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의 신이 떠먹여 주는 인류 명저 70권
히비노 아츠시 지음, 민윤주.김유 옮김, 아토다 다카시 감수 / 허클베리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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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그 원리를 그저 겉핥기 식이 아니라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정말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을 보내고 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마스크 없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고, QR코드와 비대면이 일상화된 세상에 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불확실한 세상, 이럴 때일수록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선인의 지혜가 필요하다. 보다 넓은 시야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지 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고전을 읽어야 한다.

이 책에는 <군주론>, <자유론>, <종의 기원>, <율리시스>, <신곡> 등등 제목은 알지만 읽어보진 못한 명저 70권의 핵심 내용들이 요약되어 있다.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지만 도통 엄두가 나지 않는 책들이라 사실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으면서도 완독할 자신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이 책, 공부하는 느낌이 많이 날 줄 알았는데 꽤 재미있다. 많은 책들을 요약하다 보니 깊이 있게 다루기보다 꼭 필요한 핵심만을 쉽게 풀어 알려주고 있어서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술술 읽힌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전을 꼭 읽고 싶은데 도전해볼 용기가 없다면 이 책으로 시도해봐도 좋을 것 같다.

<요약의 신이 떠먹여 주는 인류 명저 70권>. 제목 그대로 요약의 신이 알기 쉽게 정리해서 귀에 쏙쏙 박히도록 핵심만을 전해주는 책이다. 구성은 서양과 동양으로 나눠져 있고 서양은 다시 시대별로 나뉜다. 서양 편은 플라톤의 <향연>, 성서로 시작해 토마스 모어<유토피아>, 몽테뉴<수상록>으로 이어지고, 데카르트<방법서설>, 스피노자<에티카> 그리고 소로<월든>, 톨스토이<전쟁과 평화>, 20세기에 와서는 하이데거<존재와 시간>, 한나 아렌트<전체주의의 기원>으로 마무리하고, 동양 편은 <맹자>, <사기>, <삼국지>, <코란> 등을 소개한다.

책은 시대가 흘러도 변함없는 매력을 간직한 고전들에서 지금 시대와 통하는 지혜들을 골라 들려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인류라는 존재가 은혜를 베푸는 사람보다 오히려 파괴자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 내는 한,

아무리 숭고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군사적 영광을 향한 갈망이라는 악덕에서 결국 빠져나오기 힘들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현재의 좋은 점은 과소평가하고, 나쁜 점은 확대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중에서(p.136)

인간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관조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인간이 자기 속에 있는 개성을 모두 없애 버리고 획일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개성적인 요소들을 개발하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중에서 (p.187)

소개하는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은 <코란>이다. 코란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교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을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코란에는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성전을 모시는 사람들'이라 여기고 서로 존경하도록 가르치고 있으며 특히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과는 결혼도 할 수 있고(불교신자와는 안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도 한다. 또한 테러리스트가 많다는 인식 때문에 호전적 사상이 짙을 것 같지만 코란에는 "자비와 깊이, 자애는 널리"라는 말이 각 장마다 나온다. 한 가지 더, 무슬림은 시간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기도만을 우선시한다고 알고 있는데 코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 번에 몰아서 기도를 드려도 괜찮다고 설명하고 있다. 몇 가지 사실로 이슬람교 전체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갖고 있던 편견들에 대한 오해는 조금 풀어질 수 있었다.

이 책은 고전을 요약하고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 실용적 의미로 가치 있는 책이다. 고전을 시작하기 위한 안내서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읽고 싶은 고전을 찾을 때나 교양을 기르기 위한 지식이 필요할 때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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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게 하는 치유 글쓰기의 힘
김인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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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인정해 주고 그 마음을 기록하는 것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_ p.172


타인의 아픔에 위안과 치유를 얻는다.

<나로 살게 하는 치유 글쓰기의 힘>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글쓰기로 새로운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용기를 건네는 치유 에세이다. 작가 김인숙은 본인이 겪었던 아픔과 그때의 복잡한 심경들을 세밀하게 담아내 공감을 이끌고, 유연한 태도로 삶을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작가가 진솔하게 써 내려간 글들 사이사이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겪었던 아픔이 아리면서도 동시에 내 삶이 위로받는 듯했고, 나도 그녀처럼 글을 통해 나 자신을 찾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기도 했다.

늘 불만이 가득했고, 내가 머문 어느 자리에서도 잘잘못을 따졌다. 그 따지는 문제 안에 주체인 '나'는 없었고 타자인 '너'만 있었다. 그래서 항상 억울해했고, 기분이 나빴고, 화가 나 있었다. 그렇게 뭐든 회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나'였다. 그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p.15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 큰 고통이었던 경험들이 치유되지 못한 채 남아 나를 괴롭히는데 저자도 상처에 많이 아파하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에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유일한 안식처로 삼고 위로를 찾고 그 안에서 견디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살짝 틀어서 바라보고 생각하게 됐다고. 나도 책으로 위안 받고 나아가려 노력 중이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지금도 종종 타인들의 말 한마디에 지치고 초라해지고 절망에 빠진다. 저자의 말대로 삶은 결코 혼자서 완성되지 않으며 일방적인 상처는 없는데 마치 세상 상처는 혼자다 받은 것처럼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나의 감정들을,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다 보면 그 안에서 위로를 얻게 된다.(...)

오직 나만을 위한 나의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는 나를 보게 되고 위로하게 되고, 나를 회복하게 된다고 믿는다. / p.105

글쓰기는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행위다

저자는 글에는 힘이 있기에 치유글쓰기를 통해 상처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처음엔 어색하고 하지 않던 일이라 불편하겠지만 별거 아닌 일들을 써 내려가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된다고 말이다. 나도 공감한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누군가에게 아무 말이나 털어놓고 싶을 때 블로그에 글을 쓰며 힘든 시간을 견뎠었다. 제멋대로 끄적거린 부끄럽기 짝이 없는 서툰 글이지만 쓰는 순간부터 마음을 열게 하는 글의 힘을 경험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나의 일상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나 스스로 나를 완성시키고 성공하려면 내가 나에게 자극을 주어야 한다.

'글을 쓸 것이다. 쓰고 있다' 반복적으로 자기 자신을 세뇌시키듯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엉덩이를 붙여라. 내가 써 내려간 글이 나에게 돌려주는 성취감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크다.

반드시 변화의 바람은 분다. 그저 그 바람이 불기 전의 기다림이 지겨울 뿐이다. /p.192

저자는 잘난 사람들이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이든 떠오르면 어떤 방식으로든 끼적거리기라도 해두라고 말한다. 글자든 그림이든 자신만의 방식대로 저장해두면 나중에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해 내기 쉽다고. 그래야 후에 내 마음대로 내게 유리한 대로 기억을 편집하는 것을 막고 글로 제대로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이제 혼자 상처받고 혼자 부정적인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그리고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 또한 상처를 주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내 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바라봐야 치유되고 성숙해질 수 있다. "나를 향한 나의 시선을 바꾸는 순간 나의 마음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다."

쓰면 쓸수록 달라진다. 지금 당장 시작하자!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더 선명해졌다. 진짜 나를 기억하기 위해 진짜 나를 알아가기 위해 사소한 나의 순간들을 기록하자. 잘 쓸려고 애쓰지 말고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그러다 보면 언젠간 확연히 달라진 나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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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나로 살고 싶다 - 추구하는 대로 사는 존재의 기술 테드 사이콜로지 시리즈
브라이언 리틀 지음, 강이수 옮김 / 생각정거장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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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하버드 졸업생들이 뽑은 최고의 교수 브라이언 리틀의 심리학 명강의를 옮긴 이 책은

성격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독자들이 각자의 인생을 이해하고 스스로 주도해 나가도록 돕는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우리가 가진 정체성보다 힘이 세다' 이것이 책의 핵심 이론이다. 풀어 말하면 인간의 성격과 삶은 제 1 본성(유전)과 제 2본성(환경)의 영향력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크고 작은 삶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들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책은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법에 대해 알려면 먼저 삶의 주체인 자신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이런 질문을 받으면 떠오르는 대답은 '성격'에 관한 것이다. 내성적이고, 조급하고, 걱정이 많고 등등. 그리고 사회가 정해준 역할이나 처한 '환경'등이 나를 규정하고 내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이렇게 말하고 끝낸다면 심각한 오류에 빠진다고 책은 주장한다. 인간은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 지배적인 요소는 성격 특성이 아닌 퍼스널 프로젝트다.

그러니 행운의 유전자를 타고나지 않았다고 해서 억울해할 필요 없다. 타고난 기질과 고정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려도 좋다. 당신의 행동은 당신의 기질보다 훨씬 힘이 세다. p.82

저자는 유전, 환경 이외에 나를 구성하는 또 다른 하나가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제3의 본성, 퍼스널 프로젝트이다. 퍼스널 프로젝트는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는 활동을 말하는데 자신이 추구하는 일상의 사소한 루틴부터 꿈과 욕구에 따른 행동까지 모두가 그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나의 정체성과 삶의 질은 타고난 기질이 아닌 퍼스널 프로젝트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성격과 환경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자신만의 해석과 의미를 가진 자발적 행동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쭈욱 나열해보면(퍼스널 프로젝트를 보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는 퍼스트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삶의 폭을 넓혀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한 사람의 성격을 타고난 특성이 아닌 그가 수행하는 퍼스널 프로젝트로 정의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변화 가능성’이다. 타고난 성격 특성은 쉽게 바꿀 수 없지만, 퍼스널 프로젝트는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조정할 수 있다. 퍼스널 프로젝트는 미래지향적이다. 우리는 험난한 길을 건너뛰고 평탄한 길 위로 순조롭게 달리는 법을 터득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추구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법을 터득한다. 이런 식으로 퍼스널 프로젝트는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게 된다. 이것이 개인이 목표하는 과제에 따라 그의 인생이 흘러가는 까닭이다. p.78

<내가 바라는 나로 살고 싶다>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자기답게 사는 것보다 지금과는 다른, 바라는 내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면 사는 게 훨씬 재미있어질 것이다."

내가 가진 고정 특성은 안타깝게도 '내성적이면서 불안정한', 모두가 말하는 행복과 가장 거리가 먼 성격이다. 만약 타고난 그대로 살아야 한다면, 변화가능성이 없다면 나는 불행하게 살다 생을 마감해야 한다. 이 책은 자신을 단 하나의 자아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성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제3의 본성을 통해 사람의 성격과 인생은 변할 수 있음을 짧지만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자신이 시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명확하게 지치지 않을 정도로 계획하고, 틈나는 대로 '자기다움'으로 돌아가 쉬면서 '될 때까지 된척하기'전략으로 충실히 실행한다면 한다면 타고난 기질은 얼마든지 보완될 수 있다. 자신의 삶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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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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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가 궁금했다. 무슨 이유로 그를 대작가로 부르는지 왜 그의 문장에 감탄하는지 알고 싶었다.

한편으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묵직하고 심오해서 내가 담지 못할까 봐서다.

암튼 읽어보면 알겠지 싶어 용기 낸 책은 그의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말과 처음 만나서 섞여 살게 되는 즈음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 이야기의 공간과 시간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직 작가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이다)

'나하'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위쪽은 '초', 아래쪽은 '단' 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초'는 초원에서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집단이라 성을 쌓거나 제사를 모시거나 문자를 쓰거나 하지 않았다.

반면 '단'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집단으로 문자를 받들고, 성을 쌓고, 늙음과 죽음을 거룩히 여겼다.

이렇게 너무도 다른 두 나라에게 서로는 깊은 근심거리였고, 전쟁은 운명과도 같았다.

이야기에는 두 마리의 말이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야백과 토하'.

인간과 자연이 뒤섞여 있는 이때에 말(馬)들은 별을 동경해 별들이 땅 위의 먼 곳에 있을거라 믿고, 초승달이 뜰 때마다 별들을 향해 초원의 끝으로 달리기를 거듭했지만 말들은 그곳에 닿지 못했다. 그들의 운명이 인간에게 끌려다니는 운명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산맥 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 (...)

초승달은 말의 힘과 넋을 달 쪽으로 끌어당겼다.

한 마리가 달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모든 말이 소리를 토해내며 달려갔다.

초승달은 가늘었고 빛에 날이 서 있었다.

초승달이 희미해지면 말들은 사라지는 달을 향해 소리를 모아 울면서 더욱 빠르게 달렸다.

p.48

이마가 빛나는 말 야백은 단의 장수 황의 전마로, 푸른 안개를 뱉어내는 말 토하는 초의 왕자 표의 전마로 전장을 누비다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참혹한 전쟁에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다.

그들은 얼마나 자유를 꿈꿨을까, 인간만 아니었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원하는 곳으로 달려갈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인간때문에 어쩔 수 없음을 견뎌야 했다. 인간은 본래 그들의 주인이 아니었다. 말들은 자유를 잃었고, 인간은 공허함만 남게 됐다.

죽고 죽이는 인간의 싸움을 보면서, 야백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인은 늘 나를 타고 내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달리는구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리는 인간들이 있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리는 인간들도 있어서, 서로 부딪쳐서 인간의 세상은 일어서고 무너지는구나.

p.145

책은 문명의 진보속에 감춰진 인간의 이기심과 야만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사회와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인간은 점점 더 우매해지고 야만적 광기를 내뿜는 것 같다.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당연한 권리라 여기는 인간들, 이만하면 반성하겠지 싶은데도 성찰은커녕 자신들의 정당성만 외치는 인간들을 너무나 쉽게, 자주 목격한다. 소설은 그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

지나간 길이 어디로 흘러간 것인지, 다가오는 길이 어디로 이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또 가야 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해내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줄 알고, 점점 잃어가는 이성을 붙들어매고 최대한 인격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말들처럼 달 너머에 있는 별들만을 바라보며 가고 싶다. 우리의 현실은 희망과 믿음이 필요하다.

생각했던 대로 '김훈다운' 책이다. 장황하지 않아 지루하지 않고, 간결한데 무슨 말인지 다 알 것 같은.

익숙한 문장들이 아니라 갸우뚱하다가도 정교한 글자들에 이내 끄덕이게 만드는.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긴장감에 신비감에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는 김훈의 말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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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씁니다 - 누구나 무엇이든 쓰고 싶게 만드는
우수진 지음 / SISO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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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으니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한참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땐데 뭐라도 끄적 꺼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들을 글로 쓰고 나면 쿵쾅대던 심장이 서서히 잦아들면서 한결 차분해졌다. 지금도 가끔씩은 같은 이유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은 다른 이유다. 사소하고 시시한 나의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이유가 바뀌니 부족한 글솜씨가 많이 아쉽다. 좀 더 마음속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에세이를 씁니다>. 왠지 이 책을 읽으면 '글쓰기'가 더 좋아질 것 같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도 다른 '글쓰기'책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쓰세요", "많이 쓸수록 늘어요" 와 같은 익숙한 답변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 우수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결론에 도달한다. 직접 겪었던 에피소드들과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유쾌하면서도 솔직하게 풀어내어 "글 그까짓 것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시작하면 되는 거야" 라며 쉽고 단순하게 실질적인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이 책은 글쓰기 팁을 전수하는 책이라기보다 '글쓰기의 즐거움'을 전하는 책이라 해야 맞을 듯하다.


자전거를 잘 타는 방법은 뭘까?

일단 자전거를 어떻게 타는지 간략하게 설명을 들은 다음에는 타야 한다. 바로 타면 된다.

물론 한 발짝도 못 가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겠지만, 넘어지면서 배우는 게 자전거다. (...)

에세이 쓰기도 마찬가지다. 무겁고 무거운 이론이나 기법으로 손에 족쇄를 채우지 말고 일단 쓰는 거다.

p.26~27

이 글을 읽으니 써야 잘 쓸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이론을 많이 안다고 글을 잘 쓰게 되는 게 아니라 많이 써야 는다. 그런데 한 가지, 일기장에 쓰고 혼자 볼 거라면 상관없지만 공개적인 곳에 올리면 피드백에 대한 신경이 써지는 게 사실이다. 저자는 어차피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킨다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일일이 남들 의견에 진지하게 상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타인의 칭찬이나 질책을 받았을 때 어떤 상황이냐, 이전에 어떤 말을 들었느냐, 어떤 감정 상태에 있었느냐에 따라 시시때때로 감정이 변한다. 같은 칭찬이라도 어떨 때는 대수롭지 않게 받지만 어떨 때는 크게 가슴을 울린다. 같은 질책이라도 '그건 네 생각이고' 하며 넘겨버리거나 '아주 건전한 지적이었다'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은 상처로 가슴 깊이 꽂힌다.

p.87

책에는 저자가 전작<나를 없애버리고 싶을 때>(첫 책이기도 하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들에 힘들어했던 경험담들을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해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어쩌면 여전히 신경 쓰이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는 인간의 판단은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에 내 판단이나 남의 판단 모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남의 평가에 마음 쓰지 말자'라고 강조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책 리뷰를 쓸 때 가급적 작가에게 불편한 글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독자가 책을 읽고 자유롭게 감상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설픈 조언과 질책으로 상대방을 더욱 꽁꽁 묶어 힘들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상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이라면 몰라도 단순히 부정적인 생각을 쏟아내는 거라면 안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서다.

아무튼 남들의 비판과 조언에 너무 예민할 필요도 없고, 남들을 함부로 비난하지도 말자.


이사 와서 정리한다고 한동안 글쓰기를 안 했더니 가뜩이나 어려운 글쓰기가 더욱 부담스러워졌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다.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글을 써보자. 글에는 자신을 이끄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글을 쓰면서 오늘의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고 실행으로 옮기도록 자극을 주자. '마음껏 자유롭게 그리고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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