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카뮈 - 삶의 의미를 찾는 시지프스의 생각 여행 Meaning of Life 시리즈 5
이윤 지음 / 필로소픽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일상의 희로애락에 매몰되어 있다가도 가끔은 삶을 외부의 관점에서 볼 때가 있다. 그것은 카뮈가 길모퉁이를 돌아서다가 갑자기 무대장치가 무너져버린 듯한 부조리함을 느꼈던 순간이다. 이것은 헤겔Hegel이 말한 대자적 의식, 즉 자기의식적 존재가자기를 대상화하여 바라볼 때 겪는 필연적인 문제인 듯하다. 카뮈는 부조리를 우리의 의미 요구에 대해 냉담하고 무관심한 이 세계의 객관적 속성으로 보았다. 과연 그러할까? 허무를 느낀다는 것은 시간의 관점에서 현재의 시야를 벗어난 관점을 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에 가까운 의식을 얻고 그 의식을 통해 유한한 삶을 되돌아 볼 때, 세상은 하찮거나 부조리한 것 또는 무의미한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부조리가 객관적 세계의 속성이 아니라 의식을 가진 존재가 자기를 외부에서 바라볼 때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든 영원한 삶을 사는 신이 있다 한들, 의식을 가진 존재라면 자기를 외부에서 바라보면서 마찬가지로 부조리함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조리는 세계의 속성이 아니라 의식이 자기의 외부에서 자기를 한계지어진 존재로 바라볼 때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p77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는것이 아니라 해소되는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삶의 의미는 문제에 대해 정답을 제시함으로써 마치 잠긴 문을 열쇠로 열듯이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켰던 조건들이 소멸함으로써(또는 그것을 소멸시킴으로써) 문제 자체가 사라져버리는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여기서 실존주의자가 정답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려고 골몰하는 사람이라면, 선사는 문제가 이미 해소되어 문제 자체가 별 문제가 안 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의미는 결국 문제라기보다는 화두였던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그것을넘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치 사다리를 딛고올라간 다음에는 그것을 버리는 것처럼,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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