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공포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두려움에 질린 사람은 스스로 격리하거나 마스크를 쓰거나, 그 밖에 본인과 사회에 이로운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활동 인구가 줄기 때문에 유행병의 피해가 일반적으로 줄어든다. 겁에 질린 사람은 동네 술집에서 남들과 어울리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이로움도 반드시 오래간다고는 할 수 없다. 움츠렸던 사람들이 때 이르게공포에서 ‘회복‘하게 되면, 부적절한 시기에 (예컨대 아직 확산이 충분히 통제되지 않았을 때) 사회 활동을 재개하기도 한다. 이는 2차, 3차파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일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는 것이, 공포로 인해 달아나는 사람들이 생기면 (앞에서 살펴봤듯이 전염병 발병기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때까지 탈이 없던 지역에 확산의 씨앗이 뿌려지면서 유행이 전체적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공포로 인해 낙인찍기와 희생양 만들기가 성행하거나정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할 만큼 대중의 불안감이 고조될 경우, 이 역시 유행병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 - P218

감정과 거짓 정보의 유행은 그 바탕에 깔린 바이러스의 유행과 우려스러운 모습으로 서로 뒤얽힌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범유행 시기 공공교육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과학적 지식이빈약하고 알려진 사실들은 상황에 따라 바뀔지라도, 당국자들은 얼마든지 기민한 동시에 정직한 자세로 대처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한다. 물론 당국자들도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이전에 했던 권고를 수정하거나 숫제 뒤집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 변경의 이유를 설명한다면, 그리고 정보를 공유할 때마다 근거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그리고 예측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같이 논한다면 대중의 냉소를줄이고 참여 의지를 높일 수 있다.
바이러스 자체가 초래한 상처로, 또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초래한 상처로 우리는 수없이 절망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이중으로 가해진 생물적·사회적 충격에 더해, 우리는 우리 앞에 과연 어떤 험로가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마주해야 했다. 역경속에서 우리는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보이는 심리 반응을 나타냈다. 슬픔과 비탄을 느꼈고, 불안과 공포, 분노의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진실을 서로에게서,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서 감추려고 애썼다.
그와 같은 정서적 반응과 행동은 그 자체를 유행병의 기본 요소로 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유행병의 정의에 크나큰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행병에 대한 공중보건 대응은 의료적·사회적·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심리적차원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는 21세기에 다시 찾아온 역병에 맞서면서, 예부터 써온 방책을 다시 사용했다. 그리고 예부터 느꼈던 감정들도 다시 느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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