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 1 - 거문고의 비밀 길 없는 길 (여백)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불교문학으로 최인호님의 소설인데 책정리하다 다시 읽어보니 예전과 다른 가슴에 남는 글들이 많다.

이십여 년 간 내가 모든 학문에 두루 정통하였다면. 그리하여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어 오는 납자들에게 학문을 강의하는 당대제일의 대강백이 되었다면 그만큼 나는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속박당하고 있음이다. 나는 뗏목을 지고 가는 어리석은 배꾼에 지나지않으며, 고기를 잡고서도 통발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어리석은 어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토끼를 잡고서도 덫을 여전히 간직하고있는 어리석은 사냥꾼에 지나지 않는다.
버려라.
내가 배워온 모든 학문을.
버려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모든 알음알이를 내가 아는학문은 한갓 얕은 꾀에 지나지 않는다.
베어라. 그리고 끊어라. 그래야만 너는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를얻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너는 부처가 말한 평화로운 바다에이르지 못할 것이며, 그렇지 않고서는 너는 고기를 잡지 못하고 토끼를 잡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그 모든 교법마저도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P174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 몽중이로다
천만고의 영웅 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 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라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바람 속의 등불이라....‘
- P202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울고 통곡하고 그리고는 떠나갔다.
들어올 때는 죽은 사람 크기만큼의 관을 갖고 오고 떠나갈 때는 너나할것없이 과자상자만큼이나 작은 함 속에 한줌의 뼛가루를 배급받아 들고서. 살아 있을 때는 자기 나름대로의 이름과, 자기 나름대로의 사연과 자기 나름대로의 직업과,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온 그 숱한 사람들이 죽어서는 모두들 단 하나의 공통된 이름, 죽은 사람(死者)으로 불리고, 자신의 이름 앞에 ‘고(故)‘의 접두어를 붙이고서.
나는 마치 죽음을 거래하는 시장(市場)바닥에 나와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죽음은 우리의 인생과 너무 밀접하게 가까이 놓여 있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죽음에 붙여진 존재‘라고 규정하였듯 죽음은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누리는 쾌락, 우리가 보내는 시간 속 그 어디에도 조금씩 독(毒)처럼 녹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이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일인 것처럼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다.
살아 있는 생의 뒷면이 바로 죽음 그 자체임을 애써 부정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이 죽음을 외면하고 잊으려고 술을 마시고, 쾌락으로 도망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피살되어버릴 뿐인 것이다. - P254

떠나겠나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형제여내 온 형제들에게 절하며 작별하나이다.
여기 내 문(門)의 열쇠를 돌려드리나이다.
또 내 집에 대한 온갖 권리도 포기하나이다.
오직 그대들로부터마지막 다정한 말씀을 간청할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오랫동안 이웃이었나이다.
하지만 주기보다는받는 것이 더 많았나이다.
이제 날이 밝아어두운 내 집의 구석을 밝히던 초롱불도 꺼졌나이다.
부르심이 왔나이다.
나는 이제 여행의 준비를 하고 있나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탄잘리> - P255

죽음이란 타고르의 시처럼 ‘여행의 준비‘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란살아 있는 동안 간직하였던 문의 열쇠를 돌려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을 때 내 이웃이었던 어머니는 부르심을 받아 이 지상의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깊게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를 부른 그 사람은 누구일까.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작별의인사를 하고, 인생의 열쇠를 돌려주고 떠난 그곳은 어디일까.
내 머리속에는 타고르의 다른 시 구절이 기억되어 떠올랐다.

님의 종인 죽음이 이 몸의 문 앞에 있나이다.
그는 미지의 바다를 건너 님의 부르심을저의 집에 전하러 왔나이다.
밤은 어둡고 이 내 가슴은 무겁나이다.
하지만 이 몸은 초롱불을 밝혀 들고 문을 열어
그를 환영하겠나이다.
저의 문 앞에 서 있는 죽음은 님의 전갈이니까요. - P256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러자 사문이 대답하였다.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실망하여 말하였다.
"너는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하였다.
"너도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또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마침내 말하였다.
"그렇다. 생과 사는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 너야말로 도를 이루었다."

부처의 말은 비유가 아니다. 그의 말은 진리이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며칠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밥 먹는 사이에 있음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숨을 들이마실 때 있고 우리의 죽음은 숨을 내쉴 때있다. 우리는 숨을 들이마실 때 살고 숨을 내쉴 때 죽는다. 우리는끊임없이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우리가 쉴 새 없이 눈을 끔벅이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을 때 우리는장님이 된다. 그러나 뜰 때 우리는 빛을 본다. 그 장님과 봄(親)의찰나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도 우리는 그냥 "보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심으로써 삶과 죽음의 문턱을 하루에도 수만 번씩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 P256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또한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그 두 끝을 보지 않고 그저 부질없이 슬피 울고만 있을것인가. 미망에 붙들려 울고불고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자들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다.
더욱더 괴로움이 생기고 ,몸만 여월 따름이다.‘
- P307

‘소치는 사람이 채찍으로 소를 몰아 목장으로 돌아가듯
늙음과 죽음도 또 그러하네.
사람의 목숨을 끊임없이 몰고 가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끊임없이 타고 있는데
그대들은 어둠 속에 덮여 있구나.
그런데도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보라, 이 부서지기 쉬운 병투성이
이 몸을 의지해 편하다고 하는가.
욕망도 많고 병들기도 쉬워
거기에는 변치 않는 일체가 없네.
목숨이 다해 정신이 떠나면
가을철에 버려지는 표주박처럼
살은 썩고 앙상한 백골만 뒹굴 것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즐길 것인가.‘ - P3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