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내가 쇳덩이를 들어 올릴 수 있게 옆에서 비트를•넣어주었고, 한강 고수부지에서 커플들 사이를 달릴 때 외•로움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Say ho"를 외쳐주었다. 래퍼들은 나에게 천편일률적인 삶의 틈바구니에서 엉뚱한 짓을 일삼고도 꽤 멋지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내 인생의 폭을 잔뜩 넓혀놓고 가당찮은 불안일랑 들어오지 못하게 으름장을 놨다. 알게 모르게 권위적으로 구는 치들 앞에서 고개를 치켜들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쭉 내 인생엔 힙합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넉 달간 우린 어둠 속에서만 친구였다. 우린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던 서로의 소년성少年性을 지켜줬다. 거•기엔 어떤 호응도 위로도 필요 없었다. 그저 규칙적인 호흡이 가져오는 팽팽한 긴장만이 우리를 지탱했다. 그건 내가어른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느껴본 소년성이었다. 이후론 그 어디서도 그런 대화를 나눠본 바 없다. 어디서나 꽤믿음직한 어른으로 기능하느라 솔직하지 못했다. 간혹 술자리에서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맥주나 소주 따위를 조금씩 홀짝대며 취한 척 속 얘기를 꺼냈다. 내가 평소에 느낀 경악, 두려움, 혼란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재를 언제 봤다고 이런 얘기까지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 없는 관계가 주는 속 편한 감정도 있다. 고백한다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은밀한 즐거움이 통용되는 가벼•운 사이였다. 흐리멍덩한 눈과 무표정한 말투로 술집의 나
지막한 조명에 몸을 숨기고 술술 털어놨다. 어쩌면 술집에는 그 부연 조명에 마음을 쬐러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내게 소년성이란 호프집 통닭 앞에서나 유효한 단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빈은 그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서는 쓰지 않았던 통계학적 접근 방식을 써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가 추구한야구 전략은 여느 혁신가와 다르지 않게 기존 주류의 거친 반대를 무릅써야 했다.
경기 전략을 짤 때 수학적인 통계로 접근하다 보니 야구판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 야구인들의 미움을 산 것이다. 특히 성적이 안 나올 때는 수모에 가까운 말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빌리 빈은 어땠을까? 빌리 빈은영화에서 자기 동료에게 우리 방식을 굳이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을 굳이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빌리 빈은 그깟 허울 좋은 의미 부여보다는 그냥 밀고 나가는 방식을 택한다. 우선 일을 진행하면서 바로 그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것저것 생각하며 당위를 부여하느라 지쳐버린 내 등판을 후려치는 영화였다. ‘아, 세상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도 행동을 멈추지 않는 행동주의자가 바꾸는구나?
나는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를 때는 우선 헬스장에 가서 생각한다. 쇳덩이를 들어 올리다 보면 이유 없이 운동이 좋아진다. 내 주변에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별 이유 없이 그냥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여러 이유를 갖다 붙일 순 있겠지만, 이유에 잠식당하지 않는 자가 진정한 헬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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