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이 곤란한 것은 수줍어하는 사람에게도, 그와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그것이 진공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줍음은 사람의 성격이라는 스튜에 들어 있는 한 가지 재료일 뿐이다. 수줍음은 다른 특징들과 섞여 있고 그리고 종종 다른 특징들에 가려져 있다 이것이 수줍음이 헷갈리게 느껴지는 한 이유다. 수줍어하는 사람 본인에게는 수줍음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지배적인 성격적 특질로 느껴질 테지만, 다른사람들의 눈에는 그 사실이 늘 그렇게 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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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문은 9월 20일 저녁 8시경부터 밤 10시 반경까지 자행되었는데, 전기고문, 물고문의 합동고문이었다. 김수현·김영두·정현규·박병선 · 최상남, 그리고 또 한 사람이 고문에 가담했다. 이제까지의 ‘자백‘과 ‘번복‘의 되풀이였다. 민청련이 반국가단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고문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김근태는 "아, 죽게 되는구나. 이렇게 해서 죽는 것이구나" 절망하고, 마구 눈물을 흘렸다.

바깥 사회와 완전히 차단되었던 나는 정치적 사정이 정치군부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본인의 생명의 말살을 절대로 요청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각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끔찍한 고문, 말도 안 되는 각본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결심했습니다. "그래, 죽을 수도 있다. 40년을 살아왔다. 유관순도, 윤동주도, 그리고 김주열도, 80년 광주의 숱한 선량한 시민들도 그렇게 살해당하지 않았는가. 추하게 정치군부 너희들에게 굽실거리지는 않겠다. 절대로 휘청거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 P127

26일 오후 3시경 남영동 5층 15호실을 떠나기에 앞서 나는 김수현과 백남은을 찾았습니다. 잠시 책상을 사이에 두고 김수현과 방에서 앉아서 얘기했습니다. 별 의미 있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은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내가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울었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처참하게 고문을 당하고 간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간다. 이러고도 속수무책인 것이 원통하다. 더구나 너무 끔찍하게 당해서 분노하기조차 두려운 것이 한스럽다. 떠나는 지금도 내놓고 욕 한 마디 할 수없고 그런 용기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 말이다. 이 저주받을 인간들이, 악마 같은 자들이 내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처럼 군림하였으며 그에 아양조차 떨어야 했던 이 끔찍한 지옥을 All Mighty처럼 덮쳐왔던 것을....."

남영동에서 김근태에게 가한 살인적인 고문을 총지휘한 자는 9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이근안이었다. 처음에는 가명이어서 몰랐으나 뒷날에야 그가 이근안임을 알게 되었다. 이근안은 공군 헌병 출신으로 1970년 경찰에 입문한 뒤 1972년부터 대공 분야에 근무하면서 악질적인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리며 특진과 승진을 거듭하다 1984년에는경감에 올랐다. 그에게 고문을 당한 인사들의 증언대로 ‘눈에 핏발이서 있었다"고 할 정도로 가학성을 지닌 인물이다. - P128

김근태는 비록 지옥 같은 남영동은 떠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풀려나는 것은 아니었다. 9월 26일 오후 김근태는 검찰청 구치소로 이감되었다. 이날 검찰청으로 호송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부인 인재근을만났다. 그동안 남편의 행방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다가 그날 검찰로 이송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인재근과 해후한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그는 부인에게 발뒤꿈치의 고문당한 상처들을 보여주었다. 이 기적같은 일이 김근태의 고문 실상이 세상에 밝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기적이었다.

계단을 경찰 한 사람과 본인의 처가 부축해 내려가면서 나는 망설이고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말했습니다. 불과 1분여 동안이었습니다. 그 고문은 나 개인에 국한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얘기했습니다. 고문얘기를 듣고 처가 괴로워할 것을 생각하고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그럴문제도 아니었고 도무지 원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에 나는 말했습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침착하게 말하면서 신고 있었던 양말을 벗었습니다. 발뒤꿈치의 상처들과 발등의 꺼멓게 탄 부분을 보여주었고, 팔꿈치의 상처도 보여주었습니다.
이 만남은 정말 기적 같은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관례와는 달리 늦은 오후에야 도착한 본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리하여 정치군부의 고문과그 은폐 행위가 폭로되고 국내외적으로 맹렬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게 된이 만남은 본인에 대한 영원한 기적일 것입니다.  - P130

 용지는 주었지만 자신이 쓴 탄원서를 그대로 둘 리 없다고 의심하면서도 김근태는 심혈을 기울여 한자 한자 써 내려갔다. 그런데 예상대로였다. 애써 쓴 ‘탄원서‘를 출정하는 시간에 누군가가 훔쳐가고 말았다. 여러 날 고심해 쓴 ‘탄원서‘는 빼앗기고 말았지만, 마지막 부분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맨 끝으로 고문을 당하며 속으로 통곡하고 지내온 지난겨울, 이 감옥소에서 나는 애정 넘치는 수많은 학생, 그리고 버림받은 재소자들의 격려 속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그때 두 겹 비닐 창문을 때리는 북풍을 견디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되뇌고 되뇌었다.

내 귀여운 아이들아
느이들하고 놀아주지도 못하고
애비가 어디 가서 오래 못 와도
슬퍼하거나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
외로울 때는 엄마랑 들에도 나가 보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봐야지
바람이 차거들랑 옷깃 잘 여며
감기 들지 않도록 조심도 하고.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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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룬의 몰락은 그가 라윗이나 니키의 공격으로부터 다른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로도 설명될 수 있다. 라윗의 행동도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라윗은 암놈들을 공격하거나 이에룬의 면전에서 암놈들에게 거만을 떨면서, 암놈들로 하여금 이에룬에게 지원을 요청해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점을 시위했던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에 성공하고 나자 그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서 스스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 P185

라윗의 선택은 침팬지 사이의 우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를 웅변하고 있다. 일찍이 라윗은 이에룬과 암놈들에 대항하기 위해 니키와 결탁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뒤집어서 니키에 대항하기 위해 이에룬과 암놈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놈들을 향한 니키의 공격은 라윗 자신의 권력투쟁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그래서 라윗은 가끔 암놈들을 공격하는 니키를 응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라윗은 니키와 암놈들 사이에 끼어들고, 때로는 서로 충돌이 벌어지기 전부터 개입했다. 니키가 털을 세우고 암놈들에게 접근해서 조금씩 몸을 흔들면서 정말로 공격하려 들 때 라윗은 니키의 옆이나 앞에 서서 감히 더 이상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 어떤 때는 니키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갈 때까지 라윗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계속되었다. 니키에 대한 라윗의 태도가 경직되면서 둘 사이의 충돌도 잦아졌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암놈 때문이 아니라 이에룬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둘 다 왕년의 지도자인 이에룬과 접촉하기를 바라던 터여서 서로가 어느 한쪽이 이에 곁에 앉는 행위를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 P187

8월이 되자 삼각관계의 형태가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니키와이에룬 모두 예전에 비해 라윗에게 덜 굴욕적이고, 자주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리더인 라윗이 그들 중 한쪽에게 과시 행동을 해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에룬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맹렬하게 라윗을 공격하면 니키는 라윗을 위협하듯 털을 곤두세우며 이에룬 편을 들었다. 니키는 다른 두 수놈을 분리시키는 데 점차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라윗은 니키의 그런 시도를 중단시키려고 애썼지만 니키가 위협을 계속할 경우 이에룬은 라윗 곁에서 멀어지려고 했고, 라윗은 이런 행동에 속수무책이었다. 간단히 말해, 이제 세력 균형은 2인자와 3인자의 연합 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1인자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위협을 의미했다. 전례 없던 불안감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6주가 지나서 대규모 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에 이르기까지 몇 주 동안 먼저 니키가, 다음에는 이에룬이 라윗에게 ‘인사‘하는 것을 중단했다. 그리고 이 두 수놈들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진짜 연합을 이뤘다. 이연합은 그로부터 꼬박 3년이 지난 1980년까지 유지되었다. - P191

그로부터 며칠은 라윗에 대한 음모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라윗이암놈이나 새끼들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두 마리의 모반자는 하나가 되어 조금 떨어진 사육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호릴라만이 그들과 빈번하게 접촉을 가졌다. 우리는 호릴라가 니키에게 빈번히 키스하는 데에 주목했다. 라윗은 가끔 호릴라가 두 라이벌에게 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거나 과시 행위를 했지만 공격하지는 않았다. 지난 겨울호릴라는 이에룬에 대해 한결같은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그녀가 이에룬의 동맹 파트너인 니키에게 충성심을 보인다 해도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호릴라와 호릴라의 친구인 마마 사이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었다.
수놈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마마와 다른 암놈들은 니키를공격해서 쫓아버렸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룬과 호릴라가 니키를지켜주었다. 그런 경우에 호릴라는 여러 암놈들을 공격했지만 마마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마치 마마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 일은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호릴라의 행동이 마마의 노력을 무위로 만들어버렸지만 마마는 호릴라에 대해 어떤 보복도 하지않았다. 마마와 호릴라 사이의 우정이 대단히 깊었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고 해서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이들두 암놈 사이의 충돌은 단 한 번도 목격된 적이 없다.
니키는 항상 마마 곁에 붙어 있는 라윗에게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접근했다. 그는 목덜미의 털을 세운 채 그들과 마주 앉은 뒤에는 도발적으로 ‘후우후우‘ 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해서 용기를 북돋운 니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래나 막대기를 집어던지기 시작하면 암놈들도 공세를 취한다. 그러나 라윗은 만사가 귀찮다는 듯 자신의 지원자들의 등뒤를 지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적대적인 2인조세력에 대항해 승리할 여지가 거의 없음을 이미 분명하게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일주일 만에 니키는 다시 왕좌에 복귀했다. - P206

서양 과학자들은 동물의 사회행동을 연구할 때 전통적으로 경쟁, 세력권, 우열관계 등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 1922년 노르웨이의 셸드럽-에브(Schjelderup-Ebbe)가 암탉 사회에서 먹이를 쪼아 먹는 순서를 발견한 이래로 서열 지위는 사회구조의 주요 형태로 여겨졌다. 그래서 원숭이와 유인원에 대한 연구에서도 개체들을 위에서 아래로 수직적인 순위를 매기려는 시도가 오랫동안 주를 이뤘던 것이다. 그러나 예외도있었다. 바로 일본의 영장류 학계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혈연과 우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개체들을 수평적으로 분류해 그것을 거미줄과 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표현했다. 이 거미줄망은 중심부와 동심원을 이루며 점점 커지는 주변부로 구분됐다. 그들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어떤 개체를 받아들이는 정도라든가, 그 개체가 어느 혈연집단에 속해 있는가 하는 따위에 흥미를 가졌다.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서구적 시각은 영장류 사회를 ‘사다리(ladder)‘ 개념으로 파악하려고 한 데 비해, 일본의 연구자들은 ‘그물망(network)‘ 개념으로 파악한 셈이다. 우리가 이들 두 가지 접근방식을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왜 안정된 우열관계가 사회 시스템의 평화를 보장하는 부분에만 영향을 미치는지 분명해질 것이다. 새끼들의 성장으로 인해 사회적 유대가 확립, 방치, 혹은 파괴되는 ‘수평적‘ 발전은 일시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수직적 요소, 즉 위계서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P212

라윗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도 역시 패자를 지원했다. 그는 암놈들의 지원을 받았고 평판도 상당히 높아져 암놈들은 이에룬보다 그에게 자주 ‘인사‘를 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런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즉, 리더는 질서를 유지해주는 대가로 집단 구성원들로부터 지원과 존경을 받는데, 이와 동일한 현상이 두 번째 정권 교체에서도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크게 달라진 점은 이런 자질이 지도자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평화를 수호한 대가로 광범위한 존경을얻은 것은 니키가 아니라 그의 연대 파트너인 이에룬이었다. 이런 상황전개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 마리의 개체가 공식적인 지배와 이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룬과 라윗은 단독 지도자였던 데 반해, 니키는 다른수놈과 지도력을 ‘공유‘했던 것이다.
치안 유지는 이에룬의 몫이었다. 이에룬과 니키가 서로 간의 다툼에 개입한 많은 경우들을 제외하면 이에룬이 집단 내에서 벌어진 싸움에 개입해 약자를 도운 비율은 82퍼센트였던 반면, 니키는 22퍼센트에 불과했다(1978년~1979년). 니키는 1인자의 지위에 있었음에도 여전히 승자를 지원했다. 니키가 권력의 정상에 오른 직후에는 이에룬이 아주 효과적으로 니키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니키가 실질적으로 집단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젊은 지도자인 니키가 털을 세운 채 두 암놈 간의 충돌에 개입하려 들거나 실제로 개입했을 때,
이에룬은 즉각 니키를 공격해 쫓아버렸고, 간혹 이 과정에서 두 암놈들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1979년이 되어서도 니키가 완전한 지배권을 획득할 수 없었던 이유는 치안을 유지하려는 니키의 노력을 이에룬이 방해한 탓이었다. - P222

니키의 디위은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이키와 비교하면 리에룬과 라윗은 암놈들의 협력 덕분에 전능에 가까운 권력을 누렸던 셈이다. 니키의 지도력과 구질서와의 중요한 차이는, 니키가 야심 많은 타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인간 세계에서도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유의 리더가 갖는 상대적 무력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아래 《군주론> 인용문에서 ‘귀족‘
을 ‘서열 높은 수놈‘으로, ‘평민‘을 ‘암놈과 새끼들‘로 고쳐서 읽어보라. 그러면, 우리는 니키의 ‘군주권‘이 두 전임자의 ‘군주권‘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귀족의 원조를 받아 군주권을 얻는 것은 평민들의 지원을 받아 군주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귀족들은 스스로를 군주와 동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군주는 원하는 대로 그들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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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더 물러나고, 혼자라도 완벽하게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그날 달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봤지? 난 이렇게 내 개와 함께 숲속을 달리고 있어. 즐겁고 건전한 활동, 내가 행복하게 독립적인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야‘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엔도르핀의 도시를 그러다가 속도를 줄여 느긋하게 걸으며, 호숫가에서 어슬렁거렸다. 나는 작대기를 집어서 던졌고, 개가 그걸 물고 헤엄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기분이 밝아지고, 빛이 돌아왔다. 차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난 할 수 있어. 이렇게 내내 혼자 지내면서도 이 시간을 즐길수 있어. 그리고 내 손을 내려다본 순간, 내가 어디선가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인간의 궤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면 꼭 이렇다. 시각이 왜곡되고, 방향을 잃은 듯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살짝 미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달리는 동안 손에 열쇠들을 쥐고 있었는데, 멍하니 넋이 나간 상태에서, 슬금슬금의기소침해지는 상태에서, 그것들을 그냥 떨어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차 열쇠, 집 열쇠, 모든 열쇠를 찾는 걸 도와줄 사람은아무도 없었다. 여벌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거기 혼자 있었다.
고독의 즐거움과 고립의 절망감. 이 이미지는 며칠 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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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

속삭임은 두 주째, 혹은 세 주째쯤에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지적한다. ‘너 요즘 혼자 보내는 시간이 엄청 많구나. 안 그래?‘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맘 편한 일이야. 그렇지? 보호받는느낌. 안전한 느낌이 들잖아.‘
마지막으로 이렇게 유혹한다. ‘더 이 편안하고 고독한 상태를더 이어가자. 바깥세상은 무섭고 위험이 가득해. 그러니까 그냥 여기 있자. 혼자서 안전한 곳에‘
이것은 고립의 목소리, 설득력 있고 음흉한 목소리다.
나는 이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 - P15

우리는 고립을 지리와 상황의 결과로 여기곤 한다. 혼자가 된과부, 남편은 죽고 아이들은 다 자란 여자, 그는 고립된 사람이다.
늙고 쇠약한 사람, 아예 물리적으로 바깥세상에 나갈 수 없는 사람, 그들은 고립된 사람이다. 하지만 고립은 또한 마음의 상태일수 있고, 실제로 종종 그렇다. 칩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선택을 결정짓는 상태인 것이다. 마치 당신이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나는 고립으로 추락한다. 어둡고 비자발적인 추락은 가속이 붙어, 내가 저지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나는 혼자 있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연속 열 번이나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쯤 하고 나면, 더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P16

지금 마흔여섯인 그레이스는 여전히 금요일 밤에 혼자 닭 요리로 저녁을 먹고 TV를 보면서 보내는 날이 많다. 하지만 걱정은누그러졌다. 그를 은둔으로 몰아넣었던 두려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누그러들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예전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풍요로운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데다가 생계가 되어주는 일을 갖고 있다. 좋은 심리치료사 덕분에 자신을 훨씬 더 잘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에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이 즐긴다는 사실도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되었으며, 그 시간에서공허함이 아니라 뿌듯함을 느끼는 능력도 더 기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고독과 고립의 차이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늘 분명하거나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두 상태가 늘 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고독은, 내 경험상, 자칫하면 미끄러지는 경사로다. 처음에는 안락하게 느껴지지만, 종종 아무런 경고도 자각도 없이 훨씬 더 어두운 것으로 변신할 수있는 상태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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