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끊임없는 오가는 망상과 현실들이 읽는데 넘 힘들게 했다.

"그렇죠? 이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투성이죠. 예컨대 내주머니에 권총이 하나 있는데..…………, 왜 당신을 쏘아 죽이지 않았는지 나도 설명을 못 하겠다니까요."
엘사가 고개를 들어 테이블 끝에 서 있는 그를 노려봤다. 대위가 물었다.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래, 바로 이것때문인가 봐요. 사람 마음속엔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이 나 있는것 같아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신비한 본능 같은 거라고나 할까. 지금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도 내 운명의 길을따라가다 보면 겪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전에 어디선가 본같고...... 어디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P79

하긴 나도 정상이라고 할 순 없지. 난 원래 이런 인간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내 존재 의식을 되찾고, 또 내 존재를 긍정하려면 당장 뭐라도 해야 해. 그래 바로 그거야.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서. 지금 나는 산송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사실 내가 엘사나 대위, 더구나 바르트를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 마음만 먹으면 저들은 나를 감옥에 처넣을 수도 있고,
바르트는 다시 내 뺨을 갈길 수도 있어. 내가 멀쩡히 보는 앞에서 엘사는 또 다른 놈들과 떠날 수도 있고, 대위가 그날 다시빼앗아 갈지도 모를 일이지. 저들의 눈에 나 따윈 보이지도 않을 거야. 나는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일 뿐이니까. 인간은 행동과는 다르다. 고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유령같이 살면서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그렇기도하고, 아니기도 할 거야. 저기 저 사람들. 저들에겐 분명 처자식과 가정이 있을 테지. 게다가 저들도 나처럼 가난뱅이일 거야.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저들의 집에 침입해서 몇 푼 안 되는돈을 훔치거나 아내를 건드리려고 하면 저들은 당연히 사나운맹수처럼 덤벼들겠지. 그런데 나는 왜 나는 그렇게 못 하는 걸까? 누가 그 이유에 대해 속 시원하게 설명해 줄 수 없을까? 하긴 나 자신도 모르는 걸 남이 어떻게 알겠어. 내가 아는 거라곤늘 그렇게 살았다는 것, 허깨비 같은 존재였다는 것뿐이니. 이런 생각을 해도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리고나면 살인에 대한 호기심이 고요하고 텅 빈 마음속으로 연기처럼 피어오르지. 그래, 맞아. 난 절대로 미치지 않았어. 이처럼생각도 하고 논리적으로 추론도 할 수 있는데 내가 미치긴 왜미쳐 살인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속으로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어. 저 호기심은 분명 나를 불행하고 슬프게 만들 거야. 불행의씨앗을 품은 호기심, 혹은 악마와도 같은 호기심. 그래! 범죄를통해서 내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 P119

그러나 오직 악을 통해서만 지상의 인간들이 자신의 현존을 긍정하듯, 오로지 범죄를 통해서만 나는 나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의 나는 에르도사인 바로 그 자신, 법에 의해서 그리 만들어졌지만 법에게는 끔찍한 악몽과도같을 에르도사인이라는 괴물이 되리라. 그리고 앞으로 나는 또다른 에르도사인, 진짜 에르도사인이 돼서 이 세상을 악으로물들이게 될 수천수만의 이름 없는 에르도사인들 위로 나타날것이다. 이 모든 게 너무 낯설고 이상해. 그렇긴 하지만 여전히어둠이 존재하고 있고, 인간의 영혼은 깊은 슬픔에 젖어 있잖아. 끝을 알 수 없는 슬픔, 아니, 삶이 이런 식이어서는 안 돼!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내 안에 있는 누군가가 절규한다.
만일 삶이 왜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내가 밝혀낸다면, 내 몸에 구멍을 내서라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거짓과위선을 죄다 빼버리고 말 거야. 그러면 지금의 나로부터 새로운 인간이, 우주를 창조한 신들처럼 강인한 인간이 나타나게될 거라고.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럴 때 딴 생각이 드는 거지? - P121

당시 상황에 관해 에르도사인은 뒷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오렌지색 구름 위에서 노니는 달빛과 장미꽃 위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이슬방울을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기 위해서 태어난 줄만 알았어요. 그러니까 살면서 언제나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만 생길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까 제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거예요. 하늘과 땅차이였죠. 아름답기는커녕 사는 게 너무 따분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 없다는투였어요. 늘 비가 내리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같았어요. 그치지 않고 내리는비 때문에 사람들의 눈동자엔 웅덩이가 고이고, 그래서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인간의 운명이란 게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와 다를 바가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인간들도 어항 속 물고기처럼 발버둥 치면서 살다가 언젠가 죽고 말겠죠. 저 푸르스름한 유리 벽 반대편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어요. 거기는 모든 게 다 아름답고 고상할 뿐 아니라 흥에 겨워 노래가 절로 나오는 그런 곳이죠. 여기와는 전혀 달라요. 모든 게 다양하고활기가 가득해요. 거기선 새로운 존재들, 우리 인간보다 훨씬 더 완벽한 존재들이 아름다운 육체를 뽐내며 부드러운 대기 속으로 솟아오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다 쓸데없는 짓이에요.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요." - P146

중남미 현대문학의 선구자인 로베르토 아를트는 1900년대 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그려낸다. 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리고 여기에는 항상 <돈>이라는 현실 논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렇게 아를트는 지극히 현실적인 요소와 형이상학적인 요소를 병치하여 그틈으로부터 나오는 실존의 의미와 존재의 조건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작품해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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