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인은 공동체 지향인들처럼 누군가의 허락이나 승인, 인정이나 찬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결정이나 행동의 정당함을 누구에게도 설득할 필요가 없는 그들은 불필요한 대화나 방해 요소에서 자유롭다. 또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욕구에 지배받지 않기 때문에, 명확한 경계를 설정해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와 시간을 지킬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사소하고 어떤 일이 의미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를 위해 시간을 낼 줄 안다.

지위란 언제나 사회적 집단 안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측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향인은 그런 집단에 매여 있지 않아서 자신의 선택이나 생활 방식, 소유물의 가치를 남과 비교해 가늠하지 않는다. 이는 곧 이향인들이 ‘소외될까 봐 두려워하는 심리없이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1장에서 언급한 십대 소년 A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라.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회적 경험을 놓치고 있다며 지나치게 걱정했었다). 이향인의 결정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않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라서, 그들은 그 선택에 충분히 만족한다. 또한 외부의 인정 없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집단의 찬사를 얻는 데 무관심했던 태도는 카프카가 자신의 문학적 소명을 대했던 담백한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계의 거장 중 한 명이 자신의 작품을 출판

하거나 세상에 알리는 데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카프카는 유언으로 자신의 글을 사후에 모두•파기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그의 친구이자 유언 집행자였던 막스 브로트 Max Brod가 그 뜻을 거스른 것은 인류에게는 큰 공헌이었지만 카프카의 의도에는 반하는 일이었다. 카프카는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단지 쓰고 싶어서 썼을 뿐이다.

이향인은 소외 불안 심리가 없고 지위를 드러내는 표식들에도 무심한 까닭에 대체로 다른 이들의 경제적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과 생활 수준을 비교하며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지도 않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탐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돈을 버는 일은 안전장치, 즉 목표라기보다 삶을 편하게 만드는 수단이라서 집단과는 사뭇 다른 경제적·직업적 우선순위를 갖기도 한다. 그래서 이향인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 경우에는 대체로 불행하고 성공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재능과 동기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일에서큰 만족을 얻는다. 또한 그들은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얻기위해 자신의 생활방식을 희생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향인이 반드시 금욕적이거나 검소하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명확히 구분하기 때문에 소유하는 물건의 범위가 좁고 선별적이지만, 사치를 즐기는 이향인들도 많다. 그것이 대중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수단이 된다면 특히 더 그렇다. 예컨대 내가 아는 한 이향인•은 전반적으로 소박한 생활을 하지만, 비행기를 탈 때만큼은 늘 일등석 표를 사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가 엄청난 추가 비용을 기꺼이 내는 이유는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이나 코스 요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기 삶의 궁극적 권위자 이향인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의 지식을 갖춘 전문가의 조언은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이미 필요한 정보를 모두 갖고 있기에 어떤 조언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속하려는 우리의 욕구는 종종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고 북돋우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으려는 욕구와 대립하곤 한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집단에 속하게 됐을 때 자신을 지워버리거나 최소한 자신의 진짜 욕망과 집단이 원하는 것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자기 삶과 인간관계를 책임지려면 집단의 필요를 고려하되, 집단의 일방적인 목소리에 휩쓸리지 않는 강한 내적 자아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과 공동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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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들어가며
무리에 속해 있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사람들

1부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1장공동체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 이향인26"왜 저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걸 하나도 안 좋아할까요?"

2장세상이 이향인을 오해하는 방식
43그들은 내향인도, 외톨이도 아닌 ‘외부인‘이다

3장온순한 저항가
58예의 바르지만 규칙을 인정하지는 않는다1919

4장가짜 외향인
67모두가 함께 모인 자리가 그들에게 지옥인 이유

5장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혁신가
74남들과는 다른 방향을 보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본다110

6장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
79진정한 공감은 타인의 시선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요

2부 왜 세상은 ‘공동체 인간들‘을 위한 곳이 되었나
7장우리는 모두 이향인으로 태어난다
88자기중심적 인간에서 공동체적 인간으로 길러지는 과정

8장함께가 혼자보다 낫다‘는 믿음이 강요될 때
97삶에는 올바른 방식도 틀린 방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9장소속되어야 한다는 착각
115‘연결‘이 기준이 된 세상에서 나만의 고독을 지켜내는 법

3부이향인으로 산다는 것의 미덕
10장정서적인 자립
132그들은 철저한 고독 속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11장 질적으로 풍요로운 인간관계
140겉으로 친한 친구가 아닌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사람

12장삶에 대한 자신감과 만족
147외부의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쥐는 법

13장집단 밖에서 생각하는 힘
157모두가 옳다고 말할 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14장내면 세계의 풍요로움
174당신은 내면의 견고한 나침반을 가지고 있는가

4부 혼자여도 풍요로운, 행복한 이향인으로 살아가기

15장이향인 아이를 둔 부모를 위한 조언
184고치려 드는 태도를 버리고 ‘내버려두는 기술‘을 발휘하라

16장고난과 시련의 청소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법 그들은 ‘이향인‘이기 이전에 ‘십 대‘다
201

17장이향인이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
214성향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이해와 수용의 문제다

18장소속될 수 없는 사람이 직업적으로 성공하려면그들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없는 솔리스트다223

19장그 누구도 동행할 수 없는 여정, 죽음
232인간은 누구나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나가며
함께하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조용히 나만의 삶을 꾸려가는 법

부록 이향인 테스트
감사의 말 24124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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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을 믿도록 태어나는가믿음의 본능을 실험으로 밝히다신앙에 덧씌워진 타성과 냉소를 모두 걷어내면 무엇이 드러날까?
종교는 인간의 삶을 지탱해 온 가장 오랜 지반이다.
심리학자이자 사제인 조너선 좋은 신학적 교리를 넘어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믿음의 원형을 찾아 탐험을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가?
신의 존재는 도덕적 인간을 만드는가?
누구나 죽음 앞에서 신을 찾는가?
과학의 언어로 번역된 일곱 개의 종교적 질문은시대와 장소를 막론한 종교성을 발견한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답하기 위해 심리학과인류학, 인지과학을 넘나들며 영국의 대도시에서시베리아의 투바까지 세계 곳곳을 횡단한다. 좋은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상상하며, 마침내이해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믿는 존재인가?

정신분석학자(특히 프로이트 학파)는 사회심리학자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수십 년 동안 이런 종류의 일을 해 왔다. 이들은 무의식의 작용에 관한 파악하기 힘든 정보를 캐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꿈과 그림을 해석하고, 사람의 말실수를 잡아냈다. 유감스럽게도 심리측정학적 기준에서 판단했을 때 이 방법들은 모두 매우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분석가들은동일한 꿈, 그림, 말실수에서 각기 다른 것들을 발견해 내며, 이는 이후의 행동이나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그것들이 치료적 가치를 지니고 어떤 사람에게는 깊은 통찰이라는 의미 있는 느낌을 줄 수는 있겠지만 심리학자를 위한 측정 도구로서는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자기 보고를 우회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아마도 사람의 뇌를 직접 읽는 것일 테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매우 편리하겠지만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 같은 신경 영상 기법을 심리학적 측정에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공상 과학의 영역에머물러 있다. 이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여전히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 많이 알아 갈수록 우리는 뇌 기능이 얼마나 복잡한지 더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제 측정 가능한 ‘신의 영역‘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가 신을 믿을 때 뇌의 어떤 특정 부위가 ‘불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아마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그것만을 위한 특정 부위는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예컨대 공포의 자리로 널리 알려진 편도체를 생각해 보심리학자는 종교를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까?
45

연구 중 검증된 척도를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존의 측정 도구가 넘쳐 남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자들은 자신만의 척도를 구성할 필요성을 느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럴 만한 꽤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그저 검증된 척도를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데,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연구 방법의 가변성은 결과가 서로일치하지 않을 때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심리학자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해석하는 기발한기술을 고안해 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방금 설명한 심리학연구의 표준적인 방법에는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구석이 있다. 
적어도 성격 검사와 종교성 측정의 경우 우리는 사람들에게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믿는지, 어떻게 느끼는지를 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때때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믿는지, 그리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우리 스스로도 모른다는 데 있다. 
우리의 자기 인식은 제한적이며 아마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그럴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자기기만에 빠지는 경향도 있다. 때로는 사회적 규범이나 여타 이유를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알고서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이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바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이는 자기 보고식 측정에 명백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난제에 대응하여 심리학자는 사람들에게 생각과 감정을 직접 묻지 않아도 되는 측정 방법도 개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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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틸 것인가,
뛰어오를 것인가함께할 것인가,
홀로 설 것인가이 고민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곤충도 나름의 삶을 산다.
고로 곤충도 고민한다.
작다고 가벼운 삶이 아니다.
징그럽다고 의미 없는 삶도 아니다.
가장 작은 세계에서 발견한,
가장 치열한 삶의 방식.

3초, 감정의 롤러코스터-바퀴벌레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인간의 기본감정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기쁨, 슬픔, 분노, 공포,
놀람, 혐오이다. 인간의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 감정들은 누구나 삶의 희로애락에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문화,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보편적인 표정으로도 구별이가능하다고 한다.
곤충 중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가장 짧은 시간에 이모든 감정을 들쑤셔 놓는 존재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쳐지고 실제 모습을 보면 더욱 외면하고 싶은 바퀴벌레가 그 주인공이다.
117

어느 늦은 밤. 우리 집 화장실 문을 열었다. 스위치를눌러 등을 켜자마자 바닥에 있던 검은 물체가 번개처럼움직였다. 바퀴벌레라고 인식한 순간, 그 녀석은 배수구구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 찰나에 내 마음에는 강렬한변화가 일어났다. 여러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소용돌이친 것이다.
예기치 못했던 순간의 공포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체를 인식하는 순간 놀라움으로 몸은 얼음이 되었다.
그 생김새와 움직임에서 느끼는 혐오스러움이 온몸의 피부를 오그라들게 했다. ‘왜 하필 우리 집에?라는 짜증이분노의 외침으로 나타났다. ‘저렇게 보잘것없는 미물에게내가 이렇게밖에 대처할 수가 없나‘라는 무력감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 안도감의기쁨이 살짝 스쳤다. 여섯 가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시간, 불과 3초 만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처럼 생활 주변에서 마주치는 가장 불쾌한 곤충 1위라 할 수 있는 바퀴벌레는 인간의 감정을 심하게 자극한다. 주로 부정적인 감정을 더 강하게 자극하며 그중 혐오118

단하게 한마디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번식‘이다. 인간의 언어로 옮기면 조금 거칠게 들리지만, 생존의 전과정이 오로지 종족보존이라는 목표를 향한다. 곤충 중에서도 여름을 대표하는 매미는 유독 번식에 집중한다.
매미의 생존 기간은 짧게는 3년이지만, 북미의 일부 좋은17년이나 된다. 대부분의 곤충이 1년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제법 긴 편이다. 매미는 유충 상태로 땅속나무뿌리의 수액을 먹으며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성충으로 변태하는해의 여름철이 되면 지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살아갈 수있는 시간은 대체로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시간동안 처절하게 울고 짝짓기하고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지상의삶은 오직 번식을 위한 무대였다.
누군가는 이 짧은 지상의 삶을 덧없다고 여기고, 그들을비운의 주인공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매미에게는 그여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수컷은 구애의 신호로 자신의에너지를 모두 쏟아붓는 울음소리로 짝을 찾아 번식을 완수한다. 시끄럽지만 애처롭고, 동시에 아름답다. 매미는 바로그 절정의 순간에 전부를 걸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조상들은 매미의 삶을 단순한 곤충의 일생으로만 보지 않았다. 이를 오덕(五德)으로 비유했다. 미물의 모습에서 선비의 삶을 떠올린 것이다. 문(文)·청(淸)·렴廉)·검儉)·신(信)이다. ‘문‘은 긴 입이 선비의 갓끈을 닮은 데에서,
‘청‘은 맑은이슬과나무 수액만 먹는 청결함을 뜻한다. ‘럼‘은곡식을 탐하지 않는 염치, ‘검은집도 없이 사는 검소함. ‘신‘은허물을 벗고 올 때와 갈때를 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군자의 덕목을 지녔기에 조선의 왕은 모자 뒷면에매미 날개 모양의 장식을 한 익선관(翼)을 썼다. 여기서선은 착할 선(善)이나 상징성을 나타내는 매미선(蟬)을 혼용하기도 한다. 신하들도 매미의 날개가 옆에 붙어 있는 관모를 썼는데 ‘오덕‘을 지키라는뜻이었다.
현대인에게 매미 소리는 군자의 덕목을 읊는 소리는 아닐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음이고, 누군가는 에어컨 실외기와경쟁하는 여름의 배경음쯤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땅속에서의 그 기나긴 인내를 기억한다면, 그 울음은 비명이아니라 온몸으로 써 내려간 가장 뜨거운 유서(書)와 견줄만하다.
175

인간 역시 각자의 어두운 땅속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지않은가. 내일의 찬란한 여름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는 우리에게, 매미는묻고 있다.
"당신의 가장 뜨거운 순간은 언제이며, 그 절정의 순간을위해 어떻게 살았는가?"
매미는 여름을 다 쓰고 조용히 사라졌다. 대신 한번은 제대로 울었다. 절정은 기다리는 자보다 끝까지 버텨낸 자에게 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아직 울지 못했다면 아직여름이 오지 않았을뿐이다.
176

때 내가 살던 동네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잘사는집의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단순한 분석이 현실에서도 유효할까?
정보화시대로 넘어오면서 잘산다라는 말은 다양한 해석이 따라다닌다. 더 이상 소득이나 재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사회적 잣대보다 개인적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가치관•이나 인간관계, 정서적 안정감 등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현대인은 ‘얼마나 가지고 있나?‘보다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스스로 점검하는게 잘사는 삶의 기준이다.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뒷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등장 곤충이 달라졌다고 한다. 원래는 베짱이가 아니라 여름철에 울어대는 매미가 주인공이었다는 것이다. 개미와 비교하며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대립 구조로 만들다 보니 억울하게도 게으르지 않은베짱이에게 전혀 다른 이미지가 덧씌워진 셈이다. 낮에 일하지 않은 게 이유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현대적 감각으로내가 이야기를 꾸며보았다. 개미와 베짱이는 한사람의 두가지 삶의 모습이다. 현대인은 때로는 개미처럼, 때로는 베짱이처럼 살아간다. 새벽부터 하루198

를 시작하는 부지런함과, 해가 중천인데도 이불 속에 있는게으른 사람은 두 사람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의 생활이 될수있다.
산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트레킹을 떠나는 친구에게 내가 물었던 말이 있었다.
"그렇게 바쁘고 일도 많다면서 또산이니?"
그의 대답은 즉흥적이었지만 오랜 시간 기억에 남기에 충분했다.
"나에게 일은 트레킹을 하기 위한 투자이고, 트레킹은 다시 일하게 하는 자산이야."
옛 선인들은 인간의 덕이 ‘중용(中庸)‘에 있다고 했다. 나는중용을 ‘치우치지 않음‘보다는 ‘적당히 부지런하게, 적당히 게으르게‘로 해석한다. 그리고 현대인의 잘사는 모습은둘사이를 자연스레 오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게으름은 부지런함을쉬게 해 주고, 부지런함은 게으름이 오래 머물지 않도록 북돋199

는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같이 호흡할 수 있다. 게으름으로오늘의 나를 충분히 사랑하면 내일을 준비하는 부지런함의에너지가 만들어진다.
개미가 내일을 위해 고개를 숙인다면, 베짱이는 오늘의 존재를 위해 고개를 든다. 각각의 행위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개미의 성실함이 우리를 살게 하고, 베짱이의 풍요로운 감성이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두가지 삶의 모습을 꾸며낸 이 이야기는 베짱이가 남긴 마지막 말로 귀결된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우리 인생에선 둘다중요한 일이야."
당신의 마음속에는 오늘 어떤 노래가 흐르고 있는가. 개미의 행진곡인가, 아니면 베짱이의 세레나데인가. 아마도 이두 선율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인생 교향곡이 완성되는 게아닐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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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늘 머뭇거려진다. ‘잘한다‘거나‘좋아한다‘고 말하려면 ‘몸의 증명‘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운동을 해온 그럴듯한 몸. 누군가는 체질량지수를 따질 수도있고, 누군가는 근육량을 따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사회에서는 비교적 최근까지 ‘보이는 몸‘이 그 기준이었음은명확하다. 자신의 몸에 만족하는 여성이 있을까? 현대사회를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만들어진 몸‘ ‘미디어가 만든 몸‘과자신을 끝없이 비교하며 마네킹이라는 정답이 되지 못한자신의 몸을 오답이라 여기며 살아왔을 것이다.
나는 전업작가를 선언한 이후로 글쓰기보다 운동을 더 먼저챙겼다. 주 3회씩 근력운동을 하고 거의 하루도 빠지지않고 유산소운동을 한다. 대체로 러닝. 날씨가 좋으면뒷산에 오르기도 하고 1월 1일이나 새로운 다짐을 할 때는관악산이나 북한산에 오른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한동안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위와 같은 이유다. ‘운동을좋아하는 사람치고 몸이 좀 볼품없지 않나?‘ 그래서 누군가물어보면 늘 ‘그냥 살려고 하죠‘ 하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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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으로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 꼭 운동복과 운동화를챙긴다. 가끔은 캐리어의 절반 이상이 운동복일 때도 있다.
어느정도 안전이 확보된 도시일 때는 해가 뜰 시간에 맞춰러닝을 한다. 그곳 사람들이 출근도 하기 전의 도시를 뛰는 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명소들을 고요한 아침에 뛰며 구경하는것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 해보지 않으면 그 즐거움을 알지못한다.

12XXXT뭘 만한 장소가 없을 때는 근처 피트니스센터를 등록한다.
각 나라의 피트니스센터를 다녀보는 걸 추천하는 편인데,
나라마다 운동 트렌드가 달라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운동하는지를 훔쳐볼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각기 다른체형을 보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한국의 고정된 ‘보이는몸‘의 틀에서 조금 해방되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이토록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틀로 다 같아질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해외에서 러닝을 할 때면 평소보다 더느리게 뛰며 주변을 구경하고, 겹쳐 입었던 운동복을벗고조금 더 자유로운 차림으로 오로지 내 근육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타지에서 운동할 때마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틀에 맞춘 몸이 아니라 ‘몸을 잘 쓰는 몸‘이 되고 싶었던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그걸 깨달은 후에도 어디 가서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이라 소개하지를 못한다. 도대체 왤까.
이 기나긴 의문이 풀린 건 늘 같은 장소에서 농구공을 던진소녀를 마주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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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이 다 해진 농구 골대에 계속 농구공을 던지던소녀가 있었다. 레지던스와 가까운 공원 끝자락에는놀이터와 운동기구 그리고 골대가 있는 공터가있다. 처음에는 그 끝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늘중간쯤에서 되돌아왔는데 그날은 어쩐지 평소보다바람이 선선했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싶어서 계속걸었다.
통, 통, 통...... 통, 통, 통.......
바닥에 공튀는 소리가들려 이끌리듯 도착한 곳에농구공을 던지는 그 소녀가 있었다. 물병과 가방을공터 한쪽에 버리듯 두고, 얇은 셔츠를 허리에 묶은채 열심히 공만 바라보고 있던 소녀. 공을 튀기고몸을 돌려서 다시 잡으려다 실패하고, 골에 공을넣으려다 실패하고, 잘 튀기다가 갑자기 공이 옆으로빠져버려 실패했지만 소녀는 땀 닦을 틈도 없이손에서 공을 놓지 않았다. 농구선수가 꿈일 수도 있고,
농구 수행평가가 있어서 바짝 연습하는 것일 수도있겠지만 이유가 뭐가 됐거나 소녀는 그날 이후로도내가 갈 때마다 그곳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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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무언가에몰두해서 얼굴 근육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는 얼굴. 한참원고를 쓰다가 문득 거울을 봤을 때 경악할 만큼 이상한표정을 짓고 있던 내 얼굴 같은.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있었기에 신경 하나하나까지도 그 대상에 쏠려 일그러진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그렇게 마음뿐만 아니라온몸이 그것으로 향한다.
소녀는 내가 출국 전날 마지막으로 들른 공원에서도 같은시간에 농구를 하고 있었고, 그날도 골대로 농구공을 던졌다.

유종의미처럼 공이 들어갔으면 좋으련만. 골대를 빗나간 공은통, 통, 떨어져 내가 있는 방향으로 데구루루, 굴러왔다. 나는공을 잡고 소녀에게 도로 던졌다. 소녀가 독일어로 고맙다고외쳤다. 조금 전 실패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는 듯 소녀는다시 공을 던졌다. 나는 소녀에게 농구가 나에게 글쓰기와같은 것이라는 걸 안다. 실패해도 그다지 부끄럽지 않은 것.
그저 내가 나를 만족시킬 때까지 끝없이 하는 것. 마음과 몸이 전부 다 쏠리는 것.

나는 그날 마지막 러닝을 하며 내가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지않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수도 없이 많다. 달리 말하면포기하지 않은 건 글쓰기가 유일하다고 말하는 게 더 빠를정도로. 하지만 그중에서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리듬체조대회를 포기했던 여덟 살의 나다.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말하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 리듬체조를 했고 꽤 좋아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회가 있던 날 당일,
리듬체조 선수가 될 거라고 선언하고 다녔던 그간의 태도를한 번에 내던지며 나는 엄마에게 대회에 출전하지 않을 거라고말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일등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리듬체조를 그만두었다. 너무 잘하고 싶었고,
그래서 일등이 아닌 나를 두려워한 나머지 좋아했던 무언가를포기하고 도망친, 나의 첫 기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리듬체조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던거다. 정말 사랑했다면 그만두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그제야내가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를 깨달았다. 아주오래전 한번 포기했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그걸 좋아한다고말하기가 껄끄러웠던 것이다.

저 소녀는 농구를 좋아한다. 매일 하니까. 저 소녀가 정말농구를 좋아하는지, 농구선수가 꿈인지, 성적 때문에 하는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소녀는 매일 한다.
매일 한다는 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 나도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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