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신체적 거리두기와 경제 붕괴, 그리고 침체된 세상은 모두전염병의 특징이다. 1500년 전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가 유행할때도 사제이자 역사가였던 에페수스의 요한John of Ephesus 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방의 만물이 무로 돌아가고 허물어지고 애달픔만 남았으니••• 매매가 그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세속적 부를 누리던 상점들과 사채업자의 거대한 업소들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온 도시가 소멸하기라도한 듯 멎어버렸으니 그렇게 모든 것이 그치고 멈춰버렸다.
이처럼 전염병의 참상을 다룬 기록들을 읽으면 섬뜩할 만큼 낯익은 느낌이 든다. 경제는 교환을 바탕으로 하고, 교환은 사람들 간 교류에 의존한다. 사람들이 교류를 할 수 없다면 경제도,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도 성립하기 어렵다. 전염병 유행기는 생명뿐 아니라 생계를 잃는 시기다. 일상을,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자유를, 그 밖의 많은 것을 잃는 시기다. - P201
유행병은 비탄 외에 두려움도 자아낸다. 두려움 자체도 전염되므로, 일종의 유행병이 또 하나 퍼지는 셈이다. 병원체 · 감정 · 행동의전염 경로는 독립적일 수도 있고, 서로 교차할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아무리 전염성이 높은 병원체도 두려움의 전염성을 이기지는못한다. 병은 감염된 사람과 접촉해야만 전염되지만, 두려움은 감염된 사람이나 두려워하는 사람 어느 쪽과 접촉함으로써도 전염될 수있다.18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염병의 공포에 대처한다. 그중에는 전염병이라는 위협에 대한 통제권을 발휘하려는 시도가 많다. 예를 들면 전염병 유행을 남들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뭔가어떻게 해볼 수 있는 재난이라는 기분이 든다. 인간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 문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편한 법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힘으로 대처해볼 수 있다는 얘기니까. 아폴론처럼 복수심에 불타 말릴 수 없는 신이라거나 무심하고 무자비한 자연에서 비롯된 재앙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움만 커질 뿐이다. 이렇게 통제감을 가지려는 욕구는 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비난의 화살이 소수집단에, 아니면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쏠리기 쉽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전염병 범유행 중에 정부와 보건 당국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부정적 감정과 무력감이 만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국민이 그런 감정을 적절한 통로로 배출하여 건설적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점으로만 봐도 보건 당국은 마스크 착용을 권장할 만한 이유가충분하고, 국민에게는 마스크 착용이 득이 될 수 있다. 마스크의 이점이 정확히 무엇이건 간에 (물론 상당히 크지만) 재난이 닥친 상황에서 뭔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통제감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 또 한 예는 의료 종사자들에 대한 국민의 집단적 격려다. 뉴욕시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었지만, 이 역시 통제감과 사회적 연대감을 고취하는 행동이다. 이런행동이 주는 심리적 혜택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다른 더 고생스럽고 어렵고 힘든 일들에 참여할 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공포와 불안을 통제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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