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낮은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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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김애란 칼자국 중> - P29

십대: 이쁘다고 말해 주고 싶다, 너에게. 그때 그불만투성이의 노여움과 서러움으로 가득한 내 눈빛을 보고 이쁘다고 해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때문에 더더욱.
<김소연 마음사전 중> - P55

나는 때때로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 이라는 말에 깊이동의한다. 죽음은 공평하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필연인 죽음은 늙은 결과가 아니라 살아온 것의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든 날은 좀 더 씩씩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외할머니는 어땠을까, 외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고민해 본 적 있을까. 우리는 왜 이 주제를 한번도 나누지 못했을까. - P63

나는 종현의 부재를 안다. 그리하여 종현이 영원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아는 감정이 있다. 종현은 없지만 종현의 목소리를계속 들을 수 있는 기적에 대해 나는 자주 감격한다.
그는 정말 찾으면 볼 수 있는 곳에, 들을 수 있는 곳에여전히 있다. 내 마음에는 할머니 무덤도 있고, 아빠무덤도 있고, 종현의 무덤도 있다. 살아 있는 일은 마음에 그렇게 몇 번이고 무덤을 만드는 일임을, 슬픔은 그 모든 일을 대표하는 감정이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 P85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절은 없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않을 거예요. 우리는 행복한 기억으로 살죠. 하지만 우리는 불행한 기억으로도 살아요. 상실과 폐허의 힘으로 말입니다.
<김언수 캐비닛> - P97

나도 한때는 사람 돌보는 거나 동물 돌보는 거나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다. 우리는 그 아이가 무언가가 되어 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공부 잘하는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꼭 그런 게 아니라도 보통의 시민으로 제 몫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렇기에 때론 다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그저 내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 이대로, 매일매일 똑같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동물을 돌본다는 것은 현재지향적이다.
<김화수 냥그냥글 책방 중> - P110

저자는 조언한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준비가 안된 사람‘ 혹은 ‘일반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
이 아니라 ‘아이가 없는 인생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거라고,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로 여기는 대신 지금처럼 아이가 없는 상태로 살게 되기까지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 사회에는 아이를낳지 않으면 자녀 양육에 따르는 귀중한 경험의 ‘기회를놓친다‘는 경고 메시지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인생이 제공하는 모든 경험을 전부 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경험을 선택하고, 놓친 경험에는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넘긴 수 있어야 한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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