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늘 머뭇거려진다. ‘잘한다‘거나‘좋아한다‘고 말하려면 ‘몸의 증명‘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운동을 해온 그럴듯한 몸. 누군가는 체질량지수를 따질 수도있고, 누군가는 근육량을 따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사회에서는 비교적 최근까지 ‘보이는 몸‘이 그 기준이었음은명확하다. 자신의 몸에 만족하는 여성이 있을까? 현대사회를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만들어진 몸‘ ‘미디어가 만든 몸‘과자신을 끝없이 비교하며 마네킹이라는 정답이 되지 못한자신의 몸을 오답이라 여기며 살아왔을 것이다.
나는 전업작가를 선언한 이후로 글쓰기보다 운동을 더 먼저챙겼다. 주 3회씩 근력운동을 하고 거의 하루도 빠지지않고 유산소운동을 한다. 대체로 러닝. 날씨가 좋으면뒷산에 오르기도 하고 1월 1일이나 새로운 다짐을 할 때는관악산이나 북한산에 오른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한동안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위와 같은 이유다. ‘운동을좋아하는 사람치고 몸이 좀 볼품없지 않나?‘ 그래서 누군가물어보면 늘 ‘그냥 살려고 하죠‘ 하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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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으로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 꼭 운동복과 운동화를챙긴다. 가끔은 캐리어의 절반 이상이 운동복일 때도 있다.
어느정도 안전이 확보된 도시일 때는 해가 뜰 시간에 맞춰러닝을 한다. 그곳 사람들이 출근도 하기 전의 도시를 뛰는 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명소들을 고요한 아침에 뛰며 구경하는것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 해보지 않으면 그 즐거움을 알지못한다.

12XXXT뭘 만한 장소가 없을 때는 근처 피트니스센터를 등록한다.
각 나라의 피트니스센터를 다녀보는 걸 추천하는 편인데,
나라마다 운동 트렌드가 달라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운동하는지를 훔쳐볼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각기 다른체형을 보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한국의 고정된 ‘보이는몸‘의 틀에서 조금 해방되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이토록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틀로 다 같아질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해외에서 러닝을 할 때면 평소보다 더느리게 뛰며 주변을 구경하고, 겹쳐 입었던 운동복을벗고조금 더 자유로운 차림으로 오로지 내 근육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타지에서 운동할 때마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틀에 맞춘 몸이 아니라 ‘몸을 잘 쓰는 몸‘이 되고 싶었던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그걸 깨달은 후에도 어디 가서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이라 소개하지를 못한다. 도대체 왤까.
이 기나긴 의문이 풀린 건 늘 같은 장소에서 농구공을 던진소녀를 마주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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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이 다 해진 농구 골대에 계속 농구공을 던지던소녀가 있었다. 레지던스와 가까운 공원 끝자락에는놀이터와 운동기구 그리고 골대가 있는 공터가있다. 처음에는 그 끝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늘중간쯤에서 되돌아왔는데 그날은 어쩐지 평소보다바람이 선선했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싶어서 계속걸었다.
통, 통, 통...... 통, 통, 통.......
바닥에 공튀는 소리가들려 이끌리듯 도착한 곳에농구공을 던지는 그 소녀가 있었다. 물병과 가방을공터 한쪽에 버리듯 두고, 얇은 셔츠를 허리에 묶은채 열심히 공만 바라보고 있던 소녀. 공을 튀기고몸을 돌려서 다시 잡으려다 실패하고, 골에 공을넣으려다 실패하고, 잘 튀기다가 갑자기 공이 옆으로빠져버려 실패했지만 소녀는 땀 닦을 틈도 없이손에서 공을 놓지 않았다. 농구선수가 꿈일 수도 있고,
농구 수행평가가 있어서 바짝 연습하는 것일 수도있겠지만 이유가 뭐가 됐거나 소녀는 그날 이후로도내가 갈 때마다 그곳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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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무언가에몰두해서 얼굴 근육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는 얼굴. 한참원고를 쓰다가 문득 거울을 봤을 때 경악할 만큼 이상한표정을 짓고 있던 내 얼굴 같은.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있었기에 신경 하나하나까지도 그 대상에 쏠려 일그러진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그렇게 마음뿐만 아니라온몸이 그것으로 향한다.
소녀는 내가 출국 전날 마지막으로 들른 공원에서도 같은시간에 농구를 하고 있었고, 그날도 골대로 농구공을 던졌다.

유종의미처럼 공이 들어갔으면 좋으련만. 골대를 빗나간 공은통, 통, 떨어져 내가 있는 방향으로 데구루루, 굴러왔다. 나는공을 잡고 소녀에게 도로 던졌다. 소녀가 독일어로 고맙다고외쳤다. 조금 전 실패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는 듯 소녀는다시 공을 던졌다. 나는 소녀에게 농구가 나에게 글쓰기와같은 것이라는 걸 안다. 실패해도 그다지 부끄럽지 않은 것.
그저 내가 나를 만족시킬 때까지 끝없이 하는 것. 마음과 몸이 전부 다 쏠리는 것.

나는 그날 마지막 러닝을 하며 내가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지않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수도 없이 많다. 달리 말하면포기하지 않은 건 글쓰기가 유일하다고 말하는 게 더 빠를정도로. 하지만 그중에서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리듬체조대회를 포기했던 여덟 살의 나다.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말하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 리듬체조를 했고 꽤 좋아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회가 있던 날 당일,
리듬체조 선수가 될 거라고 선언하고 다녔던 그간의 태도를한 번에 내던지며 나는 엄마에게 대회에 출전하지 않을 거라고말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일등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리듬체조를 그만두었다. 너무 잘하고 싶었고,
그래서 일등이 아닌 나를 두려워한 나머지 좋아했던 무언가를포기하고 도망친, 나의 첫 기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리듬체조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던거다. 정말 사랑했다면 그만두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그제야내가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를 깨달았다. 아주오래전 한번 포기했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그걸 좋아한다고말하기가 껄끄러웠던 것이다.

저 소녀는 농구를 좋아한다. 매일 하니까. 저 소녀가 정말농구를 좋아하는지, 농구선수가 꿈인지, 성적 때문에 하는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소녀는 매일 한다.
매일 한다는 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 나도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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