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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 - 지난 200년 법과학 발전의 놀라운 이야기
발 맥더미드 지음, 조진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평점 :
CSI와 같은 범죄 수사물을 볼 때 우리가 가장 열광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천재적인 형사의 직감도 짜릿하지만, 무엇보다 과학수사를 통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건 먼지 한 톨, 혈흔 한 방울에서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일 것이다.
범죄 현장의 숨겨진 단서를 추적하는 침묵의 목격자들, ‘진짜’ 과학수사의 세계를 샅샅이 파헤친 다큐멘터리 에세이를 만났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하지만 잔인할 정도로 생생한 과학수사 현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저자 발 맥더미드는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이다. 평생 범죄를 구상하고 트릭을 짜던 그가 이번에는 픽션의 가면을 벗고 저널리스트의 시선으로 과학수사 역사의 현재를 추적한다. 법의학, 법곤충학, DNA 분석 등 과학수사의 개념들을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소설을 읽어 내려가듯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책은 범죄 현장에서 시작해 화재 현장 조사, 법의곤충학, 지문 감식, 그리고 마침내 법정에 이르기까지 총 12개의 챕터를 통해 과학수사의 분야별로 집중 조명한다. 그리고 그 과학이 어떻게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냈는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증명한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법의곤충학이었다. 나에게는 CSI 라스베이거스 편의 길 그리섬 반장님의 전문 분야로 기억되는 학문인데, 죽은 시신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손님인 파리와 구더기가 어떻게 살인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되는지 보여주는 대목은 감탄을 자아낸다. 시신에 남겨진 구더기의 성장 단계를 분석해 범행 시각을 분 단위로 좁혀가는 과정은 그 어떤 탐정의 추리보다 정교하다. 진정으로 시신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읽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형체를 알 수 없게 부패하거나 뼈만 남은 시신을 통해 나이, 성별, 살아생전의 직업과 습관까지 알아내는 법의인류학의 세계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과학수사는 단순히 범인을 잡는 기술이 아니라, 말을 잃어버린 죽은 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우리는 미디어, 특히 CSI 시리즈를 통해 과학수사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첨단 실험실에서 버튼 몇 번만 눌러 범인을 찾아내는 그런 환상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과학수사의 현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인내의 과정인지 명확히 한다.
이 책은 과학수사의 이론을 다루고 있지만, 이론서이기 이전에 인간의 잔혹함과 그것을 밝혀내려는 인간의 집념이 부딪히는 뜨거운 현장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평소 추리 소설이나 범죄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가이드북이 될 것이며, 과학이 어떻게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는 훌륭한 지적 교양서가 될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는 말을 이토록 완벽하게 증명해낸 책이 또 있을까?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 주변의 아주 작은 먼지나 머리카락 한 올 조차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서평단 도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