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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사람들은 타인을 위한 행동과 말이라고 하지만 자기만의 가면을 쓰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행동과 말만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이런 가식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크다란 농담인거 같다.
그런데 갑자기 루치에의 모습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렸고, 나는마침내 왜 그녀가 이발소에서 내게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 다음날은 코스트카의 집에서 전설인 동시에 사실인 그 이야기 속에등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나에게 자신의 운명이 (몸이 더럽혀진 소녀의 운명이) 나의 운명과 닮았다는 것을 말해 주고자 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 둘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를 비껴갈 수밖에 없었겠지만, 우리의 삶은 둘 다 모두 유린의 역사라는 점에서, 우리는피를 나눈 형제나 결혼한 부부와 같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모른다. 루치에가 육체적인 사랑을 유린당하고 그녀의 존재에대하여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박탈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인생 또한 원래 의지하고자 했던 가치들을 빼앗겨버렸다. 그것은 그 기원으로 돌아가서 보자면 아무 죄도 없는 결백한 것들이었다. 그렇다. 결백한 가치들이었다. 비록 루치에의 삶에서는유린당한 것이라 해도 육체적 사랑은 죄가 없었다. 내 고장의노래들, 침발롬이 있는 악단 그리고 내가 증오했던 고향 도시가 아무 죄가 없는 것처럼, 내게 구토를 일으키던 초상화의 주인공 푸칙, 그 사람 또한 나에 대하여 아무런 죄가 없는 것처럼, 그리고 나에게 협박처럼 들리던 동무란 말도 너라든가 미래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다른 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죄가없는 것처럼, 잘못은 다른 데 있었다. 그 죄는 너무도 큰 것이어서 그 그림자가 죄없이 결백한 사물들(그리고 말들)을 사방으로 온통 뒤덮었고 또 유린했던 것이다. 루치에와 나, 우리는 유린된 세계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이세계를 불쌍히 여길 수 없었던 까닭으로 우리는 거기에 등을 돌렸고, 그리하여 이, 세계의 불행과 우리 자신의 불행을 다같이 악화시키고 말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러나 정말 제대로 사랑하지는 못한 루치에, 네가 여러 해가 지난 뒤 나에게 와서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인가? 유린된 세계에 대한 연민을 청원하러 온 것인가? -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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