, 우리는 우리 앞에 과연 어떤 험로가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마주해야 했다. 역경속에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보이는 심리 반응을 나타냈다. 슬픔과 비탄을 느꼈고, 불안과 공포, 분노의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진실을 서로에게서,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서 감추려고 애썼다.
그와 같은 정서적 반응과 행동은 그 자체를 유행병의 기본 요소로 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유행병의 정의에 크나큰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행병에 대한 공중보건 대응은 의료적·사회적·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심리적차원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는 21세기에 다시 찾아온 역병에 맞서면서, 예부터 써온 방책을 다시 사용했다. 그리고 예부터 느꼈던 감정들도 다시 느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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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찌감치 실시된 시선 훈련으로, 시선을 안이 아니라 밖으로 유도하는 방식, 몸을 자아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자 자신인 것이 아니라 여자가 갖고 있는 무엇으로 경험하는법을 배우는 한 방식이었다. 7학년부터 시작해 우리는 계속이 기술을 연마해나가고, 몸을 부분들로 분해하여 점점 더 철저하게 점검하고, 다리와 팔, 배와 가슴, 엉덩이와 머리카락을 별개의 존재들로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그 존재들은 대부분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언제나 위계적 용어와 비교의 용어로 기술되며, 다른 이들과의 비교 속에서 관찰된다. 내 머리카락 대니나의 머리카락, 내 눈 대 질의 눈. 이건 고쳐야 하고 저건 숨겨야 해. 하나씩 하나씩, 우리는 자신을 해체하는 법을 배웠다. - P190

그런 독해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내게는 기업이라는 은유가 다소 고정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여자들은 모두 똑같은 백지들이고, 그들과는 별개인 제3의 존재, 그러니까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외적인 그것이 종이 위에 뭔가를 쓴다는 말 같다. 철학자 엘리자베스 그로스는 그보다는 좀더 유연한 캘리그래피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10 캘리그래피는쓰는 행위만이 아니라 쓰는 데 사용되는 구체적 재료들과 그 재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상호작용까지 고려하는 과정으로, 이 과정의 최종 산물-여자의 핵심적 자기의식은사용된 종이의 종류와 질감, 메시지에 저항하거나 흡수하는역량, 쓰기 도구의 질, 잉크의 질에 따라 다를 것이다. - P198

그로스는 우리가 모두 시초부터 기입된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낱낱의 종잇장들처럼 부서지기 쉽게 태어나거나탄력성을 지닌 채 태어났을 수도 있고, 선천적으로 무겁거나얄팍하게, 선천적으로 아름답고 독특하게, 선천적으로 평범하고 밋밋하게 태어났을 수도 있다. 이런 특성들이 환경, 가족, 기질과 충돌하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우리를 변모시키고 사회적 명령에 대한 저항 혹은 취약성을 형성한다. 이 캘리그래피패러다임의 폭은 대단히 다양하다. 이 패러다임은 욕구에 관한 문화의 메시지들이 저마다 지속성의 차원에서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고, 또한 문화가 훨씬 거대한 수프에 들어가는 재료 중 겨우 하나일 뿐인 이유도 설명해준다.
40대의 한-무척 아름답고 뼈대가 굵으며 선천적으로 육감적인 몸매의 여성은 10대 시절에 겪은 전형적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볼링장에서 어머니가 자기때문에 몹시 창피하다는 듯 다급하게 달려와서는 화난 쇳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면 끈이 달린 브라를 사! 가슴이 덜렁거리고 젖꼭지가 딱딱해져 있잖아!"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굵은 나무줄기로 만든 곱고 섬세한 종이 한 장에 갑자기 수치의 잉크 얼룩이 묻고, 이어서 그 얼룩이 반복적으로 묻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것은 분노와 공포로 휘갈겨 쓴메시지다. 몸의 쾌락을 즐기지 마. 몸을 자랑스레 내보이지 마. 몸은 나쁘고, 너도 나빠. 폭식증에서 벗어나는 중인 또한 여성은 너무나도 수줍었던 열네 살 시절 추수감사절 만찬 자리에서 으깬 감자를 더 먹으려고 손을 뻗을 때 삼촌 하나가 가슴 근처 살을 찌르면서 그의 체중에 대해 음란한 말을 던졌던일을 떠올린다. 이 사람은 부드럽고 조곤조곤 말하고, 불확실한 태도와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의 말을 들을 때 내게는 약하고 물기를 잘 흡수하며 무디고 둔탁한 도구를 사용하면 쉽게 찢어지는 무른 라이스페이퍼 한 장이 떠오른다. 사랑과 섹스 중독자들을 위한 열두 단계 치료 모임에 참석했을 때다. 한 근친 강간 생존자가 여자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의식에 폭력이 지울 수 없이 새겨지는 방식을 간명하게 요약했다. "수년 동안 나 자신에게 성감을 동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게 수치심과 폭행을 당한다는 느낌을 주는 관계를 맺는 것뿐이었어요." 이 말을 들으며 나는 한 여자의 자기상이 얼마나 심오하게 여러 층위로 구성될 수 있는지, 그 자기상의 힘이 얼마나 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는지 생각했다. 훌륭한 캘리그래퍼 - 사랑을 주는 부모, 지지해주는 교사, 따뜻하게 보살피는 공동체 - 는 가장 평범한 종이를 가지고도 가장 섬세한 잉크를 사용해 가치와 존중과 사랑스러움에 관한 초기의 메시지들을 세심하게 새김으로써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쁜 - 방기하고 학대하는 잔인한 - 캘리그래퍼는 가장 고운 종이도 처참히 망쳐버릴 수 있다. - P199

"뚱뚱할 때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게 일시적인 상태인 최해요." 레슬리 역시 마찬가지여서 과거에는 체중을 비밀에 붙었다. 마치 그게 실제로는 자기 체중이 아닌 것처럼, 친구들도 레슬리 본인도 레슬리의 체중에 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뚱뚱한‘이라는 단어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은 방 안에서 나는 나쁜 냄새를 모른 척하듯 레슬리의 뚱뚱함을 모른 척했다.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사라지듯 뚱뚱함이 사라지고 진짜 레슬리가 나타날 거라는 듯이. 내면화된 자기혐오의 목소리에 대해 레슬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다이어트하는 사람들 사고방식의 일부예요. 모두가 자기 안에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리는 날씬한 사람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레슬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그 여자를 깔고 앉아 죽여버린 거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 말을 하면서 레슬리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었다. 힘차고 호탕한 그 웃음에는 자신에 대한 인정이 손에 잡힐 듯 뚜렷이 배어 있어서, 마치 향수를 뿌린 것처럼 한동안 우리 테이블 주위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웃음소리는 몇 시간 동안이나 내귓가에 남아 있었고, 그 이미지도 그만큼 오래 머물렀다. 젊은 여자가 자신의 덩치로 자기혐오를 질식시켜버리는 이미지. 심지어, 젊은 여자가. - P226

이처럼 개인적인 면에서도 의학적인 면에서도 복잡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스물네 살 당시 레슬리와 나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힘이있는 뚱뚱한 여자와 아무 힘도 없는 빼빼한 여자. 자신감과 유머가 있는 뚱뚱한 여자와 찡그린 표정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빼빼한 여자. 스스로 자처한 추방에서 탈출한 뚱뚱한 여자와냉장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수치심의 초상과도 같은 빼빼한 여자. 여자들이 품고 사는 자기혐오의 강도는 언제나 내게깊은 충격을 안긴다. 그것은 그야말로 만성적인 고통을 안고사는 방식이다. 각자 정반대의 위치에서 바라보았지만 레슬리와 내가 둘 다 똑같이 이해하게 된 사실은, 자기의 가치를 외모와 결부시키는 일은 매일 한순간도 빠짐없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외줄 타기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다이어트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몸은 항상 박탈에 저항하고, 왜 그냥 저 구운감자를, 저 버터 조각을, 저 부드러운 사워크림 약간을 먹는것조차 허락해주지 않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자기비판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여자들이 하는 무자비한 자기비판은 더욱 고통스럽다. 저울에 올라설 때, 복도를 걷는데양쪽 허벅지가 서로 쏠리는 걸 느낄 때, 삼면거울에 비친 자신의 실루엣을 볼 때, 너무 큰 엉덩이와 너무 나온 배를 볼 때후려치듯 쏟아지는 신랄하고 패배감에 젖은 혐오감, 역겨워, 난 역겨운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건 너두 극심하게 고통스러운 방식이다.
그러나 치료하지 않은 고통은 계속 남는다. 그 방식을 재고해볼 계기를 만나지 못하면 고통을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울지모른다. 레슬리를 만나고 얼마 후 나는 내가 아는 어떤 이에게레슬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성인기의 삶 대부분 동안 체중에 대해 걱정하며 살아온 사람이었고, 자기 다리에 대한 불만이 워낙 심해 40년 동안 치마를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했다. "당신한테는 강함이 보이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심장마비, 당뇨병, 뇌졸중이 보여요. 그런 식의 부인과 자기 파괴에 찬사를 보내기는 어려워요."
나는 이 사람 말에 그렇게 확신이 서지 않고, 부인과 자기파괴에 관한 우리의 정의가 그리 일치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성형수술 통계를 들여다본다. 나 자신이 날씬함과 맺고 있던 예속적이고 지독하게 불건전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면서 짜증난 소리를 뱉어내고, 역겹다는 듯 자신의 살을 움켜쥐고, 아이스티에 가짜 설탕을 다섯 봉지씩 쏟아붓는 여자를 본다. 그러고 나면 레슬리를 많은 여자들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패러다임 이동의 화신으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레슬리는 의자에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할 때 묻어나는 위험은 나이를 의심하게 했다. 레슬리에게는 수동적인 면이나 연약한 면, 나약한 면 위협적이지 않은편, 예의를 차리며 주저하는 면이 전혀 없다. 레슬리에게서는이 문화에서 엄청나게 희귀한 조합이 보인다. 사이즈와 무게, 그리고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음이라는 조합이.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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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반들반들한 손목 안쪽.
뜨거운 프라이팬이 젖은 싱크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지면서 솟아오르는 증기.
방울방울 떨어져 수챗구멍 속을 빙글빙글 돌다가, 층고 높은 집의 기다란 홈통 전체를 타고 흘러내려가는 정액.
터무니없게도 상류로 치닫는 강물, 그 물살과 너울을 좇는여섯 개의 회중전등.
또 다른 강, 거센 바람이 수면에 물살을 일으켜 물길을 읽을수 없는 드넓은 잿빛 강.
잠긴 문 뒤의, 오래전에 차갑게 식은 목욕물.
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 P11

학교는 런던 중심부에 있었고, 우리는 매일 각자의 집이 있는 자치구에서 학교까지, 하나의 통제시스템에서 다른 시스템으로 이동했다. 그 시절엔 모든 게 지금보다 명백했다. 돈은 모자랐고, 전자기기도 없었고, 패션의 전제정치는 미약했고, 여자친구는 전무했다. 인간 된, 또는 자식된 도리, 즉 공부를 하고, 시험에 합격하여 구직에 필요한 자격을 갖춘 후, 이 모든것을 합쳐 우리 부모의 인생, 즉 우리의 것과 몰래 비교해볼때 소싯적에 더 단순하고, 그래서 더 우월한 인생을 살았던 양반들의 인생에 견주어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한 선에서 약간더 충족된 정도로 삶의 방편을 이루고 용인 받는 것으로부터 한눈을 팔게 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도, 단 한 번도 공공연히 거론된 적이 없음은 당연하다. 영국중산층 특유의 고상하신 사회진화론은 언제나 암묵적으로만 존재한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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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신체적 거리두기와 경제 붕괴, 그리고 침체된 세상은 모두전염병의 특징이다. 1500년 전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가 유행할때도 사제이자 역사가였던 에페수스의 요한John of Ephesus 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방의 만물이 무로 돌아가고 허물어지고 애달픔만 남았으니••• 매매가 그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세속적 부를 누리던 상점들과 사채업자의 거대한 업소들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온 도시가 소멸하기라도한 듯 멎어버렸으니 그렇게 모든 것이 그치고 멈춰버렸다. 

이처럼 전염병의 참상을 다룬 기록들을 읽으면 섬뜩할 만큼 낯익은 느낌이 든다. 경제는 교환을 바탕으로 하고, 교환은 사람들 간 교류에 의존한다. 사람들이 교류를 할 수 없다면 경제도,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도 성립하기 어렵다. 전염병 유행기는 생명뿐 아니라 생계를 잃는 시기다. 일상을,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자유를, 그 밖의 많은 것을 잃는 시기다. - P201

유행병은 비탄 외에 두려움도 자아낸다. 두려움 자체도 전염되므로, 일종의 유행병이 또 하나 퍼지는 셈이다. 병원체 · 감정 · 행동의전염 경로는 독립적일 수도 있고, 서로 교차할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아무리 전염성이 높은 병원체도 두려움의 전염성을 이기지는못한다. 병은 감염된 사람과 접촉해야만 전염되지만, 두려움은 감염된 사람이나 두려워하는 사람 어느 쪽과 접촉함으로써도 전염될 수있다.18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염병의 공포에 대처한다. 그중에는 전염병이라는 위협에 대한 통제권을 발휘하려는 시도가 많다. 예를 들면 전염병 유행을 남들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뭔가어떻게 해볼 수 있는 재난이라는 기분이 든다. 인간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 문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편한 법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힘으로 대처해볼 수 있다는 얘기니까. 아폴론처럼 복수심에 불타 말릴 수 없는 신이라거나 무심하고 무자비한 자연에서 비롯된 재앙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움만 커질 뿐이다.
이렇게 통제감을 가지려는 욕구는 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비난의 화살이 소수집단에, 아니면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쏠리기 쉽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전염병 범유행 중에 정부와 보건 당국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부정적 감정과 무력감이 만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국민이 그런 감정을 적절한 통로로 배출하여 건설적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점으로만 봐도 보건 당국은 마스크 착용을 권장할 만한 이유가충분하고, 국민에게는 마스크 착용이 득이 될 수 있다. 마스크의 이점이 정확히 무엇이건 간에 (물론 상당히 크지만) 재난이 닥친 상황에서 뭔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통제감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 또 한 예는 의료 종사자들에 대한 국민의 집단적 격려다. 뉴욕시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었지만, 이 역시 통제감과 사회적 연대감을 고취하는 행동이다. 이런행동이 주는 심리적 혜택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다른 더 고생스럽고 어렵고 힘든 일들에 참여할 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공포와 불안을 통제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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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 희한해서 그 후 여러 해 동안 나 자신도 정확히 뭔지 파악할 수 없었던 내 반응만은 기억한다. 그것은 그 아이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나는 그추진력과 집중력과 의지력이 부러웠고, 그 가여운 소녀의 지독한 결단력에서 어떤 전략의 윤곽 같은 것을 보았던 것 같다. 하나의 불안(체중)을 여러 불안(남자, 가족, 일, 허기 자체)을 맡아주는 장소로 삼고, 극도로 야위고 수척해지는 것을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피해가는 일종의 지름길이자 우회로로 삼으며,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모든 허기들을 한데모아 그 핵심을, 처리해야 할 한 가지 욕구를, 단 하나의 욕구를 추려내는 전략이었다. - P99

이 생각에는 분명 진실의 알갱이들이 담겨 있다. 성 역할 구분이 훨씬 느슨해져 엄마들이 직장에서 일하고 아빠들이 기저귀를 가는 이 시대에도 여성성의 복음은 계속 살아남아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억의 메아리로 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상에서 설교된다. 식욕에 관한 복음의 계명들은 결여들-그 복음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마음의 결여, 그 복음을 강화해주는 것의 결여, 그것을 포용하는 마음의 결여- 의 형태로 쌓이면서 계속 전해지고 있다. 다이어트와 체중으로 고통받는 어머니, 자신의 외모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자신의 몸에 역겨움을 느끼는 어머니가 딸에게 음식에서 기쁨을 느끼도록, 체중에 대해 느긋해하도록, 혹은 여성의 육체를 즐겁게 느끼도록 가르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두렵거나위험하거나 더러운 것이라고 느끼는 어머니가 딸의 섹슈얼리티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리고 욕망에대한 경험의 바탕이 금기나 극기, 남들을 먹이는 일과 자신의 채워지지 않은 허기로 인한 고통을 감추는 일인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더 넓은 풍경으로 향해 가도록 이끌어주기도 쉽지않다. - P131

자기 어머니가 "자기희생의 표본" 같은 사람으로, 늘 자식들을 위해 살았고 언제나 접시에 담긴 고기 중 가장 작은 조각과 과일의 가장 멍든 부분을 먹었다는 30대 중반의 한 여성은 평생 자신의 욕망도 중요하다는 확신을 가지려고 힘겹게 애써왔다고 말했다. 영화나 레스토랑을 고르는 것처럼 단순한 일에서도 깊은 혼란에 빠지고, "나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것은그냥 한마디로 잘못된 일"이라는 느낌이 뼛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온다고 한다. 38세의 또 다른 이는 자기 집안의 여자들에게 "욕망에 관한 공백" 같은 것을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마치 욕망이라는 영역 전체가 한마디로 그들은 출입할 수 없는, 안개에 감싸인 장소인 것처럼. "남자들의 필요는 언제나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고 분명하게 울렸어요. 아버지는 일곱 시 정각에 저녁 식사를 해야 했고 일곱 시 정각에 저녁 식사를 했죠. 내 남자 형제들은 축구 연습을 하러 갈 차가 필요했고 축구연습을 하러 갈 차가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와 이모와 고모들에게는 자신의 필요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가리게 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이기적인 일이라는 느낌이 있었고, 그러니 자신의 필요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 P132

그러나 이 진흙탕처럼 혼탁한 동일시 작업은 단순한 역할모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성이 요구하는 단순한 ‘하라‘와 ‘하지 마라‘를 넘어, 어머니의 취약성이나 좌절 혹은 절망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딸의 허기를 덮어버리는, 더욱 복잡한 제약의 커뮤니케이션도 있다. 정신의학자 제시카 벤저민은 이렇게 썼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비록 자신은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그런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는 일이 너무흔히 일어난다. 그리고 어머니들이 보통은 자기 자신보다 자녀들에 대해 더 큰 포부를 품는다고 하지만, 이런 일에도 한계는 있다. 자신의 고립 때문에 깊은 우울을 느끼는 어머니는 자녀가 걷거나 말하는 것에 열광할 수 없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어머니는 자녀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느긋한 마음으로 볼 수 없으며, 자신의 열망과 야망과 좌절감을 억누르고 있는 어머니가 자녀의 기쁨과 실패에 감정이입하며 공감할 수 없다. 바로 이 말이 욕구라는 수수께끼의 핵심에도, 착하고 예쁘고 상냥해야 한다는 명령과 더불어 여자아이들에게 새겨질 수 있는 더욱 미묘한 감정의 흔적들에도 더 가까운 것같다. - P133

모든 세대는 바로 앞 세대를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 허기에 대한 모든 딸의 경험은 어느 정도는 허기에 대한 어머니의 경험에 의해 형태가 잡힌다. 어머니가 가졌거나 갖지 못한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했는지, 그에 비해 딸 자신은 어느 만큼을 원하는지 혹은 원하는 걸 스스로 허용할 수 있는지. 자신과 타인 간의 이런 비교 이런 이미지들이 모인 데이터 저장소,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거나 가치가 폄하되었거나 피로에 지친 어머니들에 대한 이런 기억들, 여자들은 권한도 힘도 야망도 섹시함도 덜하고 더넓은 세상에서 지원도 인정도 덜 받는 존재들로 표현되는 이현실. 바로 이런 것들이 여자들의 욕구 문제를 그토록 복잡한것으로 만들고, 배배 꼬여 풀리지 않는 단단한 매듭으로 만든다. 페미니스트인 어머니든 페미니스트가 아닌 어머니든, 가치가 폄하된 어머니든 번아웃된 어머니든, 어머니의 선택과 좌절, 온갖 한계와 제약은 딸에게 허기의 전형인 동시에 차이와 저항의 잠재적 근원이 되며, 이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상황을더욱 혼탁하게 만들 수 있고, 여자아이가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동일시와 동질성의 감정들을 위험하게 느껴지게 하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또한 그것은 허기를 분노와 짝지어버릴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떨치고 일어나지 않았던 어머니 혹은 당신에게 당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떨치고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 너무 많은 걸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기쁨을 얻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 당신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 혹은 당신이 이미 되어버린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아볼 줄 모르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 당신과의 차이점으로 당신에게 혼란과 고통과 단절감을 남겨주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 이런 분노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배 속을 딱딱하게 뭉치게 만들 만큼, 세븐일레븐으로 뛰어들어가 무언가를 훔치게 만들만큼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을 안긴다. - P147

욕구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개인적 회계- 얼마나 취할 것인지, 갈망과 제약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만족에 대해 글자 그대로든 비유적인 의미로든 대가를 얼마나 치를 것인지에 관한 내면의 수식는 또한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산법, 배우자든 자녀든 동료든 어머니든, 제2의 당사자에 견주어 측정하고 저울질하는 방정식이 될수도 있다. 메리 올리비에는 그 딜레마를 완벽하게 포착했다.
"당신이 자신의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당신은 다른 누군가를 굶길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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