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느새 누구도 그 영역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치않는 튼튼한 그물이 되어 있었다. 이 그물은 질기고 촘촘했다. 어둑신한 찻집 귀퉁이나 밤늦은 시간의 기숙사에서 정치는 신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신학생들을 사로잡았다. 대체로 소곤거렸지만, 때로는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정치는 시대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였다. 그것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환상이 시대를 지배했다. 사람들은 그 화두를 풀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 P224

종교는 신념과 믿음의 영역이다. 그 안에 나름대로의 체계가 없는것은 물론 아니다. 그 무엇보다 정교한 체계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체계는 엄밀하게 말해서 주관적인 것이다. 절대적 신뢰와 전적인 헌신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 없이 신앙인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한다. 특정한 종교에 몰두한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할 때에는, 이 전제가 지켜지고 있다. 요컨대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바칠 수 있다거나 또는 그럴 수 없다는 차원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과 인간, 영혼과 육체, 하늘과 땅사이에 갈등과 회의가 생기고 반항과 구원의 드라마가 탄생한다. - P234

이러한 사유 안에서, 그의 지반(地)은 그 자신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신과 같은 어떤 초월적인 존재도 아니다. 그녀이다. 그러면 그녀는 이 남자로부터 이만한 떠받듦의 대상이 된 그 여자는 행복한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에게 그녀는 완벽함의 이데아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완벽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그녀는 허상일 수 있다. 그가 만든 완벽함의 허상. 그가 보고 바라고의지하고 꿈꾸는 그녀는 실체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창조해 낸 완벽한 여자를 그녀에게 투사했을 뿐이다.
이 명제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경고한다. 그를 받치고 있는 이 인공의 지반이 허물어져 버리면 그의 존재 자체가 일시에 위협받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위해서 그녀는 절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럴 수 없으므로, 완벽함은 그의 꿈이므로, 이 지반은 언제든 허물어질 위험을안고 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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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주년 기념 서문

침팬지에게 보이는 정치적 속성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다루는 책만이25년 동안 절판되지 않고 출간될 수 있다. 이런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정치다. 우리는 정치에 깊이 물든 존재로 정치적 권모술수를 즉각 알아차린다. 심지어 인간의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그렇다. 유명한 정치학자 해럴드 래스웰(Harold Laswell)의 말처럼 정치를 "누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획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침팬지에게 정치적 속성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과가장 가까운 사촌인 침팬지 또한 사회적 과정에서 허세, 연합, 고립 전략들을 구사한다는 점을 볼 때 이들도 정치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13

이러한 현장 연구들은 평화로운 채식주의자로 그려졌던 침팬지의 이미지를 산산조각냈고, 그들의 놀라운 사회적 복잡성을 밝혀내기시작했다. 그동안은 영장류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육식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침팬지가 원숭이들을 잡아서 쥐어뜯고 산채로 잡아먹는 것이 관찰되었다. 또 초기에 침팬지는 어미와 자립하지 못한 새끼사이의 강한 유대를 제외하고는 사회적 유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겨졌지만, 현장 연구자들은 숲의 특정 범위에 거주하는 모든 개체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뤄 정기적으로 교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침팬지들은 이웃 영역에 거주하는 개체들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경향을 보였다. 과학자들은 ‘집단(group)‘이라는 용어를 배제하고 ‘공동체(communitie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침팬지는 좀처럼 거대한 집합체를 형성하지 않고, 숲속을 여행하며 항상 변화하는 작은 ‘단체(parties)‘로 나뉘기 때문이다. 이는 합종연횡 (fission-fusion)으로알려진 행동의 일종이다.
인간의 독특성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은 우리가 같은 종을 살해하는유일한 영장류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거부되었다. 침팬지 공동체들 사이에서 일어난 치명적인 영토 분쟁의 보고들은 전쟁 이후 인간의 공격성에 대한 논쟁에 심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16 - P16

1
동물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팬지를 보고 즐거워한다. 다른 어떤 동물도 이토록 웃음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왜 그런 것일까? 그들이 곡예를 잘하거나 아니면 이상하게 생긴 외모 탓일까? 물론 우리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은 그들의 표정과 태도임은 분명하다.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모습이나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만 봐도 웃음을 참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들이 침팬지를 보고 재미있어 하는 것은 아마도 그와는정반대의 감정을 감추기 위함일 것이다. 즉, 인간과 침팬지가 매우 닮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포장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바로 유인원이 우리 인간에게 ‘거울‘을 쥐어 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들의 복제품과도 같은 유인원 앞에서 진지한 표정을 짓기는 아마도 어려울 듯하다. - P27

침팬지처럼 머리 좋은 동물을 상대로 탈출 기회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들은 열쇠 사용법도 알고 있어 가끔사육사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기도 한다. 탈주 사건이 흥미로울 때는시간이 지나서 그 일을 회상할 때뿐이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옷을 여유조차 없이 모두 그 사건이 가져올 위험만을 먼저 떠올린다.
우리들 중에서 누구도 감히 침팬지들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사육사와 내가 무리 가운데 몇 마리와 제법 친숙해지는 순간도 그들이 잠자리에 들어갔을 때뿐이다. 동물원에서는 어른 침팬지의 경우결코 마음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사람들보다 체중은 덜 나가지만 힘은 훨씬 세다.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침팬지와 관련된 문제는 모두그들의 강한 팔 힘 때문에 일어난다. 팔 힘뿐만 아니라 불 같은 성미도침팬지를 위험한 동물로 간주하는 데 한몫 한다.
야생 침팬지의 경우는 자신들이 사람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지못하며, 도리어 사람과 사람이 지닌 무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야생 침팬지는 일단 사람과 친숙해지면 아른험 집단의 침팬지보다 훨씬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반면, 이곳아른험에서는 도랑 너머 6~60 미터 거리를 벗어나야만 그들을 관찰할 수 있다(관찰대에서 보는 경우를 제외하고 동물원 관람객과의 거리는 더 멀다). 탄자니아 곰비의 경우, 야외 연구자는 더 가까이 다가가 침팬지 곁에 앉아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침팬지들은 자신들이 인간보다 어느 정도 힘이 센 사실을 알아챈 듯하다. 가장 악명 높은 성격의 소유자인 근육질 침팬지 프로도(Frodo)는 캠프 근처의 방문객들을 손바닥으로 맘껏 때리고, 때로는 질질 끌고 다니기도 했다. 한번은 프로도가제인 구달의 머리 위에 올라가 힘껏 짓누르는 바람에 그녀의 목이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겁주거나 지배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굳은 신뢰감을 손상시키지 않고 침팬지의 그런 행동을 중단시킬 수 있는 연구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 P43

동물행동학(ethology)이란 동물의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것을 가리킨다. 1930년대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와 니코 틴버겐(Niko Tinbergen)의 영향으로 생겨난 이 학문은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지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동물행동학과 동물심리학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동물행동학이 어디까지나 ‘자연환경‘에서 또는 적어도 가능한 한 자연적인 조건에서의 ‘자발적인 행동‘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동물행동학자들은 물론 실험도 하지만 야외조사를 절대 빼놓을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강한 관찰자라야 한다. 어떤 실험 목적을 위해 특정 행동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기 위해 한없이 기다리는 태도를 지녀야하는 것이다. 이는 아른험에서 이뤄진 우리 연구의 특징이기도 하다. - P47

이것이 이른바 게슈탈트 지각(Gestalt perception)의 종합 원리이다. 즉, 게슈탈트(전체)란 단순한 부분들의 합 이상이며 지각을 학습한다는것은 구성 부분들이 규칙적으로 전개되는 여러 가지 패턴을 인식할 수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침팬지들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의여러 패턴에 익숙해지면 그것들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명확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지엽적인 문제에 구애받거나 상황의 기본적인 논리를 놓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게 된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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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극복하고 싶어요. 그러지 않으면 도쿄에 져서 도망치듯 돌아가는 것 같으니까•••••."
유야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지고 싶지않았다.
"기타노씨, 착실한 사람이네."
이라부가 팔짱을 끼고,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유야는 하마가 인상을 쓰면 이런 얼굴일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인생에는 승패가 없어, 동물을 보고 배워야 해. 서식지가확실하게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게 생활하잖아? 가령 너구리가 도시로 잘못 들어섰을 경우, 자기는 도시 삶을 극복하고 싶다는 소리를 할까? 올 곳을 잘못 짚었다며 서둘러 돌아가잖아." - P300

이미 사람들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된 이라부를 태운 가마는 스크램블교차점 앞까지 접어들었다. 신호가 초록색으로바뀌었다. "영차! 영차!" 가마를 둘러싼 사람들이 다 함께소리 높여 외쳤다.
"거기가마 그룹! 위험하니까 멈춰요!"
경찰차 지붕 밖으로 몸을 내민 경찰이 마이크로 빽빽 고함을 쳐댔다. 그런데도 가마는 멈추지 않았다.
"교차점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무허가로 노상으로 나가면,
도로교통법 위반이야!"
"가, 그냥 가~!" 주위에서 부채질을 했다. 뒤에서 떠미는 형국이라 유야 일행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에이, 됐어. 그냥 가버리자-.
"아자아자!"
유야는 시부야 스크램블교차점 한가운데서 우렁찬 고함을질렀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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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나는 과연 서점 주인을 ‘업‘으로 삼고 싶은가? 내가 일했던 서점의 주인은 내게 친절히 대해 주었고 서점에서 행복했던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아니올시다.
-조지 오웰, 「서점의 추억들」, 런던, 1936년 11월

서점 주인이 되기를 주저하는 오웰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서점 주인은 성마르고 편협하고 비사교적이란 고정관념이있는데(<블랙 북스>란 코미디에서 딜런 모런은 이런 서점 주인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그건 ‘대체로 사실인 듯하다. 물론 예외는 있고 그런 유형에 속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유형에 속한다. 하지만 나도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서점을 인수하기 전까지만해도 나는 유순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고객들이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의미 없는 질문, 서점의 위태로운 경제 사정, 점원들과 끝도 없이 벌이는 사소한 언쟁, 진이 빠질 만큼 집요하게 책값을 깎으려 드는 손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럼 이런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으냐고? 아니올시다. - P7

대부분의 책 거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최근에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 고인의 책을 처리하는 일을 맡게 됐다는 얘기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아직 고인을 애도 중인 경우가 많아서 얘기를 듣다 보면 아주 약간이라도 그 슬픈 감정에 동요되지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인이 남긴 책들을 훑어보다 보면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관심거리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성격까지도 어느정도는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친구네집에 가서도 책장부터 관심이 가고, 특히 친구에 대해 내가 전혀 몰랐던 점을 드러내거나 뭔가 친구와 어울리지 않는 책에 시선이 간다. 내 책장도 이런 점에서 떳떳하지 않다. 내 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소설과 스코틀랜드 예술과 역사에 관한 책들 사이에는 「야한 이디시어 회화』와 『수집할 만한 제3제국 시대의 숟가락』이 꽂혀 있다. 첫 번째는 애나가 준 선물이고, 두 번째는 친구 마이크가 준 것이다. - P21

1899년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의 출판사들은 책은 반드시할인가가 아닌 정가로만 판매한다는 조건으로 서점에 책을 공급하기로 동의했다. 이 계약을 위반한 서점에게는 어떤 종류의 책이든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조항에도 동의했다. 이것이 바로 ‘도서정가제Net Book Agreement(NBA)‘이다. 이 제도는 1991년 딜런스와 워터스톤스 같은 대형체인 서점이 소규모 독립 책방들을 위축시키며 부상하기 전까지는 모두에게 이롭게 잘 적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금세 하자 있는 도서에대한 면제 조항을 악용해서 도서정가제를 회피할 구실을 찾아냈고, 할인하고자 하는 책의 모서리에 사인펜으로 십자 모양 자국을 냈다. 아직까지도 책을 살 때 이 표시를 종종 발견한다. 이로 인해 출판사와 대형체인 서점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잇따랐고 결국 1997년 공정거래청에서 ‘도서정가제는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끝이 났다.
도서정가제의 장점 중 하나는 출판업계가 잠시나마 경제적인 안정을 찾고 그 덕분에 출판사에게 시장성보다는 문화적인 가치가 있는책을 출판할 여유를 제공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그런 안전망이 없는요즘에는 출판사들이 시장성 없는 책의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기때문에 매년 영국에서 인쇄되는 책의 양은 증가하고 있지만 책의 종류는 줄어들고 있다. 종수는 적은데 부수만 많이 발행하는 것이다. 이제 출판업계는 출판사가 아니라, 오웰이라면 ‘대형 자본combines‘이라고 불렸을 워터스톤스나 테스코"와 같은 유통업체들이 지배하는 시장이 되였다. - P40

자식이 있는 책 거래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안타까운 감정이 북받쳤다. 이렇게 고인의 장서를 처분하는 일은 어쩌면 그들의 특성을 해체시키는 최후의 작업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그들이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증거의 마지막 조각을 없애는 책임을 맡은 느낌이랄까. 고인이 된 부인의 장서는 그 부인의 개성, 말하자면 그녀가 남긴 것 가운데 유전 형질에 가장 가까운 취향의 기록이다. 어쩌면 이것이 고인의 조카가 내게 책을 봐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이유일지도 모른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오랫동안 그 아이의 방에 있는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 P48

점심때쯤 온 손님이 내게 책을 도둑맞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서점은 미로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훔치려고 한다면 책 도둑 입장에서는 꽤 유리한 여건이긴 하지만, 이제까지 이 문제를 한 번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 종종 원하는 책을 못 찾으면 아마 도둑맞았나 보다고 추측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대부분은 생각지 못한곳에서 튀어나오곤 했다. 그러고 보면 책을 훔치는 일은, (예를 들어) 시계를 훔치는 일보다는 왠지 도덕적으로 비난을 덜 받아도 될 만한 일처럼 느껴진다. 아마 일반적으로 책은 그 자체가 교화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가 범죄로 인해 받는영향보다 더 큰 사회적 개인적 가치를 지닌다고 간주되는 때문인지도모르겠다. 혹은 책이 범죄를 막지는 못해도 분명 완화하기는 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 P56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책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수도 있다. 책에 대한 견해는 전적으로 주관적이니까 말이다. 내 친구중 하나는 런던에서 고급 보석상을 한다. 그 친구에게 경매장에 가서물건을 고르는 판단 기준을 물어본 적이 있다. 친구는 처음 보석 관련일을 시작했을 때는 보기에 너무 거슬리지 않고(물론 그 친구의 눈에 보편적인 매력을 가진 물건을 샀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보석은 잘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가치도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곧 알게 되고서 전략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제는 뭔가 아주 강렬한 반응이 오는 물건이면 무조건 사. 너무 마음에 들거나 너무 보기 싫거나. 그런 물건은 나중에 확실히 큰돈이 되거든."
상당수의 책방은 특정 분야의 도서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난 아니다. 우리 서점은 쟁여 넣을 수 있는 한 광범위한 주제와 다양한 종류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우리 서점에서 모든 사람이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10만 권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빈손으로 서점을 나간다. 누가 스피노자의 다 낡은 『윤리학』 페이퍼백을 2.5파운드에 사든, 밀스&분의 책을 2.5파운드에 사든 상관없다. 난 그저 손님 한 명 한 명이 모두 독서 경험을 통해 동등한 기쁨을 얻어 내기를 바랄 뿐이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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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회의는 언제나 하타야마 게이스케를 우울하게 만든다. 오후 4시,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하는 이 회의의전반부는 시종 그날 방송 내용에 대한 반성회나 다름없다. 그러나 진행자와 패널들이 돌아가고 스태프만 남으면, 어제 시청률과 관련해서 미야시타 PD가 퍼부어대는 호된 질책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 P9

"어제 <타임> 재미있었어. 그 의사랑 간호사 최고더군. 그런데 말이야, 텔레비전에서는 무리야." 사장이 입을 열자마자한 첫 마디였다.
"자네들은 텔레비전이야 시청률만 나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 분명 그런 측면이 있고, 나도 툭하면 수치를높이라고 매섭게 몰아붙이지. 하지만 텔레비전의 기본은 거실의 최대공약수를 추구하는 거야. 자극적인 소재를 상용하는건 반칙 기술이야. 비유하자면 도핑이겠지."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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