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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맛 7작 - 제1.2회 테이스티 문학상 작품집
박지혜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평점 :
인간은 왜 항상 허기질까?
태어난 후 매일 매일 느껴왔으니 이제는 그만 익숙해져야 마땅한 감각이다. 그럼에도 매 세 끼 느껴지는 허기는 늘 짜릿하고 늘 새로워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다. 배고픔에 지치다보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왜 ‘이렇게까지’ 배가 고픈 건지. 왜 계속 음식을 찾아 헤매게 되는지.
<7맛 7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한참 배가 고팠다. 아침 점심 모두 거르고 일하는 오후, 퇴근까지는 아직 시계 반 바퀴가 남은 때. 배고파 소리를 사려물며 트위터를 열었는데 <7맛 7작> 발매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음식을 소재로 가지각색 단편 모음. 푸드 프린터 미역국 이야기가 눈을 사로잡았다. 냉면, 스파게티. 카레. 배고플 때 음식 소설집이라니 이건 운명인가요. 돌이켜보면 언제나 배가 고프니까 언제든 이 책을 보게 되었겠구나 싶다.
작품집에는 제목처럼 일곱 가지 음식, 일곱 가지 소설이 담겨 있다. 다루어지는 음식은 미역국, 스파게티, 라면, 냉면, 카레와 (인도) 커리 등 대개 내게 매우 친숙한 메뉴였다. 그 흔한 음식에 작가만의 특별한 비법이 첨가되어 엉뚱기발한 요리가 완성되었다. 입이 출출할 때마다 뜯어먹는 간식처럼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씩 꺼내 읽었다. 이야기를 삼키고, 문장을 마시고, 단어를 오독오독 씹었다. 독서가 참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되었다.
1. 일상을 비추는 음식
첫 작품 「해피버스데이, 3D 미역국」은 독자를 훅 이입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연령대와 감성이 나와 얼추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마 30대의 매 마감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종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각박하다 못해 얄팍한 생활, 복사용지처럼 뽑혀 그때 그때 소모되는 나. 그런 내 단짝 푸드 프린터.
자판기와 3D 프린터를 합쳐놓은 듯한 이 기계덕분에 이야기는 독자의 일상에서 한 단 올라간다. 집집마다 들여놓은 푸드 프린터로 인간은 더욱 단절되지만, 오히려 그 푸드 프린터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푸드 프린터로 구현 불가능한 ‘엄마의 손맛 미역국’을 먹어야 할 대 위기에 놓이고 마는데!
기술 문명으로 인한 단절 / 기술 문명으로도 놓칠 수밖에 없었던 인명 / 기술 문명으로 다시 이어진 인연. 소설은 현대 사회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다루며 거기에 따스한 인간애를 부여한다. 주인공이 받은 기름지고 쫀득한 미역국처럼 따뜻한 결말이다.
매일 먹어야 하기에 시대 변화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밥상으로 오밀조밀 맛있는 소설 한 편을 만들었다. 좋은 소재를 다룬 좋은 이야기였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작품을 도드라지게 하는 소재인 푸드 프린터 활용이 애매했다는 것이다. 푸드 프린터는 주인공을 돋보여주는 도구지만 메인 서사는 아날로그 미역국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보니 중요한 순간에는 존재감이 사라진다. 소설 초반에 눈맛을 끄는 소재이니만큼 마지막까지 맛이 났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2. 누군가를 떠올리는 촉매제
「해피버스데이, 3D 미역국」에서 주목했던 또다른 꼭지는 음식이 ‘잃어버린 사람’을 회상하게 만드는 키워드로 기능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세 번째 작품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과 마지막 작품 「커리 우먼」 에서도 쓰이는 장치다.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은 정체불명의 스파게티교 신봉자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를 찾는 남편의 이야기를, 그 수색 의뢰를 받은 탐정의 시점에서 쓴 산뜻 발랄한 이야기다.
평소 먹지 않기 때문에 분위기 낼 때 가기 좋은 스파게티. 알고보면 자취생이 휘적휘적 해먹기 편한, 이색적이면서도 만만한 메뉴 선정과 문체가 잘 맞아 떨어졌다. 세상 무슨 일에도 심드렁해서 계약결혼도 덥석 해버린 남자가 아내를, 아내의 독특함을, 그 내면의 사정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귀엽게 그렸다. 이 작품에서 파스타는 아내에 대한 유일한 단서이자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다.
「커리 우먼」은 주인공의 단골 중고 서점이 난데없이 커리집으로 변모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다. 주인공에게 카레는 미성년자인 자신을 두고 갑자기 사라져버린 어머니의 음식이다. 주인공은 이 신기한 커리집에서 냄비 가득 카레를 끓여놓고 사라져버리는 여자들이 자신의 어머니 외에도 여럿 있으며 그들을 ‘커리 우먼’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처음 읽었을 때 이해가 썩 잘되지 않았다. 작품은 카레가 가진 두 가지 위상을 소재로 했고, 매일 매일 관리해야 하는 가정 식단을 간단히 때우게 해주는 집밥 카레 / 이색적인 향과 재료, 먹는 방법으로 이국적 분위기를 듬뿍 느낄 수 있는 인도 커리를 여성의 처지와 접목시켰다.
혼자 아이를 기르며 일하는 미혼모든, 잘 나가는 자본가의 트로피 와이프든. 여성은 모두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의무에 강제로 붙들려 있다. 퇴근도 은퇴도 없이 매일 아침 점심 저녁 밥상을 해결해야 하고 결국 이 의무를 쉽게 이행할 수 있게 해주는 메뉴가 카레다. 그렇게 카레 끓이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그녀가 그 자리를 떠나게 되면? 남는 건 한 냄비의 카레 뿐이다.
작품에서는 ‘커리 우먼’은 카레를 남겨놓고 문득 떠난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이를 카레를 끓이다 사라졌다고 받아들였다. 카레에서 커리로. 의무에서 일탈로.
「해피버스데이, 3D 미역국」과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 「커리 우먼」의 문체는 제각각이다. 세 작품에서 회상되는 인물의 처지도, 주인공의 목적도 다르다. 그러나 그들이 음식을 통해 그들을 회상하는 것만은 같다. 음식이 누군가의 산 증거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문득 내가 먹는 음식 메뉴를, 내 주변 사람들을 돌이켜 보았다. 내 지인들은 나를 무슨 음식으로 기억할까? 매일 마시는 제로 콜라, 친구들과 둘러앉아 철없이 혼자 두 쪽 다 먹었던 치킨 다리, 체하면서도 자꾸 먹었던 쫄면. 지금 내가 떠올리면 죄 한심한 모습 뿐이다. 글쎄. 한심한 건 괜찮은데. 누군가 나를 음식으로 떠올린다면 웃어 줬으면 좋겠다.
3. 벗어날 수 없는 굴레
한편 다섯 번째 작품 「하던 가닥」은 위 세 작품과는 반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위 세 작품이 음식으로 떠나보낸 사람을 회상한다면 이 작품은 국수 가닥의 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의 귀향을 다루기 때문이다.
낡고 오래된 국숫집, 집에 돌아갈 때마다 엄마가 목이 메이도록 들이미는 음식, 스릴러 액션이 섞여 있는 이 작품은 독자의 입에 침보다는 구토감이 치밀도록 한다. 밀가루 음식을, 정말, 끝도 없이 먹이거든. 그 모든 음식을 익히고 지지고 삶는 과정과 입에 넣는 모습을 읽다보면 내가 다 후각을 잃는 것 같다. 온갖 음식 가판대가 다 있는 푸드 코트 한 가운데에 놓인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 운명 앞에 다시 선 주인공을 볼 때는 차라리 홀가분한 심정이다.
4. 추리의 단서
음식이 누군가가 남기는 흔적이라면 누군가를 추적할 단서도 될 터다.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은 화자가 사설 탐정이다보니 간략하게나마 탐색의 과정을 끼얹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탐정이라는 직업이나 추리 과정은 입맛을 돋워주기 위해 조금 얹는 허브 정도의 역할이다.
음식으로 상대를 추적하는 장치는 여섯 번째 작품 「군대 귀신과 라면 제삿밥」에도 나온다. 제목 그대로 군대에서 귀신에게 라면 제삿밥을 바치게 된 주인공이 라면의 연도로 귀신의 사망연대를 짐작한다. 물론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입대부터 제대까지 귀신, 라면과 함께한 주인공의 경험담이므로 이 추적 과정도 그리 상세하지 않다.
라면 맛을 귀신이 구분해 내어 알아볼까 싶기도 하거니와, 60년대, 80년대에 나온 라면과 같은 상표라고 해도 2010년대 만들어진 라면은 맛이 다를 거라는 점 등등 덜컥거리는 부분들이 있지만……. 애초에 귀신이 왜 그렇게 라면에 환장하는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지만. 역시 넘어가자. 중요한 건 지옥 같은 군대를 주인공이 무사 제대했다는 거니까. 수십년 묵은 귀신까지도 제대 시켜준 라면 성인이여.
(그런데 타이밍 딱 맞춰 군 부대 앞까지 찾아오는 증손녀가 있다니 이 귀신 너무 영험한 거 아니냐)
음식과 추리를 본격적으로 다룬 건 작품집 네 번째 작 「류엽 면옥」이다. 이 작품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마치 1920년대에 정말 냉면집 배달부 생활을 해본 것처럼 사건 정황과 주인공의 직업, 소재가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20년대 경성일보에 실린 기사 한 꼭다리를 가져왔다고 해도 그럴 법 하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과 달리 음식의 조리, 음미 과정에 집착적인 묘사를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당시 냉면가게 안팎의 풍경을 주목한다. 가게 안에서는 냉면 한 그릇을 내오기까지 반죽을 치고 육수를 내는 이들이 있고 가게 밖으로는 배달부 중머리들과 은밀히 정보를 주고 받는 독립군, 그들을 쫓는 경감이 있다.
단편이다보니 인물들의 사연을 대사 몇 마디로 처리하고 주인공의 마지막 결단도 너무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쾌속 전개가 냉면처럼 시원했다. 하필 요즘 겨울이라, 괜히 나까지 20년대 겨울 별미였다는 냉면이 땡겨서 아주 혼났다.
(난 원래 비빔 냉면 파인데 소설을 읽을 때는 동치미 냉면이 너무 땡기더라. 주변에 파는 곳도 없는데! 이럴 때야말로 푸드 프린터 필요한 것 아닌가요!!)
5. 조리까지의 기나긴 여정
한편 재료를 내오고, 손질하고, 조리하는 과정이 중심 장면을 이룬 작품도 있었다. 두 번째 작품 「비님이여 오시어」와 다섯 번째 작품 「하던 가닥」이다.
「비님이여 오시어」는 작품집 중 유일한 판타지 역사물이다. 이 소설의 배경 모델은 세종 시대 극심한 가뭄기. 왕은 청룡을 잡아 비를 빌고자 하고 주인공 숙수가 청룡을 찾아 가는 여정이 아주 길게 다루어진다.
기아와 전염병 유행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여정은 곧 한 끼 한 끼를 이어가는 과제가 된다. 토끼부터 사람까지,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생물들이 서로를 사냥하고 먹기 위해 목숨을 건다. 마침내 용을 사냥하고, 조리하고, 임금의 앞에 대령하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위기다.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는 광기가 되고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예스러운 분위기를 잘 유지하고 옛 음식도 많이 등장하여 신선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도 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그리는 조선 왕과 숙수의 역할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닥친 상황에서, 가뭄 해결을 위해 용을 잡는데 달랑 둘만 보낸다는 점도 의아했다. 하지만 이는 판타지 퓨전이라는 장르를 보아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다.
내가 가장 아쉬운 부분은 주인공 숙수를 보좌하기 위해 보내진 인물, 모량이다. 모량은 동물과 소통하는 이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실상 작품 내에서 역할이 없다. 모량의 액션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액션이 주인공에게 아무 울림을 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모량 때문에 어떤 생각의 변화를 일으켰나? 그런 적이 없다. 반면 모량은 별 설득 과정이 없어도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캐릭터가 휙휙 바뀐다.
갈등은 일단 두 캐릭터가 각자의 입장을 고수할 때 일어난다. 이 작품에서 모량의 입장이 쉬이 바뀌면서 갈등도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더 첨예한 갈등이 일어났다면 주제도 더 심화되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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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맛 7작>은 간만에 든 단편집이었다. 책 날개와 중간중간의 작가 소개란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많이 느낀 건 결국 동질감이다. 나도 월급날 퇴근길에 있는 파스타 집에 들어가서 한 달 잘 버틴 걸 자축하곤 하는데. 여기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그리 생각하며 오늘도 배를 두들긴다. 이 글 쓰다보니 어느새 점심 때가 지났다.
춥고 북적북적한 도시에서 매일 삼시세끼를 해결하고 있을 우리, 작가와 독자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 의미 있는 테마 공모전이었고, 이런 재미있는 공모전이 앞으로도 계속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