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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인문학적인 음악사 - 수천 년 역사가 단숨에 읽히는 교양 음악 수업 ㅣ 세상 인문학적인 역사
정은주 지음 / 날리지 / 2025년 12월
평점 :
음악은 귀로 듣는 소리일까, 아니면 시대를 해석하게 만드는 하나의 텍스트일까?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흘려듣던 선율 뒤에 얼마나 촘촘한 역사와 권력, 철학과 인간의 감정이 숨어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그저 하나의 예술 장르가 아니라, 정치, 과학, 철학, 종교, 경제가 얽히며 만들어낸 ‘살아 있는 문화 텍스트’로서의 음악을 표현한 이 책은 악보를 해석하는 대신, 음악 너머의 시대정신을 해석하는 음악사 입문서라고 요약할 수 있다. 작곡가와 양식의 변화로만 음악을 알고 있었던 것에서 왜 그런 음악이 나온 것인지 시대적 흐름과 인간의 이야기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접근의 음악 교양 수업이 담긴 책이다.
원시의 소리부터 20세기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관한 스토리는 상상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이 흥미로운 음악사 여정은 현재로선 그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인 호모 사피엔스로부터 시작된다. 고고학적, 인류학적 추론에서 출발한 역사는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소리를 우주의 질서, 수학, 철학과 연결했는지 살펴본다.
이후 중세-르네상스-바로크-고전주의-낭만주의-20세기로 이어지는 익숙한 음악사 구도를 따르지만, 단순 연대기 서술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뀔 때 음악은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르네상스 시대, 악보 인쇄술의 발달, 인본주의, 종교 개혁은 누가, 어떤 언어로, 어떤 공간에서 음악을 만들고 듣게 되었는가를 바꾸어 놓은 결정적 계기였음을 이야기한다. 바로크-고전주의-낭만주의로 넘어가며, 절대왕정의 궁정, 시민계급의 성장, 공공 음악회의 등장, 살롱 문화, 그리고 여성 음악가의 활동 확대 등 사회 구조의 변화가 음악 양식과 직업적 음악가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20세기를 맞이한 음악은 전쟁,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더 이상 귀족의 예술이 아니라, 대중과 세계가 동시에 공유하는 소리의 네트워크로 변모하는 과정을 조망한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음악을 시대의 증인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 개혁은 신학 논쟁으로만 그치지 않고 엘리트의 독점에서 다수의 참여로 이동한 음악 혁명이었음을 알 수 있었고, 근대 이후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의 변화에 따라 음악 또한 우주 질서에서 개인의 내면으로 중심축이 이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글로만 배워온 방식이 편협한 시각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음악사에 대해 상당히 무지했던 나에게 가장 큰 수확은 음악을 듣는 자세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음악은 나에게 집중하고 싶을 때, 기분을 조절하고 싶을 때, 혹은 공간을 채우고 싶을 때 틀어주는 배경음악에 가까웠다. 이제는 이 곡이 처음 연주되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았을지, 이 선율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철학과 과학, 사회적 구조였을지 - 음악을 듣고 느낌만 표현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이 책에서 주목한 여성 음악가들의 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도 음악의 발전에 기여한 그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의 유산을 경제적 가치로만 보기보다는 미래의 음악가들을 위해 기부한 음악가에게 존경심을 갖고 그의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다.
나 역시 그랬듯, 클래식을 잘 몰라도 즐겁게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귀로 듣는 음악을 넘어, 시대상을 담은 생생한 인문학 텍스트로 재발견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플레이리스트를 넘기다 “이 곡이 태어난 시대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다면, 당장 이 책을 읽어야 할 때이다.
*서평단 도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