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가 인터뷰/
"미안합니다. 아내가 부르기 때문에나는 가야만 합니다."권희철

깜빡 속았다. 그랬다는 느낌이었다. 응모자들의 이름이 지워진 심사과정에서 나는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의 작가가 남성적인 목소리도 상당히 흉내낼 줄 아는, 그러나 역시 도발적인 매력과 여성적 섬세함을 미처 다 감출 수 없었던 신인작가라고 확신했다. 이 익명의 여성 작가와 만날 생각에 나는 남몰래 가슴 떨기까지 했었던 것인데, 도대체가, 장강명이라니. 장강명이라면,
압도적인 무공으로 순식간에 상대방을 제압해버리면서도 자신이 어떤 초식을 쓰고 있는 것인지 굳이 우렁차게 말로 설명해대는, 준수한외모를 지녔지만 도덕적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매력을반감시키면서도 작가의 호의에 힘입어 무수한 미녀들의 사랑을 받는,

대의를 위한답시고 결국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허무하게 잃고 난 뒤에야 광기 어린 발작 끝에 천하의 악당이 되었다가 끝에 가서는 실망스럽게 회개해 버리는, 무협지의 등장인물에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이런 사정 때문에 나는 조금 억울한 심정이었다. 그랬지만 얼마 안 있어 다른 의미로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장강명 작가의 전작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다지도 흥미로운 작가에 대해 나는 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일까? 『표백』(2011), 『뤼미에르 피』(2012), 『열광금지, 에바로드』(2014), 『호모도미난스』(2014)의작가 장강명은 매번 이 세계의 구조 같은 것에 관심을 드러냈고 그것을 해명해내고자 했으며 그 해명에는 언제나 설득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런 세계 안으로 던져진 인물들의 좌충우돌에는 독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작가는 아주 단단하게 뭉쳐져 매력적인 무게를 갖게 된 이야기를 세계 안으로 던져넣어서 세계의 중력장을 비틀어버리고자 하는 욕망을 부주의하게도 그다지 숨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난 여느 소설보다 훨씬 더 대단한 걸 쓰고 있다고, 공산당 선언과 대중소설 둘 중 하나만 쓸 수 있다면 어떤 기회를붙잡고 늘어져야 해?", 『표백』, 143쪽: "진짜 갈등과 고통은 제대로등장하지 않고, 작품은 일반인도 오덕도 부담 없이 낄낄대며 즐길 수있는 발랄한 헛소동을 지향한다. 그런 게 유행인 시대다. 대형서점의국내문학 코너를 작고 예쁜 표지의 경장편들이 점령한 이유도 이것이다", "열광금지, 에바로드』, 21쪽). 물론 이 부주의가 내게는 특히 매178

력적으로 보였지만. 그러니까 전형적인 오타쿠의 외모를 지닌 아저씨가 인터뷰에 나오더라도 난 이미 반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합정역에서 만났다. 그는 오타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그는 차라리 순진하고 얌전하며 모범적인 대학원생처럼 보였다. 작품이 풍기는 인상과 달리 무척 선하고 부드러워 보인다고 말하자, 그는 보기와는 다른 성격이라고 답했다. 그다지 믿기지 않는 대답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는일본 TV 만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바탕으로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강명 작가가 나와 비슷한 열정을 공유하는, 말하자면 아야나미 레이를 사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츠라기 소령에게 끌리는 마음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은덕(은근히 오타쿠)이라고 나는 막연히 추측했던 것인데, 이번에도 또 완전히 속은 걸로 판명됐다. 
연희동의 한 중국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그가 칭타오 맥주를 마시느라 방심한 틈을 타, 내가 <은하영웅전설>과 <기동전사 건담><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그리고 무엇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내 은밀한 열정을 고백하려고 했을 때, 그는 내 말을 거의 제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녹음을 하지 않아서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거의 이런 뜻이고 거의 이런 뉘앙스였다). "오타쿠들은 늘 자신들이 소수이며 또 학대받는다고 묘사합니다. 하지만 가만 보면 오타쿠적 취향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문학평론가조차도사정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오타쿠는 소수도 아니고 학대받지도 않아요. 차라리 오타쿠가 주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신세수상작가 인터뷰 179

기 에반게리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상처를 부풀려서 자기연민을 즐기느라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이카리 신지에게 나는 조금도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단둘이 앉아 있는 식탁에서 나는 내가 소수이며 또 학대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강명 작가와의 대화는 내게 조금 기묘한 인상을 줬는데,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깍듯한 존댓말을 써서 내가 대학원생 제자와 저녁식사를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나보다 세 살 위인데, 어떤 남자들은 고작 삼 년 차이에도 "난 너보다 세살이나 많지만 너에게 형처럼 굴 생각은 없어. 편하게 대해. 편하게.
알잖아, 나 그런 사람 아닌 거"라고 말하면서 불편하게 한다. 왜들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나보다 세상에 먼저 나오는 바람에 세상이 이지경인 데 대해 나보다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걸까. 장강명 작가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에게 깍듯하게 대하면서 무시할 것만 같은 인상이었다). 
최대한의 예의바른 겉모습과 달리 그 내용은 곱씹어볼수록 자신감이 넘치고 단호한 것이어서 약간은 거만해보일 지경이었다. 어느 분야에 대해서라도 할말이 많고, 그 말들을 차분히 정리해놓았으며, 그것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고 거기서 논쟁이 시작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만함이어서, 그게 다 내게는매력적으로 보였다. 
사실 논쟁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생각들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뿐 아니라 이미 그의 소설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린 것 같다. 그와 헤어지면서 이런 생각이 떠오

른 건 당연하다. 하라는 인터뷰는 안 하고, 수상작가 인터뷰, 어떻게 하지?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해줬더라. 딱히 부자는 아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서울의 중산층에서 나고 자랐다고 출신성분을소개했던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건전한 과학소년이 되어 추리소설과 SF의 팬으로 유년기를 보냈다고 했던 것 같다. 추리소설과 SF. 헝클어져 있는 사건들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고 수수께끼를 풀어내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혼돈스러워 보이는 현실세계를 자신만의 규칙으로 재구성해서 사고의 실험실을 만들어 우리 삶을 거기에 집어넣고 그 결과값을 기다려보는 것, 이 사고실험이 결국 세계를 좀더괜찮은 방향으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이 세계가 처한 문제를 좀더 뚜렷하게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믿음을 확인하는 것. 장강명 어린이는 그런 것들을 훈련하면서 커왔으니까 공대생이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다. 딱히 소설을 쓴다기보다 추리소설과 SF의 팬으로서 자신이 그걸 직접 써보기도 했는데(나는 이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그걸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었으므로 실행해버렸다. 장강명 작가의 말투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무협지의 주인공 같았다), 대학생이된 1994년부터 PC통신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에서 활동했고 거기에연재했던 소설이 군 휴학중 『클론 프로젝트』(1996)로 출간된 적도 있다(그는 이것을 ‘흑역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겸손한 타입이 아니니,
아마 진심으로 성에 차지 않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찾아 읽고 놀려주

고 싶었지만 그에게 여러 번 속았기 때문에 의외로 괜찮은 작품일 것같다).
그는 대학 시절 『월간 SF 웹진』을 창간하고 운영했다는데,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아마 거기서 재야의 고수가 됐던 것 같다. 그는대략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비슷한 것을 좋아하고 비슷한 것을 쓰는 사람들끼리 서로 애정을 고백하는 분위기가 나는 좀 답답했습니다. 그 답답함에서 작가의식 비슷한 게 처음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다른 걸 좋아하고 다른 걸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곳에서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런 게 궁금했어요. 그래서 소설이라는 것을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전에도 뭘 계속 써왔지만 소설을 쓴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SF를 썼습니다.
" 마치, 한 동네를 평정한 실력자가 중원으로 진출하는 듯한 인상.
명문 도장들을 찾아다니며 간판을 깨뜨려 버릴 것 같은 기대감. 지금 공모전마다 다 당선되는 그의 이력을 보면 내가 받은 인상이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소설을 써서 데뷔했고, 기자라는 번듯한 직업을 때려치우고 전업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뒤에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전업주부. 그것이 그의 표현이었는데, 이 자신만만한 사내가 이 점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퇴근한 아내에게 깨끗하게 청소된 집을 보여주며 칭찬받기를 기대하는 남편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전업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전업주부‘라는 것은 겸손한 표현이기보다, 나는 누군가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전업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전업작가가 된 것이라는, 다시한번 자신감의 표현인가? 전업작가에게는 언제나 생계의 문제가 장애물이 되는데 그것 때문에 그는 공모전의 상금을 타야겠다고 마음먹고 계속해서 상금을 휩쓸고 있는 중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공모전은 이제 그만 낼까봐요.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타고 싶은 만큼 공모전 상금을 탈 수 있다는 건가.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약간 기가 질리게 하는 타입의 남자인 것 같았다.

소설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여기에 다시 길게 옮겨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상한 바와 같이 (누구라도 그의 소설을 읽으면 그렇게예상하게 된다) 그는 한 사람의 깊은 상처에 골몰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세계에 관심이 없는 이야기라면 그가 먼저 관심 없어했고,
그는 무엇보다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했고 그 세계에 개입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의 욕망이 그의 작품 안에서 상당한 수준에서
실현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 그렇다면 장강명작가에게 『그믐』은 무엇입니까?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이 소년과 소녀의 대화 장면의 아주 구체적이고 섬세한 질감이라거나 두 사람의 마음의 엇갈림, 애틋함 이런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장강명 작가가 관심이 없다고 했던 부류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작품은 작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품인 겁니까? 심사위원들이 정작 작가 본인은 관심도 없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그런 걸 지지하면서 수상작으로 꼽은 것입니까? 음식은 별로 먹지도 않고 막힘없이 말하고 있던 작가가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삼 초쯤 망설였던 것 같

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생각해보지 못했네요. 내가 어떤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이야기에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지적은 확실히 옳습니다. 그믐은 내가 평소에 쓰려고했던 종류의 소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이 내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는아니었지만 나는 그믐의 성취가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쓰면서 나는 즐거웠습니다." 이 답변이 조금 이상했더라면 나는 아마도 장강명 작가를 의심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계에 관심이 없는 작가에게서 힘있는 작품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인간들의 마음, 그것의 깊이에 대해 관심이 없는 작가라면 대체 그 힘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믐』의 작가가 표백 등등을 이미 써버렸다는 사실이 내게는 특별하게 느껴졌고 장강명 작가가 이 두 종류의 소설을 함께 해내는 작가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그를 지금보다는 덜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표백』(세계의 해명과 세계를 움직이는 힘에 대한 탐구 및 그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의지)의 작가였고, 지금은 『그믐』(마음의 해명과 마음의 매듭을 묶고 푸는 힘에 대한 탐구 및 그 힘을 발휘하고자 하는 의지)의 작가가 됐다. 그가 그의 성취에 대해 스스로 과소평가했다면 나는 그의 안목에 대해 신뢰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양쪽 작업을 자각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믿음직한 작가 같으니라고.

장강명 작가는 클론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도 등단한 지 사년만

에 네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책이 또 네 권이란다. 그는 정말이지 전업작가인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쓸 소설의 성격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책을 읽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는 것은 자기 무대를 스스로 위축시키는 것 아닙니까?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사 보고 싶은 책을 쓰고 싶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말은 오해되기 쉬운 말이지만 내가 듣기에 이것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는 말 같았다. 그는 세계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자신이 이해한 세계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말 걸고 싶어했다.
그 말 걸기 속에서 세계의 중력장을 바꾸고 싶어했다. 그렇다면 알타미라 동굴 속에 들어가서 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벽화를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대도시의 한복판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어떤 사인을 그려야 하지 않는가. 그는 아마 베스트셀러를 만들 것이다. 흥밋거리인 줄 알고 펼쳐봤는데 자꾸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팸플릿 같은 것을. 팸플릿처럼 가볍고 빠르게 읽혔는데 다 읽고 나니 두툼하고 간단치 않은 장편소설로 판명되는 것을. 

그는 지금까지 마음먹은 것을 해왔으니까 실제로 그렇게 해버릴 것 같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생각했을 때 네 시간쯤 지났고, 우리가 떠들던 음식점은 마감시간이 다 됐다. 약간은 팬심을 가지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제대로 된 작가 인터뷰에서 나올 법한 질문 같은 것은 꺼내지도 못했다. 과학소년 시절의 에피소드라거나, 데뷔 전에 썼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소개라거나, 전업작가의 일상이라거나, 기자의 글쓰기와 작가의 글쓰기의 차이라거나 기타 등등. 하지만 아직 저녁 열시였으니까, 일반적으로 작가들에게 이런 시간이 별로 늦은 시간은 아니니까. 간단히 차나 맥주를 좀더 하면서 오늘 내게주어진 일, 인터뷰에 충실하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내가 마음먹은 것에 대해 작가에게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아내가 부르기 때문에 나는 가야만 합니다." 이런 단호한 사람 
마음먹은 것을 실행해버리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마 시간이 좀더 있었으면 그의 아내에 대해서도 물었을 것 같다.
그는 중간중간 아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던 것이다. 아내는 그의 원고의 첫 독자인데 매우 엄격한 독자여서 아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원고라면 어디 내놓을 때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긴다고. 표백도 그믐도 아내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작품이었다고. 그가 전업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결심을 지지하고 응원해준 것도 아내였다고. 내가 그믐』의 ‘보람‘을 지목하면서 어떻게 남성 작가가 이렇게 여자라고 느껴지는 여성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는, 그것은 아내의 성격을 관찰하고 묘사한 덕분이라고도 했다. 아, 그런 아내가부른다니, 나는 붙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떤 남자는 사랑하는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훌륭한 인물이 되기도 하는데, 장강명 작가가 그런 타입은 아닌지 잠깐 의심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은 대체로 무협지에 많이 나오지 않나? 정말이지 이 사내에게는 장강명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것 같다.

너를 만나기 위해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고작 패턴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어떻게 그 패턴 밖으로 나갈 것인가라는 매혹적인 질문을던지고, 이 어려운 질문에 맞서 훌륭히 싸워낸 서사였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독보적인 작품이었다. 별로 심사를 한다는 기분도 느끼지 못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_권희철(문학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교수)

함께 심사를 했던 젊은 평론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었다고 했다. 다시 읽기전에 나는 촌스럽게 울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밑줄을 죽죽 그으면서 읽었다. _김도연(소설가)

죄와 속죄, 반성과 용서의 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킨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진정한 속죄란가능하며 어떤 것이 진정한 속죄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그에 대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소설적 응답을 행한다. _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제각기 다른 관점을 지닐 수밖에 없는 세 인물의 서사를 정교하게 뒤섞어놓는다. 구상이절묘하고 거침이 없으며 그를 뒷받침하는 문장 역시 간결하고 정확하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장편소설의 한 전형을 제대로 보여준 것만 같아. 이 땅에서 함께 소설을 쓰고 있는 한 사람의 마음에 작은 질투와 커다란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그 전형이란, 바로 ‘사건 이후의 사건‘일 것이다. 장편의 핵심은 어쩌면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야기한 그뒤의‘사건‘에 있을 것이다. _이기호(소설가,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현실을 직시하는 충실함에 둥지를 틀었다. 그 둥지 안에서 알을 깨고 부화한 것은 뭉클한감동이다. 이 작가의 둥지 안에는 이야기를 품은 어린 새들이 더 많이 들어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보여줄 힘찬 날갯짓이 너무나 궁금하다._천운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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