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 희한해서 그 후 여러 해 동안 나 자신도 정확히 뭔지 파악할 수 없었던 내 반응만은 기억한다. 그것은 그 아이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나는 그추진력과 집중력과 의지력이 부러웠고, 그 가여운 소녀의 지독한 결단력에서 어떤 전략의 윤곽 같은 것을 보았던 것 같다. 하나의 불안(체중)을 여러 불안(남자, 가족, 일, 허기 자체)을 맡아주는 장소로 삼고, 극도로 야위고 수척해지는 것을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피해가는 일종의 지름길이자 우회로로 삼으며,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모든 허기들을 한데모아 그 핵심을, 처리해야 할 한 가지 욕구를, 단 하나의 욕구를 추려내는 전략이었다. - P99

이 생각에는 분명 진실의 알갱이들이 담겨 있다. 성 역할 구분이 훨씬 느슨해져 엄마들이 직장에서 일하고 아빠들이 기저귀를 가는 이 시대에도 여성성의 복음은 계속 살아남아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억의 메아리로 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상에서 설교된다. 식욕에 관한 복음의 계명들은 결여들-그 복음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마음의 결여, 그 복음을 강화해주는 것의 결여, 그것을 포용하는 마음의 결여- 의 형태로 쌓이면서 계속 전해지고 있다. 다이어트와 체중으로 고통받는 어머니, 자신의 외모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자신의 몸에 역겨움을 느끼는 어머니가 딸에게 음식에서 기쁨을 느끼도록, 체중에 대해 느긋해하도록, 혹은 여성의 육체를 즐겁게 느끼도록 가르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두렵거나위험하거나 더러운 것이라고 느끼는 어머니가 딸의 섹슈얼리티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리고 욕망에대한 경험의 바탕이 금기나 극기, 남들을 먹이는 일과 자신의 채워지지 않은 허기로 인한 고통을 감추는 일인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더 넓은 풍경으로 향해 가도록 이끌어주기도 쉽지않다. - P131

자기 어머니가 "자기희생의 표본" 같은 사람으로, 늘 자식들을 위해 살았고 언제나 접시에 담긴 고기 중 가장 작은 조각과 과일의 가장 멍든 부분을 먹었다는 30대 중반의 한 여성은 평생 자신의 욕망도 중요하다는 확신을 가지려고 힘겹게 애써왔다고 말했다. 영화나 레스토랑을 고르는 것처럼 단순한 일에서도 깊은 혼란에 빠지고, "나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것은그냥 한마디로 잘못된 일"이라는 느낌이 뼛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온다고 한다. 38세의 또 다른 이는 자기 집안의 여자들에게 "욕망에 관한 공백" 같은 것을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마치 욕망이라는 영역 전체가 한마디로 그들은 출입할 수 없는, 안개에 감싸인 장소인 것처럼. "남자들의 필요는 언제나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고 분명하게 울렸어요. 아버지는 일곱 시 정각에 저녁 식사를 해야 했고 일곱 시 정각에 저녁 식사를 했죠. 내 남자 형제들은 축구 연습을 하러 갈 차가 필요했고 축구연습을 하러 갈 차가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와 이모와 고모들에게는 자신의 필요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가리게 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이기적인 일이라는 느낌이 있었고, 그러니 자신의 필요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 P132

그러나 이 진흙탕처럼 혼탁한 동일시 작업은 단순한 역할모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성이 요구하는 단순한 ‘하라‘와 ‘하지 마라‘를 넘어, 어머니의 취약성이나 좌절 혹은 절망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딸의 허기를 덮어버리는, 더욱 복잡한 제약의 커뮤니케이션도 있다. 정신의학자 제시카 벤저민은 이렇게 썼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비록 자신은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그런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는 일이 너무흔히 일어난다. 그리고 어머니들이 보통은 자기 자신보다 자녀들에 대해 더 큰 포부를 품는다고 하지만, 이런 일에도 한계는 있다. 자신의 고립 때문에 깊은 우울을 느끼는 어머니는 자녀가 걷거나 말하는 것에 열광할 수 없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어머니는 자녀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느긋한 마음으로 볼 수 없으며, 자신의 열망과 야망과 좌절감을 억누르고 있는 어머니가 자녀의 기쁨과 실패에 감정이입하며 공감할 수 없다. 바로 이 말이 욕구라는 수수께끼의 핵심에도, 착하고 예쁘고 상냥해야 한다는 명령과 더불어 여자아이들에게 새겨질 수 있는 더욱 미묘한 감정의 흔적들에도 더 가까운 것같다. - P133

모든 세대는 바로 앞 세대를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 허기에 대한 모든 딸의 경험은 어느 정도는 허기에 대한 어머니의 경험에 의해 형태가 잡힌다. 어머니가 가졌거나 갖지 못한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했는지, 그에 비해 딸 자신은 어느 만큼을 원하는지 혹은 원하는 걸 스스로 허용할 수 있는지. 자신과 타인 간의 이런 비교 이런 이미지들이 모인 데이터 저장소,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거나 가치가 폄하되었거나 피로에 지친 어머니들에 대한 이런 기억들, 여자들은 권한도 힘도 야망도 섹시함도 덜하고 더넓은 세상에서 지원도 인정도 덜 받는 존재들로 표현되는 이현실. 바로 이런 것들이 여자들의 욕구 문제를 그토록 복잡한것으로 만들고, 배배 꼬여 풀리지 않는 단단한 매듭으로 만든다. 페미니스트인 어머니든 페미니스트가 아닌 어머니든, 가치가 폄하된 어머니든 번아웃된 어머니든, 어머니의 선택과 좌절, 온갖 한계와 제약은 딸에게 허기의 전형인 동시에 차이와 저항의 잠재적 근원이 되며, 이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상황을더욱 혼탁하게 만들 수 있고, 여자아이가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동일시와 동질성의 감정들을 위험하게 느껴지게 하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또한 그것은 허기를 분노와 짝지어버릴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떨치고 일어나지 않았던 어머니 혹은 당신에게 당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떨치고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 너무 많은 걸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기쁨을 얻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 당신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 혹은 당신이 이미 되어버린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아볼 줄 모르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 당신과의 차이점으로 당신에게 혼란과 고통과 단절감을 남겨주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 이런 분노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배 속을 딱딱하게 뭉치게 만들 만큼, 세븐일레븐으로 뛰어들어가 무언가를 훔치게 만들만큼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을 안긴다. - P147

욕구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개인적 회계- 얼마나 취할 것인지, 갈망과 제약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만족에 대해 글자 그대로든 비유적인 의미로든 대가를 얼마나 치를 것인지에 관한 내면의 수식는 또한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산법, 배우자든 자녀든 동료든 어머니든, 제2의 당사자에 견주어 측정하고 저울질하는 방정식이 될수도 있다. 메리 올리비에는 그 딜레마를 완벽하게 포착했다.
"당신이 자신의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당신은 다른 누군가를 굶길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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