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유는 양심 성찰이라는 명목으로 자기 성찰이 아닌 자신을 단죄하고자 할 때, 다른 사람도 심하게 단죄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스스로 지나치게 엄격하게 단죄하는 내적인 습관이 외부에까지 연장되어서 남도 단죄하고 싶은충동이 생기는 것입니다.두 번째 이유는 인간이 과정적인 존재, 늘 성장해 가는 존재, 그러나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때 단죄하고 싶은 마음듣고이 올라옵니다.
복음에 따르면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주님께 봉헌해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봉헌하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어떤 것은 하느님께 봉헌하고 어떤 것은 억압하고 숨기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모든 것을 주님께 봉헌하라는 말씀이지요. 이러한 봉헌 행위야말로 내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마음 안에 감옥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자유를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자신이 하느님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죄의식을 가진 헤로데는 자신을 정죄하였습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마음 안에 감옥을만든 것입니다.
만약 이런 문제를 안고 산다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일단 멈추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보는시간을 갖길 권합니다.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탐구해 보는 시간을갖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를 초월한 누군가를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여는것도 권합니다. 즉, 기도하면서 하느님이 주시는 메시지에 마음의문을 열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끊임없이 자극이 주어지면 마음이 늘 새롭게변화하고 완성될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인 융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융은 정신이 외부 세계에 완전히 열려 있으면 혼돈이 오고, 완•전히 닫혀 있으면 침체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항상 외부 경험에마음을 열어 둘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갖고 일상사에 초연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만남이라는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사용할 때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