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이미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보는 영화마다 마지막에 '이미도'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그럴때마다 나는 이미도라는 글자가 사람을 지칭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자주 당연하게 올라오는 글자라 무심결에 흘러보내다가
어느순간 번역가 이름이 '이미도'씨라는걸 알게 되었고
어느순간 그녀가 아니라 그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 나의 충격이란 비단 나뿐만 겪었던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번역이란것이 당연히 힘들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작업이란걸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그가 더없이 존경스러워 지는 책읽기 시간이였다.
처음 이 책을 '이국환의 책읽는 아침'에서 소개 받았을 때는
아 이 책이라면 영어 영화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얼마전 혼자 시작한 영어공부에 불을 지펴줄
장작이 되어주겠구나 하는 기대심리가 발동을 했으나 솔직히 말해서
막상 책장을 열고 보니 생각했던 것 만큼의 기대심에 충족을 시켜주지는
못했다. 역시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을 정보였겠지만,
무지한 내게는 역시나 멀고먼 영어의 세계였고, 영화에 조예가 깊지
못한 내게 오히려 목마름에 한숨 쉬게 만들었기에 다소 진전이 늦어졌던
책넘김이였지만, 덕분에 암기 하고 싶은 영어문장도 생겼고,
꼭 찾아서 보고 싶은 영화목록도 생겨서 내가 아는 범위를 넓혀주는
정보를 제공해준 책읽기 였음에는 인정한다.
역시 시대적 대세는 영어 그리고 문화 더 나아가 영화인가보다
제목에 확 끌려 들어가는 걸 보면 나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임에 이보다 더 확실한 유혹의 증거가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속 얘기보다 더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었다. 영어와 영화를 얘기하는 책을 읽으면서 오롯이 한글을 떠올린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 같은건 들지 않았다..그냥 그저 그 생각이
자꾸 자꾸 떠올라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 생각인 즉슨..

 얼마전 EBS교육방송에서 한글날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였다.
챙겨 봐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결국 한회 방송 밖에는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뇌리에 깊게 박힌 방송이였다.
몇몇 사람의 신청을 받아 일정기간 동안 한글만 사용하게 하는
실험방송 이였는데, 실험자들은 첫날부터 제대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말 속에 외래어를 써서도 안되고, 영어상호로 표기된 곳에
가서도 안되며, 무조건 영어라면 모든게 금지 된 채로 살아가야 하는
실험이였다. 실험자들은 첫날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으려 해도
이름부터 샴퓨요 린스요 용기에는 버젓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었으니
씻는 일조차 규칙위반 일 수 밖에 없었다. 출근하려던 사람들은 맨물에
일단 씻기는 했으나 옷을 갈아 입으려는 그 순간에도 장애물이 등장한다.
옷마다 우리나라 상표임에도 불구하고 옷에 붙어 있는 상호에 영어알파벳
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옷을 입을수도 없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담당pd에게 사정해서 출근은 해야 하니 라벨을 잘라내서 입는 방법으로
일단은 그 상황을 피하는걸 보면서 내가 내쉬어야 했던 한숨들이 얼마나
많아져야 했는지는 몇가지 설명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거라고
생각한다. 

 
그 방송을 보면서 어렵게 마음 먹고 시작했던 영어 공부에 회의를 많이 느끼게 되었다..영어 그래 잘하면 좋지 그런데 꼭 해야만 하는걸까?
아직 한글도 제대로 아는게 없는데..하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세종대왕님이 어렵게 만들어 놓으신 아름다운 한글을 사용하는 축복을
갖고 태어나 남의 나라 말에 목메어 정녕 못하는 내 재주를 탓하며
한탄해야 하는걸까? 살랴살랴 떠들고 싶어 안달해야 하는걸까?
잘 하고 싶지만, 그 만큼 나는 갈등하고 갈등했다. 결국 나는 며칠
바쁘다는 나름의 핑계거리를 만들어 놓고 굳은 결심을 했던 영어공부를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한 쪽으로 밀쳐 놓았더랬는데, 역시 나는 팔랑팔랑
가벼운 마음을 가졌던게 확실한가보다 모순이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잠깐 보았던 한글만 사용해야 하는 그 프로가 그렇게 생각이 나더니만,
책장을 덮고 나니 영화속 영어를 마구 외워주고 싶어지니
이 책은 내게 자꾸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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