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다.
시를 쓰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사랑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내 대신 죽어간다는 사실을그들은 내 대신 죽어간다는 사실도 모른 채죽어간다. 내가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를 대신해살아가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나의 연인이 누군가의 행복을 대신해슬퍼하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나의 시가 누군가의 슬픔을대신해 사라지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축복은 무엇일까 중> - P34

때로는 사는 의미를 포기해야 위안이 되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한담을 엿들었고
그것들은 대체로 아름답게 끝맺었다.
"우리에겐 가을이 있잖아."
그래, 가을은 언제나 오지.
하지만 어쩌라고.
"1월과 2월 남녘엔 동백꽃이 지천이야."
동백꽃은 지고도 오래 시들지 않지.
그런데 어쩌라고
<어쩌라고 중>
- P66

우리는 과거로부터 온 흐름 속에 존재하며
우리의 역할은 그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누구는 용기를 가졌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이 될 필요가 없고 될 수도 없다우리는 모두 하나의 조짐, 희미한 움직임이다
바통을 주고받는 이름 없는 주자들이다.
그 바통 위에는 끝나지 않았어‘라는 말이 새겨져있다
<끝나지 않았어 중> - P118

죽음은? 죽음은 시간의 몫이 아니다. 그의 몫도 아니다. 죽음은 그저 죽음의 몫이다. 그는 죽음에게 얼마를 빚졌는지 모른다. 죽음은 어느 날 그를 찾아와그에게 언제까지 얼마를 되돌려줄 수 있는지 묻지도않고 단번에 큰 낫을 휘둘러 그의 목을 칠 것이다. 그때 시간도 그와 함께 죽을 것이다. 그는 상상만으로도 통쾌하다. "시간이여, 나는 이제 두통도 사라져 편안히 관 속에 누울 수 있지만 너는 누울 곳 하나 없구나. 내 머릿속에다 평생 허방을 판 원수 놈아."
<복화술사의 구술사>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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