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룬의 몰락은 그가 라윗이나 니키의 공격으로부터 다른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로도 설명될 수 있다. 라윗의 행동도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라윗은 암놈들을 공격하거나 이에룬의 면전에서 암놈들에게 거만을 떨면서, 암놈들로 하여금 이에룬에게 지원을 요청해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점을 시위했던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에 성공하고 나자 그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서 스스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 P185

라윗의 선택은 침팬지 사이의 우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를 웅변하고 있다. 일찍이 라윗은 이에룬과 암놈들에 대항하기 위해 니키와 결탁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뒤집어서 니키에 대항하기 위해 이에룬과 암놈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놈들을 향한 니키의 공격은 라윗 자신의 권력투쟁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그래서 라윗은 가끔 암놈들을 공격하는 니키를 응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라윗은 니키와 암놈들 사이에 끼어들고, 때로는 서로 충돌이 벌어지기 전부터 개입했다. 니키가 털을 세우고 암놈들에게 접근해서 조금씩 몸을 흔들면서 정말로 공격하려 들 때 라윗은 니키의 옆이나 앞에 서서 감히 더 이상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 어떤 때는 니키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갈 때까지 라윗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계속되었다. 니키에 대한 라윗의 태도가 경직되면서 둘 사이의 충돌도 잦아졌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암놈 때문이 아니라 이에룬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둘 다 왕년의 지도자인 이에룬과 접촉하기를 바라던 터여서 서로가 어느 한쪽이 이에 곁에 앉는 행위를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 P187

8월이 되자 삼각관계의 형태가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니키와이에룬 모두 예전에 비해 라윗에게 덜 굴욕적이고, 자주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리더인 라윗이 그들 중 한쪽에게 과시 행동을 해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에룬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맹렬하게 라윗을 공격하면 니키는 라윗을 위협하듯 털을 곤두세우며 이에룬 편을 들었다. 니키는 다른 두 수놈을 분리시키는 데 점차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라윗은 니키의 그런 시도를 중단시키려고 애썼지만 니키가 위협을 계속할 경우 이에룬은 라윗 곁에서 멀어지려고 했고, 라윗은 이런 행동에 속수무책이었다. 간단히 말해, 이제 세력 균형은 2인자와 3인자의 연합 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1인자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위협을 의미했다. 전례 없던 불안감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6주가 지나서 대규모 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에 이르기까지 몇 주 동안 먼저 니키가, 다음에는 이에룬이 라윗에게 ‘인사‘하는 것을 중단했다. 그리고 이 두 수놈들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진짜 연합을 이뤘다. 이연합은 그로부터 꼬박 3년이 지난 1980년까지 유지되었다. - P191

그로부터 며칠은 라윗에 대한 음모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라윗이암놈이나 새끼들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두 마리의 모반자는 하나가 되어 조금 떨어진 사육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호릴라만이 그들과 빈번하게 접촉을 가졌다. 우리는 호릴라가 니키에게 빈번히 키스하는 데에 주목했다. 라윗은 가끔 호릴라가 두 라이벌에게 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거나 과시 행위를 했지만 공격하지는 않았다. 지난 겨울호릴라는 이에룬에 대해 한결같은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그녀가 이에룬의 동맹 파트너인 니키에게 충성심을 보인다 해도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호릴라와 호릴라의 친구인 마마 사이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었다.
수놈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마마와 다른 암놈들은 니키를공격해서 쫓아버렸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룬과 호릴라가 니키를지켜주었다. 그런 경우에 호릴라는 여러 암놈들을 공격했지만 마마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마치 마마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 일은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호릴라의 행동이 마마의 노력을 무위로 만들어버렸지만 마마는 호릴라에 대해 어떤 보복도 하지않았다. 마마와 호릴라 사이의 우정이 대단히 깊었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고 해서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이들두 암놈 사이의 충돌은 단 한 번도 목격된 적이 없다.
니키는 항상 마마 곁에 붙어 있는 라윗에게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접근했다. 그는 목덜미의 털을 세운 채 그들과 마주 앉은 뒤에는 도발적으로 ‘후우후우‘ 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해서 용기를 북돋운 니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래나 막대기를 집어던지기 시작하면 암놈들도 공세를 취한다. 그러나 라윗은 만사가 귀찮다는 듯 자신의 지원자들의 등뒤를 지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적대적인 2인조세력에 대항해 승리할 여지가 거의 없음을 이미 분명하게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일주일 만에 니키는 다시 왕좌에 복귀했다. - P206

서양 과학자들은 동물의 사회행동을 연구할 때 전통적으로 경쟁, 세력권, 우열관계 등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 1922년 노르웨이의 셸드럽-에브(Schjelderup-Ebbe)가 암탉 사회에서 먹이를 쪼아 먹는 순서를 발견한 이래로 서열 지위는 사회구조의 주요 형태로 여겨졌다. 그래서 원숭이와 유인원에 대한 연구에서도 개체들을 위에서 아래로 수직적인 순위를 매기려는 시도가 오랫동안 주를 이뤘던 것이다. 그러나 예외도있었다. 바로 일본의 영장류 학계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혈연과 우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개체들을 수평적으로 분류해 그것을 거미줄과 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표현했다. 이 거미줄망은 중심부와 동심원을 이루며 점점 커지는 주변부로 구분됐다. 그들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어떤 개체를 받아들이는 정도라든가, 그 개체가 어느 혈연집단에 속해 있는가 하는 따위에 흥미를 가졌다.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서구적 시각은 영장류 사회를 ‘사다리(ladder)‘ 개념으로 파악하려고 한 데 비해, 일본의 연구자들은 ‘그물망(network)‘ 개념으로 파악한 셈이다. 우리가 이들 두 가지 접근방식을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왜 안정된 우열관계가 사회 시스템의 평화를 보장하는 부분에만 영향을 미치는지 분명해질 것이다. 새끼들의 성장으로 인해 사회적 유대가 확립, 방치, 혹은 파괴되는 ‘수평적‘ 발전은 일시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수직적 요소, 즉 위계서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P212

라윗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도 역시 패자를 지원했다. 그는 암놈들의 지원을 받았고 평판도 상당히 높아져 암놈들은 이에룬보다 그에게 자주 ‘인사‘를 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런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즉, 리더는 질서를 유지해주는 대가로 집단 구성원들로부터 지원과 존경을 받는데, 이와 동일한 현상이 두 번째 정권 교체에서도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크게 달라진 점은 이런 자질이 지도자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평화를 수호한 대가로 광범위한 존경을얻은 것은 니키가 아니라 그의 연대 파트너인 이에룬이었다. 이런 상황전개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 마리의 개체가 공식적인 지배와 이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룬과 라윗은 단독 지도자였던 데 반해, 니키는 다른수놈과 지도력을 ‘공유‘했던 것이다.
치안 유지는 이에룬의 몫이었다. 이에룬과 니키가 서로 간의 다툼에 개입한 많은 경우들을 제외하면 이에룬이 집단 내에서 벌어진 싸움에 개입해 약자를 도운 비율은 82퍼센트였던 반면, 니키는 22퍼센트에 불과했다(1978년~1979년). 니키는 1인자의 지위에 있었음에도 여전히 승자를 지원했다. 니키가 권력의 정상에 오른 직후에는 이에룬이 아주 효과적으로 니키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니키가 실질적으로 집단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젊은 지도자인 니키가 털을 세운 채 두 암놈 간의 충돌에 개입하려 들거나 실제로 개입했을 때,
이에룬은 즉각 니키를 공격해 쫓아버렸고, 간혹 이 과정에서 두 암놈들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1979년이 되어서도 니키가 완전한 지배권을 획득할 수 없었던 이유는 치안을 유지하려는 니키의 노력을 이에룬이 방해한 탓이었다. - P222

니키의 디위은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이키와 비교하면 리에룬과 라윗은 암놈들의 협력 덕분에 전능에 가까운 권력을 누렸던 셈이다. 니키의 지도력과 구질서와의 중요한 차이는, 니키가 야심 많은 타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인간 세계에서도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유의 리더가 갖는 상대적 무력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아래 《군주론> 인용문에서 ‘귀족‘
을 ‘서열 높은 수놈‘으로, ‘평민‘을 ‘암놈과 새끼들‘로 고쳐서 읽어보라. 그러면, 우리는 니키의 ‘군주권‘이 두 전임자의 ‘군주권‘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귀족의 원조를 받아 군주권을 얻는 것은 평민들의 지원을 받아 군주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귀족들은 스스로를 군주와 동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군주는 원하는 대로 그들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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