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내가 쇳덩이를 들어 올릴 수 있게 옆에서 비트를•넣어주었고, 한강 고수부지에서 커플들 사이를 달릴 때 외•로움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Say ho"를 외쳐주었다. 래퍼들은 나에게 천편일률적인 삶의 틈바구니에서 엉뚱한 짓을 일삼고도 꽤 멋지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내 인생의 폭을 잔뜩 넓혀놓고 가당찮은 불안일랑 들어오지 못하게 으름장을 놨다. 알게 모르게 권위적으로 구는 치들 앞에서 고개를 치켜들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쭉 내 인생엔 힙합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넉 달간 우린 어둠 속에서만 친구였다. 우린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던 서로의 소년성少年性을 지켜줬다. 거•기엔 어떤 호응도 위로도 필요 없었다. 그저 규칙적인 호흡이 가져오는 팽팽한 긴장만이 우리를 지탱했다. 그건 내가어른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느껴본 소년성이었다. 이후론 그 어디서도 그런 대화를 나눠본 바 없다. 어디서나 꽤믿음직한 어른으로 기능하느라 솔직하지 못했다.
간혹 술자리에서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맥주나 소주 따위를 조금씩 홀짝대며 취한 척 속 얘기를 꺼냈다. 내가 평소에 느낀 경악, 두려움, 혼란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재를 언제 봤다고 이런 얘기까지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 없는 관계가 주는 속 편한 감정도 있다. 고백한다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은밀한 즐거움이 통용되는 가벼•운 사이였다. 흐리멍덩한 눈과 무표정한 말투로 술집의 나

지막한 조명에 몸을 숨기고 술술 털어놨다. 어쩌면 술집에는 그 부연 조명에 마음을 쬐러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내게 소년성이란 호프집 통닭 앞에서나 유효한 단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빈은 그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서는 쓰지 않았던 통계학적 접근 방식을 써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가 추구한야구 전략은 여느 혁신가와 다르지 않게 기존 주류의 거친 반대를 무릅써야 했다. 

경기 전략을 짤 때 수학적인 통계로 접근하다 보니 야구판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 야구인들의 미움을 산 것이다. 특히 성적이 안 나올 때는 수모에 가까운 말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빌리 빈은 어땠을까? 빌리 빈은영화에서 자기 동료에게 우리 방식을 굳이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을 굳이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빌리 빈은 그깟 허울 좋은 의미 부여보다는 그냥 밀고 나가는 방식을 택한다.
우선 일을 진행하면서 바로 그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것저것 생각하며 당위를 부여하느라 지쳐버린 내 등판을 후려치는 영화였다. ‘아, 세상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도 행동을 멈추지 않는 행동주의자가 바꾸는구나? 

나는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를 때는 우선 헬스장에 가서 생각한다. 쇳덩이를 들어 올리다 보면 이유 없이 운동이 좋아진다.
내 주변에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별 이유 없이 그냥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여러 이유를 갖다 붙일 순 있겠지만, 이유에 잠식당하지 않는 자가 진정한 헬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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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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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게 두어라! 밤에 에워싸여
끝없는 사막에서.
낙타들이 쉬고 몰이꾼도 쉬는데,
돈 셈하며 고요히 아르메니아인 깨어 있다
그러나 나, 그 곁에서, 먼먼 길을 헤아리네
나를 줄라이카로부터 갈라놓는 길, 되풀이하네
길을 늘이는 미운 굽이굽이들.
나를 울게 두어라! 우는 건 수치가 아니다.
우는 남자들은 선한 사람.
아킬레스도 그의 브리세이스 때문에 울었다!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무적의 대군을 두고도 울었고
스스로 죽인 사랑하는 젊은이를 두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울었다.
나를 울게 두어라! 눈물은 먼지에 생명을 준다.
벌써 푸르러지누나.

아르메니아 사람은 대체 어디에 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하는 낯설음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고, 무

끄러운 돌들에다 상상 속에서 얼음까지 얹어보니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지기도 했고요.
당시 다시 그곳을 향해 떠나는 만용은 거두었지만, 여름에도 독특하게 황량했던 그 풍경이 자주 떠올라 눈앞에 펼쳐집니다.
거대한 하르츠 산맥, 그 산맥 중의 브로켄산은 마녀들이 집결한다는, 파우스트」의 ‘발푸르기스 밤‘의 무대입니다. 대체 지형이 어떻기에 그런 전설이 생겨났고 또 괴테가 파우스트의 한 주요 장면을 할애했을까 하는 궁금함도 없지 않긴 했지만, 그곳이 그토록 마음을 끈 건그보다 한 편의 시 때문이었습니다. 

「겨울의 하르츠 여행」이란 시인데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 순간이 그 안에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방황에 빠져 허우적이기도 하는 젊은 날, 겨울산을 오르며 자신의 운명을 헤아려보는 성찰이 두드러진 시편입니다. 이 시는 문득 절로 터져나온 듯한 외침으로 시작됩니다.

매처럼,
무거운 아침 구름 위에
부드럽게 날개 펴고 가만히 뜬 채로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떠돌아라 나의 노래여
문득 이런 어떤 깨달음의 순간이 있어, 깨어나고, 똑바로 서는 한 순간은 누구에게서든 참 아름답습니다. 
거기에 자신만이 아니고 주변의 둘러봄이 있을 때는 더더욱그렇지요
하지만 저기 외따로 가는 자 누구인가?
그가 걷는 길은 덤불숲 속으로 사라진다
그 뒤에서 덤불들이
다시 얽히고
풀이 다시 무성해지고 이윽고
황야가 그를 삼켜버렸다
그럼에도 그런 이까지 눈여겨보는 사람이 시인이겠지요.
그대의 현금을 퉁겨
사랑의 아버지여, 음 하나라도
그의 귀에 들리게 해서 그 마음에 생기를 주소서!
흐린 시선을 열어

황야의
목마른 자 곁에 있는
샘물을 보게 하소서!

그것이 어디쯤에서였을까요. 한 사람에게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순간이, 그러면서도 대승적인 순명의 의식이기도 한 그런 순간이, 누군가의 마음 속 어느 굽이에서인지 제가 가볼 수 없지만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리적으로 어디쯤인지는가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그때 저의 출발의 모든 이유였습니다.
산인데 고작 고도 300여 미터, 웃음부터 나오는 높이라 듣기만 했을 때는 그저 우습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읽은 글들에서 그 산의 위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막상 가보니 과연 그렇지 않았지요. 높지 않은 대신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펼쳐져 있었고, 무엇보다 길바닥이 독특했습니다. 전부 돌이 깔려 있는데, 그 커다란 검은 돌덩이들이 강물 속 차돌처럼 반들반들했습니다. 그런 돌덩이들이, 당연히 불규칙하게, 그러나 빈틈없이 빼곡하게 바닥을 메우고 있어 산의 초입만 조금 걷는 것도 여간 힘

미국인 교수가 얘기했습니다.
그 모든 건, 세상의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많은 장벽들이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는 자리였습니다. 나홀간 길게 논의된 것이, 9일 기념일에 독일 대통령의 한마디로 요약되었습니다.
"베를린장벽은 무너졌지만, 우리는 많은 내적 장벽을 세웠습니다. 그걸 허물 사람도 우리입니다."
당장 뾰족한 수야 있으랴만, 이렇듯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는 것이 그 많은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완화하는 길 아닐까요. 그래서 다들 쉬는 시간, 먹는 시간까지도 이야기를 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분단국일뿐더러 사회의 내분, 내홍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곳에서 사는 저야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좋은 연구가들, 젊은이들을 만났고, 아주 좋은 것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사진 한 장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 학회 주최자는, 예전에 제가 뮌헨대학에서 독일교수와 함께 분단문학 수업을 했을 때 수업을 들었던 독일학생입니다. 그후 서울에 있는 저의 학교까지따라와서 최인훈의 『광장』으로 멋진 석사논문을 써서두 대학의 학위를 받았고,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제 제 나라 독일로 돌아가 한국학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학의 한 코너가 그이 덕분에 앞으로 탄탄해질 것만 같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선생을 찾아 땅끝까지도 달려갈 줄 알았던 그 독일 소녀 비르깃이, 이제 자기 나라 학계에서 자리 잡았다고 세 대륙, 네 나라에 있는 스승 넷을 모두 모으고, 많은 전문가들을 더하고, 또한 세계 젊은이들을 모아 이런 야무진 공부 자리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곱고 똑똑한 비르깃과 네 명의 선생들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 그녀는 이를 "학문의 가족사진"이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쉽사리 찍히기 어려운 것이라 자꾸 보게 되고,
보고 있노라면 많이 기쁩니다. 언젠가 그녀도 우정에 와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가리라는 생각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참 설레는 마음입니다.

제가 서원에 지은 이 작은 집은 소박하지만 거기서 비롯된 기쁨과 의미가 정말이지 너무나 커서, 더 크게 짓는다고 해서 더 나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도 제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 우정에 방문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편지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그침 없는 활동과 연구의 생애, 성찰의 생애가 반영되어 있는데,
막바지로 갈수록 오히려 가열한 정신이 선명하게 빛납니다. 임종을 닷새 앞두고 큰 학자 훔볼트에게 쓴 긴 편지의 끝부분, 마지막 몇 문단만 가져와봅니다. 
이 빛나는정신의 편린이 조금이나마 엿보일까 해서입니다.

파우스트의 콘셉트는 내게서 젊어서 이미, 상세하게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명확하게, 전체 순서대로, 앞에 놓인 지 60년이 넘었습니다. 그 의도와 내가 늘 살며 역시 함께 왔지요. 다만 그때그때 마침 가장 관심 있는 부분들을 하나씩 써갔고요. 그러다보니 2부에서는 빈틈들이 남아 있어, 그때는 균일한 관심으로 틈을 메워 나머지와 연결시켜야 하게 되었죠. 그러자니 물론, 원래는 다만 자발적이고 행동적인 자연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것에 원칙과 성격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활동적인 삶, 숙고하는 삶을 살고도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좋지 않을겁니다.
그렇게 평생 쓴 『파우스트』를 괴테는 1831년 8월

82세 생일을 앞두고 최종 마무리를 하여, 봉인해두었다가 1832년 정월에 다시 꺼내어 고치고 또다시 봉인한 후 타계했습니다.

내 귀한, 흩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생시에 이미 이 매우 진지한 농담을 헌정하고, 알리고, 응답을 듣는다면 그건 내게, 의문의 여지 없이 큰 기쁨일 겁니다. 그러나 시절이 어처구니없고 혼란스러우니, 이 기이한 건축물을 이루기 위해 오래도록 쏟아온 나의 정직한 노력은 제대로 보답받지 못하고, 난파선처럼 해변으로 쓸려가 부서져 놓여 있다가 시간의 모래 더미에 파묻혀버리고 말겁니다. 혼란스러운 행함을 부르는 혼란스러운 가르침이 세상을 휘젓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있고, 늘 있어온 것을 될 수 있으면 증진시키고 나의 특질을 정화하는 것 이상으로 절박한 할 일은 없습니다. 그대가 기품 있는 친구여, 그대의 성에서 그렇게 하고 계시듯. 그러니 그대의 작업도 좀 알려주십시오. 잘 아시다시피리머가 같거나 비슷한 연구에 매달려 있어서 우리의 저녁 대화는 자주 그 분야의 경계로 나아갑니다. 이 늦은 답장을 용서하십시오. 독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생의 비밀들을 생생히 떠올려 볼 수 있는 한 시간

은 잘 없습니다. 변함없이 그대의 J. W. v. 괴테

죽음을 목전에 둔, 닷새 앞둔 시인이 자기수양의 절박함을 이야기하고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을 피력합니다. 또 60년 공을 들인 대작을 "진지한 농담"이라고 부를 여유와 더불어, 마지막 공을 들이고도 그 어떤 이해도 기대할 수 없어 봉인을 해버리는 절망이 함께 거기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지막 힘까지 쏟아부어 한작품을 완성한 힘 역시 같은 절망에 닿아 있을 것입니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닦는 것이, 거짓 가르침이 횡행하는 시대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 저항으로 읽힙니다.
그 큰 사람에게도 그랬습니다. 시대의 혼란과 몰이해에 홀로 마주선 이 마지막 외로움이 읽는 이의 가슴을 칩니다. 
작품만이 아니라 그 많은 편지로써 가 닿으려 했던 것도 결국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아득한 예전에 세상 이곳저곳에 보내어진 그 많은 낱장 편지들을 사람들은 왜 또 그렇게 모았을까요. 인류의 큰 업적들은 어쩌면 이런 절망과 외로움의 힘으로 길어올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시간들 속에서 찾아낸
반짝이는 보석 같은 순간들
종이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문인 괴테가 들려주는간명한 지혜의 말

"지향이 있다는 것은 갈 곳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표가 있는 한 방황한다니. 갈 곳이 있기에 길을 잃는다니. 방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방황이 바로, 목표가 있고 지향이 있기 때문이라니! 
지금 방황해도 괜찮아. 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언젠가 어디인가에 닿아. 그런 쉬운 말보다, 말이 될 듯 말 듯한 이 위로가 주는 여운이 큽니다."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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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가 인터뷰/
"미안합니다. 아내가 부르기 때문에나는 가야만 합니다."권희철

깜빡 속았다. 그랬다는 느낌이었다. 응모자들의 이름이 지워진 심사과정에서 나는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의 작가가 남성적인 목소리도 상당히 흉내낼 줄 아는, 그러나 역시 도발적인 매력과 여성적 섬세함을 미처 다 감출 수 없었던 신인작가라고 확신했다. 이 익명의 여성 작가와 만날 생각에 나는 남몰래 가슴 떨기까지 했었던 것인데, 도대체가, 장강명이라니. 장강명이라면,
압도적인 무공으로 순식간에 상대방을 제압해버리면서도 자신이 어떤 초식을 쓰고 있는 것인지 굳이 우렁차게 말로 설명해대는, 준수한외모를 지녔지만 도덕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매력을반감시키면서도 작가의 호의에 힘입어 무수한 미녀들의 사랑을 받는,

대의를 위한답시고 결국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허무하게 잃고 난 뒤에야 광기 어린 발작 끝에 천하의 악당이 되었다가 끝에 가서는 실망스럽게 회개해 버리는, 무협지의 등장인물에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이런 사정 때문에 나는 조금 억울한 심정이었다. 그랬지만 얼마 안 있어 다른 의미로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장강명 작가의 전작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다지도 흥미로운 작가에 대해 나는 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일까? 『표백』(2011), 『뤼미에르 피』(2012), 『열광금지, 에바로드』(2014), 『호모도미난스』(2014)의작가 장강명은 매번 이 세계의 구조 같은 것에 관심을 드러냈고 그것을 해명해내고자 했으며 그 해명에는 언제나 설득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런 세계 안으로 던져진 인물들의 좌충우돌에는 독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작가는 아주 단단하게 뭉쳐져 매력적인 무게를 갖게 된 이야기를 세계 안으로 던져넣어서 세계의 중력장을 비틀어버리고자 하는 욕망을 부주의하게도 그다지 숨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난 여느 소설보다 훨씬 더 대단한 걸 쓰고 있다고, 공산당 선언과 대중소설 둘 중 하나만 쓸 수 있다면 어떤 기회를붙잡고 늘어져야 해?", 『표백』, 143쪽: "진짜 갈등과 고통은 제대로등장하지 않고, 작품은 일반인도 오덕도 부담 없이 낄낄대며 즐길 수있는 발랄한 헛소동을 지향한다. 그런 게 유행인 시대다. 대형서점의국내문학 코너를 작고 예쁜 표지의 경장편들이 점령한 이유도 이것이다", "열광금지, 에바로드』, 21쪽). 물론 이 부주의가 내게는 특히 매178

력적으로 보였지만. 그러니까 전형적인 오타쿠의 외모를 지닌 아저씨가 인터뷰에 나오더라도 난 이미 반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합정역에서 만났다. 그는 오타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그는 차라리 순진하고 얌전하며 모범적인 대학원생처럼 보였다. 작품이 풍기는 인상과 달리 무척 선하고 부드러워 보인다고 말하자, 그는 보기와는 다른 성격이라고 답했다. 그다지 믿기지 않는 대답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는일본 TV 만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바탕으로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강명 작가가 나와 비슷한 열정을 공유하는, 말하자면 아야나미 레이를 사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츠라기 소령에게 끌리는 마음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은덕(은근히 오타쿠)이라고 나는 막연히 추측했던 것인데, 이번에도 또 완전히 속은 걸로 판명됐다. 
연희동의 한 중국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그가 칭타오 맥주를 마시느라 방심한 틈을 타, 내가 <은하영웅전설>과 <기동전사 건담><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그리고 무엇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내 은밀한 열정을 고백하려고 했을 때, 그는 내 말을 거의 제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녹음을 하지 않아서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거의 이런 뜻이고 거의 이런 뉘앙스였다). "오타쿠들은 늘 자신들이 소수이며 또 학대받는다고 묘사합니다. 하지만 가만 보면 오타쿠적 취향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문학평론가조차도사정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오타쿠는 소수도 아니고 학대받지도 않아요. 차라리 오타쿠가 주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신세수상작가 인터뷰 179

기 에반게리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상처를 부풀려서 자기연민을 즐기느라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이카리 신지에게 나는 조금도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단둘이 앉아 있는 식탁에서 나는 내가 소수이며 또 학대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강명 작가와의 대화는 내게 조금 기묘한 인상을 줬는데,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깍듯한 존댓말을 써서 내가 대학원생 제자와 저녁식사를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나보다 세 살 위인데, 어떤 남자들은 고작 삼 년 차이에도 "난 너보다 세살이나 많지만 너에게 형처럼 굴 생각은 없어. 편하게 대해. 편하게.
알잖아, 나 그런 사람 아닌 거"라고 말하면서 불편하게 한다. 왜들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나보다 세상에 먼저 나오는 바람에 세상이 이지경인 데 대해 나보다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걸까. 장강명 작가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에게 깍듯하게 대하면서 무시할 것만 같은 인상이었다). 
최대한의 예의바른 겉모습과 달리 그 내용은 곱씹어볼수록 자신감이 넘치고 단호한 것이어서 약간은 거만해보일 지경이었다. 어느 분야에 대해서라도 할말이 많고, 그 말들을 차분히 정리해놓았으며, 그것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고 거기서 논쟁이 시작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만함이어서, 그게 다 내게는매력적으로 보였다. 
사실 논쟁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생각들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뿐 아니라 이미 그의 소설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린 것 같다. 그와 헤어지면서 이런 생각이 떠오

른 건 당연하다. 하라는 인터뷰는 안 하고, 수상작가 인터뷰, 어떻게 하지?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해줬더라. 딱히 부자는 아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서울의 중산층에서 나고 자랐다고 출신성분을소개했던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건전한 과학소년이 되어 추리소설과 SF의 팬으로 유년기를 보냈다고 했던 것 같다. 추리소설과 SF. 헝클어져 있는 사건들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고 수수께끼를 풀어내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혼돈스러워 보이는 현실세계를 자신만의 규칙으로 재구성해서 사고의 실험실을 만들어 우리 삶을 거기에 집어넣고 그 결과값을 기다려보는 것, 이 사고실험이 결국 세계를 좀더괜찮은 방향으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이 세계가 처한 문제를 좀더 뚜렷하게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믿음을 확인하는 것. 장강명 어린이는 그런 것들을 훈련하면서 커왔으니까 공대생이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다. 딱히 소설을 쓴다기보다 추리소설과 SF의 팬으로서 자신이 그걸 직접 써보기도 했는데(나는 이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그걸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었으므로 실행해버렸다. 장강명 작가의 말투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무협지의 주인공 같았다), 대학생이된 1994년부터 PC통신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에서 활동했고 거기에연재했던 소설이 군 휴학중 『클론 프로젝트』(1996)로 출간된 적도 있다(그는 이것을 ‘흑역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겸손한 타입이 아니니,
아마 진심으로 성에 차지 않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찾아 읽고 놀려주

고 싶었지만 그에게 여러 번 속았기 때문에 의외로 괜찮은 작품일 것같다).
그는 대학 시절 『월간 SF 웹진』을 창간하고 운영했다는데,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아마 거기서 재야의 고수가 됐던 것 같다. 그는대략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비슷한 것을 좋아하고 비슷한 것을 쓰는 사람들끼리 서로 애정을 고백하는 분위기가 나는 좀 답답했습니다. 그 답답함에서 작가의식 비슷한 게 처음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다른 걸 좋아하고 다른 걸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곳에서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런 게 궁금했어요. 그래서 소설이라는 것을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전에도 뭘 계속 써왔지만 소설을 쓴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SF를 썼습니다.
" 마치, 한 동네를 평정한 실력자가 중원으로 진출하는 듯한 인상.
명문 도장들을 찾아다니며 간판을 깨뜨려 버릴 것 같은 기대감. 지금 공모전마다 다 당선되는 그의 이력을 보면 내가 받은 인상이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소설을 써서 데뷔했고, 기자라는 번듯한 직업을 때려치우고 전업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뒤에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전업주부. 그것이 그의 표현이었는데, 이 자신만만한 사내가 이 점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퇴근한 아내에게 깨끗하게 청소된 집을 보여주며 칭찬받기를 기대하는 남편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전업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전업주부‘라는 것은 겸손한 표현이기보다, 나는 누군가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전업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전업작가가 된 것이라는, 다시한번 자신감의 표현인가? 전업작가에게는 언제나 생계의 문제가 장애물이 되는데 그것 때문에 그는 공모전의 상금을 타야겠다고 마음먹고 계속해서 상금을 휩쓸고 있는 중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공모전은 이제 그만 낼까봐요.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타고 싶은 만큼 공모전 상금을 탈 수 있다는 건가.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약간 기가 질리게 하는 타입의 남자인 것 같았다.

소설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여기에 다시 길게 옮겨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상한 바와 같이 (누구라도 그의 소설을 읽으면 그렇게예상하게 된다) 그는 한 사람의 깊은 상처에 골몰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세계에 관심이 없는 이야기라면 그가 먼저 관심 없어했고,
그는 무엇보다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했고 그 세계에 개입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의 욕망이 그의 작품 안에서 상당한 수준에서
실현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 그렇다면 장강명작가에게 『그믐』은 무엇입니까?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이 소년과 소녀의 대화 장면의 아주 구체적이고 섬세한 질감이라거나 두 사람의 마음의 엇갈림, 애틋함 이런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장강명 작가가 관심이 없다고 했던 부류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작품은 작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품인 겁니까? 심사위원들이 정작 작가 본인은 관심도 없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그런 걸 지지하면서 수상작으로 꼽은 것입니까? 음식은 별로 먹지도 않고 막힘없이 말하고 있던 작가가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삼 초쯤 망설였던 것 같

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생각해보지 못했네요. 내가 어떤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이야기에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지적은 확실히 옳습니다. 그믐은 내가 평소에 쓰려고했던 종류의 소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이 내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는아니었지만 나는 그믐의 성취가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쓰면서 나는 즐거웠습니다." 이 답변이 조금 이상했더라면 나는 아마도 장강명 작가를 의심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계에 관심이 없는 작가에게서 힘있는 작품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인간들의 마음, 그것의 깊이에 대해 관심이 없는 작가라면 대체 그 힘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믐』의 작가가 표백 등등을 이미 써버렸다는 사실이 내게는 특별하게 느껴졌고 장강명 작가가 이 두 종류의 소설을 함께 해내는 작가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그를 지금보다는 덜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표백』(세계의 해명과 세계를 움직이는 힘에 대한 탐구 및 그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의지)의 작가였고, 지금은 『그믐』(마음의 해명과 마음의 매듭을 묶고 푸는 힘에 대한 탐구 및 그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의지)의 작가가 됐다. 그가 그의 성취에 대해 스스로 과소평가했다면 나는 그의 안목에 대해 신뢰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양쪽 작업을 자각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믿음직한 작가 같으니라고.

장강명 작가는 클론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도 등단한 지 사년만

에 네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책이 또 네 권이란다. 그는 정말이지 전업작가인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쓸 소설의 성격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책을 읽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는 것은 자기 무대를 스스로 위축시키는 것 아닙니까?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사 보고 싶은 책을 쓰고 싶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말은 오해되기 쉬운 말이지만 내가 듣기에 이것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는 말 같았다. 그는 세계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자신이 이해한 세계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말 걸고 싶어했다.
그 말 걸기 속에서 세계의 중력장을 바꾸고 싶어했다. 그렇다면 알타미라 동굴 속에 들어가서 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벽화를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대도시의 한복판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어떤 사인을 그려야 하지 않는가. 그는 아마 베스트셀러를 만들 것이다. 흥밋거리인 줄 알고 펼쳐봤는데 자꾸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팸플릿 같은 것을. 팸플릿처럼 가볍고 빠르게 읽혔는데 다 읽고 나니 두툼하고 간단치 않은 장편소설로 판명되는 것을. 

그는 지금까지 마음먹은 것을 해왔으니까 실제로 그렇게 해버릴 것 같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생각했을 때 네 시간쯤 지났고, 우리가 떠들던 음식점은 마감시간이 다 됐다. 약간은 팬심을 가지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제대로 된 작가 인터뷰에서 나올 법한 질문 같은 것은 꺼내지도 못했다. 과학소년 시절의 에피소드라거나, 데뷔 전에 썼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소개라거나, 전업작가의 일상이라거나, 기자의 글쓰기와 작가의 글쓰기의 차이라거나 기타 등등. 하지만 아직 저녁 열시였으니까, 일반적으로 작가들에게 이런 시간이 별로 늦은 시간은 아니니까. 간단히 차나 맥주를 좀더 하면서 오늘 내게주어진 일, 인터뷰에 충실하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내가 마음먹은 것에 대해 작가에게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아내가 부르기 때문에 나는 가야만 합니다." 이런 단호한 사람 
마음먹은 것을 실행해버리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마 시간이 좀더 있었으면 그의 아내에 대해서도 물었을 것 같다.
그는 중간중간 아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던 것이다. 아내는 그의 원고의 첫 독자인데 매우 엄격한 독자여서 아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원고라면 어디 내놓을 때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긴다고. 표백도 그믐도 아내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작품이었다고. 그가 전업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결심을 지지하고 응원해준 것도 아내였다고. 내가 그믐』의 ‘보람‘을 지목하면서 어떻게 남성 작가가 이렇게 여자라고 느껴지는 여성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는, 그것은 아내의 성격을 관찰하고 묘사한 덕분이라고도 했다. 아, 그런 아내가부른다니, 나는 붙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떤 남자는 사랑하는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훌륭한 인물이 되기도 하는데, 장강명 작가가 그런 타입은 아닌지 잠깐 의심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은 대체로 무협지에 많이 나오지 않나? 정말이지 이 사내에게는 장강명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것 같다.

너를 만나기 위해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고작 패턴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어떻게 그 패턴 밖으로 나갈 것인가라는 매혹적인 질문을던지고, 이 어려운 질문에 맞서 훌륭히 싸워낸 서사였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독보적인 작품이었다. 별로 심사를 한다는 기분도 느끼지 못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_권희철(문학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교수)

함께 심사를 했던 젊은 평론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었다고 했다. 다시 읽기전에 나는 촌스럽게 울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밑줄을 죽죽 그으면서 읽었다. _김도연(소설가)

죄와 속죄, 반성과 용서의 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킨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진정한 속죄란가능하며 어떤 것이 진정한 속죄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그에 대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소설적 응답을 행한다. _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제각기 다른 관점을 지닐 수밖에 없는 세 인물의 서사를 정교하게 뒤섞어놓는다. 구상이절묘하고 거침이 없으며 그를 뒷받침하는 문장 역시 간결하고 정확하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장편소설의 한 전형을 제대로 보여준 것만 같아. 이 땅에서 함께 소설을 쓰고 있는 한 사람의 마음에 작은 질투와 커다란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그 전형이란, 바로 ‘사건 이후의 사건‘일 것이다. 장편의 핵심은 어쩌면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야기한 그뒤의‘사건‘에 있을 것이다. _이기호(소설가,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현실을 직시하는 충실함에 둥지를 틀었다. 그 둥지 안에서 알을 깨고 부화한 것은 뭉클한감동이다. 이 작가의 둥지 안에는 이야기를 품은 어린 새들이 더 많이 들어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보여줄 힘찬 날갯짓이 너무나 궁금하다._천운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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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 자신도 ‘사람 사랑‘이라 하시더군요
사랑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것에 붙여주고 싶은 이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종교의 복음은 자비, 사랑이지요. 기독교의 사랑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 어떤 종교도 사랑 이상의 단어를 아직 고안해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세속적인 것도 있고, 소소한 것도 있겠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에다 붙인 이름일 것 같다는 생각이 괴테가 저에게 내리게 한 결론입니다.


뿌리와 날개

"뿌리와 날개"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것, 혹은자녀가 부모에게 받아야 할 것을 이야기할 때 제가 늘인용하는 괴테의 말입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부모가안 줘도 자식이 꼭 받아내야 하는 것들인데요. ‘뿌리‘

라는 단어 앞에서 늘 깊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뿌리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뿌리는 발붙이는 것, 저는 그렇게 해석하는데요. 사람을 땅에 발붙게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어떤 연령의 사람이든, 어떤 위치에 있든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자기 밥은 자기가 챙겨먹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이 가족이든 조금 더 큰 공동체든 내가 그것을 위해서 뭔가 하는 일이 있어야 내가 단단히 그곳에 소속되겠지요. 
어떤 경우에도 혼자 힘으로 서고, 내일은 내가 하고 우리 일도 좀 하고 그러면서 땅에 발이 붙습니다. 굳건하게 발을 붙이자면 자기 힘으로 서야 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하겠지요.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고,
또 달려갈 수도 있는 그 근육은 거의 일상적인 노동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그렇게 점점 쌓아나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늘 비유하곤 합니다. 어느 날 중대 결심을 한다고 해서 바로 50킬로그램짜리 역기를 들 수는 없지요. 절대로 들지 못합니다. 
무거운 역기를 들고 싶으면 아령부터 계속 들어야, 그 경험이 쌓여야 어느 날엔가 들 수있는 것이지 갑자기 결심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살아

가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자기가 먹고 살고 스스로 챙길 수 있으면 몇 가닥의 뿌리를내리는 거고, 
거기에 조금 더 남을 위해서까지, 혹은 소속된 어떤 공동체를 위해서도 뭔가 한 가지 일을 해갈 때 그 사람의 뿌리가 또하나 늘어나는 것이죠.

저는 아이들에게도 일을 시켜야 한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어릴 때부터 내가 해야 여기가 돌아가고, 내가 안 하면 안 돌아가는 경험을 하다보면 스스로 얼마나 중요한 존재처럼 느껴질까요? 나 없어도 모든 게 다 잘돌아가면, 내가 없어도 됩니다. 근데 나 없으면 우리집 안 돼! 우리 안 돼!" 이럴 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주변의 존경과 사랑도 커지는 법입니다. 
이렇게 튼튼하게 뿌리 내릴 수 있게끔 부모가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합니다. 
너무 잘해주기만 해도 안 되겠지만,
그러나 또 그 모든 기반에 당연히 사랑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누누이 스스로를 계모라고 그럽니다만 실은, 감히 말하는데, 극진한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극진히 사랑만 주고, 따로 해준 것은 없는데 무얼 바랄 게 없지요. 그러니까 굉장히 편해지는 것이지요.
가진 사랑은 그저 속으로만, 너무 퍼붓고 퍼부어서 유

약하게 만들지 말고, 한걸음 떨어져 지켜보면서 응원하는 것이 가까운 사람들의 건강한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날개‘는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스스로 꿈꿀 수 있는힘을 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아이가 뭔가를 꿈꾸고,
나아가고 싶게끔 하려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피아노를 치라고 닦달을 하면 피아노를 배우는 게 아니고 닦달을 배웁니다. 그리고 이런 닦달은 대대로 이어져요.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즐겁게 했던, 그 즐거움의 기억으로 뭔가를 이루고 또 나아갑니다. 그래서 함께 즐거웠던 추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그만큼 시간을 줘야 합니다. 
꿈까지 주입하려 들면 안 됩니다.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됩니다. 좁은 틀에 넣어서 가르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방임을 하라거나 버릇없게 키우라는 말은 아닙니다. 가르칠 건 따끔하게 가르쳐야지요.

모든 부모가 시간이 많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지만짧더라도 그 적은 시간이 정말 소중하도록,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그 힘을 가지고 무엇을 하면 내가 또 즐거울까를 생각하면서 비로소 꿈을

꾸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틈이 있어야 합니다. 쉴 틈이 없으면, 스케줄이 꽉 짜여 있으면 꿈까지 생길 틈이없어요. 좀 멍하니 있을 시간도 있고 이래야 뭐가 고이지요. 그러니까 부모가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이들 마음속에 뜻과 꿈이 자리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기다려주고 지켜봐주어야 합니다.

특히 저는 소위 말하는 ‘학원 뺑뺑이‘를 정말 염려합니다. 남들 다 하는데 안 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선행 학습을 시키면 학교에서 그때그때 효과가 나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인데, 이로 인해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 부모들도 사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지금 막 공부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대고 부모가 공부하라고 말하면 하려던 공부도 하기 싫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미리 공부를 시켜놓으면 일단은 하긴 하는데, 다음에 이거 하고 싶은 마음이생기지 않습니다. 이미 학원에서 공부를 다했는데, 학교에서 무슨 공부가 재미있겠습니까. 남들 다 하는데 안 하면 큰일날 것 같고, 
뒤떨어질 것 같은 느낌도 그렇지만, 사실 부모 노릇하기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남들

처럼 못해서가 아니고, 남들처럼 안 하고 참는 일, 그게 제일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 예로 다시 돌아가보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딸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무렵 저에게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말했어요. 놀라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함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대부분 과외를 하기 때문에 제 딸만 집에 굉장히 일찍 집에 왔는데요, 보통 5~6교시 끝나면 옵니다. 그런데 자기는집에서 하루종일 책 보고 놀다가 가끔 놀러오는 애들이 있으면 같이 놀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돼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지금 성적, 내신으로는 도저히 대학을 못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든 아이들의 말을 존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그때 유일하게 꽤 강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제도권 안에서 길을 가는게 그래도 쉬운 길 아니겠느냐, 중졸이 되어 새로 시작하려면 그게 조금 더 힘들지 않겠느냐,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지나서

그냥 다니겠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저는 저나름대로 걱정이 참 컸지요. 그 성적으로 대학교 못간다니 말이에요. 그러다 겨울 방학이 됐는데, 세상에 얘가 다 싸짊어지고 노량진 고시촌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인 여자아이가 말이에요. 아마도 굉장히 지독하게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그 공부할 힘이 이미 딸아이에게 충분히 있었다고 봄니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책을 읽었거든요. 그렇게 고시원에서 겨울방학을 다 보내고 돌아와서 봄이 됐는데, 저한테 "제가 물리만 한두 달 과외를 하면 안 될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건 자기가 도저히 혼자 못 하겠었나봅니다. 그렇게 물리 과외를 한두 달 해서 대학을 잘 갔습니다. 물론 머리가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책을 읽고,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고, 정말 자기가 꼭 필요해서 시작했을 때 그 바탕 위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노력을 하는 것이 그렇게못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딸이나 저나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그런데 그것 또한 스스로 이겨내야지 어쩌겠습니까.
부모는 아이들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다치고 실수하136

그냥 다니겠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저는 저나름대로 걱정이 참 컸지요. 그 성적으로 대학교 못간다니 말이에요. 그러다 겨울 방학이 됐는데, 세상에얘가 다 싸짊어지고 노량진 고시촌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고등학교 2학년인 여자아이가 말이에요. 아마도굉장히 지독하게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그 공부할 힘이 이미 딸아이에게 충분히 있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책을 읽었거든요. 그렇게 고시원에서 겨울방학을 다 보내고 돌아와서 봄이 됐는데, 저한테 "제가 물리만 한두 달 과외를 하면 안 될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건 자기가 도저히 혼자 못 하겠었나봅니다. 그렇게 물리 과외를 한두 달 해서 대학을 잘 갔습니다. 물론 머리가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책을 읽고,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고, 정말 자기가 꼭 필요해서 시작했을 때 그 바탕 위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노력을 하는 것이 그렇게못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딸이나 저나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그런데 그것 또한 스스로 이겨내야지 어쩌겠습니까.
부모는 아이들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다치고 실수하

고 방황하는 것을 잘 겪어내도록 믿고 지켜봐줘야 합니다. 이미 이야기했습니다만, 제 경우에는 부모님께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바르게 가려고 애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참 많은 것을 공부하시고 경험이 많으신 분이지만, 평생 그냥 지켜봐주셨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법이 없으셨지요. 그것은 엄청난 신뢰가 바탕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제가 뭔가를 애쓰고 있을 때 잘해 나가리라고 말없이 믿어주시고, 뭔가를 애써서 잘했을 때 그걸 기뻐해주시는 분들이 없어져버렸더라고요. 물론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지만 어떤 절대적인 신뢰와 기쁨은 부모가 아닌 경우 그런 순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되돌아 생각해보면 사랑의 가장 좋은 방법은 믿어주는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는 일입니다. 잔소리하고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면 당장은 조금 효과가 있겠습니다만,
길게 봤을 때 넘어져 수렁에 처박혀도 다시 일어날 수있는 힘은, 앞에 절벽이어도 뚫고 나갈 수 있었던 힘은그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 그 믿음의 힘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봅니다.

헤맨 만큼 넓어지는 영토

얼마 전 일산에 있는 어린이집에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각각 ‘나무와 새‘ ‘나무 둥지‘ ‘느티나무‘라는 이름의 어린이집 세 곳이 함께 마련한 자리였는데, 고단했지만 참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부모가 제 아이 하나 돌보기도 쉽지 않은데 여러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이제 책을 읽고, 그 아이들 부모님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저를 불렀다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가서 보니 더욱 즐거웠습니다. 마침 어린이들이 손에손을 잡고, 자기들이 가꾸는 텃밭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어요.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그곳에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것 두 가지뿌리와 날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날개가 돋아나기를, 꿈과 뜻이 자라기를 기다려주는 것부모가 대신 달아주면 짐이 될 뿐이지요. 그 어려운일을 젊은 부모들이 꼭 해주기를 바랍니다. 더욱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땅에 발 디디고 뿌리 내리도록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발을 뗐다는 생각이 들 때 구역 하나를 정해주는 일. 이 구역, 요만큼은 내가 딱 책임진다. 혼자서. 그렇게 시작된 세상 한 귀퉁이가 점점자라나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바랍니다.
좋은 질문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한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에게 뭘 가르치려 해봐도, 예컨대 유아원 갈 때 자기 물건을 챙기게 해봐도, 며칠 못 가서화도 나고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뭘 빠뜨리고 가면, 그렇게 가서 낭패인 것을 경험하지않겠는가. 겉옷을 안 입고 가면 춥다는 걸 배울 것이고, 옷을 뒤집어 입고 간들 대수겠는가. 세상에 수업료없는 수업이 어디 있는가. 부모는 다 아이가 평탄하고곧은 길(그것도 자주, 부모 안목의 허구입니다)로 가길 바라지만 아이는 다른 길을 가보고, 엎어지고 자빠지며경험을 쌓습니다. 그렇게 헤맨 곳이 그 아이의 영토가된다고 저는 늘 말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뭐 하나라도 해냈을 때 눈여겨보고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것 정도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기회 있으면늘 하곤 하지요. 아이 스스로에게서 뭔가가 자랄 때를기다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주입하며 아이의 인생에

마구 개입하는 부모들의 자신감이 놀랍기도 하지만 우려도 많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기야 쉽지만, 막상 닥치면 현실의 일상이 쉽지 않은줄은 너무도 잘 알지만, 이제는 정말 그런 이야기를 좀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이즈음 기회가 있고 형편이 되면 떠듭니다.
여주 끝에서 일산까지는 만만찮은 거리였습니다. 고단했지만 이런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경청하는 학부모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좋은 사회 구성원이 잘 키워지는 곳, 거기 아니면 달리 어디에 우리의 미래가 있겠습니까.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발을 뗐다는 생각이 들 때 구역 하나를 정해주는 일. 이 구역, 요만큼은 내가 딱 책임진다. 혼자서. 그렇게 시작된 세상 한 귀퉁이가 점점자라나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바랍니다.
좋은 질문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한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에게 뭘 가르치려 해봐도, 예컨대 유아원 갈 때 자기 물건을 챙기게 해봐도, 며칠 못 가서화도 나고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뭘 빠뜨리고 가면, 그렇게 가서 낭패인 것을 경험하지않겠는가. 겉옷을 안 입고 가면 춥다는 걸 배울 것이고, 옷을 뒤집어 입고 간들 대수겠는가. 세상에 수업료없는 수업이 어디 있는가. 부모는 다 아이가 평탄하고곧은 길(그것도 자주, 부모 안목의 허구입니다)로 가길 바라지만 아이는 다른 길을 가보고, 엎어지고 자빠지며경험을 쌓습니다. 그렇게 헤맨 곳이 그 아이의 영토가된다고 저는 늘 말합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뭐 하나라도 해냈을 때 눈여겨보고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것 정도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기회 있으면늘 하곤 하지요. 아이 스스로에게서 뭔가가 자랄 때를기다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주입하며 아이의 인생에

마구 개입하는 부모들의 자신감이 놀랍기도 하지만 우려도 많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기야 쉽지만, 막상 닥치면 현실의 일상이 쉽지 않은줄은 너무도 잘 알지만, 이제는 정말 그런 이야기를 좀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이즈음 기회가 있고 형편이 되면 떠듭니다.
여주 끝에서 일산까지는 만만찮은 거리였습니다. 고단했지만 이런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경청하는 학부모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좋은 사회 구성원이 잘 키워지는 곳, 거기 아니면 달리 어디에 우리의 미래가 있겠습니까.

이 나무의 이파리,
동방에서 와 내 정원에 맡겨져,
남모르는 뜻을 맛보게 하고
아는 사람에게 기쁨 주네
이건 그 자체 안에서 둘로 갈라진
하나의 생명체인가?
아니면 참으로 귀하게 서로 만나
사람들이 하나인 줄 아는 둘인가?
그런 질문에 대답하려다
참뜻을 찾은 것 같네
그대 내 노래들에서 느끼지 않는가
내가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것을?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시 한 편으로 은행나무가 바이마르에서 누리고 있는 위상을 생각하면, 우리

해맑은 ‘어른‘ 괴테 할머니가
고단한 이들에게 전하는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수업

바르게 살면 큰일날 것 같고, 무슨 수를 써야지만 손해 안 볼 것 같지요? 아닙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지고, 작은 결단들에서 언제나 선한 결단 쪽을 택해서 묵묵히 가노라면 그것이 쌓여 마지막에는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묵묵히, 계속, 다만 바른길로‘ 중에서

괴테가 문제를 감당해가는 방법은 그 문제와 정면 대결을 하는 것입니다. 수학문제와는 달리 인생의 문제에는 답이 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면 그것을 감당하는 힘이 생기곤 하지요. 그는 정면 대결을 함으로써, 감내나 극복 정도가 아니라 번번이 문제를 뛰어넘어 훌쩍 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괴테가 문제를 감당한 방법‘ 중에서지난 날들을 돌아봤을 때, 자신의 매 순간순간이 최선이 아니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잘 살아왔으니 그러면 된 것이지요. 그래도 조금 더 열심히 잘해볼걸, 후회가 생기신다면 바로 지금 하십시오.
거대한 일, 멋진 일, 굉장한 일만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죽음을 굳이 떠올리지 않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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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ㅣ 페미니스트 크리틱 1
김은실.권김현영.김신현경 외 지음, 김은실 엮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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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으로, 타자로 자신을 인식하고 동시에 다른 여성과 타자로서 동일시하게 되는 경험은 대단한 계몽의 순간이다.
그러나 계몽의 순간이 ‘앎‘의 끝은 아니다. 
그다음 순간에 제기되는 질문은 최초에 제기되었던 질문과 경합하고, 또 질문들끼리 맞물려 더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교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여성들 사이의 차이는 어떻게 볼지, 모든 남성이 평등하지 않을 때 남성과의 평등이라는 문제에서 누구와 평등을 추구해야 할지, 남성은 모두 가해자인지 등 많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상황과 젠더 권력 관계의 절합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문제 제기 방식, ‘더 나은 해결을 위한 논쟁, 이론화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쓰였다. 
이를 위해 필자들은 현재 여성들이 직면한 이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젠더에 관한 기존의 시각, 사유 방식과 문제 제기의 틀 자체가 변화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다양한 필자들의 문제의식과 질문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이 책이 나오는 데 생각과 에너지를 보태준 권김현영, 김주희, 정희진에게 감사한다. 
특히 페미니스트 지성 공동체에 대한 열정으로 이 책이 완성되는 데 최선을 다한 정희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녀 특유의 성실성, 필자 모두와의 우정과 신뢰가 이책의 탄생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더딘 작업을 기다려준 휴머니스트 편집부에도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한다.
2018년 6월
김은실

머리말 004
서장 페미니스트 크리틱, 새로운 세계를 제안하다-・김은실008
1장 성폭력 폭로 이후의 새로운 문제, 피해자화를 넘어•권김현영031
2장 여성이 군대가면 평등해질까: 신자유주의 시대의 병역과 젠더- 정희진
3장 성매매 여성 ‘되기‘의 문화경제055-・김주희
4장 신자유주의 시대 10대 여성의 자기 보호와 피해-・민가영077099

(5장) 여자 아이돌/걸그룹과 샤덴프로이데:아이유의 《챗셔>논란 다시 읽기-김신현경
6장 10대 여성의 디지털 노동과 ‘소녀성‘
-김애라
7장 저출산 담론과 젠더: 여성주의 비판과 재해석-서정애
8장 다문화 시대 이주 여성의 이름과 젠더-이해응주 21912141719

서장
페미니스트 크리틱, 새로운 세계를 제안하다
김은실
페미니스트 크리틱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여성‘과 관련한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상징으로서, 규범으로서 정의되어왔던 ‘여성‘의 개념에 도전하고 균열을 내는페미니스트 크리틱(feminist critique)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그 의미가 획득되는가. 
페미니스트는 어떤 방식의 언어와 글쓰기 양식을 가질 수 있으며, 그 글쓰기 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언어가 수행하는 담론의 권력은 어떤 맥락이 있을 때 작동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여성학 수업에서 세 명의 페미니스트를 ‘지금, 여기‘에 초대하곤 한다. 

20세기 전반기, 여성 지식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했던 세 명의 페미니스트. 식민지 조선의 나혜석,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다.1

세 사람은 동시대에 살았지만, 역사적 공간은 달랐다. 나혜석은 일

제 식민지 공간에, 
울프와 보부아르는 제국주의 침략을 주도하는 제국의 수도에 살았던 페미니스트다. 
각자 다른 위치에 있던 여성들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이후 더 나은 방식으로 젠더 정치를 비판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에게 생각을 여는 좋은 계기가될 수 있다.

1929년을 기점으로 세 페미니스트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자. 나혜석은 1929년에 유럽과 미국 여행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1929년에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쓴다. 1929년에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만나 계약 결혼을 하고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일하기 시작하며,
1949년에 <제2의 성》을 출판한다.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여성도 사람임을 주장한 나혜석은,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여성의 조건을 극복하여 인간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면서 자신의 삶이 성 역할에 종속된 현실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를 향해 자신이 처한 삶의 곤경을 드러내는데, 그 형식은 자기 진술 혹은 자기 고백의 형식을 띤다. 신여성 나혜석은 결혼 전후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근대적 인간은 남성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나혜석은 남성과 동일시하며 여성도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결혼 이후에는 이전에 그토록 자신이 비판하고 떨쳐버리고 싶었던 ‘여성‘과 더 유사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자신과 구여성의 공통적인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2나혜석이 자신의 삶이 신남성보다 여성과 더 비슷하다는 인식과 자신이 ‘여자‘라는 구조적 조건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유럽과 미국 여행에서 서구 여성들을 보고 돌아와 이혼하고 난 후였다. 나혜석이 여성

의성 역할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또 답을 찾는 모든 출처는 바로 자신의 경험이었다. 나혜석은 그 경험을 거의 모두 잡지에 발표했는데,
그 길이는 몇 페이지를 넘지 못했다. 자기를 설명할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도, 여성의 삶을 설명하는 다른 참고문헌도 전혀 없었다. 나혜석은1948년에 행려병자로 사망한다. 2000년대 나혜석 전집을 읽는 한국 여성들은 나혜석의 고민과 현재 자신의 고민이 같다는 사실에 놀란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당시 영국 사회에서 남성 지식인들은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서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많은 참고문헌을 사용하며 ‘논문‘을 쓰는 데 반해, 여성들은시간의 단속성과 장소의 불연속성 속에서 참고문헌도 필요하지않은 ‘소설‘을 쓰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개념화하고 논쟁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1년간 글을쓸 수 있도록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울프는 여성의 독립에 필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사유 능력과 자기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울프에게 ‘여성‘은 자신만이 아니라 이미 복수로 존재하는 같은 역사적·사회적 조건에서 기인하는 구체적인 사회적 존재들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08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1929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공화정이도래한 1880년대부터 1914년까지 조직적인 여성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제1차 세계대전, 경제공황,
전체주의, 제2차 세계대전 등의 혼란기를 겪고, 1930년대 파시즘이 국제 평화를 위협하게 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여성의 자리는 가정임이 재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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