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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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가 궁금했다. 무슨 이유로 그를 대작가로 부르는지 왜 그의 문장에 감탄하는지 알고 싶었다.

한편으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묵직하고 심오해서 내가 담지 못할까 봐서다.

암튼 읽어보면 알겠지 싶어 용기 낸 책은 그의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말과 처음 만나서 섞여 살게 되는 즈음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 이야기의 공간과 시간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직 작가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이다)

'나하'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위쪽은 '초', 아래쪽은 '단' 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초'는 초원에서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집단이라 성을 쌓거나 제사를 모시거나 문자를 쓰거나 하지 않았다.

반면 '단'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집단으로 문자를 받들고, 성을 쌓고, 늙음과 죽음을 거룩히 여겼다.

이렇게 너무도 다른 두 나라에게 서로는 깊은 근심거리였고, 전쟁은 운명과도 같았다.

이야기에는 두 마리의 말이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야백과 토하'.

인간과 자연이 뒤섞여 있는 이때에 말(馬)들은 별을 동경해 별들이 땅 위의 먼 곳에 있을거라 믿고, 초승달이 뜰 때마다 별들을 향해 초원의 끝으로 달리기를 거듭했지만 말들은 그곳에 닿지 못했다. 그들의 운명이 인간에게 끌려다니는 운명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산맥 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 (...)

초승달은 말의 힘과 넋을 달 쪽으로 끌어당겼다.

한 마리가 달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모든 말이 소리를 토해내며 달려갔다.

초승달은 가늘었고 빛에 날이 서 있었다.

초승달이 희미해지면 말들은 사라지는 달을 향해 소리를 모아 울면서 더욱 빠르게 달렸다.

p.48

이마가 빛나는 말 야백은 단의 장수 황의 전마로, 푸른 안개를 뱉어내는 말 토하는 초의 왕자 표의 전마로 전장을 누비다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참혹한 전쟁에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다.

그들은 얼마나 자유를 꿈꿨을까, 인간만 아니었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원하는 곳으로 달려갈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인간때문에 어쩔 수 없음을 견뎌야 했다. 인간은 본래 그들의 주인이 아니었다. 말들은 자유를 잃었고, 인간은 공허함만 남게 됐다.

죽고 죽이는 인간의 싸움을 보면서, 야백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인은 늘 나를 타고 내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달리는구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리는 인간들이 있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리는 인간들도 있어서, 서로 부딪쳐서 인간의 세상은 일어서고 무너지는구나.

p.145

책은 문명의 진보속에 감춰진 인간의 이기심과 야만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사회와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인간은 점점 더 우매해지고 야만적 광기를 내뿜는 것 같다.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당연한 권리라 여기는 인간들, 이만하면 반성하겠지 싶은데도 성찰은커녕 자신들의 정당성만 외치는 인간들을 너무나 쉽게, 자주 목격한다. 소설은 그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

지나간 길이 어디로 흘러간 것인지, 다가오는 길이 어디로 이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또 가야 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해내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줄 알고, 점점 잃어가는 이성을 붙들어매고 최대한 인격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말들처럼 달 너머에 있는 별들만을 바라보며 가고 싶다. 우리의 현실은 희망과 믿음이 필요하다.

생각했던 대로 '김훈다운' 책이다. 장황하지 않아 지루하지 않고, 간결한데 무슨 말인지 다 알 것 같은.

익숙한 문장들이 아니라 갸우뚱하다가도 정교한 글자들에 이내 끄덕이게 만드는.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긴장감에 신비감에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는 김훈의 말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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