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의 사상에 대한 매우 평이한 입문서로, 그의 사상적 궤적에 있어 특정 시기나 주제에 쏠리지 않고 전반적인 소개를 하고 있다. 푸코의 영향을 받은 페미니즘, 사회학, 문학 등의 영역에서의 논의도 함께 녹여내고 있어 푸코 사상의 숲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저자는, (그리고 역자도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는데) '저자-기능'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푸코의 사상을 교조화 시키는 것을 경계한다. 자신의 모든 책들은 도구 상자에 불과하다는 푸코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처럼 용도의 방향이 열려있는 푸코 사상이 단순화되어 사용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심성은 의도적으로 그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에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드러난다. 다만, 그 비판들은 논쟁의 첨예한 전선까지 나아가지 못하거나 몇몇 제한된 논자의 의견에 국한되어 있거나 주로 페미니즘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입문서로서 가지는 친절한 소개의 미덕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판적 균형감각에의 강박은 간혹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푸코 사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몇 군데 예를 들어보자.
75쪽에서 저자는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과 푸코의 이론을 비교하면서 "푸코의 모델이 가지는 장점은 각 개인을 언제나 속기만 하는 바보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로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유명한 명제로부터 이러한 이해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과 동시에 그러한 능동성과 주체성이 권력의 작용에 공모하고 있는 기만이라는 점이야말로 푸코가 더욱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일면적 이해를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85쪽에서도 반복된다. "그는 수동적 피해자로서의 개인 개념을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83쪽에서는 『피에르 리비에르』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말하기를, "푸코는 이 자백서에 대해 논평할 때조차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대신 이를 …… 담담한 어투로 서술한다. 바로 이 무덤덤한 자세가 푸코적 분석의 핵심"이라 하고 있다. 가치판단을 유보하는 담담한 태도 운운하는 표현은 반사적으로 막스 베버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푸코를 이렇게 받아들인다면 난감해진다. 푸코는 정치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글은 그러한 지향을 위한 전략적 효과를 내기 위한 나름의 실천이었다. 다만 푸코가 염두에 두고 있는 전략적 효과는 특정 담론의 수준에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는 차원이 아니라 담론 공간 전반을 아우르는 형세에 대한 비판에 있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저자가 이러한 측면에 대한 이해가 미진하다는 의혹은 곧 이어 등장하는 부분에서도 제기된다. 그는 이러한 무덤덤한 자세가 "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지니는 체계성을 은폐시킬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 문제성이 있는 부분은 푸코가 처참하게 살해된 리비에르의 어머니와 형제, 누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침묵했다는 것이다. 푸코가 이 사건을 선택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는 피에르 리비에르를 옹호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라며 다소 저급한 비판을 하고 있다. 푸코는 리비에르의 범행이 옹호되어야 한다거나 살인 피해자들의 권리를 묵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학, 법률, 정신의학 등 상이한 담론들 속에서 범죄와 범죄자에 대한 처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더 나아가 다음 페이지에서 그는 "의도적으로 사회에 물으를 일으키고 타인의 권리와 생명을 앗아간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렇게 프롤레타리아 집단이나 폭도 혹은 살인자의 권력을 옹호하는 것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푸코가 '타자'의 사례 그리고 과학의 지위에 이르지 못한 미성숙한 지식을 자신의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는 이유에 대한 무지를 공개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를 옹호하는 것이 문제라는 견해에 대한 당파적 논박은 미뤄두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몇 가지 유형의 오해 혹은 몰이해를 드러내는 부분은 이후에도 꾸준히 등장한다. (87, 97, 174, 213, 214)
그리고 아마도 오역이라 여겨지는 실수도 보인다. 125쪽 하단 인용문의 위에 있는 문장 중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로 바뀌어야 한다. 바로 밑의 인용문이 유사성의 에피스테메에 속해 있는 16세기까지의 시기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147쪽의 첫 문장 "그는 자신의 분석 작업을 비판이 아니라 단지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다."는 문맥상 다음과 같이 고쳐져야 한다. "그는 자신의 분석 작업을 단지 설명이 아니라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140쪽에서 저자는, "푸코의 작업이 이론적인 측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그의 글이 이렇게 과장되는 순간"이라고 쓴다. 많은 비판자들이 지적하는 푸코 사상의 허황됨과 불가능성의 지점이야말로 동시에 그의 이론이 겨냥하고 있는 위태로운, 하지만 동시에 절묘한 입지점이었다. 이 긴장을 항상 느끼면서 글을 썼을 푸코의 원전으로 직접 나아가지 않고서는 저자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와 총체적 이해를 동시에 추구하는 모든 입문서의 목표는 결코 성취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